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4) 

어포던스 행동을 유도하는 전달된 메시지 

표정, 끄덕거림, 웃음, 어깨 움직임, 눈빛 등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심리적 기표들이다. 기표를 보내는 사람은 특정 행동을 유발하려는 시도를 한다.

▎줄스 다비드 [선과 악: 고통] 19세기
‘어포던스(affordance)’는 미국의 지각 심리학자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1977년 처음 사용한 용어다. 특정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외면적 속성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즉, 대상이 지닌 어포던스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당히 낮은 상자는 그 위에 앉거나 그 위에 올라가는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대상이 여러 가지 행동이 아니라 특정 행동을 유발한다면, 이것은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이 언급한 ‘지각된 어포던스(percieved affordance)’가 된다. 의자로 디자인된 물체는 사람이 앉는 어포던스를 유발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그 위를 딛고 서 있다면 잘못된 어포던스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타자기 자판은 튀어나와 있어서 누르게 되고, 콘센트 구멍을 보면 이곳에 넣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숟가락은 음식을 담아 먹는 어포던스가 있어 동서양에서 비슷하게 디자인되었다. 대상에 담긴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되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어포던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건이 태생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어포던스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처음 사용되었지만 그 개념은 1920년대 게슈탈트 심리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심리학자 쿠르트 코프카(Kurt Koffka)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원리』에서 인간이 사물을 보았을 때 그 가치나 의미가 마치 색상을 보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지각된다고 설명하며, 사물에는 ‘행동을 요구하는 성질’이 있다고 서술했다. 예를 들어 과일은 ‘먹는다’는 행동을, 물은 ‘마신다’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만 레이 [선물] 1921
지각된 어포던스는 개인의 경험이 바탕이 되며, 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험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정보의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유명한 예로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의 DC-6 여객기를 이용한 승객들은 에어컨 구멍을 보고 우체통 구멍을 떠올려 에어컨 구멍에 편지를 집어넣기도 했고, TWA항공사를 이용한 일부 승객은 좌석 머리 위의 화물칸을 보고 아기를 넣는 요람을 연상해 화물칸에 아기를 넣어두기도 했다. 익숙하고 경험된 것과 유사한 연상 때문에 대상의 어포던스를 잘못 해석한 사례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사물의 어포던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미국 작가 만 레이가 만든 작품 [선물]은 평평하여 바닥에 문질러야 할 어포던스를 가진 다리미의 바닥에 못이 부착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물건을 보는 순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럽다. 그러나 일상생활 중에는 다리미가 평평한 면에 놓아 문지르는 어포던스를 가지고 있다고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

어포던스는 너무나 익숙하거나 이미 학습되어버려 인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들은 일부러 어포던스를 거스르는 작업들을 시도했다. 관객들은 이런 작품을 보는 순간 사물의 낯섬을 느끼는데,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 낯설게 하기)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것들을 원래의 사용법대로 쓰지 못할 때 사물 안에 존재했던 어포던스가 부각된다.

비언어적 어포던스

어포던스는 유기체와 사물 혹은 유기체와 환경 간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왔지만, 유기체와 유기체 사이에도 어포던스는 존재한다. 특히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행동을 직접적으로 유도하기도 하지만, 실제 의사소통 영역에서는 비언어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UCLA 심리학 교수 메라비언은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서 받는 이미지는 시각적 요소 55%, 청각적 요소 38%, 언어적 요소 7%라고 했다.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통해 행동이 유도되는 데는 비언어적 요소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즉, 대부분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 요소로 상대의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바닷가재의 경우 경쟁에서 진 바닷가재와 이긴 바닷가재는 세로토닌 분비량에서 차이를 보인다. 승리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늘면서 몸을 쭉 펴고 더 커 보이기에 다른 바닷가재가 더는 덤비지 않는다. 당당한 포즈를 취한 비언어적 어포던스를 통해 다른 바닷가재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행동을 유도한 것이다.

