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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파워 유튜버 100] 1MILLION Dance Studio 

안무가에서 CEO로 진화 중인 리아킴 

“요새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안무가. 세계에서 가장 ‘핫’한 댄스 커뮤니티의 수장 리아킴과의 만남은 기분 좋은 반전 매력으로 시작됐다. 포브스코리아 9월호 커버를 장식한 그녀는 목이 늘어난 흰 티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와는 상반된 얼굴을 한 36세 김혜랑은 어떤 인물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리아킴. 마이클 잭슨에 반해 댄스신에 뛰어든 중학생 소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름 석 자 이외에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글로벌 댄스신의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그녀의 화려한 수상 경력과 수많은 K팝 아이돌의 ‘리아킴표’ 안무보다 그녀를 더 아이코닉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2014년 설립한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이하 원밀리언)다. 창업 후 3개월 만에 개설한 유튜브 채널은 5년 만에 2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매료했다. 원밀리언은 블랙핑크, 하이브(HYBE), 방탄TV에 이어 한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구독자 1000만 명을 넘긴 유튜브 채널에만 주어지는 ‘다이아몬드’ 버튼은 2018년에 이미 수상했고, 2021년 8월 현재 2420만 명을 돌파한 뒤에도 쉴 새 없이 늘어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힘이 있었다. 얼마 전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했다는 그녀의 구릿빛 피부가 눈에 띄었다. ‘혹시 서핑이 취미냐’고 묻자 “아뇨. 반려견들을 자주 산책시키느라 좀 탔어요”라며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영감의 원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저는 평소에 생각이 엄청 많아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 게 문제예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다양한 생각을 춤으로 풀어내고 나면 항상 명상이나 요가로 제 자신을 ‘리셋’해요. 명상은 퍼포먼스를 끌어올려 주는 정말 효과적인 도구죠”라고 답했다.

매우 차분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이후 두 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그녀의 삶의 무게추가 댄서 리아킴에서 원밀리언 대표로서 가진 꿈과 비전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밀리언의 궁극적인 목표요? ‘마블’을 예로 들고 싶어요. 마블의 세계관은 앞으로 수십 년간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방대하잖아요. 원밀리언이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댄스 콘텐트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춤은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춤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죠. 댄서로서, 사업가로서 춤으로 할 수 있는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역사의 시작은 허름한 지하 연습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리아킴이 춤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사진: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원밀리언은 2019년 12월 성수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호주에서 건축을 전공한 원밀리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메리정의 솜씨로 성수동 한복판에 있던 커다란 인쇄 공장이 댄서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화이트와 그레이톤의 깔끔하고 탁 트인 3층짜리 사옥을 보고 있자면 리아킴이 과거 월세 70만원짜리 지하 연습실에서 생활하던 시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 그녀는 그곳에서 혼자 프리스타일 영상을 찍어 다음 카페와 싸이월드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춤은 글이나 라디오로는 홍보할 수 없잖아요? 댄스 학원을 홍보하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올렸어요. 업로드할 수 있는 모든 플랫폼을 활용했고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꼽는다. 세계적인 댄스 대회 우승자 출신, 가수 이효리의 춤 선생, 국내 3대 기획사 안무 트레이너로 이미 댄서로서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 것도 벌벌 떨 정도로 어려웠다”니. 그 좌절감은 쉬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는 국내 톱 댄서로 인정받아도 여전히 돈을 못 버는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댄서들의 땀과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사무치게 다짐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왔다. 2011년 중국 댄스대회에 출전한 리아킴의 영상을 프랑스 댄스 영상 촬영 전문팀이 유튜브에 올리면서 20만 뷰를 달성한 것. “당시만 해도 몇십만 뷰는 어마어마한 숫자였어요. 이때부터 댄스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죠.” 그렇게 원밀리언의 작지만 힘찬 행보가 시작됐다. 공동대표이자 인생의 파트너인 윤여욱씨와 함께하는 긴 동행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리아킴이 운영하던 학원의 수강생이었던 그는 그녀와 댄스팀으로 함께 활동하며 매니저 역할부터 연습실 청소, 영상 촬영 및 편집, 업로드까지 도맡아 원밀리언의 토대를 만들어나갔다.

전 세계 2420만 명을 사로잡은 저력


혹자는 말한다. 원밀리언의 세계적인 인기는 리아킴이라는 스타 댄서와 유튜브라는 생태계 파괴자가 만난 결과물이라고.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의 인기가 그저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원밀리언의 DNA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구성원들이 서로 열정을 부딪혀가며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온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원밀리언에는 ‘리아킴 키즈’들이 포진한 20여 명의 안무가 집단, ‘1일 3영상’ 업로드라는 업무량을 소화해내는 영상팀, 원밀리언만의 스타일과 ‘톤앤매너’를 디렉팅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콘텐트 디렉터, 스타일리스트 군단이 있다. 이들의 손에서 안무가들의 의상, 메이크업, 곡 선정, 조명과 인테리어뿐 아니라 댄스 수업에 참여하는 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까지 모든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세계가 열광하는 원밀리언의 콘텐트가 만들어진다.

