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평균율에 따른 세계화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세상에 대해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직접 여행을 가야만 들을 수 있는 오지의 노래를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들으니 신비감이 없어지는 것도 같다. 세상 모든 나라의 노래가 똑같아지는 바람에 더 그렇다.

▎중국인 주재육(朱載堉/Zhu Zaiyu 1536~1611)이 묘사한 평균율 피치파이프(Pitch Pipe)의 설계도 혹은 조감도. 피치파이프는 조악한 악기이기도 하고 악기 음의 조율을 돕는 장치이기도 하다. 명나라 왕자 주재육은 수학자, 물리학자, 안무가, 음악이론가였고, 세계 최초로 평균율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서양에서 평균율 아이디어가 처음 제시되기 1년 전인 1584년에 『악률전서』(樂律全書/ Complete Compendium of Music and Pitch)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아악(雅樂), 즉 궁정음악과 평균율에 관한 원형적 생각을 제시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SNS상에서 어떤 이가 요즘 노래와 다르고 신비해 좋다는 평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노래라며 동영상을 올려놓았다. 들어보니 고대 그리스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냥 요즘 음악이었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각하고 있다며, 퓨전 국악 동영상을 올려놓는 분도 있다. 들어보니 국악기라는 한국적 소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서양적이었다.

음악 활동의 기저에는 악기의 조율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조율이란 관점에서 보면 음악의 세계는 놀라우리만치 세계화됐다. 즉, 서양의 조율 원리가 전 세계에서 작동하고 있다. 시베리아나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서양의 조율 원리가 작동하며, 중세나 고대의 곡이라면서 연주되는 모든 시대의 음악에서도 사정은 같다. 우리는 중세나 고대의 곡을 듣지 못한다. 중세와 고대의 곡 분위기가 난다는 곡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서양의 조율 원리도 시대에 따라 몇 가지가 있었는데, 현재는 평균율(equal temperament)이 대세다. 근대 유럽의 수학적·과학적·음악적 고민의 총체라 할 수 있는 평균율은 음악 조율의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복잡한 일련의 과정으로서 나름의 합리성을 갖춘 조율 체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이 체계는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 퍼졌고, 사람들의 음악적 미감의 기본을 구성하고 제약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체계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조율(調律, tuning)의 첫 번째 과정에는 악기의 여러 음을 어떤 음을 기준으로 하여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기준이 되는 음을 표준음이라고 한다. 보통은 가온 라가 표준음이 되는데, 이 음의 주파수 값을 얼마로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조율의 첫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과거에는 이 표준음의 주파수 값과 그에 상응하는 음높이(pitch)가 나라마다 달랐다. 이 때문에 음악과 관련해 일종의 국가 간 분쟁(?)마저 있었다. 독일에서 유명한 어느 성악가가 어떤 가곡을 이탈리아에서 부를 때, 독일에서 부르던 것보다 더 높게 불러야만 한다면, 문제일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어떤 협주곡을 화려하게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프랑스에서는 더 낮은 음에 맞추어 연주해야 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음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온 라를 포함한 근대적 음계를 가진 나라에서 표준음인 가온 라의 주파수 값을 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날 가온 라의 음은 440㎐ 값으로 조율된다. ㎐는 주파수 값의 단위다. 헤르츠(Heinrich R. Hertz)라는 독일 물리학자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이 단위가 사용된다. 1㎐는 1초에 한 번이라는 의미다. 시계의 초침은 1㎐로 똑딱거리며 움직인다. 440㎐는 1초에 주기적 진동이 440번 있다는 의미다. 무엇이 진동한다는 건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파장이 주기적으로 진동한다. 1초에 440번 주기적 진동이 있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떤 음으로 듣게 된다. 그 어떤 음을 언제부턴가 가온 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음정은 주파수 값의 차이로 표현


