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5) 

가스라이팅 | 다 너를 위한 거라는 폭력 

가스라이팅은 가해자 가스라이터와 피해자 가스라이티가 존재하기에, 피해자는 결국 가스라이터의 정서적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가해자와 피해자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P.S. & 마리 크뢰이어 [마리와 P.S. 크뢰이어의 초상] 1890
한 사람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는 그 관계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된다는 판단이 선행된다. 금전적인 이득, 사회적인 관계처럼 계산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 사람과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하다’라는 정서적인 혜택도 누군가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 관계에서 스스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증거가 관찰됨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 그 사람 곁에 있어야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는 상대방의 교묘한 심리기술에 휘둘린 것이다.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서 그 사람 옆에 있어야 내가 행복하고 가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가스라이팅이 그 범인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연극 [가스등(Gaslignt)]에서 유래했다. 남자 주인공 잭은 윗집 부인의 보석을 훔칠 계획을 세우고 부인을 살해한다. 그런데 보석을 찾으려면 부인 집의 가스등을 켜야 했다. 윗집 가스등을 켜면 아랫집 가스등이 약해지거나 깜빡이는 구조였는데, 아내 벨라는 자신의 집 가스등이 어두워졌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범죄를 숨기기 위해 남편은 어두워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벨라의 물건을 숨긴 후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타박한다. 남편이 보석을 찾기 위해 윗집에 갈 때마다 벨라의 집은 어두워졌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벨라가 과민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벨라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무기력해지면서 남편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처음에는 동등했던 관계


▎P.S. 크뢰이어 [예술가의 아내와 개] 1892
가스라이팅은 가해자 가스라이터와 피해자 가스라이티가 존재하기에, 피해자는 결국 가스라이터의 정서적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가해자와 피해자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잭과 벨라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부부였듯, 대부분의 경우 시작은 동등하다.

덴마크의 천재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P.S. Krøyer)와 덴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렸던 마리 크뢰이어(Marie Krøyer)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세베린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마리는 자신의 재능마저 버린 채 기나긴 우울함을 견뎌야만 했다.

이 둘은 코펜하겐 미술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인연을 만들어갔다. 두 사람은 16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1889년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2년 뒤 덴마크의 작은 바닷가에 있는 예술인 마을 스카겐에 정착했다.

[마리와 P.S. 크뢰이어의 초상]은 서로가 서로를 그려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세베린의 얼굴은 마리가, 마리의 얼굴은 세베린이 그려주었다. 그런데 따듯하고 부드럽게 그려진 마리의 얼굴과 달리 세베린의 얼굴에는 고집스럽고 강압적인 표정이 드러나 있다. 결혼 후 1년이 지난 신혼에 그린 이 그림은 서로를 바라보는 화가 부부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나 있지만, 마리가 가지고 있는 남편에 대한 불만도 드러나 있다.

당신은 재능이 없으니까


▎마리 크뢰이어 [분홍색 장미] 1898
스카겐에 정착한 크뢰이어 부부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나 이때부터 마리를 향한 가스라이팅이 시작됐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학대를 가해, 상대방이 자신의 판단력이 낮다고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베린은 이미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였기에 남편이 성공한 화가로서 지닌 사회적 권위의 힘은 마리를 쉽게 지배했다. 가스라이터는 주로 피해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다. 직장 상사, 동료, 연인, 가족이 가장 많은 것도 이를 반영해준다.

세베린과 마리는 함께 그림을 그리며 만난 사이였지만, 세베린은 마리가 화가가 아닌, 자신의 모델이 되기를 바랐다. 이미 작가로서 수입이 안정적이었던 세베린은 마리를 캔버스에 담는 것을 즐겼고, 마리는 붓을 놓고 세베린 앞에 서야만 했다.

화가로서 성공할 자신을 꿈꾸며 코펜하겐 미술학교에 입학했던 마리였지만, 세베린은 마리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위안이 아니야. 당신은 예술과 어울리지 않아. 당신은 나처럼 재능이 없어.”

세베린은 화가가 아닌 모델 마리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작품 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해주며 자신의 말대로 하니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도 자주 강조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마리를 이해한다는 남편의 말은 마리가 남편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점점 마리는 화가로서의 자신은 가치가 없다는 자기 의심에 빠졌고, 남편이 가치를 인정해주는 모델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마리는 점점 붓을 잡을 일이 줄어들었고, 가끔 그림을 그리고 나면 세베린에게 자신의 그림을 검사받곤 했다. 세베린은 그때마다 빛의 표현이 좋지 않고, 색상의 생명력을 볼 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세베린은 바다에 나가서 빛을 담은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지만, 마리는 가끔 정물만 그렸다. 그리고 이때 마리가 그린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시들어 있는 모습이 많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생활, 점점 접어야 했던 화가의 꿈이 시든 꽃 그림 속에 담겼다.