‘100만 명을 춤추게 만들겠다’는 리아킴의 비전처럼 원밀리언의 주인공은 안무가 한 명이 아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이 댄스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춤을 10~20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대중화될 수 있도록 원밀리언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들이 사내 프로그램 중 하나로 원밀리언에 댄스 수업을 요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원밀리언에서는 안무가가 안무를 완성하면 수강생들과 수업을 진행한 뒤 수업 마지막 날에 촬영한다. 그리고 약 1시간에 걸쳐 현장의 모든 것을 원테이크 라이브로 담는다. 수강생들이 춤에 몰입할 수 있게, 안무를 맛깔나게 살려낼 수 있게 옆에서 끊임없이 격려하는 것도 안무가의 역할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에는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이의 숨소리와 환호성, 땀과 표정이 농축되어 있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연습실 바닥에 앉아 춤꾼들의 카타르시스를 직관하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안무가와 수강생들이 똑같은 안무를 본인만의 스타일로 즐기는 이 콘셉트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포인트가 무엇일지 집요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K팝 아이돌보다 유명한 댄서 커뮤니티


통역이 필요 없는 몸의 언어에 춤을 사랑하는 글로벌 팬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원밀리언의 수강생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차지했다. 방학 기간에는 한국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수업을 듣는 외국인 학생이 즐비하다. 리아킴의 수업을 듣고 싶어 한국으로 날아와 체류하며 원밀리언 소속 안무가가 된 이들도 있다.

한국에 직접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원밀리언은 전 세계 21개국을 돌며 워크숍을 개최하는데 2016년부터는 중국 8대 도시를 도는 중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다년간 전 세계 수강생들과 스킨십을 통해 만들어진 글로벌 팬덤은 원밀리언을 K팝 아이돌보다 유명한 댄서 커뮤니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머무르던 댄서들이 독립적인 아이콘이자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음악, 뷰티, 패션, F&B, 게임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이들을 모델로 발탁하며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많은 기업이 그들이 만들어내는 파괴적인 에너지에 자사 브랜드를 접목하고 싶어 한다. 리아킴을 필두로 원밀리언의 여성 안무가들이 나이키 우먼스의 글로벌 모델로 발탁됐고, LG생활건강과 협업해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한 뷰티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들의 확장성을 보고 있자면 그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국내 브랜드들은 물론이고 중국의 알리페이, 스페인의 데시구알, 글로벌 패션하우스들과 대한민국 정부 부처들까지 80여 곳이 이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그중 리아킴이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로 꼽은 것은 바로 지난해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한 코로나19 극복 캠페인이다. 이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 영상은 280만 뷰를 기록하며 많은 이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녀는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이 너무 뿌듯했어요”며 “코로나 시국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나중에 다시 보면 더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요”라는 소감을 전했다.

온라인 댄스 플랫폼으로 확장


원밀리언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그간 가파른 성장세에 미뤄두었던 회사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해 초부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개발자들을 다수 영입해 20여 명으로 개발팀을 꾸렸다. 코로나19로 그간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던 오프라인 수강생들이 끊기면서 매출이 크게 감소했지만, 그만큼 온라인 콘텐트와 비대면 수업에 대한 니즈가 많아 버틸 수 있었다. 2018년부터 준비해오던 온라인 서비스도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원밀리언에서 수업을 듣고 싶은 이들이 장소에 관계없이 앱으로 원하는 안무가의 춤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서비스의 취지다.

그녀는 원밀리언의 대표 안무가라는 타이틀보다 회사의 공동대표로서 사업 전반에 대한 맥락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말했다. “댄스업계는 이제 겨우 유의미한 변화가 시작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원밀리언도 수면 위로 간신히 고개만 내밀었을 뿐이죠.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해요. 아마 이 부분이 괴롭고 힘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지 않을까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춤이라는 장르가 가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꿈은 “사람들이 가장 유명한 음료수 브랜드로 코카콜라를 떠올리듯이, 댄스 하면 전 세계 누구나 원밀리언을 생각할 정도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원밀리언은 온라인 아카데미를 활성화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IT 기술과의 접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그녀가 최근 SK텔레콤과 협업해 만든 메타버스 공연은 ‘K콘텐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 큰 주목을 받았고, 게임업계와도 다양한 협업을 모색 중이다.

음원 저작권에 비해 보호받지 못하는 안무 창작의 권리 신장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녀가 만든 수많은 시그니처 댄스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해 힘든 시절을 보냈던 것처럼, 후배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녀는 “비보이가 2024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댄스업계는 이제서야 유의미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어요”라며 “저보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다들 유명해지고 인정받으면 좋겠어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

202109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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