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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년 허먼밀러의 장수 비결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보편화하면서 ‘허먼밀러’의 사무용 가구 인기가 치솟고 있다. 설립 역사만 116년. 나스닥 상장사로 거듭난 이 회사의 2020년 매출은 3조원에 육박한다. 100년 넘게 프리미엄 가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살펴보자.

허먼밀러(Herman Miller)는 1905년 미국 미시간에서 설립된 가구 회사이다. 허먼밀러는 가구 회사로는 드물게 116년이나 장수하며, 글로벌 명품 가구 디자인 및 제조 회사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허먼밀러의 대표적인 제품인 에어론(Aeron) 체어는 국내에서도 200만원이 넘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에어론 체어는 인체공학적 설계를 적용한 대표적인 의자로, 1994년 출시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도 탁월한 경쟁력을 갖추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허먼밀러는 1964년에 디자이너 로버트 프롭스트(Robert Propst)와 함께 소위 ‘액션 오피스’라는 일련의 주문형 사무용 가구 제품을 출시했는데, 이 제품 라인은 이후 큐비클(cubicle) 사무용 가구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큐비클은 가변적인 개방형 파티션 개념의 사무공간을 의미하며, 허먼밀러의 큐비클은 현대 사무실 시스템 가구 인테리어의 글로벌 표준이 되었다.

나스닥 상장기업인 허먼밀러의 2020년 글로벌 매출액은 24억7000만 달러(약 2조9000억원)에 이른다. 허먼밀러는 세계적인 사무실 가구 및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다수 인수하며 글로벌 디자인 리더로서 입지를 공고히 해오고 있다. 허먼밀러의 대표적 자회사 브랜드로는 가이거(Geiger), 헤이(HAY), 홀리헌트(Holly Hunt), 디자인 위딘 리치(Design Within Reach), 마스(Maars) 등이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허먼밀러의 강력한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명품 가구 브랜드 놀(Knoll)을 18억 달러에 인수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놀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이었는데, 이번 합병으로 놀의 주주는 주당 현금 11달러와 허먼밀러 주식 0.32주를 받게 되었다. 허먼밀러와 놀의 합병 후에는 밀러놀(MillerKnoll)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게 된다. 합병 법인은 모두 19개 명품브랜드를 보유하고, 전 세계 100개가 넘는 나라에 온오프라인 사업장을 갖추게 되었다. 합병 법인의 연 매출액은 약 36억 달러(약 4조3000억원)에 이른다.

허먼밀러는 명품 사무용 가구 브랜드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1930년대 개발한 스캔론 플랜(Scalon Plan)이라는 종업원 성과배분제도를 선구적으로 적용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종업원 중심의 경영방식을 꾸준하게 실천해오고 있는 허먼밀러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리스트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허먼밀러의 116년 장수 비결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창업주 더크 얀 디 프리(Dirk Jan De Pree, 1891~1990)를 살펴보자. 네덜란드 칼뱅주의 이민자 후손인 디 프리는 190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미시간 스타 퍼니처(Michigan Star Furniture Company)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1905년 설립됐는데, 디 프리는 여기서 경영관리를 담당했다. 그는 1914년 넬리 밀러(Nellie Miller)와 결혼했고 1919년에는 이 회사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 1923년 그는 장인인 허먼 밀러의 자금 지원으로 미시간 스타 퍼니처 지분 51%를 인수하고, 장인을 기념하여 회사 이름을 허먼밀러로 바꿨다.

당시 허먼밀러는 주로 가정용 가구를 생산해서 시어스 같은 백화점에서 판매했는데, 적은 마진과 낮은 노동생산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대공황 시기를 지나며 회사는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허먼밀러의 기적적인 회생은 1931년에 시작됐다. 당시 산업디자이너로 명성이 자자했던 길버트 로데(Gilbert Rohde)가 새로운 가구 디자인 아이디어를 갖고 허먼밀러 매장을 방문했고 길버트를 만난 디 프리는 변화와 희망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를 고용해서 허먼밀러의 새로운 제품 라인을 디자인하라고 맡겼다.

길버트는 현대적 주택 사이즈가 작아지는 것에 착안하여 작고 단순한 스타일에 기능성이 강조된 가구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디자인이 적용된 첫 제품들은 1933년 출시되었고,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출품해 가구유통업자들과 일반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다른 가구 회사들도 길버트 로드가 디자인한 허먼밀러의 가구 스타일을 본떠 유사한 제품들을 쏟아냈다. 길버트 로드는 이 첫 작품들을 성공시킨 이후 사무실 가구에 관심을 갖고, 사용자의 개별적 니즈에 맞도록 하는 가변형 책상 등 다양한 가구를 디자인해서 출시했다. 그가 선보인 허먼밀러의 L자형 책상, 섹션널 소파 등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독창성이 돋보였던 가구였다. 이후 또다시 수많은 가구 회사가 허먼밀러의 이 제품들을 모방했다.

1944년 길버트가 사망하고 1년 후 디 프리는 젊은 건축가 조지 넬슨(George Nelson)을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그는 허먼밀러의 전통 가구 제품 라인 대부분을 버리고 현대적 디자인 제품들에 집중했다. 조지 넬슨은 혁신적이면서도 수익성이 높은 사무용 가구들을 만들어냈고, 나아가 허먼밀러가 그래픽디자인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는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찰스 &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 등 세계적인 디자인 아티스트와 협업해 허먼밀러를 혁신과 품질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99세로 생을 마감한 더크 얀 디 프리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남 휴(Hugh)는 1962년부터 1980년까지, 차남 맥스(Max)는 1980년부터 1987년까지 허먼밀러의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경영했다. 특히 맥스 디 프리는 부친의 종업원 중심의 경영 철학을 계승해 ‘참여적 소유권을 통한 혁신과 탁월’이라는 허먼밀러의 종업원 경영참여 전통을 수립했다.

맥스 디 프리가 회장으로 재임한 동안 디프리 가문은 가문의 후손 중에서 누구도 고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임직원이 회사에 들어와서 회사의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종업원 참여 경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허먼밀러는 자본시장을 통한 분산된 소유를 기반으로 100%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맥스 디 프리는 1995년에는 등기이사직에서도 내려왔다. 이후 그는 허먼밀러에서 경험한 종업원 중심 경영을 토대로 펴낸 『리더십은 예술이다』, 『권력 없는 리더십은 가능한가?』 등의 저서에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전파하고, 수많은 경영자를 멘토링하며 여생을 보내다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디 프리 가문이 허먼밀러에서 실현한 종업원 중심의 혁신 지향적 가치경영은 전설이 되어 지금도 허먼밀러의 가구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202호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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