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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22) 싱가포르 국가 경쟁력의 핵심 ‘다국어 교육’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워터프론트(Marina Bay Waterfront)에 자리한 울창한 녹색 오아시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Gardens by the Bay’. 이곳의 플라워돔(Flower Dome)은 세계 최대 유리 온실이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컴퍼스로 크게 원을 그려보면 북반구의 한국·중국·일본, 남반구의 호주와 뉴질랜드, 서쪽의 동남아시아와 인도가 포함된다. 아울러서 인도양과 서태평양이 포함된 거대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중앙 지점에 싱가포르가 있다. 싱가포르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다국적기업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허브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다.

싱가포르에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인구 580만 명 정도에 국토 면적도 서울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저런 선진국이 되었을까, 또 끊임없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나름 주관적인 해석을 해보았다. 첫째, 훌륭한 리더가 있었고 둘째, 스마트한 시민이 있었다. 셋째, 투명하고 글로벌하게 열린 사회를 이루어왔고 넷째,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싱가포르는 이 같은 요인들이 시너지를 내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교역과 비즈니스의 요충지가 되었고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다국적기업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Regional Headquarters in the Asia Pacific Region)를 4200개나 유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한복판에 자리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3개동의 최상층을 연결해 만든 세계 최대 루프탑 수영장 인피니티풀. 마천루를 내려다보며 수영을 즐긴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해 약 40분 정도 남쪽으로 비행하면 아름다운 제주도가 나타나고 백록담이 내려다보인다. 다시 1시간 정도를 지나면 타이완 상공을 지난다. 이렇게 총 5~6시간을 비행하면 싱가포르에 도착한다. 간혹 기상에 따라서 항로가 바뀌어 중국 상공을 경유한 적도 있다.

싱가포르에 착륙해 공항 청사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 찾는 곳(baggage claim area)으로 이동하면 아주 투명하고 큰 유리 벽 밖으로 마중 나온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할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국제공항에서 이렇게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밖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마치 싱가포르 사회의 투명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공항 청사에서 나와 후끈한 열대 지역의 온도를 느끼며 차에 올라 시내로 이동하면 항상 울창하고 아름답게 정리된 가로수를 만난다. 싱그러운 진초록 가로수와 열대의 꽃, 잘 정비된 도로는 ‘깨끗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은 중국인 고유의 전통과 명절을 보존하고 있다. 명절이면 온갖 전통 장식을 화려하게 꾸민다.
시내에 도착해 우리나라 명동처럼 번화한 오차드 스트리트 근처에 여장을 풀고 인파 속을 걸으며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번화한 모습을 호흡해본다. 저녁이 되면 이스트 코스트 해변가로 이동해 칠리크랩으로 유명한 점보 레스토랑을 찾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바닷바람을 느끼며 싱싱한 게 요리를 푸짐한 양념과 함께 맥주를 곁들여 맛본다. 바쁜 회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는 마리나 베이에 위치한 샌즈 호텔에 가서 3개 동의 최상층을 연결해 만든 대형 옥외 수영장인 인피니티 풀가의 바에서 초고층 마천루의 풍광을 내려다보며 칵테일을 한잔하는 것도 싱가포르 특유의 낭만이다. 빡빡한 출장 일정을 마치고 나면 센토사섬에서 여유 있는 주말 휴식을 취하는 것도 여행 일정에 포함할 만하다.

오늘날과 같은 선진국 싱가포르를 이루어낸 훌륭한 지도자인 리콴유(李光耀, Lee Kuan Yew) 수상의 자서전 『싱가포르 이야기: The Singapore Story』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책을 구매해 정독한 기억이 있다. 엄청 두꺼운 책이었지만 매우 감동적이었고, 싱가포르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시간차를 두고 발간된 두 번째 책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From Third World to First』을 읽으며 싱가포르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에 출장을 자주 가서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러 현장을 방문하면서 책에 언급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진국 처지였던 싱가포르를 오늘날 일류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이끈 싱가포르의 리더, 리콴유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정책 중에서 특히 우리가 참고할 만한 내용을 소개한다. 1923년생인 리콴유는 1959년 36세 젊은 나이에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이후 1965년 싱가포르가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1990년까지 무려 31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했다.