▎이 악보의 첫 음인 ‘도’와 둘째 마디 ‘도’는 옥타브의 간격을 두고 제시된, 유사하거나 같다고 여겨지는 음들이다. 이 두 음 중 하나만 고려된다면, 위 악보에 제시된 서로 다른 음은 총 12개가 된다. 이 음들에서 인접한 두 음의 음정 간격이 같다면 위 음계는 평균율로 조율된 것이다.
오늘날, 440㎐의 가온 라를 표준음이라 하는데, 영어로는 ‘lnternational pitch, Concert pitch, Stuttgart pitch’ 등으로 부른다. ‘Stuttgart pitch’라고 불리는 이유는 1939년 독일 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렸던 국제회의에서 가온 라의 주파수를 440㎐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French pitch, diapason normal’이라고 해서, 프랑스식 표준음이 아직도 통용되는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있는데, 이 표준음의 값은 좀 더 낮은 435㎐이다. 슈투트가르트 표준음과 프랑스 표준음은 바흐와 하이든 시대의 조율과 달랐다. 당시 가온 라의 주파수는 지금보다 낮았고, 19세기 후반에는 440㎐보다 더 높아졌다. 여러 나라가 표준음의 주파수 값을 경쟁적으로 높여나갔다. 표준음이 높아지면서 음악은 더 화려해졌다. 슈투트가르트 표준음은 말하자면 이러한 화려함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제동일 수 있었다.

가온 라를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나라마다 다른 표기법을 따르던 개성 혹은 혼란의 시대가 갔고, 오늘날은 모두가 이 음을 ‘A4’라고 부른다. 이렇게 국제적 정의를 내리는 기관이 ‘국제표준화기구(ISO: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다. 주로 산업 부문에서 국제별 표준을 정하는 이 기구가 음악과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언급했던 1939년의 슈투트가르트 합의도 이 기구에서 1975년에 재확인됐다.

(‘에이 포’로 읽는) A4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음은 A3이다. 이 음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음은 A2이며, A4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은 A5이다. 이런 식으로 A에 0부터 자연수가 붙는다. B, C, D 등과 같이 다른 알파벳으로 표기되는 음들도 이와 같은 방식을 따른다. A4가 440㎐의 주파수 값을 갖는 것으로 정해지면, A3는 자동으로 220㎐가 된다. A4보다 한 옥타브 낮은 A3의 주파수 값은 A4 값의 반이며, A4의 주파수 값은 A3 주파수 값의 두 배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수학적 관계가 음악적 아름다움의 기저에 존재한다. 같은 방식으로 A2, A1, A0의 주파수 값은 각각 110㎐, 55㎐, 27.5㎐이다. A5는 880㎐의 값을 가지며, A6는 1760㎐의 값을 갖는다.

A0가 27.5㎐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음은 피아노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건반이다. 인간에게는 자기 귀와 뇌 속 청각피질로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대역이 있다. 대략 20~2만㎐ 사이의 음을 듣는다. 2만㎐보다 높은 음을 음으로 듣지 못하며, 20㎐보다 낮은 음을 음으로 듣지 못한다. 음으로 듣지 못한다는 말은 그런 음이 연주되었을 때, 뭔가 소리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소리를 음고(pitch)로 지각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면 2만㎐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음에 해당하는 음들을 듣지 못할 수 있다. 피아노의 가장 아래 건반이 내는 음의 주파수 값이 27.5㎐인 것은 인간의 가청주파수대역을 고려한 조치일 수 있다.

조율의 두 번째 문제는 가온 라(A4)와 인접한 솔(G4), 파(F4), 미(E4) 같은 음의 주파수 값을 어떻게 정할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 이후 많은 사람이 저마다 조율 방식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피타고라스 시대의 음악이나 중세의 음악은 평균율로 조율된 오늘날의 음악과 매우 달랐다. 피타고라스와 동시대의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도 음악은 피타고라스 시대의 그리스 음악과 달랐다.

가온 라(A4)와 인접한 솔, 파, 미 등 한 옥타브 내 여러 음의 주파수 값을 정하기 위해 평균율 주창자들은 아주 간단하여 편의주의적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한 옥타브 안에는 서로 다른 12개 음이 존재해야 했다. 여기서부터 근대의 유럽 음악은 다른 지역의 음악과 달라진다. 다른 지역에서는 12개보다 대체로 적은 수의 음으로 음악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평균율 주창자들은 이 12개 음 중에서 인접한 두 음 사이의 간격을 모두 같은 크기로 정했다. 서로 다른 두 음 사이의 간격을 음정이라고 한다. 이 간격은 주파수 값의 차이로 표현된다.


