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사운드아트와 결합한 자동차 

BMW는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자동차 회사다. 오토바이와 전기 요트도 제작하는 이 회사는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설립되어 백 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975년, 이 회사는 자동차 회사로서 놀라운 일을 벌였다. 예술가들과의 협업이다. 결과물을 아트카라고 부른다.

▎에스더 마흘랑구의 색조와 패턴을 구현한 BMW 아트카. / 사진:BMW GROUP: 「 ART MEETS INNOVATION: THE BMW I5 FLOW NOSTOKANA」 , 2024.02.29.
예술을 뜻하는 영어 ‘아트(art)’는 종종 미술로 받아들여진다. 음악이나 무용, 문학, 사진, 영화 등을 하는 이들은 ‘art’에서 자신의 분야가 빠지는, 서운한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BMW가 예술과 협업을 시도할 때도 대체로 이 분야들이 제외되었다. 주로 미술가들과 협업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로이 릭턴스타인,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션버그, 데이비드 호크니 등이 BMW와 협업했던 유명한 예술가들이다. 이 예술가들은 BMW 차체를 캔버스로 사용했다.

6kg 상당의 페인트를 차체에 흩뿌렸던 앤디 워홀을 비롯한 이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실현하는 장소, 혹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대상으로 자동차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동차의 외관을 택했다. 결과는 흥미롭고 멋진 시각적 아트카(art car)였다. 이렇듯 미술가들이 협업 주체이기에 미술가 중 누구를 선정할지는 주로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결정해왔다. 2023년 7월에는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협업 작가를 선정했다. 박물관 관장과 큐레이터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작가를 결정하는 주체였다.

워홀의 차는 자동차경주에서 6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페인트 6kg이 더해져 차를 무겁게 했을 텐데 좋은 성적을 냈다니 놀랍다. 워홀이 공기저항을 줄이도록 페인트를 뿌렸을까? 다른 방식으로 페인트를 뿌렸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페인트를 뒤집어쓴 차에 관해 이 미국 팝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가 매우 빠르게 주행할 때 (차체에 뿌려진 페인트가 만들어냈던) 모든 선과 색은 흐릿하게 변합니다.” 자동차가 서행할 때는 분명하게 구분되던 각각의 페인트 색들과 선들이 빠르게 주행할 때는 시각의 차원에서 융합하여 흐릿하게 변한다는 생각을 일반인들은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음악이나 미술 혹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 이런 생각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워홀은 자동차를 캔버스 삼아 그런 실험적 생각을 실현했다.

이런 식의 작업 결과로 만들어진 아트카를 보며 다음과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첫째, 앞에서 거론했듯이 다양한 예술과 협업하지 못했다. 둘째, 아트카는 양산되지 못했다. 셋째, 예술과 협업했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예술가들에게 BMW 차체를 일종의 캔버스로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 BMW의 훌륭한 기술진은 이 과정에서 소극적이었고, 예술가들의 예술적 생각이 BMW의 기술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BMW는 여전히 BMW이고, 이 협업(?) 후에 BMW 이상의 그 어떤 기술적 진전이나 자동차의 개념을 바꾸는 그 무엇을 사람들은 확인하지 못했다. 물론 BMW는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이며, 예술에 관심을 기울인 멋지고 위대한 기업이다.

21세기에 와서는 첫 번째 범주의 한계가 서서히 극복되는 분위기다. 2017년, 중국의 멀티미디어 예술가 카오 페이(Cao Fei)는 차를 볼 때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빛을 아트카 전용 앱에서 볼 수 있게 했다. 현실인 검은색 BMW M6GT3 차체에 가상의 빛을 혼합한 시도였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들이 아트카에 더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술적 작업을 넘어서는 다른 혁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2월, BMW는 반세기에 가깝게 진행해온 이 협업 과정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소리’라는 요소가 새로이 개입된 것이다! BMW5 시리즈에서 순수 전기차인 i5를 기반으로 만든 콘셉트카 ‘i5 Flow NOSTOKANA’를 통해 자동차의 차체 색 변화 기술에 일련의 사운드를 결합했다.

