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오케스트라, 그 속에 내포된 사회학 (1) 

오케스트라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관현악곡은 사회와 문화의 거울이다. 달콤하거나 웅장한 음악을 들으면서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어떻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닮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기원전 10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시리아인들의 오케스트라. / 사진:alamy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집단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오케스트라를 구성했을까. 기원전 10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보자. 휴대용 각 하프(angular harp) 일곱 대, 왼쪽에서 세 번째 사람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원형일 수도 있는) 덜시머(dulcimer) 혹은 심발론, 왼쪽에서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사람이 연주하는 고대 관악기 아울로스, 열 번째 연주자가 연주하는 작은북이 그려져 있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보관·전시된, 두꺼운 널빤지 위에 그려진 일종의 목판화 속 연주자는 중동지역, 정확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던 아시리아인들로 추정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귀환하며 행군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가장 오래된 연주자 집단이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해 뒤따르는 이들은 손뼉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앞에 있는 연주자들을 따르고 환영하는 이들로 추정된다. 이 연주자들과 이들의 악기를 이들이 속했던 문명에서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살았던 아시리아인들의 오케스트라는 전쟁이나 사냥, 종교적 제의(祭儀) 등에 참여하는 집단으로 보인다. 그림 속 연주자들의 성별을 구분하기는 조금 어렵다. 여성 연주자가 없었던 걸까? 참고로, 여성은 1997년까지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볼 수 없었다. 2019년, 이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의 상임 단원 145명 중 15명만 여성이었다. 가장 먼저 여성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나라는 영국으로, 1913년의 일이었다. 런던의 퀸스 홀 오케스트라(Queen’s Hall Orchestra)에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 6명이 고용된 것이다.

오늘날 관현악 혹은 관현악단으로 번역되는 오케스트라(orchestra)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단어 ‘ορχήστρα’(‘오리시셰스트라’와 같이 발음한다)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오케스트라는 원형극장의 중심에 있던 공터였다. 그곳에서 춤과 노래가 뒤섞인 코레이아(choreia)가 행해졌다. 이것은 집단 춤을 뜻하는 코로스(chor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코레이아가 행해졌던 장소인 오케스트라가 둥근 것은 그곳에서 사람들이 원을 따라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숭배했던 디오니소스 신의 탄생과 죽음, 부활을 춤과 노래를 통해 체험했다. 시간이 흘러 오케스트라가 반원으로 축소되고 그 옆 스케네(skene)가 커져 무대가 되었다. 이후 스케네로부터 장면을 뜻하는 신(scene)과 무대를 뜻하는 스테이지(stage)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는 막사였던 스케네가 무대가 되면서 제의는 참여 공간에서 관람 대상으로 바뀌었다. 함께 춤추고 열광했던 고대의 제의가 관람자와 행위자가 분리되는 근대적 예술로 바뀐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의 오케스트라는 장소를 뜻하는 단어에서 연주자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로 뜻이 바뀌었다.

1780년 이후 표준화된 앙상블 등장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 사진: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중세 서양에서 악기들은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중세 말, 농민 겸 연주자가 비정규적으로 충원되면서 ‘마을의 음악가’로 불리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근대의 원형적 관현악단은 특정한 음악적 임무를 위해 잠시 모였다가 해산하는 테스크 포스(task force)였다. 특히 왕과 귀족, 시장 등 권력자의 행렬을 반기거나 기리는 음악적 행사를 위해 연주자 집단이 동원되었다. 이들을 영국에서는 ‘waites’(현대 영어로는 ‘waits’)로 불렀고, 독일에서는 ‘Stadtpfeiffer’(도시피리연주자)로, 이탈리아에서는 ‘pifferi’(피리 부는 이) 혹은 ‘alta cappella’(높은 예배당)로, 프랑스에서는 ‘haute musique’(높은 음악)로 불렀다. 주로 관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 연주자 집단은 서양 역사가들에 따르면 유럽 이외 지역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다. 영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들 연주자 집단의 연주를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다. 전통이 잘 보존된 나라여서 그럴까. 이들과 다른 갈래에서 진화해온, 기량이 높아진 연주자들을 귀족과 왕족이 결혼식 같은 행사에 초대하는 시대가 왔다. 여흥과 파티를 위해 연주하는 전문 악사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이들의 악기는 오늘날의 악기와 매우 달랐고 연주자들에게는 종종 악보가 없었다. 악보가 없어도 대충 잘할 수 있을 단순한 곡을 연주했다는 이야기다. 고정된 역할이 없었던 연주자들은 연주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연주했고 그들 내부에서 서로 악기를 바꿔가며 연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사(前史)가 끝나는 18세기 중반쯤 되면 오늘날의 근대적 관현악단이 맹아적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시기의 개별 악기들처럼 관현악단도 표준화(standardization)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18세기 초반 빈에서 흔히 보는 관현악단은 동시대의 파리나 런던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오늘날에는 빈과 파리, 서울의 관현악단이 매우 비슷하다.