1946년 런던에 모인 국제표준화기구(ISO: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창립 멤버들. 국제표준화기구에는 대한민국과 북한 등 세계 164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이 기구는 여러 기술 관련 국제표준을 정하는 일을 함으로써, 기술적 민족주의(technical nationalism)를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균율은 조율이라는 기술인데, 만약 여러 나라에서 서로 다른 조율에 따라 음악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상황이 매우 복잡할 것이다. 오늘날 BTS 등 K-Pop이 세계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데는 평균율이라는 보편적 토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도와 올림 도(도#) 사이의 간격, 올림 도(도#)와 레 사이의 간격, 레와 올림 레(레#) 사이의 간격을 반음이라고 부른다. 도와 레 사이의 음정 간격을 온음, 즉 온전한 하나의 음정이라고 하는데, 이 두 음 사이에 존재하는 올림 도(도#)는 이 두 음 사이를 정확히 둘로 나눈 것이니, 반이 된다.

가온 라(A4)의 주파수 값이 440㎐라면, 가온 라보다 한 옥타브 낮은 라(A3)는 220㎐이고, 가온 라보다 한 옥타브 높은 라(A5)는 880㎐의 값을 갖는다고 했다. 이 경우, A4와 A3의 간격은 220인데 반해, A4와 A5의 간격은 440이다. 220의 값을 12로 나누면(한 옥타브의 서로 다른 음의 수가 12이고, 그 간격의 수도 12이다) 18.3333…이다. 반면에 440의 값을 12로 나누면 36.6666…이 된다. 그러니까 A4와 A3 사이에 있는 음들은 18.3333…의 음정 간격의 값들로 결정되고, A4와 A5 사이에 있는 음들은 36.6666…의 음정 간격의 값들로 결정된다. 즉, 고음역일수록 바로 인접한 반음 간의 음정 값이 커지고, 저음역일수록 바로 인접한 반음 간의 음정 값은 작아진다. 이처럼 주파수의 세계, 즉 수학적·물리적 세계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학자들도 모른다.

서양 악기 중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들은 평균율로 조율된다. 피아노는 피아니스트가 그 앞에 앉기 전에 조율사가 평균율로 조율해놓아야 한다. 피아노에서 어떤 건반을 누르는 행위는 이미 결정된 주파수 값을 소환하는 일이다. 현악기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일단 악기에 부착된 현의 굵기와 대강의 길이만 미리 결정된다. 연주가는 주어진 현악기 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거나 느슨하게 풀어서, 즉 장력(tension)을 조절한다. 바이올린에는 현 4개가 있고, 각 현은 솔, 레, 라, 미의 음들을 내도록 조율되어야 하는데, 이 일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직접 한다. 그는 그렇게 조율된 현 위에서 피아니스트가 쉽게 내는 평균율상의 음을 연주해야만 한다.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의 경우 연주하는 순간순간이 곧 조율의 순간이다. 성악, 관악도 마찬가지며 일부 타악기도 그러하다. 피아니스트는 음정을 틀리려야 틀릴 수 없다. 그는 악보가 지정한 음과 다른 음을 누름으로써 실수한다. 예를 들어, 악보에는 도를 연주하도록 적혀 있는데 올림 도(도#) 건반을 누르면 틀린다. 바이올린 연주자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올린 연주자는 피아니스트가 하지 못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악보에는 도를 연주하도록 적혀 있는데, 도와 올림 도(도#) 사이의 어떤 음을 내서 틀린다. 이 어떤 음은 평균율 밖의 음이다. 이런 실수를 피하려면 현악기 연주자들은 평균율이 요구하는 음들을 내면화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성패를 가른다. 그들 만큼은 아니지만, 전 세계 거의 모든 음악 감상자도 평균율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했다. 자유로워 보이며 영혼이 깃든 듯한 연주는 평균율이라는 수학적 체계에 기초한다. 그 연주를 듣고 감동하는 행위의 기저에도 같은 체계가 작동한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206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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