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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22) 

밥과 빵이 만든 동서양의 문명 

필자는 30여 년 동안 50여 개국 사람들과 무역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서구 기업인, 중국, 일본, 대만의 아시아 기업인들과 경쟁하고 협력해왔다. 인간의 본능은 문화권에 상관없이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부분이 더 많지만 문화에 따라 의사결정 방식과 협상 방식, 조직문화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오래된 풍차, 16~18세기 유럽에는 제분을 위해서 풍차가 20만 개 이상이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유전자(MEME) 차이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은 ‘주로 뭐를 먹고 사느냐?’인데, 크게 보면 동양과 서양은 벼와 밀의 식문화로 대변된다. 쌀밥을 먹는 동양과 빵을 먹는 서양, 무엇을 먹느냐는 고대부터 경제활동과 삶의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동양에서는 가족을 ‘식구(食口)’, 즉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서양에서는 가족을 빵을 같이 먹는 사람, ‘Companion’이라고 부른다. 아시아에서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밥을 먹는 문화이다. 개인적으로 밥을 먹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묘한 집단주의적 사고라는 동질감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 빵을 먹고 사는 서양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사고와 행동은 아무리 자주 만나고 공부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면들이 있었다.

인류 역사를 보면 밀은 쌀보다 더 먼저 재배되었다. 고대 중동, 이집트 등 고온건조한 지역에서 발생한 초기 문명에서 일찍부터 밀을 재배하고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었다. 동양에서도 밀을 길렀으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는 밀과 함께 기장, 조, 보리 등 다양한 작물을 함께 재배했다.

한반도에서는 1만5000년 전에도 벼 재배 흔적이 남아 있지만 본격적으로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고 가난한 사람들까지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다. 쌀은 원산지가 인도와 동남아 일대인 아열대성 작물로, 많은 물과 일조량, 비옥한 토지가 있어야 한다. 잡초나 병충해에는 약하지만 사람을 많이 투입하면 면적 대비 엄청난 양의 식량을 생산해낼 수 있다. 옛날에는 쌀농사가 밀농사에 비해 10~20배나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쌀농사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은 이유는 좁은 면적에도 생산량이 많아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손이 많이 가서 사람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단위면적당 칼로리 생산량을 비교하면 벼가 밀의 3배에 이른다. 그래서 쌀농사가 잘되는 계절풍 지역인 중국, 인도, 동남아에 수십억 인구가 사는 것이고, 한반도에서도 거의 모든 들판이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논으로 바뀌어버렸다.

한반도에서도 누룩을 만들기 위해서 밀을 재배했지만 생산량이 무척 적었다. 기후가 밀 재배에 적합하지 않고 쌀, 보리, 조 등 주곡 생산이 워낙 중요했기에 생산량이 떨어지는 밀을 재배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밀은 귀한 곡식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연회의 성찬에 국수를 내놨다. 국수의 긴 면발이 장수를 의미한다고도 하지만 원래부터 중요한 잔치에 내놓는 귀한 음식이었다. 이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큰 잔치에는 국수를 내놓았고, 얼마 전까지도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잔치국수를 대접했다.


