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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 

프랑스 요리 즐기러 창덕궁에 가야 할 이유 

이진원 기자
프랑스 요리는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지만 고가의 고급 요리라는 인식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중화된 이탈리아 요리에 비해 즐기는 이가 적었다. 그러나 프랑스 요리의 특별함은 유지하되, 한국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간 프랑스 퀴진 르꼬송(Le Cochon)에서는 색다른 미식 경험이 가능하다.

▎프랑스 요리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르꼬숑의 변연호 메인셰프.
르꼬숑은 우선 장소가 주는 설렘이 남다르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창덕궁 바로 옆, 전통 한옥과 모던 디자인이 어우러진 아라리오박물관 건물 3층에 자리한다. 르꼬숑은 아담한 공간이지만 통창 너머로 창덕궁 전경을 볼 수 있다. 고궁과 어우러지는 햇살, 비, 단풍, 눈 등 계절별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은 ‘뷰 맛집’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강남 매봉역 인근에서 시작한 르꼬숑은 2013년부터 삼청동 시절을 거쳐 지난 2020년 이곳에 새로 자리 잡았다.

김형일 르꼬숑 대표는 “처음에는 강남에서 프랑스 가정식 비스트로(다양한 메뉴로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작은 식당)로 시작했지만, 이후 코스 요리 중심의 파인 다이닝(셰프를 중심으로 고급 재료로 만든 창작 요리 레스토랑)으로 전환했다”며 “프랑스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의 취향과 입맛을 반영해 코스 요리를 개발했고 다른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 비해 가성비가 좋아 문화예술을 즐기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기본 가격은 1인당 7만~26만원이며, 100% 예약제다. 해외 명품 브랜드 한국 지사 등에서 20석 내외의 르꼬숑 공간을 전세 내고 파티 등도 많이 연다고 그는 귀띔했다.

파인 다이닝은 셰프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셰프가 어떤 경력과 철학을 갖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르꼬숑의 변연호 메인셰프는 프랑스 요리의 매력에 빠진 10년 차 셰프다. 그는 “흔히 프랑스 요리 하면 근사함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일상 음식이 다양한 식재료를 연결하고 창작해 접시에 낭만을 그려내 큰 매력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손님들은 맛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비주얼에 감탄한다”고 덧붙였다.


▎르꼬숑 아뮤즈
그의 말처럼 르꼬숑의 요리는 비주얼 그 자체가 표현하는 세련되고 깔끔한 맛이 매력이다. 프랑스 요리는 눈으로 먼저 먹는다고 할 만큼 장식적이고 기교를 부려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전채 요리가 화려하고 비중이 커 전반전 전채 요리를 마치고 후반전 메인 요리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전채 요리가 끝나면 입을 향긋하게 리셋할 수 있도록 파인애플과 코코넛밀크로 구성된 피냐콜라다 클린저가 제공돼 쉼표를 찍고 다시 시작한다.

르꼬숑의 코스 요리는 ‘르꼬숑 아뮤즈(Amuse)’부터 시작하는데 바삭하고 부드러운 트러플 미니슈, 초리조타틀릿(돼지고기와 파프리카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파이 모양 소시지)에 카프레체(샐러드)가 얹어져 나온다. 프랑스 요리와 식재료에 익숙하지 않아도 요리가 나올 때마다 직원이 친절하게 소개해준다.

이어서 나오는 4가지 스프레드와 식전빵은 마치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듯한 모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의 버터와 소금을 이용해 바로 구워낸 바삭한 바게트에 상큼한 4종 스프레드(뿌리채소잼, 노르망디 버터, 허브버터, 구운마늘퓨레)의 조화가 절묘하다.


▎엔트리 7가지 중 하나인 신선한 허브와 생선세비체.
이어 엔트리 요리의 향연이 시작되는데 코스에 따라 많게는 7가지가 나온다. 신선한 허브와 생선세비체, 프렌치어니언수프, 세가지버섯, 비트, 농어구이, 캐비어, 에스카르고 등이 있다. 이 중 세비체는 생선회를 얇게 떠 레몬즙과 향신채에 제어두었다 먹는 요리인데, 계절 허브의 신선함과 잘 어울려 해산물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프렌치어니언수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농후함을 지녔다. 특히 세가지버섯은 신선한 경험이다. 닭고기 무스로 속을 채운 모렐버섯, 트러플, 백목이 버섯이 짭쪼름한 닭고기수프에 적셔 나오는데 별미다. 변 셰프는 “세가지버섯은 국내에서 흔하지 않은 특이한 버섯의 조합으로, 모두 직수입한다”고 설명했다.

메인 요리는 양갈비와 한우 안심 중에 고를 수 있다. 양갈비는 고기를 구운 후 겉에는 계절별 허브, 이탈리아 파슬리, 처빌 등을 빵가루와 혼합해 입힌 후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져 나온다. 그래서 푸르른 잔디밭을 보는 듯한 독특함이 있다. 시스 소스와 양갈비 특유의 풍미, 식감 역시 다른 양갈비 요리와 차원을 달리한다.


▎다양한 초록 허브를 감싸 오븐에 구운 양갈비 구이와 카시스소스.
디저트는 강한 버터향이 나는 크루아상과 아이스크림의 재조합, 프렌치 캐러멜이 일품이다. 특히 수제 캐러멜은 프랑스제 고급 설탕, 생크림, 버터를 한 솥 끓여서 몰드에 붓고 하루를 굳혀 신선하게 만든다. 질감이 부드럽고 많이 달지 않으며 버터 풍미가 강하다. 르꼬숑은 수제 프렌치 캐러멜을 단골손님에게 선물하곤 한다.


▎크루아상 아이스크림과 튀일 디저트.
3~4시간에 걸친 프랑스식 식사는 누가 슬로푸드라고 하지 않아도 플레이트 위의 요리와 소스의 구성이 그려낸 작품을 감상하고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좋은 와인과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행복 무한대 시간을 팽창하는 데 이곳은 최적이라는 생각이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_ 사진 박종근 기자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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