1780년경부터 1830년경까지의 기간 동안 근대 오케스트라의 전형인 고전적 관현악단이 형성되었다. 여러 도시에서 전문 연주자들이 특정 악기들만 연주하는 표준화된 앙상블이 등장했다. 전례 없는 시기에 흐름을 잘 탄 작곡가로 오스트리아의 하이든을 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지방 제후의 전속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이었던 그는 고전적 오케스트라를 위해 교향곡을 100곡 넘게 쓴 바람에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전적 오케스트라는 그의 후배들인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공유한 포맷으로, 2관 편성이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 중 관악기, 특히 목관악기가 범주별로 두 대씩인 경우, 이를테면 플루트 둘, 오보에 둘, 클라리넷 둘, 바순 둘인 경우를 가리켜 2관 편성이라 하며 이들이 각각 세 대씩일 때는 3관 편성, 각각 네 대씩이면 4관 편성이라고 한다. 참고로 5관은 없고, 1관도 현대에 와서 새로 생겼다. 관 편성에 따라 금관이나 현악기의 수도 조정되어, 2관 편성이면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거나 중급이고, 3관과 4관인 경우 오케스트라는 더 크다. 2관의 고전 관현악단에는 대략 40명 내외의 연주자가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세 악기 집단으로 구성된다. 현악기(string), 목관과 금관을 아우르는 관악기(wind), 타악기(percussion). 아시리아인의 오케스트라를 생각해보자. 하프와 덜시머가 현악기에 속하고, 아울로스는 관악기에, 북은 타악기에 속한다. 현, 관, 타악기의 구분은 사실 보편적이다.

고전적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관현악곡에서 이상의 범주 혹은 그룹에 속하는 악기 중 주요한 악기들은 독특한 음색을 자랑하며 그 범주 속에서 주요 악기는 다른 악기에 묻히지 않고 잘 들린다. 악기의 식별을 방해하는 융해된 음향은 무척 드물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세력들의 융화, 특히 화학적 융합을 희망하면서 그런 상태를 오케스트라에 견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은유다. 고전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융화와 융합이 아니라 병렬과 대조 속 조화, 대동단결, 구동존이 (求同存異)의 미학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것이 더 큰 음악적 맥락 안에서 일치단결하여 융화·융해되고 개별적 정체성을 잃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은 후기 낭만 주의 시대 이후 일부 독일 작곡가의 이야기다. 자유분방한 프랑스의 많은 작곡가는 끝내 이러한 독일 음향을 좋아하지 않았다.


▎19세기 헨리 조지 하인(H.G. Hine)이 (자선단체) 세븐다이얼 웨이츠(The Waits at Seven Dials)의 거리 음악가를 묘사한 ‘크리스마스 기다림’(Christmas waits), 1853 / 사진:위키피디아
고전 오케스트라가 등장한 시기에 연주자들을 통솔하는 지휘자가 무대에 섰다. 이보다 앞선 시대에는 지휘자 없이 연주자들끼리 서로 합의해가면서 앙상블 연주가 이루어졌다. 고전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면서 자유로운 연주자들의 상호 조정과 양보를 통한 합주는 더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커다란 운송 수단의 작은 바퀴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을 통솔하는 지휘자의 상위 세계와 동떨어져 살았다.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들인 베토벤이나 칼 마리아 폰 베버 등은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고전 관현악의 내부에는 어떤 위계가 있다. ‘현-목관-금관-타악기’의 순서로 구성된 위계다. 현악기가 다른 악기 그룹보다 많이 연주되고 중요하다. 관악기는 가끔 특별히 강조되는 음색을 위해 연주되는데 목관이 금관보다 중요하다. 각 그룹 내부에서도 주요 악기와 덜 중요한 악기로 구분된다. 현악기 내부에서는 바이올린이 선율을 주로 연주함으로써 가장 중요하고 첼로는 아주 가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5악장의 첫 주제를 연주하는 첼로의 그윽함은 무척 드문 시도로서 대단한 혁신이었다. 비올라와 더블베이스(콘트라베이스)가 선율을 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래전에 피천득은 수필 [플루트 연주자]에서 베이스가 맡은 전대미문의 역할을 잘 묘사했다. “야구팀의 외야수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스켈소’[scherzo]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10명에서 20명에 이르는 바이올린은 제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으로 반드시 분할되는데, 제1바이올린이 선율을 연주한다면 2바이올린은 주로 장식적 역할을 담당한다. 목관악기 중에는 플루트가 가장 중요하고 금관 중에는 호른이 중요하다. 타악기는 리듬만 담당하며 매우 산발적으로만 등장한다. 고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고전음악은 겉으로는 조화롭고 균형 잡혀 보이지만, 실상 중층적 위계 구조가 내재하며, 화려한 일부 주연 악기와 역할이 많지 않은 다수 악기로 구분된다. 특히 팀파니 같은 악기는 고전 시대에 한 곡에서 두 개 음만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팀파니 성능이 그런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어떤 교향곡은 10분이 넘는 1악장에서 제1바이올린 연주자는 수백수천 개 음을 바삐 연주하지만, 팀파니 연주자는 두 음만 느긋이(!) 연주한다. 물론 팀파니가 오케스트라에 강력한 효과를 제공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절정의 순간, 그가 빠질 수 없다. 피천득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팀파니스트가 되는 것도 좋다. 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들기는 순간이 오면 얼마나 신나겠는가?” 흥미롭게도 모든 오케스트라에서 팀파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를 포함해 모든 연주자는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무관하게, 자신이 총 몇 개 음을 연주하는 것과 무관하게 같은 봉급을 받는다. 역할 차이가 있는 연주자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이유에는 어떤 심오한 철학이 있을까. 연주하는 음의 개수대로 월급을 줄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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