▎헝가리 초원의 밀밭.
유럽에서는 18세기에 계몽주의 학자들이 생산량이 많은 쌀농사를 권장하기도 했지만 건조한 기후 때문에 결국은 실패했다. 쌀을 재배하려면 논에 항상 물이 일정량 차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비가 많이 와야 되고 관개 시스템도 필요하다. 여기에 모판을 기를 때부터 모내기, 잡초 제거, 추수까지 엄청난 노동을 해야 한다. 밀농사를 하려면 1년에 1400시간 정도만 설렁설렁 일하면 되지만 쌀농사를 하려면 1년에 3000시간을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 게다가 쌀농사는 논의 물을 일정량 유지하기 위해서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노예를 써서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벼농사 지역에서는 소사장제와 비슷한 소작농 제도가 발달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의병들이 방방곡곡에서 들고 있어난 것은 한반도식 소작농 제도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반면에 밀은 맨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관개 시스템이 필요없고 농사짓는 난도가 높지 않아서 노예를 써서 해도 별 어려움이 없다. 유럽에서 중세에 농노제가 발달한 것은 노예들이 밀농사를 지어도 별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중세 이전에 유목과 농경을 같이하면서 살았다. 적당히 씨를 뿌리고 유목생활을 하다가 작물이 다 자랄 때쯤 돌아와 수확을 하는 것이다. 밀은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잡초와 병충해에도 강했다. 쌀처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수확하기도 쉬워 유목생활을 병행하는 서양 사람들에게 잘 맞았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행동학자 토머스 탈헬름은 2014년에 밀농사를 많이 짓는 양쯔강 북부 사람들과 쌀농사를 많이 짓는 양쯔강 남부 사람들을 비교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먼저 이 지역의 6개 도시에 있는 256개 커피숍에서 8964명을 관찰해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의 수와 여러 명이 합석한 사람의 수를 비교했다. 혼자 앉아 있는 것은 홀로 일하는 밀농사의 개인주의적 문화와 일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사 결과 쌀농사를 하는 남부 지역보다 밀농사를 하는 북부 지역에서 약 10% 더 많은 사람이 혼자 앉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의 비율은 주말보다 월요일에, 오후나 저녁보다는 오전 시간대가 더 많았으나 쌀과 밀의 차이는 그대로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커피숍에서 의자를 좁게 배치한 다음 그 좁은 공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지나치는지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쌀농사 지역에서는 약 6%의 사람이 의자를 옮긴 반면 밀농사 지역에서는 약 16%의 사람이 의자를 옮기게 하고 지나갔다. 연구진은 처음 시도한 이 실험을 미국과 일본의 도시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쌀문화인 일본에서는 8.5%의 사람이 의자를 움직이게 한 반면 밀문화인 미국에서는 그 비율이 20.4%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쌀문화와 밀문화의 문화적 유전자가 자본주의적으로 바뀐 세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자신과 동료를 원으로 표시해 연결한 사회관계도를 그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는 개인주의 의식을 측정하기 위한 것인데, 기존 연구에서 미국인과 유럽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각각 6㎜, 3.5㎜ 정도 크게 그렸다. 반면 일본인은 자신을 더 작은 크기로 그렸다. 이 실험에서도 쌀농사 지역에 사는 학생들이 자신을 더 작은 원으로 그렸다. 중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도 이와 일치했다. 남부 지역 학생은 자신을 더 작은 원으로, 북부 지역 학생은 자신을 더 큰 원으로 그렸다. 결국 쌀농사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서 밀농사 지역 출신 학생들보다 동양 문화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동서양의 이러한 사고, 언어의 차이를 쌀문화와 밀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 벼농사를 하기 위해선 이웃 간에 물을 나눠 사용해야 하는 관개 시스템이 필요하며, 피를 뽑는 작업 등 밀농사에 비해 약 2배, 약 3000시간을 일하면 몇 배의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탄수화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저수지가 있는 동네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물을 공평하게 나누어 각자의 논에 댔다. 모내기를 할 때부터 늦여름까지 끊임없이 논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 논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내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밥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다”라는 이야기를 셀 수도 없이 여러 번 하셨다. 논에 물 들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했으면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 자연히 물길은 마을 공동체의 결정을 통해 공유하고 엄정하게 관리되었으며 어떤 이기적인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한자 ‘쌀 미(米)’ 자는, ‘팔(八)’+‘십(十)’+‘팔(八)’ 자로 이뤄져 있다며 이는 손길을 88번이나 거쳐야 비로소 쌀 한 알이 완성된다는 것을 뜻한다고까지 이야기되었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아침에 해가 뜰 때부터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특히 산이 많은 한반도에서 논농사를 짓는 것은 훨씬 더 고생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일이 많으니 모내기나 추수를 할 때 두레나 품앗이처럼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자연히 생겼다. 따라서 벼농사를 하는 지역에서는 이웃 간에 협업하는 상호의존적이고 집단적인 문화가 형성됐다.

