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오케스트라, 그 속에 내포된 사회학(3) 

화려한 관현악곡을 들으면서 그것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오케스트라의 특성이 어떻게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말러의 [8번 교향곡 ‘천인’]의 미국 초연 당시 사진. 연주가 1068명이 동원된 1916년의 음악회를 전설적 지휘자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기준이었던 고전 오케스트라에 악기와 연주자가 추가됨으로써 19세기 중반의 낭만적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고 했다. 바이올린과 같이 이미 있던 악기의 경우 연주자가 늘어남으로써 음향이 더 커졌고, 새로운 악기가 추가됨으로써 오케스트라의 음역이 위아래로 넓어졌으며 음색도 다채로워졌다. 베이스의 강화가 특히 눈에 띈다. 고전적 2관 오케스트라가 3관 혹은 4관으로 커지면,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이 각각 3대씩 혹은 4대씩 편성 된다. 목관악기별로 하나 혹은 둘이 추가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베이스 클라리넷, 콘트라바순, 트롬본, 튜바 등이 들어와 바순과 첼로, 더블베이스만으로 이루어졌던 낮은 음역을 강화한다. 여기에 부응해 기존에 존재했던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연주자 수도 늘어난다. 오늘날, 가장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낮은 음역을 담당하는 연주자는 더블베이스만 6~10명이다. 여기에 콘트라바순, 트롬본, 튜바까지 합치면 대략 15명의 극단적 저음 악기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첼로까지 합치면 20명을 훨씬 웃돈다. 베이스 파트의 강화는 전체 오케스트라 음향에 형언할 수 없는 그윽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음악은 깊고 풍부하며 신비한 오라(aura)에 파묻힌 듯하다. 이 오라는 좋은 연주회장에서 라이브를 통해 가장 잘 들을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최고 수준의 오디오로 들어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환상적 낭만주의 음악에 특히 잘 어울리는 신비롭고 호사스러운 오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서 말한 낮은 악기들이 내는 배음렬을 우선 지목한다. 배음렬은 어떤 한 음악적 음이 연주될 때 청중이 듣지 못하는, 그러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음들을 말한다. 이 각각의 음들을 배음이라 하고, 수많은 배음을 총칭하여 배음렬이라고 부른다. 배음렬은 은유적으로 말하면 음의 세포들이다. 세포를 맨눈으로 볼 수 없듯이 배음렬을 구성하는 각각의 배음은 맨귀로 듣지 못한다. 들을 수 없는 배음들은 그렇다면 무용한가? 그것들이 연주회장에서 한순간 방출될 경우 상술한 풍요로운 오라를 가져오기에, 그것들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음감이 없는 이들도 오라가 있는 소리와 오라가 없어서 앙상한 소리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배음렬에서 배의 한자는 ‘倍’이고, ‘곱 배’라는 뜻이다. 배음들 각각의 수학적 특징을 이 한자가 가리킨다. 어떤 배음의 값이 50이면 다음 배음은 100, 즉 50의 두 배이고, 그다음 배음은 150으로 50의 세 배이다. 50의 값을 가지는 배음을 제1 배음이라 부르고, 100의 값이 있는 것을 제2 배음, 150의 값이 있는 것을 제3배음으로 부른다.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1배음의 값이 f이면, 이후의 배음들은 2f, 3f, 4f 등의 수학적 값을 가질 것이다. f의 값을 주파수(frequency)라고 하며, 주파수는 단위시간-보통은 1초-당 진동수이다. 무엇이 진동할까?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의 경우 현(string)이 진동하며, 플루트와 같은 목관악기의 경우 악기 내부의 비어 있는 틈에 가득 찬 공기 기둥이 진동한다. 팀파니와 같은 북 계통의 악기는 표면, 즉 막이 진동한다.

