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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31) 나오시마,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힐링 여행 

 


▎이우환 작가의 ‘기둥의 광장’에 콘크리트 기둥이 높이 솟아 있다. 옆에는 붉은색 자연석 바위와 철판이 놓여 있어 산업사회와 자연과의 대응 관계를 보여준다.
잔잔한 바다를 건너 멀리 떨어진 조용한 섬에 예술을 테마로 하여 특이하게 조성된 곳, 일본의 나오시마를 찾아 몸과 마음을 위한 힐링에 나섰다. 배를 타려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조그만 공원이 있어서 잠시 짬을 내둘러보았다. 빨간 바탕에 크고 작은 검은색 점이 촘촘하게 박힌 대형 호박 조형물이 단박에 시선을 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호박 안에 들어가 밖을 내다본다. 볼수록 재미있게 설계된 조형물이다.

호박 안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따라가며 나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점박이 호박 안에 들어가서 뚫어진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빨간 호박 위의 점이 된 증명사진(?)을 한 장 찍었다. 조용한 바다를 가로질러 나오시마섬에 도착해 바닷가 모래사장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선착장처럼 보이는 곳에 또 다른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 작품이 설치돼 있다. 역시나 노란 바탕에 크고 작은 검은색 점이 박힌 호박 조형물이다. 해변과 바다, 바다 건너 멀리 보이는 산들을 배경으로 노란빛을 발하며 앉아 있는 듯 검은 점박이 노란 호박이 자리를 차지한다. 점박이 호박은 왜 비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앉아 있을까?

쿠사마 야요이는 48세부터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병원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열어 작품 활동을 해왔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93세 쿠사마 야요이 할머니. 그의 스튜디오가 곧 자신의 분신이 되어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상상은 오래전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그녀의 전시회에서 꽤나 많고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부터 벽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색상의 크고 작은 점을 장식해서 다른 전시회와는 확실히 차별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전시장에는 사람 키만큼 커다란 빨간 공에 다양한 크기의 흰 점을 입혔고, 다른 방에는 무척이나 큰 하얀 점이 박힌 빨간 공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작품을 설치해놓았다. 또 다른 곳엔 천장과 사방의 벽, 바닥에 노랑·빨강·초록 등 다양한 색상의 크고 작은 점으로 뒤덮어 어린 시절 동화에서 보았던, 피터 팬이 날아다니던 꿈속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또 거울을 통해 빨간 바탕에 흰 점과 버섯 같은 물체가 계속 증식되는 작품도 있었다.

전시실 천장과 벽, 바닥 모두 노란색 바탕에 크고 작은 검은색 점이 장식되어 있고, 쿠사마 야요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노란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대형 호박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노란색과 검은색만으로 특이한 입체감을 준다는 것이 보는 내내 놀라웠다. 가장 독특했던 작품은 몇 사람씩 기다려서 입장하도록 특별히 설치된 어두운 방에 전시돼 있었다. 수많은 형태의 점과 빛의 움직임을 보면서 은하계를 유영하며 수많은 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오시마 바닷가에 홀로 설치된 검은 점박이 노란 호박을 보며 예술의전당에서 보았던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이 연상된 까닭이다.

쿠사마 야요이부터 이우환까지


▎모네 예술 작품의 주요 대상이었던 프랑스 지베르니의 집에 있는 꽃밭을 나오시마에 옮겨 놓은 듯한 ‘지중정원’.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정신세계에서만 그려낼 수 있는 환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며 우리네 인생과 사회생활, 세상살이의 몽환적인 느낌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일본의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1929. 3. 22.~)는 일본 나가노현에서 출생했고, 1957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1977년 일본으로 돌아와선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타이페이 비엔날레 등 다수의 대형 국제전시를 비롯해 단체전 100여 회, 개인전 100여 회를 개최했다.

나오시마섬 남쪽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하에 독특하게 설계한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 art museum in the earth)이 있는데, 2004년 7월에 공개되었다. 후쿠타케재단이 운영하는 이 미술관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기’ 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이 지역에서 관광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예술 관련 사이트 중 하나다. 지하에 설치한 미술관이지만 자연채광을 이용해 여러 전시물을 조명하도록 디자인했다. 하루 종일 각기 다른 관람 시점에 모양을 변경하면서, 건물 자체가 전시된 예술 작품의 영역에 포함되도록 설계됐다. 노출 콘크리트를 주로 이용한 구조로,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에서부터 콘크리트 수직 벽을 지나면서 어두운 공간과 밝은 공간이 반복된다.

이 지중미술관에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등의 작품도 영구 전시하고 있다.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1943~)의 전시관에 들어서면 통상적인 미술관 관람을 초월하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환상적인 분위기라고 할까,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빛과 공간에서 환영을 느끼게 된다. 무엇인가 뚜렷한 느낌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얻는다. 고전(古典) 『장자(莊子)』를 공부할 때 ‘호접몽(胡蝶夢)’ 대목에서 모호하고 이해가 잘 안 되면서 혼란스러웠던 느낌과 유사한 경험이다.

호접몽에서는 “나비로서 팔랑팔랑 춤추며 날고 있다가 깨어났지만, 과연 자신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자신은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인가”라며 혼돈에 빠진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에서도 특이한 조명과 빛의 조화 속에 서서 이곳이 현실 세계인지 꿈속인지 몽롱하여 이해가 되는 듯 안 되는 듯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강원도에도 안도 다가오가 건축을 총괄한 ‘뮤지엄 산’에 제임스 터렐관이 있어서 ‘빛’을 주제로 한 예술 세계에서 명상과 사색을 경험할 수 있다.