차체 색상의 변화를 낳은 기술은 차체에 부착된 ‘E Ink Film’이라고 한다. 전압을 통해 색상 입자의 구조와 배치에 변화를 주어 무한한 색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E 잉크 필름’이란다. BMW i5 차체 위에서 색상의 변화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예술가 에스더 마흘랑구(Esther Mahlangu)의 예술 작품과 유사한 시각적 조형물을 보여준다. 에스더 마흘랑구는 아프리카적 원색으로도, 20세기 현대 유럽의 최소주의(minimalism) 작품으로도 느낄 수 있는 색상과 기하학적 패턴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던 예술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종이 위나 벽, 옷감 등에서 구현되었는데, 2024년에 제작한 [i5 Flow NOSTOKANA]는 그녀의 작품과 비슷해 보이는 시각적인 것을 자동차 차체에 구현한 것이다. 1991년에 그녀가 직접 BMW 차체에 색을 칠한 적도 있는데, 2024년에는 전기적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 차체에 색과 선의 시각적 형태들을 구현했다. 참고로 ‘노스토카나(NOSTOKANA)’는 88살 노인인 마흘랑구의 첫째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2024년의 작업에서 차체에 전시되는(display) 시각적·추상적 형태들은 소리나 음악과 결합한다. BMW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운드 렌조 비탈레가 작곡한 특별한 사운드가 들려진다. 이 사운드는 에스더 마흘랑구의 목소리,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깃털 브러시가 내는 소리, BMW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색연필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소리와 BMW i5의 터치 디스플레이를 작동할 때 들리는 음향 신호 등이 결합한 것이다. 이러한 결합에는 의도가 있다. 그 의도에 따르면 그런 결합은 일종의 문화 결합이며 소리 풍경(soundscape)의 결합이다. 마흘랑구가 살아왔던 남아프리카 문화에 BMW 브랜드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결합하는 일이다.

사운드 스케이프는 소리 풍경 혹은 소리의 생태적 환경을 고려하고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다. 캐나다 작곡가 머리 셰이퍼(R. Murray Schafer)가 1970년대에 제시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있는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Simon Fraser University) 교수였던 셰이퍼는 이 창조적 개념을 통해 음악과 공학, 생태학 등의 융합적 연구를 촉발했고, 덕분에 여러 영역에서 이 개념이 사람들에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자기 작품인 의상을 입고 작품 앞에 서 있는 에스더 마흘랑구. / 사진:에스터 말랑구 홈페이지, The Melrose Gallery
생태학 영역에서 이 개념은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우리는 생물들이 멸종되는 환경파괴를 우려한다. 소리 환경도 파괴될 수 있다. 100년 전 지구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소리들을 오늘날에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면 문제가 아닐까? 사운드 스케이프는 이러한 상황 변화, 관련된 생태학적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운드 스케이프는 환경공학적 의미도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좋은지 나쁜지 우리는 대충 안다. 공기가 탁하고 햇볕을 가리는 환경을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시끄러운 환경도 좋지 않다. 사운드 스케이프는 우리의 주거 환경에서 청각적인 문제점을 인지하게 해주며, 그런 문제점을 줄여나가는 방법 등을 알려줄 수 있다. 이 경우 사운드 스케이프는 소리 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사회적·공학적 디자인일 수 있다.

사운드 스케이프는 음악을 실현하는 쉽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개념적 토양일 수 있다. 스마트폰을 가진 누구나 멋진 곳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고 SNS에 올린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적 창조 행위이며 그걸 어딘가에 올려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것은 자기만의 예술 작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과 소통하는 행위일 수 있다. 이때 사진이나 동영상은 시각예술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주변의 소리도 녹음할 수 있다. 동영상을 찍지 않고 좋은 소리만 녹음할 수도 있다. 녹음한 좋은 소리에 아무런 후속 조치를 가하지 않은 채 SNS 등에 올리면 음악적 작품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식의 작업을 ‘소리 풍경 작곡’이라고 한다. 자연적 소리나 사회적 소리 등을 녹음한 것을 현대미술의 ‘발견된 객체(오브제 트루베, Objet Trouvé)’ 개념의 음악적 등가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객체를 이용한 음악은 ‘발견된 자연적 구성(작품)’이 된다. 마르셀 뒤샹 같은 미술가가 일상생활 속의 어떤 객체를 다른 곳에 옮겨 놓고 거기에 원래의 객체가 갖는 의미와 다른 예술적 가치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미술적 창조물을 만들었듯이, 혁신적 음악가들은 소리 현상을 녹음하여 작곡가의 의도된 시간적 틀 속에서 작곡가가 부여한 의미가 덧씌어진 소리 현상을 새로운 음악이라고 생각해왔다. 일례로 머리 셰이퍼는 1974년 여름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의 한 연못 근처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24시간 동안 녹음한 후 50분 길이로 압축했다. 압축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의 [프로그램 V: B - 하지(夏至)]라는 결과물은 생태적 증언이거나 음악 작품이 된다. 이렇게 녹음한 작업을 콘서트홀이 아닌 미술관 등에서 전시하면 사운드아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운드아트가 아트카 개념과 결합하면 좀 더 많은 예술적·기술적 조치들이 취해짐으로써 좀 더 화려하고 좀 더 신선하며 창의적인 사운드아트 구현물로서의 아트카가 시도될 수 있다. BMW 아트카에서 소리는 차체에서 들리지 않았다. 차체를 디스플레이 삼아 다양한 시각 이미지뿐 아니라 소리도 들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시도가 더해져 완성차 업체의 훌륭한 자동차 기술과 상호작용까지 하는 예술적 기술을 상상해본다. 그러려면 기술을 아는 예술가들이 자동차 기술자들과 공동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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