저음의 물리학


▎러시아의 작곡가, 지휘자 겸 더블베이스 연주자 쿠세비츠키 / 사진:위키피디아
오케스트라 속 저음 악기들의 강화는 오라를 음악에 부여하는 것 이외에 말 그대로 저음을 강화했다. 그렇다면 고전 오케스트라에서는 저음이 약했던가? 신중한 판단을 위해 모차르트 교향곡을 오디오에서 틀어보자. 아무 곡이나 틀되, 특히 베이스를 크게 틀어본다. 좋은 오디오 기기에서 이 조치를 실행할 수 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소리가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비해 커질 것이다. 이 조치만으로는 신비하고 그윽한 오라를 들을 수 없다. 오라가 가득한 모차르트 음악이라니,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번에는 담백한 모차르트 음악의 (베이스만이 아닌 전체의) 볼륨을 키워보자. 귀에 거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크게 틀어보자. ‘부활’이라는 표제가 붙은 [2번 교향곡]의 마지막 5악장 첫 부분이 좋겠다. 귀에 거슬리는 것 말고도, 스피커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 혹은 창문이 흔들리기도 할 것이다. 낮은 음역에서는 심지어 쿵쿵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릴 것이다. 베이스를 더 키워보면 어떨까? 층간소음이 발생할 것이다. 후기 낭만주의자들의 대편성 관현악곡을 이렇게 들어본 이들은 고전 오케스트라에서 저음이 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음이 약하다는 것은 일단은 물리적으로 저음의 에너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음의 에너지가 고음의 에너지에 비해 작기가 쉽지 않다. 낮은음을 내는 더블베이스는 꽤 큰 악기다. 연주자는 서서 연주하거나 높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해야 한다. 고음을 내는 플루트는 작다. 거대한 더블베이스는 작은 플루트가 내는 소리에 비해 3배 정도의 물리적 강도를 가진 소리를 낸다. 소리의 물리적 강도는 단위면적당 소리의 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측정 단위는 W/㎡(제곱미터당 와트)를 쓴다. 더 큰 W/㎡ 값을 가지는 더블베이스의 소리는 듣는 이의 귀에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는다. 가장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인 4관 편성에서 플루트는 4대인데, 더 강한 물리적 소리를 내는 더블베이스 연주자는 4명을 훨씬 웃돈다. 오케스트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10명에 이른다. (어쩌다가 오케스트라에서 더블베이스 연주자를 1~2명만 본다면, 그 오케스트라에는 예산상의 문제가 있다.) 연주자 10명이 연주하는 더블베이스의 음향이 4명이 연주하는 플루트의 음향에 비해 물리적으로는 훨씬 큰 값을 갖지만, 인간의 귀에는 비슷하게 혹은 더 작게 ‘들릴’ 것이다. 인간의 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기제가 아닌 셈이다. 대체로, 같은 에너지 값을 가진 저음과 고음을 들을 때 인간은 고음을 더 잘 듣는다. 잘 들리지 않는 저음은 상술했듯이 주위 물체를 진동시킬 정도의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후기 낭만주의자들은 이렇게 큰 저음을 즐겨 사용했다. 그들의 웅대한 관현악곡을 들으면, 거대하면서도 견고한 지반 위에 안정적으로 지어진, 움직이는 건물을 보는 것 같다. 모차르트와 그의 선배들의 음악은 음향의 수직적 층위가 단순하다. 보통 2개 층위가 들린다. 낮은 음역의 반주와 높은 음역의 선율.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피아노곡의 음향 구조와 같다. 모차르트 교향곡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해도 큰 무리가 없다. 모차르트의 선배지만 복잡한 다성음악의 대가였던 바흐의 음악에는 층위가 3~4개 있지만, 그 음역의 폭이 크지 않다. 커봐야 세 옥타브 정도인 작은 대역에서 자율성을 가진 선율들이 자기주장을 하면서 전체적 조화를 만들어낸다. 다소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좁은 음역에 선율들이 밀집해서 활동하는 것이니까. 말러의 층위는 분명한 음역의 차이에 기반을 둔다. 밑에서 안정적으로 깔린 지반과도 같은 음들, 그 지반 위 율동적인 반주, 대위적 선율들, 주선율 등. 지반은 대평원을 떠올리게 한다. 그 위에 온갖 삼라만상이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의 교향악. 여섯 혹은 일곱 옥타브에 이르면서 이질적 음색들의 악기로 넘쳐나는 음악은 피아노로 편곡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편곡해 연주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말러와 같은 후기 낭만주의자들의 교향곡 연주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말러의 [8번 교향곡]은 별명이 ‘천인의 교향곡’이다. 연주자 수가 성인과 아동의 합창단을 포함해 1000명에 이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였다. 이 교향곡의 비교 불가한 화려함과 웅장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차적으로 작곡가 개인의 성향과 생각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덧붙여, 이 곡이 작곡된 1907년과 초연된 1910년이 유럽의 다시 없을 최성기인 ‘벨 에포크’ 시대의 막바지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의 프랑스어 ‘Belle Époque’는 보불전쟁(프랑스와 독일 프로이센 간의 전쟁: 이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은 사상 처음으로 통독을 이룬 후, 그전까지 늘 쫓아가야만 했던 프랑스를 이때부터 국력 면에서 앞지르기 시작했다.)이 끝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인 1914년까지 이어졌던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 [8번 교향곡]은 이 호사스러운 시대를 증언한다.


▎말러의 [8번 교향곡 ‘천인’]이 초연(1910년 9월 12일)된 독일 뮌헨의 신축제음악당. 현재는 뮌헨 독일박물관 부속 교통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연주자 1000명에게 지급해야 할 연주료는 얼마일까. ‘천인의 교향곡’ 연주에서는 청중보다 많은 연주자가 무대에 서는 광경이 연출될 수도 있다. 연주자보다 많은 청중이 와도 고액의 연주료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교향곡을 어떻게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종식되어 1000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이 교향곡 공연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1000명에 미치지 않더라도 흑자를 볼 수 있을 만큼 창의적 공연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다. 이런 연주가 흑자를 남긴다면 음악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소규모 뉴딜일 수 있지 않을까. 적자 공연이라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는다면 어떨까.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예술계를 위한 재난지원금이 있다면 좋겠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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