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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25) 윤유선 소더비 코리아 대표 

미술 한류 확산의 조력자 

정소나 기자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난해 소더비(Sotheby’s)가 서울에 재입성했다. 한국 고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동시에 뛰어난 한국 미술을 글로벌 경매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소더비 한국 지사의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윤유선 대표를 만났다.

▎지난해 20년 만에 다시 서울에 진출한 소더비를 책임지고 있는 윤유선 소더비 코리아 대표.
우리에게 익숙한 경매는 부동산경매일 것이다. 부동산 경매는 체납이나 채무불이행 등으로 인한 담보물인 부동산을 법원의 강제경매를 통해 채권추심을 이루기 위한 공적 절차이며, 유찰될 때마다 일정 금액이 떨어진 가격으로 다음 회에 재경매에 붙여진다. 많은 사람이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 부동산을 취득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다.

이에 비해 예술품 경매에서는 희귀하거나 개수가 한정적인 작품을 대상으로 구매 희망자들이 경쟁적으로 희망 가격을 제시한다. 최고가를 제시한 최후 1인이 최종 구매자로 결정되는 특이한 판매 방식으로, 예술계에서 가장 화려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거래 방식이라고 하고, 혹자는 가성비나 경제 성과는 정반대로 가는 비정상적인 거래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인물은 세계 3대 미술품경매 회사 중 하나인 소더비 코리아를 이끌며 경매에 관한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는 윤유선 대표다.

윤 대표는 “2차 시장인 미술 경매는 쉽게 말해 당근마켓과 비슷하다”며 “1차 시장에서 거래된 작품을 사고 싶은 사람과 파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경매에 참여할 수 있고, 공개적인 검증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거래되는 방식이며, 이를 통해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작품 가격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정가를 도출하고 구매자의 결정을 유도해 경매가 이뤄지기에 시장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윤유선 대표는 미국 스미스칼리지에서 미술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예술 경영을 전공했다. 미국 뉴욕에서 경력을 쌓은 뒤 귀국해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디렉터를 지내고, 갤러리 현대를 거쳐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과 뉴욕의 개점을 맡아 이끌었다. 이후 크리스티 홍콩에서 스페셜리스트로 근무했고, 필립스 옥션 한국 사무소 대표를 역임하고 지난 2023년 1월부터 소더비 코리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윤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 필립스, 소더비를 모두 거친 인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갤러리에서 리셉셔니스트로 일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던 중, 구인 광고를 보고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베리힐 갤러리에서 안내데스크 리셉셔니스트로 일을 시작했다.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었기에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갤러리에 지원했다.

굉장히 크고 화려한 갤러리 1층에 있는 안내데스크를 혼자 하루 종일 지켰다. 때론 자괴감도 들었지만, 한 달, 두 달 참고 버텼다.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무렵, 우연히 전시 감독의 어시스턴트가 해고를 당하며 공석이 생겨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됐다. 그렇게 2년 넘게 일하며 전화를 돌리는 사소한 일부터 갤러리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까지, 그야말로 갤러리 업무의 A to Z를 배울 수 있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의 오픈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다. 자료 파일링부터 작품 구입과 전시 구성까지 모든 것을 직접 챙겨야 했는데, 그 시절 눈물을 삼키며 배웠던 밑바닥 업무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하찮게 여겼던 일조차 나중에는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모든 일의 시작인 것 같다.

경매 회사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원에서 미술 경영을 공부하면서 크리스티 뉴욕에서 1년 동안 인턴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미술 경매를 알게 됐고 졸업 후 경매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생겼다.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 이어 서울, 뉴욕의 오픈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고 나니 몸과 마음에 휴식이 절실했다. 잠시 베이징으로 건너가 언어도 배우고 미술 전시도 관람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늘 동경하던 크리스티에서 이직 제안을 받고 현대미술 스페셜리스트로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국가에서의 경매는 아시안 작가들밖에 없었기에 크리스티 뉴욕과 교류하며 서양미술을 아시아 시장에 소개하는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술 경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3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 필립스, 소더비를 모두 경험했는데.

직원 수백 명이 일하는 홍콩의 크리스티 본사에서는 아시아 시장 전체를 담당하며 한층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후 필립스의 한국 사무소 공식 오픈을 앞두고 대표로 선임돼 한국 지사 설립을 도맡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지 27년 만에 한국사무소를 다시 연 소더비의 대표로 임명돼 글로벌 경매에 출품되는 주요 작품을 한국 컬렉터에게 소개하고, 한국 컬렉터들이 소더비를 통해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올드 마스터부터 골동품, 중국 전통미술까지 거의 모든 시대와 영역을 아우르며 세계미술품경매를 장악하고 있다. 반면 필립스는 20세기와 21세기에 초점을 맞춰 미술, 디자인, 사진, 시계 품목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소더비를 한국에 다시 불러들인 한국 미술시장의 매력은 뭘까.

