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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기업 리더 50인의 신년 에세이(8) 

 

오승일 기자
의료산업의 리부팅 이끌 로봇 | 김준구 미래컴퍼니 대표


몇 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 기업의 운영 방식을 바꾸는 전환기를 맞게 했다. 이제는 각 기업들이 추진하는 사업, 개발하는 제품에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시점이다. 모든 기업이 팬데믹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사업 구조와 제품 포트폴리오를 리부트(reboot)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의료산업도 마찬가지다. 원격진단에서 시작해서 원격수술까지 이동을 최소화하면서도, 환자들이 누리던 기존 의료서비스의 퀄리티는 동일하게 유지·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빅데이터라는 화두가 등장함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하드웨어 또는 제품을 기반으로 한 유형적 가치제안(valueproposition)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무형적 자산의 가치제안 시대로 전환해가는 것이다. 팬데믹은 이런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데이터 수집(collection)에 집중했다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는 의료 데이터의 활용성(utilization)과 수익화(monetization)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의료 시장은 한 개인의 인생주기 혹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크게 ‘진단·검진→수술·처치→회복·사후관리’로 이어지는 주기로 자리 잡았다. 데이터 수집 측면에서 보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진단·검진 시 이미 검진센터나 수탁검진랩(lab) 같은 기관에 모여 있다. 회복·사후관리 데이터도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수술·처치 부문에서는 수술실 내 데이터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많은 기업이 공을 들이기 시작해야 될 지점이 바로 이 수술실 내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이다. 수술실 안에는 수술 행위와 관련된 데이터, 마취 데이터 및 환자 상태와 관련된 데이터 등 많은 정보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데이터를 모아서 처리·가공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기기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수술로봇이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로봇이 수술실에서 중앙집중형 지능(centralized brain)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이미 수술로봇이라는 대규모 컴퓨팅 파워를 보유한 하드웨어 기기가 존재한다. 또 수술로봇은 수술실 내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외과의사(surgeon)와 1차적인 상호작용(interaction)을 수행하는 기기임과 동시에 주변 기기들과 통신 인터페이스도 구현할 수 있는 기기다. 머지않아 수술로봇을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절실함과 끈기 | 임정욱 TBT 공동대표


벤처투자자로 일하면서 많은 창업자를 만난다. 그들의 사업 설명을 듣다 보면 종종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 모델로 얼마나 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투자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쉽게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신호다. 그렇게 생각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보면 망할 것 같은 위기를 넘기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 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결국 투자를 받아 낸다. 그리고 또 한동안 세월이 지난 뒤 보니 그 초기의 안 될 것 같았던 사업 모델을 변경, 확장해내 유니콘 회사를 만들어낸 창업자도 있다.

이런 분들을 보면 투자자로서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온갖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도록 한 원동력, ‘생존의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타트업 생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절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에 대한 절실함,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열망 같은 것들이다. 절실함이 강할수록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생존하고 결국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미국에 ‘눔’이라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있다. 정세주 대표라는 한국계 창업자가 만든 회사다. 처음에 시도한 사업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창업 초기에 많은 고전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회사를 유지했고 그 어려운 고비를 넘겨 지금은 유니콘이 됐다.

한번은 행사에서 만난 정 대표에게 그 어려운 시기에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거절당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일말의 주저 없이 ‘500번 정도’라고 답했다. 속으로 ‘나 같으면 열 번은 포기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뤄낸 창업자들은 이런 절실함과 끈기가 있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부터 미국의 로블록스까지 초대박 회사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도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다. 2000년 닷컴버블이 터진 이후 새 펀드를 만들기 위해 무려 7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는 고난의 행군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거절을 당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절실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투자자로서 나에게도 창업자들 못지않은 그런 절실함이 있는가 생각해본다. 2022년에는 편안함에 안주하기보다 뭔가 절실함을 만드는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

간절함과 리소스 그리고 데이터 | 이승주 TDI 대표


‘간절함’, ‘리소스’, ‘데이터’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나를 다시 생존하게 해준 것들이다. 이와 관련한 일부 경험담을 풀어본다.

5년 전 회사에 처음으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웹 기반 마케팅에서 모바일 사업으로 전환하던 회사는 앱비즈니스에 실패해 2016년 디폴트 위기를 맞았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채무를 지게 되었고, 직원 급여도 겨우 지급하는 수준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십수 년간 문제없이 돌아갔던 사업이기에 나의 오만함은 끝이 없었고 신사업을 쉽게 보고 접근했던 것이 여러 오판을 낳았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에게 남은 리소스를 점검해보았다.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으나, 나에게 남은 게 있었다. 앱비즈니스는 실패했지만 모바일 개발과 관련된 기술은 남아 있었고 나의 마케팅 지식과 간절함이 남아 있었다.

이튿날 6000만원을 융통했다. 이 자본으로 우리의 앱은 아니지만 타사의 앱을 이용한 마케팅 솔루션을 한 달 만에 개발했고, 3개월 만에 매달 2억원씩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모든 빚을 갚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만심을 버리고나니 내가 가진 것들을 재해석할 수 있었고 훌륭한 리소스가 여전히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리소스가 있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보지 못할 뿐이다. 턴어라운드를 하고 나서도 모든 부분에서 겸손하기로 마음먹었다.

