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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3) | 최두수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 

상생을 통해 가치를 만들다 

정소나 기자
정승우 유중문화재단 이사장이 세 번째로 만난 주인공은 최두수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이다. 수많은 전시 이력을 가진 작가이자 기획자, 대안 공간 대표, 예술의전당 자문위원이자 광주비엔날레의 전시팀장까지,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고 직거래하는 미술 장터인 유니온아트페어를 만들어 신진 작가 등용문이자 사관학교로 키워내며 청년 미술작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최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주]

최두수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은 도시에 버려진 물건들을 활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공간 콜라주’라는 독특한 설치 개념으로 잘 알려진 미술작가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는 오늘날의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값싼 공산물들을 아름답고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하거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지난 2016년, 그가 동료 작가와 함께 창설하고 이끌어온 ‘유니온아트페어’는 올해 7회째를 맞는다. 작가들에게는 중간 수수료 없이 미술작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을 뿐 아니라 작품 발표의 기회를 통해 전시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더해주고, 소비자들에게는 예술 작품을 손쉽게 구매하는 경험을 선사하며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미술 축제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의 전시팀장으로 합류해 작가와 미술관, 재단 간 협업을 통해 미술계의 상생을 도모 중이다.

다양한 전시와 기획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에 있는 첼시칼리지에서 순수미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1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에서 미국 출신의 동료 작가와 함께 기획한 [모텔프라다]로 작가로 데뷔한 후, 2002년 인사미술공간에서 국내외 작가 42명이 참여한 [The Show]를 기획했다. 이후 쌈지스페이스에서 [크고 밝은 노란 태양 아래], 런던 더 이코노미스트 플라자에서 [짧고 마법 같은 시간을 위한 사인] 등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일상의 연금술], 상하이 비즈아트센터에서 [양광찬란], 젠다이 미술관 개관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경기창작센터, 호주 IMA, 독일 Atelier Haus에서 주최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이층집을 개조해 만든 대안 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을 운영했고, 2016년부터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대안 공간 ‘스페이스 XX’를 운영하며 작가들의 미술 축제인 유니온아트페어를 기획하고 이끌었다. 작년 11월부터는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의 전시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미술계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미술관, 재단이 다 같이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장만 뜨거워져서도 안 되고, 미술관에서 공적인 전시만 해도 안 되고, 비엔날레가 큰 화두만 던지고 끝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오래 경험했으니 이제 비엔날레급 전시에도 도전하고 싶었다. 요즘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작품들이 잘 순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인터뷰를 하러 들른 이곳(유중아트센터)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고민이 풀린 것 같다. 애니시 커푸어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굉장히 실험적인 설치 작가의 대형 작품 중 일부를 컬렉션하고 있는 개인과 재단의 모습을 직접 보니 ‘아이렇게 순환이 되는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비엔날레급 작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시장 작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디에서든 인정받는 좋은 작가를 발굴해 전시를 기획하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해나가고 싶다.

문래창작촌이 된 문래동부터 유니온아트페어 개최 이후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성수동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일 것 같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기보다는 혜택이 없는 ‘유발자’에 가깝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가로수가 많던 시절에 전시 공간을 운영했고, 이태원을 거쳐 스페이스 XX가 있는 문래동까지 가는 곳마다 신기하게 3~4년이 지나면 소위 말하는 힙한 지역이 됐다. 이젠 주변 사람들이 내가 그다음에 어느 지역으로 갈지 궁금해할 정도다. 뉴욕, 런던, 파리와 서양의 대도시들과 중국 및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켜 나가는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모두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동네이지만, 상대적으로 발전이 덜 돼 임대료 등이 저렴한 편이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는 데 도움이 됐다.

삼성전자와의 협업이 큰 화제가 됐다.

인연이 좀 오래됐다. 2008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CES 전자쇼에 삼성전자 콘셉트 갤러리 섹션을 기획하며 인연을 맺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TOC TV제품이 처음으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을 때로 기억한다. 그 후에 삼성전자 40주년 특별전 전시와 여러 협업 프로젝트에서 TV 모니터를 캔버스로 활용해 작품과 기획을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더 프레임 TV 온라인 스토어에 유니온 아트페어 섹션을 만들어 한국 신진 작가들의 디지털 작품 이미지를 갤러리 모드에서 제공하고, 비스포크 냉장고 스크린에 ‘Taste of Seoul’이란 제목으로 동시대 한국 미술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기술력을 기반으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새로운 콘텐트를 시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도 함께 힘을 모아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신박한 실험들을 계속하고 싶다.

예술의전당 청년미술상점이 궁금하다.