▎나오시마섬의 해변.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 작품인 검은색 점박이 호박이 바다와 산을 바라보며 외롭게(?) 앉아 있다.
제임스 터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으며 빛과 우주주의적인 예술가로 꼽힌다. 그의 시각예술은 빛을 주체로 차별화된 예술적 특징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련’으로 유명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대형 작품을 감상한 후에 티켓센터와 미술관 본관 사이에 자리한 ‘지중정원’을 산책했다. 모네 작품의 주요 대상이었던 프랑스 지베르니의 집에 있는 꽃밭을 나오시마에 옮겨 놓은 듯한 지중정원은 약 400㎡ 규모다. 모네 작품에 등장했거나 그가 평생 수집한 식물 150여 종과 나무 40종, 꽃 200여 종이 있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 조용히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모네 작품을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작은 연못과 연못 주위의 수선화들, 그 위에 떠 있는 수련을 멍하니 바라본다. 스스로 자연 속의 조그만 한 부분이 되어보기도 하고, ‘수련’ 작품 속 한 점 잎이 되어보기도 한다. 자연 속에 재현한 지중정원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을 앓으면서도 250개에 달하는 수련 작품을 남겼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이 지난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리고 있어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과 일본의 미래


▎바다가 보이는 풍광과 좌우를 감싸는 나무 숲속 사이의 고요한 풀밭에 ‘인공적’ 생산물인 철판과 바위라는 ‘자연물’을 대비해놓았다.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풍광이다.
조각가이자 화가인 이우환(李禹煥, 1936. 6. 24.~)의 미술관도 나오시마에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어서 자못 놀랐다. 외부의 자연과 어우러진 그의 작품과 미술관 내부의 작품들이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만나 멋진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멀리 탁 트인 바다 풍광과 좌우를 감싸는 나무 숲속 사이로 아주 넓게 단장된 풀밭이 조성되어 있고, 그 위에 바위와 철판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기둥의 광장(柱の 廣場, Pole Place)’에는 높은 콘크리트 기둥이 평탄한 광장 바닥 위로 높이 솟아 있다. 바닥 옆에는 붉은색 자연석 바위와 철판이 놓여 있고 옆으로는 콘크리트 평면 벽이 막아 섰다. 주변은 나지막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우환의 ‘관계항’ 연작은 주로 산업사회와 자연의 대응 관계를 보여준다. 철판이나 철봉 또는 유리판 등은 문명사회의 ‘인공적’ 생산물이다. 거기에 바위라는 자연물을 대비함으로써 새로운 은유적 효과를 거두게 된다.

나오시마에 다녀온 후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인 이우환 공간을 찾아가보았다. 이곳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이우환의 ‘관계항-좁은 문’은 개관 당시 이우환 공간 1층에 영구 설치돼 부산시립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우환은 모든 문제가 ‘자연’과 ‘산업사회’로 연결된다고 생각했고 ‘자연’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로 오래된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는 자연석을 선택했다. 돌 안의 요소를 추출하여 용광로에 넣어 녹여서 규격화한 것이 ‘철판’으로,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소재로 선택해 사용했다.

이우환은 1936년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1967년 도쿄 사토 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는 이 전시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에 나섰다. 그가 1960년대 후반 주도한 ‘모노하(もの派) 운동’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물질(모노, 物)을 직접적인 예술 언어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베르사유 궁전 등 전 세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이우환 화백이 프랑스의 명품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라벨 작가로 선택된 것도 재미있다. 로칠드 가문이 소유한 샤토 무통 로칠드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 특급 5대 와이너리 중 하나다. 이 와이너리는 1945년부터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앤디 워홀 등 세계적 거장들에게 라벨 디자인을 의뢰해왔다. 한국인으로는 이우환이 처음 참여했다. 굵은 붓으로 한 번에 그린 듯한 그의 2013년 무통 로칠드 와인 라벨 작품은 짙은 레드와인 컬러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리적으로 무척이나 가까운 나라다. 나오시마에 다녀온 뒤에는 문화적으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느꼈다. 쿠사마 야요이의 점박이 호박은 나오시마에 앉아 지역을 대표하는가 하면,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회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으로 실현됐고, 한국에서도 강원도 ‘뮤지엄 산’ 등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또 일본에 이우환 작가의 나오시마 미술관이 있다면, 동시에 부산에도 이우환 미술관이 있다. 그러니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두 나라 과거사에 대한 국민 정서 면에서 보면 여전히 무척이나 먼 나라가 일본이다.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해법은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유명 대학의 총장을 지낸 교수님이 젊은 시절에 일본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해서 들려준 이야기가 귓가를 맴돈다. “일본에는 한국만 연구하는 연구소가 100곳이 넘지만, 우리나라에는 일본만 연구하는 연구소가 몇 안 돼요.”

지리적으로 가깝고 국경을 함께하는 일본과는 가깝든 멀든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정치경제적인 미래 관계에서 각 분야 리더들이 훌륭한 외교력과 국제 협상력으로 성공적인 관계를 맺게 하길 기대한다. 국민 차원에서는 세계에서 환영받는 K문화를 바탕으로 민간 외교를 펼쳐 윈윈 관계를 형성해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백악관에 초대받은 BTS의 K팝, 칸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K무비를 비롯해 K드라마, K푸드, K웹툰, K비유티(화장품), K콘텐트, K프로게이머 등 글로벌 무대에서 각광받는 우리 문화를 통해서 한일 관계도 윈윈하는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가까이 면한 이웃 나라로서 말이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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