한 영화에서 교내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을 주도한 아이에게 교사가 ‘왜 친구를 괴롭혔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때 주도자는 “얘가 괴롭히고 싶게 생겼다”고 대답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내용이지만 이때 폭력의 주도자는 피해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포던스가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비언어적 어포던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주관적 세계를 인지하여 상대방의 가치형성과정과 작동방식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화날 때마다 짓는 표정이 있다면 그것을 학습한 자녀는 아버지의 화난 표정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멈추거나 수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 [선과 악: 고통]은 주로 도덕주의적 주제로 작업한 프랑스 화가 줄스 다비드(Jules David)의 시리즈 작업 중 하나이다. 화가 난 아버지가 팔을 들어 올리자 어머니는 딸을 안아 반대편으로 돌려 아이를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보호하고 있고, 아이는 자동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해 따듯한 경험을 한 아이는 손을 들어 올리는 남자에게 손을 뻗어 하이파이브를 할지도 모른다. 과거 비행기 승객들이 에어컨 구멍에 편지를 넣은 것처럼 경험에 따라 대상에서 읽어낼 수 있는 어포던스도 달라진다.

기표의 설득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의 초상] 1702
핸드폰 화면은 좌우로 넘길 수도 있고, 위아래로 넘길 수도 있으며, 특정 부분을 터치할 수도 있다. 이것이 핸드폰 화면이 가진 어포던스이다. 그러나 이 어포던스를 더 잘 설명하는 기표를 사용한다면 사용자는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좌우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기표로 넣는다면 사용자가 좌우로 화면을 넘기는 행동을 더 잘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인위적인 기표를 사용하여 행동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닌 곳에는 자연스럽게 길이 생겨 그곳으로 가는 행동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한 개인을 대하는 태도는 무수히 많지만 적절한 기표를 사용한다면 행동은 압축될 수 있다.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작품 [루이 14세의 초상]을 실제로 본 일반인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판단이 내려지고 그 대상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인간은 그때그때 다른 행동을 한다. 그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기표(signifier)이다.

팔짱을 낀 팔, 등받이에 기댄 등, 바깥쪽으로 향한 발 등은 ‘관심이 없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더 좋은 제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 읽어낸 상대방은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할 것이다. 색이 전달하는 메시지도 있다. 어두운 파란색 정장은 신뢰할 수 있는 이미지를 주지만, 갈색 정장은 수수하면서 스케일이 크지 않다는 이미지를 주어 큰일을 하지 못한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심리적 기표 들여다보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517
표정, 끄덕거림, 웃음, 어깨 움직임, 눈빛 등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심리적 기표들이다. 기표를 보내는 사람은 특정 행동을 유발하려는 시도를 한다. ‘내가 공감하고 있고 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네 마음을 더 이야기해줘’, 혹은 ‘당신의 이야기는 지금 분위기에 맞지 않으니 그만 입을 다물어줘’ 등 다양한 행동을 유발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알쏭달쏭한 미소로 사람들에게 신비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다빈치가 명암을 안개처럼 뭉개어 표현한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눈가와 입가를 애매하게 표현하여 웃는 것인지 무표정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이 말은 결국 인간의 표정을 읽는 데 눈과 입의 사용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의사소통에서 55%에 해당하는 시각적·비언어적 요소들이 기표로 작용하여 특정 행동을 지시하지 않아도 그 행동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눈은 특히 이런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진화해왔다. 다른 유인원과 달리 인간은 눈에 흰자가 많으며, 흰자와 검은자는 눈빛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은 독재자들은 눈을 가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선글라스를 써서 눈을 노출하지 않기도 한다.

설득을 하거나 대화할 때 상대의 비언어적 요소를 관찰하고, 상대에게 다시 나의 기표들을 보여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대화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비대면 미팅도 많아지고 화면상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텍스트만으로도 모든 내용이 전달될 수 있는데도 서로의 얼굴을 보려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비언어적 기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 마주침, 상대를 향한 끄덕거림과 몸의 기울기와 방향 등 다양한 몸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설득의 부스터도 없을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12호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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