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서북단에 자리한 천북면. 산·들·바다뿐이던 이 시골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7년 시작된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을 통해서다. 노후한 거리는 깔끔하게 정비됐고, 전무했던 문화·복지 시설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 변화를 이끈 이는 김정극 천북면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 추진위원장이다.
▎올해 말 완공되는 커뮤니티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정극 추진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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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방조제가 생기기 전, 천북은 ‘굴밭’이라고 불릴 정도로 굴이 많이 났다. 당시 갯벌에서 굴을 캐던 아낙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굴을 구워 먹었는데, 이 맛이 입소문이 나 굴 구이 식당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굴 구이 식당이 100여 개로 늘었고 여기에 대규모 굴단지가 조성됐다. 굴이 제철인 11~2월이면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 바로 천북 굴단지다.굴의 명성에 비해 정작 굴 생산지인 천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천북면은 홍성과 마주하고 서쪽으로 안면도를 바라보고 있는 인구 4300여 명의 아늑한 마을이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축산업이 매우 발달했다. 면 단위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천북을 대표하는 친환경 축산농가 ‘전통한우’에서는 4000두가 넘는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한우뿐 아니라 양질의 돼지를 사육하는 양돈농가도 많다.“우리 마을의 축산업은 완전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이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축산과 학생들, 축산업자들이 견학을 올 정도로 기술이 선진적이죠. 안타까운 건 천북의 자원, 경쟁력에 비해 주민들의 생활환경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보령 도심과 멀어 문화·복지 혜택이 이곳까지 닿지 않았고, 축산업이 활성화되기 전까진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했죠. 심지어 모든 생활권이 인접 지역인 홍성군에 속해 있어 학교도 시장도 홍성으로 다녀요. 우리끼리 ‘보령의 관심 밖에 있는 소외지역’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미약했던 축산업이 전국 규모로 번창해 소득이 늘었고, 농촌 중심지활성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마을이 정비됐어요. 주민들의 표정 또한 밝아졌답니다. 이제 천북은 소외지역이 아닌 중심지역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지난 10월 5일 천북면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정극 천북면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 추진위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이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지역의 발전 거점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읍면 소재지에 교육·문화·복지·의료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공급하고 배후마을에 서비스 전달 체계를 활성화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목표다.천북면은 2017년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지난해까지 총 60억원을 지원받아 도로 정비와 중심상가의 간판 정비를 마쳤다. 동시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민들의 문화생활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보령시에서도 천북면을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의 모범 사례지로 꼽을 정도로 사업이 순항 중이다. 이런 성과에는 김정극 추진위원장의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추진력이 뒷받침됐다.김정극 추진위원장은 현재 집터에 5대째 살고 있는 천북 토박이다. 천북에서 청국장 맛 좋기로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2013년 천북면 하만1리 이장을 맡으며 마을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 발전에 앞장섰지만 점점 낙후되는 생활환경과 할 일 없이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고.“80~90세가 되면 경로당에 모여 있는 게 문화생활의 전부입니다. 사실 젊은이도 마찬가지죠. 여긴 노래방도 영화관도 없어요. 우리 마을에도 문화·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해 주민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나이 들도록 하고 싶었습니다.”하지만 모든 사업이 그렇듯 앞에서 끌면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은 바로 마을 주민들의 몫이라고 김 추진위원장이 강조했다.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주민들에게 사업을 알리는 일이 급선무였어요. 무슨 사업인지 알아야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테니까요. 직접 마을을 돌며 사업 취지를 알리고 사업을 통해 지어지는 건물과 교육 프로그램 모두 주민을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죠. 또 마을회관을 다니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 주민들이 직접 문화생활을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꽃 만들기, 건강관리, 리더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는데 매번 정원보다 20~30명이 초과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교육에 참여한 주민들은 사업에 관심과 애정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이웃이 한데 모여 무언가를 학습하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니 사이가 돈독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김 추진위원장을 볼 때마다 ‘이렇게 큰일을 해줘 감사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올 연말이면 교육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책임질 커뮤니티센터가 완공되기 때문이다. 이 커뮤니티센터는 벌써부터 관심이 뜨거운데, 그 이유는 천북면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엘리베이터 있는 건물 하나 없었다니 천북이 얼마나 낙후됐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앞으로 이곳을 영화도 보고 건강관리도 할 수 있는 문화·복지의 장으로 만들고자 합니다.”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 차.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김 추진위원장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아직 목마르다”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충북 음성 괴산의 청천면에 선진지 견학을 다녀온 이후 그 욕심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청천면의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을 이끄는 추진위원장님이 일을 잘하셨더라고요. 1차에 이어서 2차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지원금을 160억원 정도 받았다고 해요. 그 지원금으로 땅을 사서 거대한 관광지로 꾸며놨는데 부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동시에 천북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죠. 이를 위해 천북도 2차 사업 공모가 시작되면 무조건 지원할 계획입니다.”김 추진위원장은 각 마을의 리더들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잔소리(?) 한마디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우리 리더들, 즉 이장들과 부녀회장들이 나서서 선진 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합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욕심을 내야 지원도 받고 옳은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어갈 테니까요. 모두 합심해 천북을 보령 최고의 거점지로 만듭시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