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일컫는 단어이다. 감정은 감각과 달리 주관적이며 현상이다. 그렇기에 현재진행형과 감정형용사는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 Be 동사도 감정형용사와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영문법의 기초다. 감정은 동작이나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치료라는 단기심리치료법에서는 이러한 틀린 문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권한다. 감정을 행위하는 주체를 ‘나’로 설정함으로써 신념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감정과 행위를 선택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에드바르 뭉크 [울고 있는 누드] 1914 |
|
뭉크의 그림 속 여성은 격렬하게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그림에서 슬픔의 감정을 읽어낸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슬픈 것인가, 슬퍼하고 있는 것인가. ‘I am being happy’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다. ‘나는 행복해하고 있어요’라는 말 역시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다. 현실치료에서 심리학적 이론의 바탕은 선택이론이다. 선택이론은 모든 생물체의 심리적·신체적 행위들을 설명해주는 생물학적 이론으로, 모든 행동은 외부의 자극에서 동기를 얻게 되고, 자극-반응 이론과 달리 선택이론에서는 선택이 내적으로 동기화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선택이론에서는 우리가 행동하는 것, 좋고 나쁘고를 결정하는 것, 효율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을 결정하는 것,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우리 내면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라고 본다.그래서 현실치료에서는 ‘나는 행복해하고 있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한다. ‘나는 행복하다’는 내가 행복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하고 있다’는 내가 감정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행복함을 행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나의 행동과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나의 감정은 분명히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신념과 상황
▎게르하르트 리히터 [마르안느 이모] 1965 |
|
누군가는 적당함에 만족하며 사회적 흐름을 따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불편해한다. 괴리감이 느껴져도 당장의 안락함을 선택할 수도 있고, 괴리감을 없애기 위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으며 감정도 그에 따라 함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삶에 안주하기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감정을 선택했다. 193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동독의 사회주의 이념 아래에서 성장했다.그가 7살이었을 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교사로 일하던 그의 아버지에게 나치당의 가입 강요가 있었다.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지금의 흐름에 맞게 나치당에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한 그의 아버지는 결국 나치당에 가입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나치당이었던 교사를 다시 채용해주는 학교는 없었다. 긴 전쟁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그는 신념이 아닌 상황에 따른 선택을 했던 것이다.리히터는 가족 중에서 특히 이모 마리안느와 함께했던 기억을 자주 이야기했다. 조현병 증세를 보인 이모는 나치 정책에 의해 사라져야 할 유전자로 지목됐다. 조현병은 현대의학에서도 유전적 질환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나치당은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더는 대를 잇지 않도록 불임수술을 강행했다. 이모는 독일의 집단 안락사로 사망했다. 리히터는 이 일을 주도했던 사람이 자신이 사랑했던 여성의 아버지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에마-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66 |
|
15살 때부터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리히터가 배운 미술은 ‘나’를 감추고 인민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동독에서 추구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벽화를 그리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안(Marianne Eufinger)을 만나 결혼했다. 부유했던 처가 덕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렸고 작가로서도 계속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던 리히터였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에 ‘진짜’가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독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해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됐다.신념을 버리고 사회적 흐름에 따를 것인지, 신념을 따라갈 것인지. 이 고민은 리히터의 아버지가 나치당원으로 가입하기 전에 끊임없이 해오던 것이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그 선택을 눈을 감을 때까지 후회했다. 리히터는 고개 숙인 절망감과 후회를 선택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서독으로 탈출했다. 모든 인간의 선택에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득이 없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생기며, 그에 수반되는 책임과 감정이 부여된다. 아내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모를 학살한 의사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리히터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사진은 진실을 담는다. 그러나 우리는 극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사진 같다’고 표현하며 몽환적인 느낌으로 찍힌 사진을 보며 ‘그림 같다’고 설명한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뒤섞여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도, 신념도, 감정도 그렇다. 그렇기에 리히터는 사진을 극사실적으로 따라 그린 후 브러시로 문질러 사진이 아니게 만들었다. 리히터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자유였다. 그렇기에 그의 초기 작품들은 실제와 추상의 중간쯤에 자리한다.
감정의 불확실성
▎게르하르트 리히터 [튤립] 1995 |
|
감정은 불확실하다. 수백 가지의 감정단어 중 오직 한 가지 단어로 지금의 상태를 표현할 수는 없다. 슬픈 감정과 우울한 감정, 좌절스러운 감정은 한데 섞여 발생하기도 하고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기도 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의 깊이도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다. 안쓰러운 마음의 슬픔이 있으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정도로 큰 슬픔도 있다.리히터의 작품에는 감정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드러난다. 사진이 주는 확실성과 회화의 손길이 더해짐으로써 탄생하는 비현실성이 공존한다. 그림 속 튤립은 실제 튤립을 옮긴 것이지만 진짜 튤립이 맞는가. 이것은 플라톤이 던졌던 질문과 연결된다.동굴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만 동굴에서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그림자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표방한 2차적인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인지할 수 있는 이 세계는 모두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튤립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데아의 그림자인 튤립을 다시 캔버스에 옮긴 그림은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리히터는 이 두 그림자의 중간 단계를 회화로 완성했다. 19세기에 사진기가 생겨나면서 회화는 이제 불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을 캔버스에 담았고, 입체주의는 대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체하여 다시 캔버스에서 조합했다. 우려와 달리 오히려 회화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20세기 중반, 회화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설치미술과 개념미술, 퍼포먼스 미술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평평한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바르는 것은 더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서독으로 떠났던 리히터는 고곳에서 아방가르드 미술들을 접하면서 주류 미술을 표방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나’를 표현한 것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다.
‘나’를 만나기 위한 감정의 선택
▎요제프 보이스 [지방 의자] 1964 |
|
리히터의 삶에 또다시 과거와 비슷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신념을 버리고 사회적 흐름을 따를 것인지, 자신의 신념과 감정에 충실할 것인지. 이때 뒤셀도르프 미술학교의 조소과 교수였던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세계는 리히터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요제프 보이스는 전쟁 당시 자신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 처했다. 그때 원주민들이 그의 몸에 지방덩어리를 바르고 펠트 천으로 둘러 생명을 구해준 사건이 있었다. 그때 이후 그에게 가장 중요한 소재는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지방과 펠트였다.리히터는 다시 자신의 삶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마리안느 이모를, 자신의 아내를, 나치 정권 아래에서 정신질환자들의 불임수술 프로젝트를 기획한 지도자의 얼굴을 그려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를 선택했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동독 정권 아래 사회주의 리얼리즘 벽화를 그리고, 서독 뒤셀도르프 예술학교에 와서 주류 예술을 흉내 내던 리히터의 작품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긍정적인 감정만 선택의 대상은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그것이 ‘나’라면 선택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제 선택할 감정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이다. 그 감정을 선택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감정을 통해 어떤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가. 또 그 감정을 통해 나는 나에게 진실해질 수 있을까. 그럼 다시 질문해보자. 나는 오늘 남은 하루에 어떤 감정을 선택하며 보내고 싶은가.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