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오케스트라, 그 속에 내포된 사회학(4) 

화려한 관현악곡을 들으면서 그것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오케스트라의 특성이 오케스트라가 놓여 있는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1930년대의 스트라빈스키(1882~1971). / 사진:위키피디아
벨 에포크 시대, 즉 아름다운 시대가 제1차 세계대전(1914년 7월~1918년 11월)으로 마감되었다. 유럽의 전성기도 끝났다. 패전국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특히 타격이 컸다. 1921년부터 독일은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던 악성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겪었다. 이를테면 1923년에서 1924년 초까지 무려 300%가 넘는 ‘월간’ 물가상승률을 경험했다. 1923년 초겨울, 독일인들은 30억 마르크짜리 빵 한 조각, 360억 마르크짜리 소고기 한 덩어리를 상점에서 보았는데, 그마저도 시간 단위로 가격이 다라지는 상황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독일이 일으켰던 세계대전에서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 등이 패전국 독일에 부과한 거액의 배상금 때문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이런 시기에는 1000명은커녕 수십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도 사치이다. 전쟁 중에, 혹은 전쟁이 끝난 후,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용으로 작곡된 곡 중에서 거론할 만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라는 곡이 있다. 러시아 유대인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초에 러시아를 떠나 유럽에서 공부했고,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에는 거대한 규모의 오케스트라 곡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무용음악인 ‘봄의 제전’은 4관 편성을 기조로 하여, 호른 연주자 8명을 포함해 많은 금관악기 및 타악기 연주자가 무대 위에 같이 오르는 대곡이다. 파리에서 ‘봄의 제전’이 성공한 후 스트라빈스키는 귀국할 수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 발생했던 러시아 혁명 때문이었다. 중립국인 스위스로 몸을 피한 이 작곡가는 1917년에 작은 오케스트라 곡인 ‘병사의 이야기’를 작곡했다. ‘봄의 제전’에서는 그것을 연주하는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에 부응하듯이 많은 무용수가 무대 위에 오르지만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바순, 코넷, 트롬본, 클라리넷과 여러 타악기로 연주되는 작은 오케스트라 곡 ‘병사의 이야기’에는 연기자 3명과 무용수 1명이 같이 출연한다. 악기 연주자 7명이 연주하는 이 곡을 오케스트라 곡이 아닌 실내악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오케스트라 곡으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7명으로 구성되는 오케스트라라고? 일찍이 베토벤이 7중주곡을 작곡했고 슈베르트는 8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 곡들은 음악계에서 실내악으로 분류한다.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을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가 있을까. 경계가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것을 정할 수는 있겠다. 지휘자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7명이 연주하는 ‘병사의 이야기’는 지휘자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슈베르트의 8중주곡은 지휘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실내악에는 왜 지휘자가 없을까. ‘병사의 이야기’에는 왜 지휘자가 있어야 할까. 오스트리아 고전주의자들의 음악은 단순하고, 20세기 사람의 음악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음악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끼리 협의하고 조정하여 무대에 오를 수 있지만 지휘자를 필요로 하는 복잡한 음악에서는 연주자들 간의 협의와 조정이 어렵거나 불가하다. 복잡한 관현악곡이더라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능력을 발휘해 지휘자 없이 공연할 수는 있지만 무척 드문 일이다.

지휘자는 고차원에서 느끼고 고민해야


▎독일 무용가 피나 바우슈가 독일 서부 도시 부퍼탈(Wuppertal)의 무용극장 무대 위에 올린 ‘봄의 제전’ 1973년 공연. 강렬한 음악에 늘 압도되었던 무용을 파격적으로 연출함으로써 음악에 필적하는 강렬한 무용 공연을 이루어냈다는 평가가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연주를 잘하는 이들을 전문적 연주자라고 한다면, 전문적 연주자의 능력을 키우는 일은 무척 어렵고, 그 와중에 지휘 능력까지 겸비하기는 더욱 어렵다. 지휘자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며, 많은 전문 악기 연주자가 머무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어쩌면 더 고차원적인 세계에서 느끼고 고민하고 일하는 사람이다. 사실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는 지휘자가 더 많다. 훌륭한 독주자로 이름을 날렸다가 직업을 바꿔 지휘자가 된 이들이 독주자로서의 명성을 계속 유지하는 일은 드물다. 카리스마 있는 지휘자에게 악기를 연주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물론 지휘자는 악기의 특성이나 연주자들의 관행,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지휘자가 지휘하는 곡이지만 여전히 실내악으로 분류해야 할 곡도 많다. 복잡하여 각 연주자의 세계를 압도하는 상위의 세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그 세계를 맡는 지휘자가 있다 하더라도, 연주자의 수가 너무 적다면 그 곡을 오케스트라 곡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12년에 작곡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늘 지휘자를 두지만, 총 연주자가 6명분이므로 오케스트라 곡으로 보기 어렵다. 오늘날에는 현악 4중주와 같이 연주자가 4명에 불과한 곡을 위해서도 지휘자를 두는 음악회가 많다. 현대의 음악이 무척 어려워져서 발생한 현상이다. 현악 4중주는 제1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음악 장르다.