동아시아는 중앙집권적 왕권국가, 유럽은 지방분권적 도시국가


▎기원전 2300~2350년 이집트에서 효모(이스트)를 넣어 밀을 반죽하는 모습.
이에 비해 밀은 좀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녀 유럽에서 많이 재배됐다. 게다가 밀농사는 자연 강우만으로도 충분해서 관개 시스템이 필요없으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할 필요가 적다. 또 쌀은 수확 후에 별 가공 없이 벼 껍질만 벗기는 도정을 하고 쪄서 먹지만 밀은 낱알이 쉽게 깨지기 때문에 껍질만 분리해낼 수 없다. 그래서 알곡을 통째로 부셔서 가루를 내고 체에 걸러 껍질을 제거하는 제분 과정을 거친다. 제분이 손쉬운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쌀과 달리 큰 규모의 방앗간이나 공장이 있어야 했다. 당연히 그곳엔 제분을 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기계가 필요했고, 또 그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수력, 풍력과 같은 자연의 힘을 빌리거나 동물의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 풍차, 방아와 분쇄기 등 복잡한 기계들이 필요했다. 16~18세기 유럽에는 풍차가 20만 개 넘게 있었다.

제분을 하고 나서도 빵을 만드는 것은 밥을 짓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빵은 밀가루에 효모를 넣고 여러 번 반죽하는 데도 몇 시간이 걸리고 오븐이 적정온도가 될 때까지 불을 때고 반죽을 넣고 굽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진다. 빵 만드는 것이 이렇게 어려우니까 집에서 빵을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빵을 만들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장원마다 빵 공장을 운영했다. 로마 전성기 시절에는 2000명당 1곳꼴로 빵집이 있었고, 빵집들은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광활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수확해 운송하기 때문에 마차와 배 같은 운송수단도 발달했다. 로마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실어온 밀가루를 먹고 살았다. 밀가루와 빵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 때문에 서양은 벼농사를 짓는 동양에 비해 기계문명이 발달했고 이는 훗날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밀은 쌀보다 쉽게 가루로 만들 수 있고, 가루로 만든 다음 물을 섞으면 점성이 강해 잘 붙으며, 소금이나 설탕 등 다른 재료를 잘 흡수한다. 고대에는 여자들이 손으로 힘든 제분 작업을 했는데 풍차가 나오면서 이 고단한 일에서 여자들이 해방되었다.

밀은 쌀보다 소화는 잘 안 되지만 보관하기가 쉽고 휴대하기 편하며 조리하기가 쉽다. 물이 조금만 있어도 되고 조리 시간이 짧다. 따라서 어디서든 쉽게 빵을 만들 수 있다. 또 밀은 보관 기간도 쌀보다 길다. 밀의 이런 특성 덕분에 기동력이 좋아져 유럽인들이 고대부터 근대까지 지중해를 넘어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들의 주식인 빵이 간편성, 휴대성, 보관성이 뛰어나 장기간 항해할 때 도움이 되었기에 대항해시대 유럽 열강은 전 세계 구석구석에 식민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밥을 먹는 동아시아 사람들은 장거리 이동이 어려웠다. 명나라 때 정화가 아프리카 동쪽까지 갔지만 그는 늘 육지를 끼고 연안 항해를 했으며 한 번에 몇 달씩 쉬지 않고 대양을 항해할 수 없었다. 또 동아시아 농경국가들은 먼 거리를 이동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중국 대륙의 농경제국이 한반도를 공격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정도인데, 수나라가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할 때 식량과 군수품을 옮기기 위해 100만 명이 추가로 필요했다고 하니 수나라는 전쟁보다 보급선 확보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몽골제국은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말린 육포와 우유를 먹었기에 보급품 걱정 없이 유라시아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에서 반죽한 곡식에 이스트를 넣어 발효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이집트의 오븐에서 구운 빵으로 임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오븐이 화폐 공장의 역할도 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서구에서 문명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귀족들은 부드럽고 하얀 빵을 먹었고, 하층민들은 진한 색깔의 빵을 먹었다. 빵은 터키를 거쳐 그리스, 로마,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 피타고라스가 “온 세계는 빵으로 시작했다”라고 했을 정도로 빵은 서구 경제활동에서 핵심이었다.

