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오보에 연주자,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한 이력의 셰프,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교육자, 문화예술 콘텐트를 브랜딩하고 개발하는 스타트업의 대표까지. 넘치는 열정과 다양한 경력을 균형 있게 버무려 한국 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선봉에 섰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주인공은 먹고, 마시고, 노는 축제를 통해 한국 예술을 해외에 알리고 있는 박예든 KIP 대표다.
“오래전에 인연을 맺었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정승우 이사장이 감탄 섞인 어조로 박예든 대표를 소개했다.박 대표는 한국 문화 IP(지식재산) 기반 문화예술 콘텐트 브랜딩 및 개발 기업인 KIP의 공동 대표다. 올해 4월 첫발을 뗀 따끈따끈한 스타트업이지만, 지난 10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열린 미국 최대 규모의 체험형 미디어 파사드 페스티벌인 블링크 페스티벌에 프로젝트 파트너로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한국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고, 한국 식품 회사와 협업해 축제 방문객들에게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소개하는 등 한국문화를 브랜딩하는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문화 콘텐트 사업가로 발을 내딛기 전의 이력은 한결 다채롭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오보에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브랜드 음대에서 학사를,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뉴저지 주립대학 럿거스 음대 박사 과정에 진학했지만, 다양한 문화 장르의 복합적인 융합이 시도되는 모습에 매력을 느껴 학위를 그만두고 뉴욕에서 유니온 시티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다른 정부기관의 펀드를 받아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주를 하는 동시에 한국에서는 디아아트라는 음악 기획사를 설립해 활동했다.예술과 문화의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관객과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음악이라는 도구 하나로는 한계를 느꼈다. 우연한 기회에 컬리너리 아트(Culinary art)로 눈을 돌려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레스토랑에서 실전 경험을 쌓으며 셰프로서 입지를 다졌다. 다양한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심하다 뉴저지 프리스턴의 교육 센터에서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따고,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며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체험하기도 했다.오랜 시간 외국에 체류하다 보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한국 전통 문화를 교육하는 예지원에서 한국 예절, 다도, 한국무용, 한국 음식을 배우는 식으로 해결했다.“예술가로서 여러 역할을 정말 잘 해내고 싶었어요.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느껴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일이라면 안 해본 것이 없는 것 같아요.”이렇듯 부족함을 맞닥뜨릴 때마다 더 배우고 채우려 애쓰다보니, 어느덧 문화예술 안에서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 11월 4일, 정승우 이사장이 미국으로 출국을 앞둔 박 대표를 만나 다채롭게 쌓아온 이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촉망받는 오보에 연주자였다.처음부터는 아니었다. 꼴찌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간 케이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예원학교에 입학했고, 등수보다는 곡과 작곡가에 대한 해석에 더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다 보니 어느덧 일등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와 대학원 모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많은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운 좋게 존 맥(John Mack)이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오보에 연주자 밑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부쩍 성장할 수 있었다. 내 음악 커리어에서 존 맥에게 배운 것은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분은 음악가를 넘어 모든 사람을 깊이 이해할 것, 예술가로서 일의 단편이 아닌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하셨다. 나는 질문이 참 많은 학생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주말마다 선생님이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데려가서 옆자리에 앉혀놓고 연주곡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덕분에 그때부터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연주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전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그분의 영향이 너무 크다.
유니온 시티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계기가 있다면.2011년 즈음이었다. 그때는 뉴욕에서 미술과 음악의 크로스오버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나던 시기다. 미국은 오케스트라 연주자 교육이 굉장히 강한 나라여서 대부분의 기악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입단을 꿈꿨다. 각기 다른 장르를 하나로 아우르는 새로운 시도에 호감을 느껴 조금 더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의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연주자 50명을 모아 연주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티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단체를 직접 찾아가 펀딩을 받고,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이리저리 부딪히며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그만큼 좌충우돌하며 스스로의 부족한 점에 대해 많이 깨달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평생 연주만 하던 사람이 뭘 아냐는 사회적 잣대에 부딪힌 적도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 부족함을 극복하려고 다양한 방면을 두루 공부하고,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도록 전문성과 타이틀을 하나씩 갖춰나가자는 목표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레스토랑 근무 경력이 눈에 띄는데.음식은 클래식 음악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다가서기에 장벽이 더 낮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미국 유학을 앞두고, 혼자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요리학원에 등록해주셨다. 학원에서 한식 자격증 수업을 들으면서 요리에 더 관심이 생겼다. 이후 뉴욕의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에서 프랑스 음식을 전공했고,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5군데 중 3군데서 오디션에 합격하기도 했다. 펄세(Per Se)라는 레스토랑을 최종 선택했고, 페이스트리팀에서 인턴 사원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새벽 6시 출근이었는데, 1시간 일찍 가서 냉장고에 미리 준비해놓은 각종 소스를 테스팅하며 공부할 정도로 흥미를 느꼈다. 그 당시 손님들 저녁 준비를 위해 접시에 올렸던 마줄랭이라는 케이크는 만들던 사람의 실수로 재료가 바뀌었을 때도 바로 알아챘을 정도로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펄세에서 전공과 다른 디저트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 서빙하고 남으면 하나씩 야금야금 집어 먹던 봉봉 초콜릿의 맛을 잊지 못해 나중에는 쇼콜라티에 자격증도 땄다. 나중에 정식 셰프 제안을 받았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를 가야 해 포기했다. 아쉬운 마음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유명 셰프들의 트렌드와 테크닉에 관한 수업들을 들으며 요리 공부를 계속했다. 지난해 열린 ‘2021 전주비빔밥축제’에서는 공식 개막 행사에서 메인 셰프와 컬래버레이션해 퓨전 한식 다이닝을 선보이며 한식 셰프에도 도전했다.셰프 경력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스킬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이후 다른 일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여성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페미니스트는 아니다.(웃음) 예전에 인도로 여행을 갔다가 어린이들과 여자들이 길바닥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당시 결혼 지참금이 없다고 남자 쪽 가족들이 황산을 온몸에 부어 다친 여자들도 만나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강간 사건이 있었는데 분노한 시민들의 격한 시위 현장도 볼 기회가 있었다.‘Voice of Angels’이라는 타이틀로 한국 예술의전당과 뉴욕에서 유니온 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펀드레이징 콘서트를 기획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움으로 인도에서 문화 교류 프로그램으로 연주를 하며 얻은 수익을 고통받는 인도 여성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전달한 적이 있다. 어떠한 사회적·정치적인 이유로도 어린이들과 여성이 희생되지 않게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때 한참 이슈였던 한국 위안부도 전쟁에 희생당한 어린 여자아이라는 공통점으로 미국 사회에 한국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이후 유니온 시티에도 링컨터널 근방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세워졌다.
