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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의 제언 

중대재해처벌법이 바꾼 것들 

오는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다는 취지엔 동감하지만, 정의규정과 책임범위 등 타당성에 대한 의견은 아직 분분하다. 반도체 장비를 전문으로 다루는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의견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건물이 커지고 신사업이 늘어나고 인원도 많아지면, 즉 회사가 성장하면 지켜야 할 법규가 많아진다. 환경, 안전, 소방, 전기, 기계 등 분야별 전문가를 뽑고 인허가도 받아야 한다. 업무 절차도 한층 복잡해진다. 일부 법·규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담당자들에게 꼭 지켜야 하냐고 물어보면 담당자들이 섬찟한 경고를 날린다. “사장님, 이러시면 감옥 갑니다.”

환경·안전 전문가들조차도 수시로 변경되는 법규를 따라가는 게 벅차다고 한다. 어떤 대형 금속회사는 지켜야 하는 안전보건 관련 법령을 다시 점검하기로 했는데, 관련 법령을 찾는 데만 2주가 걸렸다고 한다. 대형 로펌들은 중대재해처벌법 특수를 누리고 있다. 건설, 철강, 중공업 등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업종에서는 최고안전책임자(Chief Safety Officer)라는 자리를 만들어 안전, 보건과 관련된 예산, 인원, 권한을 몰아줘 CEO들이 처벌을 받는 일을 막으려 한다. 어떤 회사들은 납품하러 오는 트럭 운전사들에게도 헬멧과 보호장구를 착용하게 한다. 직원을 뽑을 때 건강검진 결과가 조금만 안 좋아도 채용하지 않는 회사들도 있다. 대형 반도체 장비회사 대표는 안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지게차 운전면허를 따기도 했다. 안전전문가의 몸값이 폭등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 회사도 외부 인력들이 들어와서 하는 작업이 많아서 안전, 보건, 환경과 관련된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법체계는 일본에서 들여왔고, 일본은 그 틀을 독일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한국 법 대부분은 성문법적인 대륙법 체계를 따른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판례 중심의 불문법, 즉 영미법 체계를 따르고 있어 선언적인 문구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는 기존의 한국 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보고 당황하게 된다. 요즘 대형 건설계약이 많이 미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범 케이스로 초기에 어떤 판례가 나오는지 확인해보고 계약하려는 회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안전·환경이 강화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다. 광주 아파트 붕괴 같은 산업재해는 결코 반복되면 안 된다. 영세한 기업들 중에는 지나칠 정도로 환경과 안전을 무시하는 회사도 많다. 1년에 8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산업재해는 어떤 방식으로도 줄여나가야 한다. 대형 반도체 회사의 CTO는 한국 사람들의 안전불감증을 이야기하며 한국 경영자들이 안전과 환경을 필수적인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로서 과도한 법 적용으로 비용이 상승하고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떤 회사에서는 요즘 한 명이 지게차를 운전하면 5명이 지켜본다고 한다. 경험상 일본 회사들의 안전의식이 우리보다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높은 안전·환경 비용과 불합리한 절차 때문에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오랫동안 지켜봤다. 일본의 반도체 팹에서 장비를 해체, 반출, 포장, 운송하는 비용이 한국보다 3배 정도 높다. 사고가 날 때마다 하나씩 누적된 규정과 절차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계속 늘려왔던 것이다.

22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한국의 비현실적인 법과 제도, 절차 때문에 울화가 치민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해외 업체와 거래를 하면서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대만 등의 법, 제도, 시스템에도 불합리한 면들이 많다고 느꼈다. 어느 나라에나 기업인의 눈에는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법과 제도가 있었고, 큰 틀에서 보면 우리나라에도 선진적인 법, 제도, 시스템이 꽤 많다. 한국이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데도 신속하고 효율적인 중앙집권적 법, 제도, 절차가 한몫을 하고 있다. 정호재 비교지역학자는 K-Pop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공정위가 주도한 아이돌과 소속사 간 노예적 계약관계의 혁신을 꼽았다. 해외 친구들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인천공항의 편리하고 빠른 출입국 시스템이다. 지난 10여 년간 수백 곳의 해외공항을 다녀봤지만 인천공항처럼 출입국 절차가 편리하고 빠른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기업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규제는 지나치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의 사업 중 절반이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한다. CEO 형사처벌 조항이 2205개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겁이 덜컥 난다. 아직은 전과가 없지만 ‘언젠가는 뜻하지 않게 나도 전과자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50년 전에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법 때문에 1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진시황의 엄격한 법가주의, 진나라의 멸망, 한국적 법치주의