오스트리아의 쇤베르크는(지난 호에서 소개했던) 말러와 함께 바그너주의자(Wagnerian), 즉 음악상의 거대주의(Gigantism)를 미학적 가치로 평가했던 음악가였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꽤 긴 작품을 썼던 바그너는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에게 영향을 받았던 19세기 후반 이후 작곡가들을 바그너주의자라고 분류할 수 있다. 1911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구레의 노래’는 현악기 연주자만 64명에, 호른 10대, 트럼펫 7대, 다양한 타악기 등으로 구성된 4관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주한다. 그런데 그게 주가 아니고 그것을 반주 삼아 독창자 5명과 3개 남성합창단, 8성의 혼성합창단이 노래하는 칸타타로서, 대략 400명이 무대 위에 오른다. 말러의 ‘8번 교향곡’의 연주자 1000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곡이라는 평가가 있다. (‘천인 교향곡’도 늘 연주자 1000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천인 교향곡’이 잘못된 명칭이라고 하는데, 사실 작곡가가 붙인 정식 명칭이 아니라 별명일 뿐이다. 어쨌든 1000명을 채우는 공연도 있다.) 덴마크 신화를 노래하는 거대한 ‘구레의 노래’를 끝으로 쇤 베르크는 더는 거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 칸타타는 지금까지 두 번 공연되었다고 한다.

거대주의는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현상으로서, 많은 연주자에 의한 압도적 음향이 특색이다. 압도적 음향은 화려하고 복잡하며 사치스럽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구레의 노래’에 현악기 연주자만 64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숫자는(‘합창 교향곡’을 제외한) 베토벤의 웅장한 교향곡들에서 요구되는 연주자의 총수보다도 많다. 64명에 대적하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타악기도 상술했듯이 많지만, 이 악기군들은 (이 연재 시리즈의 앞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여전히 현악기들의 위세에 미치지 못한다. 현악기 수십 개가 내뿜는 현란하면서도 강력한 음향은 청자에게 후기 낭만주의의 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절한 수단이었다. 이런 음향에 많이 노출되어서 그랬던 것일까. 당시 많은 사람이 무척 감정적이었고 그래서 최악의 전쟁에 쉽게 내몰리게 되었을까. 전쟁은 모든 이의 분노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분노는 소수의 지배자에 의해 조종된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인지한 때문일까. 1차 세계대전 이후, 스트라빈스키 등은 ‘병사의 이야기’ 등을 통해 다소 무미건조한, 냉정한 듯한 느낌의 곡을 많이 작곡했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후기 낭만주의의 과장된 화려함을 거부하는 것으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제 음악가들과 그들의 청중은 다소 진정되어서 차분해졌다. 음악예술사의 이러한 역사적 변화는 일찍이 과장된 화려함의 세계를 앞세웠던 절대왕정 시대의 바로크가 계몽주의 시대의 고전주의로 바뀐 것에 견줄 수 있다. 바로크는 낭만주의와 공유하는 것이 많고, 고전주의는 신고전주의와 그러하다. 역사는 더욱 고도화된 기초 위에서 반복되는 것일까.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 27~28명이 지휘자 없이 서로 협의하고 조정해 공연을 올렸다. / 사진:위키피디아
신고전주의자 스트라빈스키는 고전 혹은 낭만 오케스트라에서 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어떤 악기들, 특히 현악기들을 배제한 특이한 오케스트라를 선보이기도 했다. 1930년에 작곡된 그의 ‘시편 교향곡’에서는 높은음을 내는 현악기인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없고, 낮은음을 내는 첼로와 더블베이스만 사용된다. 그 결과로 차가운 고딕 사원의 느낌을 불러오거나, 엄격한 금속성의 소리가 동반된 차분한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평가가 있다.

오케스트라 규모는 사회와 그 구성원의 상태를 표시·반영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바로크 시대 이후 서양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연주자 수가 많아지는 팽창의 과정을 밟아왔다. 식민지 개척을 통해 유럽 영토가 넓어졌던 것처럼. 오늘날, 오케스트라 규모가 더 팽창하는 일은 무척 드물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11호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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