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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를 빨리 정해야 하는 이유 

 

최근 국세청이 나서서 가업승계 컨설팅을 하겠다고 한다. 과세 당국까지 발 벗고 이 문제에 뛰어든 이유는 한국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이 당면한 고령화 때문이다. 90세가 넘은 김씨 사례를 들어 하루라도 빨리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 이유를 소개한다.

최근 국세청이 가업승계에 따른 세무 컨설팅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가업승계를 계획하고 있거나 이미 진행 중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사전준비사항부터 사후관리조건 이행을 위한 유의사항 등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과세 당국이 직접 나설 정도로 한국의 기업승계 현실은 꽤 문제가 많다.

창업주의 고령화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 전체 기업의 99.9%와 고용의 82.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승계 문제는 해결이 더 요원하다. 한국 경제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은 생존에 급급해 승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승계를 대기업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대기업은 수천, 수만 개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고 서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중소·중견기업 중에는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도 많아 가업승계는 한국 산업의 근간을 지키는 일로 보고 깊이 있게 논의되어야 한다.

일본만 하더라도 1000년 넘게 이어온 기업은 20개 이상이고, 100년이 넘은 기업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100년 기업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나서 기업들이 원활하게 승계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세제 측면에서 많은 논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기업승계가 후계자 선정을 둘러싸고 가족 간 상속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물게 된다.

최근 상담한 김길수씨(가명, 91) 사례가 기억난다. 1.4 후퇴 때 가족들을 뒤로한 채, 어린 동생 둘만 데리고 먼저 남으로 내려온 김씨는 자신이 세운 기업을 누구에게 넘겨줘야 할지 고민이다. 온갖 고생을 하며 달려온 끝에 인쇄업을 시작해 사업을 키우고, 여기저기 크고 작은 부동산을 마련해 상당한 부를 일궜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회사는 이제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을 둔 장남으로서 앞뒤 가리지 않고 일만 해온 덕분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고민을 하나씩 털어놨다. 첫째는 명의 신탁 문제였다. 김씨는 자신이 100% 출자해 기업을 키워왔지만, 주식 일부는 늘 형과 함께했던 동생 명의로 해두었다. 몸이 약했던 동생은 7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동생에게 명의신탁했던 주식의 상속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동생의 배우자와 조카 3명에게 상속으로 주식과 부동산 등이 이전되었다. 조카들을 불러 추가로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거절이었다.

자녀 중 후계자를 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연구원 생활을 하는 학자 타입의 장남보다 활달한 차남이 곧잘 회사 일을 챙겼다. 사업가로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차남은 독일로 유학을 가 현지 여성과 결혼해버렸다. 다행히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자신의 기대치가 너무 큰 탓인지 둘째 아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고부갈등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경기악화로 사업은 위기를 맞았고, 김씨는 승계를 미룬 채 자신이 다시금 키를 잡아야 했다. 그사이 차남은 독일로 떠났고, 앞으로 한국에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사업이 안정화에 접어들자 장남을 설득했다. 대부분의 주식을 사후에 장남에게 넘겨주면 장남이 사업을 이어가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마음먹은 김씨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기술개발과 글로벌 장학사업도 벌이고 있다.

그래도 고민이 있다. 장남이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도 김씨는 장남이 못 미더워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직접 관여한다. 그러는 사이 장남은 70세가 넘은 노인이 됐고, 회사 주식의 대부분도 김씨가 갖고 있다. 장남과 손자가 보유한 주식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여러 가업승계 전문업체를 찾아 가업상속공제제도와 사전증여특례제도 등 많은 조언을 받았고, 사후관리 요건이 엄격하여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 시 공제 혜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김씨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만, 연구원 출신의 장남이 바라보는 전략적 관점은 공유하지 못했다. 그렇게 장남은 부친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통계와 데이터를 중시하는 장남의 고민은 커져만 갔다. 원활한 기업승계와 새로운 변화에 대비한 대응은 물론이고 고령의 부친 사후에 닥칠 상속 문제도 솔루션이 필요해진 것이다.

김씨가 원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는 “기업은 한국에 있는 장남에게 명확히 이전해주고 싶고, 개인이 보유한 재산 중 절반은 독일에 있는 손주들을 위해 남겨주고 싶다”며 “70살에 가까운 장남에게 모든 주식을 이전할 경우 과도한 상속세 부담만 안겨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많은 기업의 오너가 김씨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 명의신탁 주식을 환원하는 논의도 당장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명의신탁 주식 보유자가 사망하거나 이혼, 치매 등 여러 상황 때문에 명의신탁을 해지하기도 전에 주식이 재산분할되거나 상속 등으로 이전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명의신탁 주식을 환원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실질적인 주주가 명부상 명의인을 상대로 주주권확인청구 또는 주권인도청구 등을 제기할 수 있다. 기업가치 평가를 통해 주식을 증여하는 방법과 실제 양수도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또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명의신탁 주식에 대한 실제 소유자 확인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그 외에 이러한 모든 방안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 등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신탁제도, 특히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할 수 있다.

김씨가 보유한 재산 중 가장 큰 비중은 물론 주식이다. 만약 아무런 뜻을 남기지 않은 채 사망한다면 70세 전후의 아들들이 상속인이 될 것이다. 그 아들들은 거액의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고 만약 또 제대로 협의분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당사자와 그다음 세대 간에 갈등의 골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김씨의 경우 기업은 장남에게 승계하되, 개인재산에 대한 분할계획, 상속세 납세재원에 대한 배려, 상속세 납부를 위한 공동관리 등에 대한 설계가 필요했다. 유류분 주장 가능성과 재산별 관리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고, 자신의 주식을 신탁으로 이전하여 유고 시 장남에게 이전하도록 설정했다. 또 개인자산 중 일부는 해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자녀들에게 주되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한국에서 관리하다가 이전하는 등의 솔루션을 제안했다.

-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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