2020년과 2021년에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년예술가들의 활동을 위한 예술 장터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미술협회와 민족미술인협회 관계자들과 예술 현장의 전문가들이 예술의전당 예술 장터 사업에 뜻을 모았다. 예술의전당에서는 그 취지를 살리고,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 한가람미술관의 1층 입구,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 청년 신진 작가들을 위한 전시·판매 공간을 제공했다. 작가들이 상점에 상주하며 자신의 작품을 직접 소개하고 판매하며, 관람객들은 매주 색다른 작가를 만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다. 청년미술상점을 운영하며 기존 미술시장에 진입하기 전 단계의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비영리에서 영리로의 전향 혹은 현실과 타협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전혀 아니다. 예술 분야가 영리와 비영리 공간 등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둘로 나누기도 어렵다. 예술 현장과 시장은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려 움직인다. 과학 분야가 연구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의 역할은 앞바퀴와 뒷바퀴를 연결하는 체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언덕이 나올 때도 있고, 가끔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도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중심을 잘 잡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장터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작가가 바로 상거래에 뛰어든 것에 대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의 미술시장 유통 구조는 1990년대 상황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작가와 화랑,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아트페어 구조로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다양한 창작 결과물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재능 있는 신진 청년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문턱이 너무 높고 좁다 보니 결국 작품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워 포기하게 되는 것을 보고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상거래’가 아니라 작가들이 협업하여 함께 전시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장터를 구상했다. 처음에는 갤러리나 딜러라는 전통적인 중간 유통 역할을 인위적으로 배제했다고 잠시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갤러리 및 유통 관계자, 기획자, 비평가분들이 먼저 찾아와 신진·청년 작가들의 작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전시를 위해 여러 작가를 영입도 많이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와 기회가 공유되어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보람을 느끼고 있다.

홍콩 크리스티에 한국 청년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되도록 기여했다.

2018년에 유니온아트페어를 방문한 홍콩 크리스티 측에서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 특별전 섹션을 제안해주셔서 성사됐다. 2018년 하반기에는 [Natural Selection]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작가 13명의 작품을 선보여 완판을 기록했다. 이후 2019년 상반기에는 [Vernacular Glance], 2019년 하반기에는 [Random Access Memory]라는 제목으로 한국 작가 섹션을 연속으로 기획했고, 작품의 95%가 판매되는 성과를 올렸다. 함께 참여했던 작가들은 좋은 기록을 가지고 창작과 전시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점점 더 성장해가고 있어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한번 여러 기관과 협력해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보려 한다.

최근 서울옥션과 협업을 진행했다.

유니온아트페어와 서울옥션이 지난 4월 20일부터 5월 6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오픈마켓형 경매 플랫폼인 ‘2022 BLACK LOT ART WEEK’ 협력 전시를 진행했다. 유니온아트페어 외에 갤러리2, 그래파이트온핑크, 디스위켄드룸 등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갤러리들도 함께 참여해 유통시장에서의 단계별 협업을 시도하면서 신진·청년 작가들의 작품이 안정된 가격을 형성할수 있도록 함께 노력 중이다.

얼마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 다녀왔다.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으로 일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을 베니스에서 기획하게 됐다. 한강 작가의 소설『소년이 온다』의 제6장 소제목인 [꽃 핀 쪽으로]를 전시 제목으로 내세워 민주화운동을 거쳐 밝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2022년 베를린 비엔날레 예술감독이자 작가인 카데르 아티아,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싱가포르 국가관 대표 작가인 호추니엔, 홍성담, 안창홍, 노순택, 배영환, 진 마이어슨, 최선, 박화연, 서다솜 등 국내외 작가 총 11명과 함께했다. [꽃 핀 쪽으로]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추어 Spazio Belendis 전시장에서 2022년 11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하여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관심이 베니스 현지에서도 매우 높았고, 소설의 원작자 한강 작가와 작가와의 대화도 진행하면서 ARTNEWS의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보아야 할 전시 10선’에 선정되었다. 또 Ocula Art magazine 하이라이트 리뷰에도 소개되는 등 베니스 현지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요즘 아트마켓은 무서울 정도로 뜨겁다.

그렇다. 이제 미술작품이 주목받는 시간이 다가왔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시장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소비만 이루어지는 시장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베니스 전시에서도 새롭게 느꼈지만 한국의 국력이나 인지도가 10년, 20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성장했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와 콘텐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시대와 시대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아 기록하고 저장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서의 시각예술과 그 상징적 기록들이 우리 문화의 성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에 걸맞은 가치로 인정받는 시간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 컬렉팅을 새로 시작하려는 잠재적 애호가들께 한 말씀 부탁한다.

아트 컬렉팅이란 작품과 함께 성장하고 기억을 간직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유행을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시작하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의 취향과 내면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작품을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외모가 아닌 내면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취향과 감각이 투영된 작품들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 결국에는 곧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를 찾는 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206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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