한국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미술시장 중 하나다.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이 서울에 진출하고, 글로벌 ‘프리즈 서울’이 지난해까지 성공적으로 열려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구매력 있는 컬렉터들이 집중되어 있고, 특히 MZ 세대 컬렉터가 많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소더비가 1990년 외국 경매 회사 중 처음으로 국내시장에 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컬렉터는 굉장히 소수였고, 그마저도 자신의 컬렉션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미술품 경매와 작품 컬렉팅이 굉장히 대중화됐고, 시장 전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 사무소를 통해 한국 고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원하는 작품의 컬렉팅을 돕고, 뛰어난 한국 미술을 글로벌 경매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소더비 경매’ 하면 뱅크시의 작품이 낙찰과 동시에 파쇄된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이 작품이 최근 고가에 낙찰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처음부터 모든 상황이 기획된 건가.

작가인 뱅크시 본인이 액자 내부에 숨겨둔 파쇄기를 직접 작동해 작품을 스스로 찢는 해프닝을 벌여 관심을 모은 사건이다. 2021년 다시 경매에 나와 원래 낙찰가의 20배가 넘는 금액에 거래되어 다시 한번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뱅크시는 얼굴과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 ‘얼굴 없는 작가’로 유명하다. 소더비 직원들조차도 얼굴을 모르기에 가능한 퍼포먼스였고, 뱅크시 작품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정승우 이사장과 윤유선 대표가 미술품경매와 미술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장에 있던 소더비 운영진도 경악했을 만큼 경매사가 기획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굉장한 충격과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경매 현장의 매력을 보여준 에피소드가 됐다.

경매에서 낙찰받은 후 연락이 두절되거나 낙찰 의사를 번복하면서 대금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나.

물론 수백 건의 작품을 다루다 보면 가끔 그런 케이스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소더비는 처음 거래할 때 더욱 꼼꼼하게 신원을 확인하고 잔고 증명을 비롯한 재정 증명을 진행하는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관리한다.

한국에서 고가 미술작품을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그분들은 이미 충분히 구매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코로나 때 미술품이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MZ세대를 비롯한 새로운 컬렉터들이 미술품경매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부터는 과열됐던 미술품 열풍의 거품이 점차 빠지고, 코로나 이전처럼 문화의 일부로 꾸준히 미술품 수집을 즐기는 컬렉터들이 남았다. 투자보다는 작품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컬렉터들은 훌륭한 예술 작품에 대한 욕구가 여전하다. 컬렉터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좋은 작품이라면 고가여도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눈에 띄는 작품이 계속 공급된다면 자산가 컬렉터들은 미술품을 구입할 것으로 본다.

해외 경매를 보면 크게 데이 세일, 이브닝 세일, 온라인 세일로 나뉜다. 경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해달라.

쉽게 말하면 데이 세일은 표준화되고 마켓성이 있는 작품들을, 이브닝 세일은 마켓에서 쉽게 찾기 힘든 희소성 높은 고가 작품들을, 온라인 경매는 주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여 가격 접근성이 높은 작품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경매 회사에는 세일마다 담당자가 있어 낙찰률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퀄리티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 미술시장 발전을 위한 소더비만의 계획이 있나.

크리스티에서 일하던 시절, 한국의 단색화가 열풍을 일으키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글로벌 시장에 단색화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늘어 덩달아 바빠졌던 기억이 있다. 한국 미술시장이 발전하려면 먼저 한국 작가들이 잘돼야 한다. 세계 경매 시장에 한국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선보여 성공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다. 프리즈 등 글로벌 아트페어에 한국 작가만의 특별전을 기획하고, 홍콩·런던·뉴욕 전시와 교류하면서 프라이빗 세일을 진행해 한국의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생각이다.

지난 2016년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룹 빅뱅의 멤버였던 탑(T.O.P)이 홍콩 소더비에서 직접 큐레이팅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선 경매를 진행해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경매를 마치기도 했다. 전 세계가 K팝에 열광하고 있는 만큼 K팝 스타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는 프로젝트도 계속 해나가고 싶다.

성공적인 미술품경매의 노하우가 궁금하다.

먼저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작품들을 많이 보며 안목을 키워야 한다. 관심 있는 작가의 작품을 많이 보는 것과 그 작가에 대한 리서치도 필수다. 특히 해당 작품의 경매 기록을 살펴보면 작가 이력, 유찰 기록부터 시작가, 최종 경매 낙찰 가격까지 알 수 있어 작품의 가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경매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금액으로 가치를 따지게 되지만, 작품은 일상에서 곁에 두고 즐길 수 있어야 하기에 컬렉터의 취향이 우선순위다. 또 추상이나 조각, 여성 작가의 작품 등 특정 취향에 맞춰 경매에 참가해 컬렉팅을 해나가는 것도 좋은 컬렉션을 만드는 방법이다.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은 경기변동이나 불황에도 굳건한 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되팔기에도 용이하다. 누가 봐도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설사 마켓보다 조금 더 높은 금액일지라도 과감히 구매에 나서보길 권한다.

한국 컬렉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뛰어난 작가가 너무 많다. 한국의 컬렉터들이 우리 작가들의 작품 소장에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한국의 영향력 있는 컬렉터들이 먼저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한다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 곳곳의 메이저 경매에 출품되어 이름을 알리며 한국 미술의 위상을 한층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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