진나라는 상앙(商鞅) 이래 법가를 받아들여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해왔다. 진시황은 초나라에서 순자의 법가사상을 배우고, 진시황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던 이사를 재상으로 등용하면서 더욱 강력한 법가주의를 실행했다. 진시황이 황제가 된 후 시도한 모든 정책은 ‘법가적 통치를 강력하게 실시하여 황제 중심의 일원적 지배체제 확립’으로 귀결된다. 법가는 진나라 멸망 이후 겉으로 보기에 급속히 쇠퇴했는데, 이는 진나라 시절 엄격한 법가통치로 수많은 사람이 법가에 심한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앙, 이사, 한비자와 같은 법가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상앙은 효공이 죽자 역모로 몰려 도망가던 중 어느 숙소에 하룻밤을 청했다가 증명이 없는 자는 재워줄 수 없다는,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신고를 당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이사 또한 조고(趙高)의 모함으로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으로 죽었고, 한비자는 이사의 농간에 독약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법가주의가 통치 수단으로서는 잘 작동했지만, 도덕, 종교, 철학으로 채워야 할 부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국이 5천 년 역사를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가의 얼굴을 한 법가의 통치’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 법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법치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제국의 흥망성쇠가 갈렸던 것이다.

한국의 성문법적 성향이 독일의 제2제국을 근대화의 모범으로 삼은 일본 식민지배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한반도에도 조선시대부터 상당히 강력한 성문법이 있었다고 한다. 주자학적 신분 질서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유연하지 못한 법체계를 만들었다. 중국은 땅이 넓어 일률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려웠기에, 다양한 상황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 결과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판례 중심의 법치를 했다. 진시황이 처음 도입했다가 실패하고 그 후 한무제 시대에 이르러 정착된 군현제(중앙에서 관료 파견에 의한 확실한 지방통치)가 한반도에서는 조선 초기에 비로소 실현되었다. 여기에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이르는 백여년의 법제화 작업이 성종 때 경국대전의 반포로 완성되었다는 배경이 존재한다. 조선에서는 경국대전 이후에 판례법은 거의 없어졌고, 만고불변·영원불변의 성문법에 의거해 디테일하고 유연성 없는 법체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농본사회였던 조선에서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 복잡한 법질서나 판례법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통치법, 행정법령이 발달했고, 규정 중심의 상명하복 문화가 쉽게 자리 잡았다. 반면 한나라, 당나라와 같은 중국의 대제국에서는 상업이 흥한 데다가 워낙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법적 원칙만으로는 부족해서 구체적 상황에 따른 판례가 중요했다.

조선시대 농본주의로 상공업을 억누르다 일제를 거쳐, 지난 몇십 년 사이에 한국이 전 세계 6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법이나 규정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융통성 없는 법과 제도가 아직도 유물처럼 남아 있고, 일제 군국주의의 영향을 받아 상명하복의 권위에 순종하는 문화가 우리 몸에 배어 있어, 현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혁신과 빠른 변화를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법을 만드는 과정을 몇 번 지켜봤는데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반영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수요자 입장이 아니라 공급자 입장에서 국회의원과 정부기관이 법과 제도를 쏟아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들이 한국에서 만든 회사 규정들을 해외에서 현지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려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나도 30여 년간 비즈니스를 하면서 구시대적이고 불합리한 한국의 일부 법과 제도, 규정에 분통을 터트린 적이 많다. 한국 성문법 체계의 특징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금지하고 예외적인 사항을 나열하는 ‘허용사항 열거방식(Positive System)’을 취한다. 법률은 물론, 시행령, 시행규칙, 각종 지침 및 관리규정 등에도 가능한 행위만 명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성문법과 판례법 모두를 중시하는 이원적 체계로 운용되고 있으며, 규제대상으로 명시된 것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허용하는 이른바 ‘금지사항 열거방식(Negative System)’을 원칙으로 한다. 법체계가 유연한 영미권과 중국에서는 새로운 산업의 창업이 수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법, 시행령 등 각종 규정에 어긋나면 안 된다. 수십 년 전에 별 생각 없이 만들어놓은 불합리한 법·규정을 따라야만 하고, 현실에 맞게 고치려면 또 몇 년이 걸린다.

신생기업엔 더욱 가혹한 한국의 규제들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들이 하는 사업들이 한국 기준에서 보면 태반이 불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가 법과 제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미국, 중국 회사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시장을 선도한다. ‘타다 사태’ 이후 통과된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군수사업법 개정안)’에서 봤듯이 우리나라의 성문법적인 엄격한 법치주의는 신생기업에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 가혹한 규제가 된다.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사업을 하려고 해도 각종 규정에 걸리는 일이 많고 이를 해결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써버려야 하니 차라리 남들 다하는 레드오션 사업에 뛰어드는 게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다. 정부나 국회에서 수십 년간 규제개혁을 외쳐왔지만, 실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한국의 법·제도·문화가 농경시대의 주자학적·성문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정부에서도 불문법의 원칙(Principal) 중심으로 네거티브 시스템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기업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진전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경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상공업 중심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개방, 융복합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급변하는 21세기에 살아남는 국가가 되려면 원칙을 따르면서 좀 더 유연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한 국가의 발전에 선진적인 법 제도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인프라스트럭처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이 상충할 때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공정하고 투명하며,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더 깊이 이해하며, 예측가능한 법 적용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기업인들은 국내에서 처벌받지 않으려고 고민하는 대신 전 세계를 무대로 더 펄펄 뛰어다닐 것이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202호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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