빅데이터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데이터 관련 리소스는 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보유 및 제휴한 앱에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 마케팅 관련 데이터가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위치와 앱 데이터도 눈에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타깃 마케팅 솔루션을 다수 개발했고, 적은 리소스로 많은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마케팅을 기반으로 경험한 빅데이터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4년간 자체 자금 약 200억원을 기술에 투자했다. 데이터를 많이 모을수록 CEO인 나의 생각도 변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경영하면서 내린 판단은 모두 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분석할수록 아주 잘못된 판단과 경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인 데이터중심경영에 집중하게 됐다. 한 예로, TDI가 세계 1위인 스와이프 벽돌 깨기를 인수한 것은 2019년 6월이었다.

모바일사업본부에서 추천했고, 설치 후 몇 판을 해본 나는 “이렇게 재미없는 게임을 누가 하냐”고 호통을 쳤다. “이렇게 간단한 캐주얼 게임을 7억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인수한다고?”

차라리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보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련 데이터를 받아본 나는 크게 놀랐다. 설치 다음 날의 재접속률을 체크하는 데이원리텐션(Day1 retention)이 50%가 넘었고, 게임업계에 알아보니 이런 수치는 드물다고 했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재미없는 게임이었지만, 데이터를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 인수 초기에 이 게임의 광고수익은 월 2만5000달러 수준이었다. 자본회수기간(Payback period)은 약 24개월 정도 예상됐다. 인수를 하고 좀 더 살펴보다 왜 광고가 다섯 번 노출에 한 번만 나오는지에 대해 개발팀에 문의했고, 이는 광고 피로도를 줄여 유저 이탈을 막기 위함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 역시 데이터중심경영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10% 유저에게만 광고를 100% 노출하도록 지시한 뒤, 기존 유저와 비교하는 데이터분석을 했다. 그 결과 추가 이탈 유저는 거의 없고, 매출만 5배가 늘었다. 현재는 모든 터치 요소에 이벤트를 심고, 데이터분석을 하여 월 이용자수(MAU) 증가 없이 월 매출 15만 달러를 올리고 있다. 관리 인원은 0.5명이 들어가니, 나름 효자 아이템이 됐다. 4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뛰어난 CEO는 항상 좋은 감과 촉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풍부한 빅데이터 시대에 굳이 촉으로만 사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 회사는 기업의 디지털전환을 돕는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솔루션의 효율성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운영 중인 서비스 매출이 자연스레 연 30%씩 4년간 성장했다. 결국 간절함과 리소스, 데이터가 나를 다시 생존하게 한 셈이다.

용기와 끈기, 믿음 |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


코로나19가 오래 지속되면서 전 세계가 힘들어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와 급변한 환경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가 힘든 상황을 가속화했을 수 있으나 창업한 이래 나는 줄곧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고 자주 생각했다. 통장에 잔고가 없어 월급을 못 주게 될까 무서웠던 순간, 입점을 하라는 설득에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던 답변을 듣던 순간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잠 못 이루고 힘든 시간을 겨우 버티는 분이 많지 않을까? 지금 힘들어하는 분들과 내가 어떻게 생존해왔는지 나누고 싶다.

어느덧 창업한 지 4년 차가 됐다. ‘세상이 좋아지는, 누구나 팔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감으로 작아졌던 순간이 많다. 서비스를 기획하던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질문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을 누가 볼까?’였다.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근간이 흔들렸던 순간이었다. 우선 시작해보고 잘못되면 고치고 잘되면 발전시키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존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먼저 시작하고 실천하는 용기가 나를 지탱해 준, 첫 번째 생존의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더라도 잦은 실패와 얘기치 못한 환경들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꾸준한 열정과 끈기가 없다면 실천했던 용기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현재 운영하는 그립 서비스에서 활동하는 셀러들만 봐도 열정과 끈기를 갖고 있는 이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월세를 못 내 라이브커머스를 시작하는 사장님들, 사업 확장을 위해 디지털 판매를 해야 한다고 라이브커머스를 시작하는 사장님들. 저마다 다른 동기로 시작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했다. 어려움과 역경이 있어도 끈기 있게 꾸준히 방송하는 분들의 매출만 크게 성장한다. 한 소상공인 사장님은 코로나19로 사정이 안 좋아져 대출을 받아야만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그립을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 손님이 없어서 채팅창은 조용했고, 썰렁하게 한 시간을 겨우 넘겼다. 그럼에도 ‘방송은 약속’이라며 1년간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하게 방송한 끝에 이제는 월 매출이 억대에 이른다. 오늘도 사장님은 라이브 방송을 켰다. 이러한 열정적인 끈기가 이 시대에서 생존하는 또 다른 조건일지 모르겠다.

나는 창업하기 전에 비전을 먼저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팔 수 있다(Everyone can sell).” 단순하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고, 그런 생각을 남들에게 좀 더 쉽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비전을 수년째 강조하고 생각하다 보니 정말 그런 세상이 오는 것만 같다. 실제 그립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라이브 방송에서 구매자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셀러 49명을 6개월간 설득해 하루 1개 방송만 했다. 3년이 된 지금 하루 1000개 넘는 방송이 송출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립이 세상을 좋아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팔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루고자 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이 생존을 뛰어넘어 나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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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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