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스타트업 창업 4년 만에 예상보다 빨리 M&A(인수합병) 제안을 받았다.
시리즈B 펀딩이 마무리된 지 반년이 채 안 되어서 인수합병 제안을 받았다. ‘스타트업의 겨울’이라고 표현하는 좋지 않은 현재 시장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제시받은 기업가치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합병 뒤 두 회사가 미래 모빌리티를 주제로 그려갈 재밌는 그림도 떠올랐다. 솔직히, 간만에 설레는 기회였다.

김칫국을 제대로 한 사발 들이켜고는 우선 어디에 집을 사야 할지부터 고민했다. 9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아내도 같이 신난 눈치였다. 하루에도 여러 번 유튜브를 통해 랜선 집들이를 해보았고, 그렇게 마음속에서 기와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30대 초중반에 이 정도면 대성공이지!’라는 생각에 어깨가 들썩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성공의 맛을 간접 체험한 진정한 메타버스였다.

얼추 나의 삶에 대한 계산이 끝나고 나니, 회사 식구들에게도 어떤 보답을 줄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했다. 6개월 전, 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임직원들과 앉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도 이제부터 끝이 있는 달리기를 해보자고.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해보자는 소리였다. 수익 모델이 확실하지 않았던 우리 회사는 지금 궤도에 오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이 회사를 위해 청춘을 다 바친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인수합병 제안은 우리 눈에 보이는 첫 번째 성공 사례이기도 했다.

열심히, 너무 빨리 달리다 보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이 많다. 하루하루가 전투인 스타트업들은 자신의 조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 이번 제안을 통해 4년 만에 처음으로 내 삶에 대해, 우리 회사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의 꿈들에 대해, 우리를 항상 응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주주분들에 대해, 또 우리 회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신 타 기업의 니즈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꿈을 꾸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준다면 뭐라도 조금 더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내 꿈은 이룰 수 있어도, 내 주변에 있는 모두의 꿈을 다 이루어주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STOP or GO. 매 순간 우리는 회사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결정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미래 어느 시점에 이번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조금 더 달려보기로 했다. 우리 회사의 모두가 함께 그려가는 미래가 매우 기대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결정을 하고 있을 모든 분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 여인택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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