다양한 경력이 오히려 일관성이 없다는 우려도 있다.많은 분이 그런 염려를 하신다. 하지만 전체적인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와 전달 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며 필요한 것들을 해왔다. 내 음악 스승이신 존 맥 선생님은 단순히 연습만 많이 한다고 절대 좋은 오보에 연주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바른 자세와 근육 사용이 동반돼야 좋은 음색이 나올 수 있기에 다양한 운동을 배워야 했다. 좋은 곡 해석을 위해서는 교양서적들과 역사 서적, 사회·정치적 문헌들과 미술사 서적들을 읽어야 했다. 관악기에서 중요한 호흡 사용을 위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고, 날카로운 박자 감각을 익히려면 통계학을 공부해야 했다. 이렇듯 어떤 한 가지를 잘 해내기 위해서 얼핏 보면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도 함께 준비해야 했다. 훗날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따고, 학교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사람의 뇌 습성을 통한 배움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이나 언어, 과학 하나를 잘 가르치기 위해, 교육 커리큘럼은 어린이들에게 그 과목과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도 많이 가르친다. 당장 중요해 보이지 않아도 그 과정들은 절대 건너뛰어서도 안 되고 충분히 연습되어야만 하는 중심 프로그램들이다. 내가 현재 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그만큼 오랫동안 꼭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왔다고 생각한다.
블링크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블링크 페스티벌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밤 7시에서 11시까지 열리는 도시형 미디어 파사드와 음악, 벽화 등이 어우러지는 문화예술축제이다. 올해가 3회째 행사였다. 지난번 행사 때는 130만 명이, 올해에는 200만 명이 참여했다. 뉴욕처럼 예술적 접근성이 풍부하지 않은 중소도시라 어느 정도 참여할까 궁금했는데, 2회 때 처음 이 행사를 접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전 세계에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몰려들었는데 다양한 협업을 하며 멋진 체험형 도시를 만들었고,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함께 모여 너무 신나게 즐기는 것을 보고 꼭 한번 참여하고 싶었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갖으면서도 다른 문화예술과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기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우리 문화예술만의 뉘앙스를 어필하고자 노력했다.결국 프로젝트 파트너로 초청을 받아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고, 개인적으로 조금 더 욕심을 내어 한국 기업인 샘표, 진로소주와 함께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의 놀이문화까지 녹여 보여주는 기회로 삼았다. KIP와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한 애니쿤 작가는 해외 유학이나 외국 경험이 거의 없는 토종 MZ세대 한국인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투박한 듯 독특한, 특유의 정서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결국 블링크에서 초대한 세계 최대 벽화 배틀인 ‘Secret Wall’에서 세계 최초로 진행한 생중계형 배틀 공연에 한국인 최초로 초대받아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 회사와 함께 샘표, 진로소주는 한국 문화를 알린 기업으로 인정받아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시와 버겐 카운티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지역 축제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사실 모든 축제는 특정 지역에서 시작된다. 함께 참여하는 이들이 사회적 명분과 개최 목적에 공감해야 함은 물론, 좋은 팀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어느 하나도 계획한 대로 흘러가기 쉽지 않지만, 좋은 커뮤니티가 뒷받침되면 많은 사람이 힘을 모을 수 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2년 전 블링크 페스티벌에서는 열린 공간이었지만 사람들 사이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는데, 올해는 더 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통행하기 수월했다. 그 이유를 들어 보니 사람들이 몰릴 수 있는 곳마다 안전 요원을 배치해 사람들이 흩어지도록 통제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다원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대표님의 의견이 궁금하다.다방면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배운 것은 ‘모든 일은 서로 통한다’는 거다. 단지 사용하는 도구가 다를 뿐 우리 모두의 안에는 예술가가 있다. 예전에는 일차적으로 그림을 소유하고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 끝났지만, 관객들의 마음속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관객들이 받은 영감과 경험을 통해 본인 스스로만의 반응을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향후 목표가 있다면.KIP라는 회사를 통해 IP를 기반으로 한 한국 문화예술 콘텐트를 온라인화해 전 세계의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다.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했던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활용해 음악, 미술, 컬리너리 아트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역량 있는 기획자로 성장하고 싶다. 큰 숲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하나하나 차분히 경험을 쌓아나갈 때 건강한 커뮤니티와 예술가, 관객들의 교류가 한데 어우러져 더욱 멋진 프로젝트들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