쌀과 밀은 재배되는 지역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쌀을 재배하는 지역은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갖추다 보니 인구가 밀집해 사는 것이 익숙한 사회가 됐다. 지역 주민들 간의 상부상조나 화합을 중시하며 부분보다 전체를 먼저 보는 통합적 사고를 하게 되었으며, 주어진 환경에 군말 없이 그대로 적응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또 관개 시스템 유지를 위해서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되면서 중앙집권적인 왕권이 발달했다. 미국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생각의 지도』에서 벼 문명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 문화가 동양을 ‘고맥락 사회’로 유도했다고 한다. ‘고맥락 사회’란 사람들 간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며 사회적 연결망이 촘촘하게 연결된 공동체를 말한다. 즉, ‘거시기’라는 표현으로 거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이야기하듯이 굳이 세세하게 분석하지 않고 얼개만 이야기해도 의사소통이 잘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또 다른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원숭이와 판다, 바나나 중에 두 가지를 고르라고 하면 동양 사람들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많이 고르고 서양 사람들은 원숭이와 판다를 많이 고른다. 동양 사람들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것을 떠올려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통합적인 사고를 하고 서양 사람들은 원숭이와 판다가 같은 표유류 동물이라는 분석적 사고를 한다. 밥은 통합적 사고를 만들었고, 빵은 분석적 사고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 같은 사고의 차이는 언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어는 주어나 목적어 없이 동사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사 중심의 언어다. 하지만 영어는 목적어가 꼭 들어가는 명사 중심의 언어다. 즉, 한국어는 각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동사 중심이며, 영어는 각 개체의 단독적 이름인 명사 중심이다.

한국 기업들이 대량생산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


▎태국 치앙마이의 논.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전자, 철강, 화학, 조선 등 대량생산이 필요한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벼농사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세계를 제패한 것도 벼농사 문화에서 나온 집단적 협력 시스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체 팹에 웨이퍼가 들어가서 메모리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려면 3~4개월 동안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며 수천, 수만 명의 집단적 협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만들어내는 집단적인 협력은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어떤 나라도 쉽게 따라올 수 없다.

‘같은 쌀문화권인 일본, 대만, 중국보다 한국이 집단적 협력이 훨씬 더 잘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해외 출장을 가서 비행기가 착륙할 때 그 나라를 내려다보며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라마다 다른 도시와 자연, 길의 모습을 내려다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반도 상공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부분은 산이고 웬만한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빽빽하게 차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비교할 것도 없고, 중국과 일본, 대만 어떤 곳보다 좁은 평야지대에 훨씬 더 밀집해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치열한 삶이 내려다보인다. 한반도는 여름철에 고온다습해서 벼농사에는 적합한 땅이지만 산이 많으니 물을 관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 일본, 대만도 벼농사를 짓지만 평지가 널찍해서 한국 사람들만큼 고생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국토의 70%가 산인 한반도에서 저수지, 수로 같은 관개시설을 만들고 논의 물 높이를 일정 기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다른 쌀농사 나라들보다 훨씬 더 고된 일이었고 훨씬 더 강력한 집단적인 협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강력한 집단주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덕분에 우리는 자랑스럽게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2002년 월드컵 4강, 최근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이루어내며 경제적, 문화적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모내기하는 모습.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밥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다.
이에 비해 개별 농장에서 유목과 밀농사의 혼합경영을 하며 빵을 먹는 서구 사람들은 밥을 먹는 사람들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발달하게 되었고, 자율적이며 분석적인 사고가 강화되고 주어진 환경을 의지대로 조절하는 성향도 강해졌다. 관개 시스템이 크게 필요 없어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지방분권도 발달했다. 밀은 지력을 많이 소모하는 작물이어서 휴경이 필수다. 따라서 매년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대규모로 식량을 거래할 수 있는 상업 문명이 발달하게 됐다. 유럽에서 근대문명이 태동하고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게 된 것도 밀농사 문화권의 강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 200~300년간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밀농사 문화권이 세계를 주도하다가 최근 몇십 년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쌀농사 문화권이 서양을 추격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옛날보다 쌀을 더 적게 먹고 빵을 비롯해 훨씬 더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먹는 것이 비슷해져서 그런지 중국, 일본의 젊은이들과 한국 젊은이들의 얼굴이 점점 더 비슷해진다. 심지어는 미국 젊은이들과 한국 젊은이들의 얼굴도 점점 비슷해진다. 이렇게 겉모습은 비슷해지지만 산이 많은 땅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뼈 빠지게 고생한 조상들의 한국적 벼농사 문화유전자는 우리 핏줄 속에 몇백 년은 더 갈 것이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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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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