초기 싱가포르는 독립 전후로 열대 지역 특유의 수많은 질병을 비롯해 마약, 부패, 빈곤, 불법 파업과 폭력 시위가 판치던 3류 국가였다. 국민소득이 400달러인 가난한 나라이자 절망의 땅이기도 했고, 공산주의 이념과의 대립도 해결해야 했다. 여기에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이 어우러진 다민족·다문화로 인한 복잡한 문제도 안고 있었다. 또 수자원을 비롯한 필수 자원도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젊은 수상으로서 이렇게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싱가포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앞서가는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리콴유 수상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최장기 지도자인 리콴유 수상이 은퇴한 이후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CEO 수백 명 앞에서 스피치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참석해보니 세계적인 리더로서 여러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을 멘토링하고 있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혜안과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모임에서 리콴유 수상은 약 15~20분 정도의 키노트 스피치를 했고 이어서 사회자를 통해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CEO와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역시 아시아가 배출한, 대단한 세계적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세계 평화와 교역 증대를 위해서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멘토링하는 모습에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세계적인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싱가포르 모든 국민이 이중언어 구사


▎휴양지로 유명한 센토사섬. 수많은 비즈니스 행사가 열린다. 멀리 바다에 다양한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싱가포르에서 성공한 정책 중 우리나라가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안해본다. 싱가포르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정책은 글로벌 시대를 내다본 영어와 중국어 공용화, 즉 이중언어 정책이다. 싱가포르는 50년 이상 이중언어 교육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현재 모든 국민이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싱가포르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중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말했으며 말레이어와 심지어 주변 국가인 베트남어나 태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만난 모든 싱가포르 사람은 전 세계 영어권 국가들 어디서도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하고 협상력을 발휘한다. 또 표준 중국어는 물론이고 사투리도 한두 가지 익혔기 때문에 거대 시장인 중국과 교역하거나 협력할 때도 능동적이다.

이런 모습은 글로벌 시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핵심 국가경쟁력 중 하나의 축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뉴욕에서 한국 기업의 현지 법인장으로 5년 동안 주재했고, 덴마크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인 그런포스그룹 경영에 25년 동안 참여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예전에 학위 공부를 할 때나, 현재 국제적인 사업을 위해서 몇 달 동안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 씨름을 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해왔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되는 번역에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디지털 시대, 정보화 시대에 실시간으로 대처하지 못해 정보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나 제2외국어로 실시간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면 눈과 귀를 가리고 달리기 경쟁을 하는 형국이나 마찬가지다. 싱가포르나 스칸디나비아 3국, 베네룩스 3국, 스위스 등과 같이 온 국민이 모두 3~4개 언어를 자유롭게 활용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정보를 소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한편으론 우리의 한글도 글로벌 무대로 진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글은 대단히 훌륭하고 과학적인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자부한다. 그런포스그룹의 경영에 참여할 때 부스터 펌프 시스템에 들어가는 패널에 세계에서 6개국 언어만 시스템에 채택되는 과정이 있었다. 이때 정말 어려운 협상 과정을 통해서 우리 한글을 6개국 언어에 포함하도록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이렇듯 미력하지만 평생 동안 한글의 우수성을 글로벌 무대에서 전파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무대의 현실을 고려하여 한글을 더욱 잘 발전시켜나가는 동시에, 세계시장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영어로 우리나라의 온 국민이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미래에 엄청난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나라와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국경을 맞대고 이웃으로 살아가야 될 거대한 시장 중국과 일본과의 경제·정치·문화적인 관계를 고려한다면 중국어와 일본어도 습득하여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 양옆에 있는 세계 최대 시장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함으로써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자병법』3장 모공(謀攻) 편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승부는 반반이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라고 했다. 즉, 미래의 국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를 알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 감히 30년 계획을 제안해본다. 지금 어린이들에게 우리말은 기본이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여 그들이 30~40대가 되면 3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다시 20년이 지나 60대가 되면 거의 전 국민이 중요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하자.

싱가포르는 나라가 작다 보니 간척사업으로 매년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다. 간척으로 영토를 늘린 비율 역시 세계 1위다. 싱가포르섬의 면적은 1960년대에는 582㎢이던 것이 2010년에는 710㎢로 확장되었다. 2030년까지 800㎢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다국어 교육 계획을 실현하여 싱가포르가 간척으로 국토를 넓히듯이, 다국어 역량을 키워서 글로벌 시장의 활동 영역과 시장 크기를 무한대로 극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온 국민이 3~4개 외국어에 능통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전율이 느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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