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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요금’ 막기 위해 가격 정보 투명하게 공개윤 대표가 해결책으로 ERP를 떠올렸던 건 당시 신라호텔, 해비치 등 국내 특급 호텔들의 숙박 예약, 관리를 위한 ERP 프로그램을 제작 대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기술을 보유한 윤 대표는 곧바로 렌터카 ERP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는 “한 업체가 아니라 모든 렌터카 업체의 정보를 제공하고 예약 결제하는 시스템이어서 호텔 ERP를 만드는 일보다 복잡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프로그램 개발이 아니었다. 플랫폼에 입점해 공정하게 경쟁해보겠다는 렌터카 업체가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이다.“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렌터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에요. 렌터카 업체의 80%가 몰려 있을 정도죠. 주로 가격경쟁을 펼치는데, 렌트비를 제대로 책정하려면 0~100원을 내세우는 곳보다 비싸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보험료를 높게 책정해 챙길 수 있는 금액도 상당해서 이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업체들을 직접 다니며 설득해봤지만 소용없었죠. 그러다 한 사장님이 상을 당해 일손을 보태러 상갓집에 갔습니다. 몇 날 며칠 자리를 지켰고 마지막엔 상여까지 멨죠. 제 절실함이 와닿았던 것일까요. 상을 다 치른 후 사장님이 보답의 의미라며 딱 한 번만 참여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의 지인들까지 설득해 총 5곳이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업체에는 손해가 가지 않도록 잔여 차량은 제가 모두 사입하는 게 조건이었죠. 그렇게 제주패스를 시작했습니다.”상품을 올리자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듯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에 부당함을 느꼈던 소비자들이 기다렸단 듯 몰려왔다. 서비스를 오픈한 지 이틀 만에 준비한 차량이 모두 예약됐다. 그는 “얼핏 보면 비싸 보여도 실제로는 더 저렴하고 합리적이란 사실을 소비자들이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설득에도 단호하게 거절했던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입점 업체가 하나둘 늘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제주패스에는 업체 420개, 렌터카 4만5000여 대가 등록돼 있다. 누적 회원수도 지난해 기준으로 150만 명, 누적 실거래 건수는 130만 회에 이른다. 그는 “이젠 제주를 넘어 전국 모든 지역, 나아가 일본, 미국, 동남아 국가 등 해외에서도 서비스하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선 제주패스라는 이름 대신 ‘모자이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지역뿐 아니라 서비스군도 확장했다. 카페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페패스’를 앱 내에 론칭해 서비스하고 있다. 1만5000원 정도를 결제하고 멤버십에 가입하면 제주도 내 200개 카페에서 일주일 동안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무제한 마실 수 있는 서비스다. 윤 대표는 “처음 카페패스에 가입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주는데 한 달에 10만 잔가량 나갈 정도로 신규 가입자가 많다”며 “2019년부터 지금까지 총 100만 명 정도가 이용했다”고 설명했다.“이 서비스는 제주패스를 시작하기 전에 시도했던 아이템이에요. ‘파리패스’, ‘도쿄패스’ 등 각 관광지에는 미리 결제를 해두고 대중교통, 음식점, 카페 등을 추가 결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 상품들이 있죠. 제주 여행자들을 위한 ‘제주패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제 시스템이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제주도 공무원들이 반대했습니다. 제주에는 약 50개 공영 관광지와 약 200개 민영 관광지가 있는데 한라산, 성산일출봉 등 공영 관광지를 관리하는 주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시작도 못 했죠. 아직 관광지 관련 콘텐트는 만들지 못했지만 ‘카페패스’로 시작해 다른 콘텐트로 점차 확장할 예정입니다.”
야놀자 지분투자로 2대 주주 등극지난 3월엔 투자를 받는 호재가 있었다. 캐플릭스의 성장을 눈여겨본 ‘야놀자’가 지분투자를 통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야놀자 측은 “캐플릭스가 보유한 국내 최대 중소형 렌터카 네트워크 및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이 야놀자의 여가 인벤토리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판단했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 투자 이후 제주패스 플랫폼에서도 야놀자의 숙박·항공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렌터카로 시작해 숙박, 항공, 카페 등을 다루는 종합 여행 플랫폼으로 성장한 캐플릭스. 하지만 윤 대표는 “여행 상품을 무조건 저렴하고 편리하게 제공하는 역할만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플랫폼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목표는 가격 지향 서비스가 아닌, 가치 지향 서비스라고 강조했다.“단순히 돈을 벌기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 제 관심사는 ‘제주’의 환경파괴예요. 여행자가 많아질수록 여행지는 각종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데, 제주도 상황도 마찬가지죠. 산과 바다가 오염되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도 많습니다. 여행 플랫폼을 통해 여행자를 불러모으는 나에게도 환경파괴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느낍니다. 각종 환경보호 캠페인을 열어 제주의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벌인 캠페인은 ‘텀블러 사용 캠페인’,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캠페인’ 등이다.하지만 항상 2%가 부족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좀 더 진정성 있고,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원했다는 윤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플랫폼 이용자, 즉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기부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하고자 하는 이용자가 대상입니다. 일반 회원이 아닌 ‘그린 앰버서더’ 등급으로 회원가입을 하면 상품 결제 후 받게 되는 마일리지의 1%를 자동으로 기부하게 돼요. 모든 기부는 고객의 이름으로 이뤄지며 기부처를 직접 선정할 수 있습니다.”기부처는 제주패스와 협약을 맺은 각종 생태·환경 단체들이다. ‘곶자왈 생태보존’, ‘유기동물 보호’, ‘긴꼬리딱새 보호’ 등 환경 관련 활동을 하는 곳들이다. 기부자에게는 국세청과 MOU를 맺어 전자 기부금 영수증도 지급한다. 윤 대표는 “그린 앰버서더를 통해 기부된 금액은 오픈 한 달 만에 1000만원을 넘어섰다”며 “이 활동을 제주를 넘어 괌, 사이판, 홋카이도, 하와이 등 섬 관광지를 대상으로 확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캐플릭스는 앞으로도 기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행자와 여행지가 ‘상생’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여행이 활성화돼 관광지가 여행자로 북적일 테죠. 여행자가 늘어날수록 환경이 깨끗해지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 J포럼은 - 2009년 국내 언론사에서 최초로 시작한 최고경영자과정이다. 시사와 미디어, 경제, 경영, 역사, 예술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좌와 역사탐방, 문화예술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한 J포럼은 매년 두 차례(봄·가을) 원우를 선발하여 진행된다. 그동안 졸업생 1100여 명을 배출해 국내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학습과 소통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문의·접수 중앙아카데미 J포럼사무국(02-2031-1018) http://ceo.joongang.co.kr-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