한 작업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천재라 불리는 남편의 그림은 반짝반짝 눈이 부셨고, 남편은 자신의 그림을 응원해주지 않고 단점만 지적했다. 마리는 남편과 자신을 비교하며 점점 더 위축되어갔다.

주변인에 따라 달라지는 삶


▎P.S. 크뢰이어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_함께 걷는 안나 앙케와 마리 크뢰이어] 1893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스카겐에서 마리는 여성 화가 안나 앙케와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유명했던 화가 미카엘 앙케의 아내였고, 둘 다 유명한 화가의 아내라는 공통점이 있어 마리와 안나는 금세 친해졌다.

그러나 마리의 남편이 그녀의 재능을 무시하고 모델로서의 가치만 이야기했다면, 안나의 남편은 같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동료로서 함께 성장해나갔다. 미카엘 앙케는 자신이 더 유명하다는 이유로 안나의 작품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그녀가 화가로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함께 고민해주었다.

세베린이 그린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_함께 걷는 안나 앙케와 마리 크뢰이어]에는 비슷한 옷을 입고 바닷가를 걷는 비슷한 체형의 두 여성이 보인다. 왼쪽이 안나, 오른쪽이 마리이다. 그러나 이렇게 닮아 있는 두 여인은 곁에 있던 사람의 태도에 따라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안나 앙케는 평생 그림을 그렸고,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덴마크를 대표하는 유일한 여성 화가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이 사람에겐 나밖에 없어


▎P.S.크뢰이어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화가와 그의 아내] 1899
세베린은 천재적인 화가였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작가였으며 아름다운 부인이자 뮤즈 마리와 결혼했다. 겉에서 보았을 때 세베린의 삶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세베린은 자신의 어머니에 이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조현병은 그의 삶을 때때로 지옥으로 만들었다. 증상이 악화될 때면 그는 아내에게 재능이라곤 없는 시시한 창녀 같은 여자라는 폭언을 퍼부었고, 괴물이 자신과 아내를 죽이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혔으며,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도 왕으로부터의 처형이라고 망상했다. 잔혹한 망상들은 아내에게 폭력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목을 졸라 죽이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화가와 그의 아내]에는 개가 등장하는데, 개는 사람처럼 그림을 위해 포즈를 취할 수 없기에 세베린은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딸에게 개의 포즈를 취하게 했다. 심지어 물건을 입에 물고 네 발로 걷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마리는 남편의 이 모든 상황을 포용하고 보살펴주었다. 세베린은 자신을 보살펴줄 사람이 마리밖에 없음을, 마리 덕분에 자신이 매번 회복할 수 있음을, 마리가 없었더라면 자신이 더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세베린은 마리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고통스러워했고, 마리는 남편을 포용함으로써 그의 삶을 구원한다는 생각에 몰두했다. 마리에게 관찰되는 메시아 신드롬은 대체로 불행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심리를 억압하면서, 그 반동으로 자신은 행복하다는 강박적인 믿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세베린의 정신병은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불행이었으며, 그의 불행을 마리가 도와줌으로써 마리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모순된 강박에 갇히게 된다.

당신을 버리고 나를 찾다


▎미카엘 앙케 [친구들의 마지막 인사] 1905
가스라이터가 곁에 있을 때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쉽지 않다. 마리가 결혼 후 자신의 삶을 찾기 시작한 것은 안나 앙케와 함께 스웨덴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세베린이 곁에 없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바라본 마리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스웨덴 작곡가 휴고 알프벤(Hugo Emil Alfvén)이었다. 결국 휴고와 사랑에 빠진 마리는 세베린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세베린은 그로부터 4년 후 사망했다.

세베린의 장례식은 안나의 남편인 미카엘 앙케가 그림으로 남겼다. 유명했던 화가의 장례식인 만큼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그리고 마리도 이 자리에 있었다. 마리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국민작곡가가 휴고와 결혼해 아이도 낳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는 듯 보였지만 다시 붓을 들지는 않았다. 화가를 꿈꾸었던 22살 마리가 세베린을 만나 16년 동안 듣고 또 들었던 ‘그림에 재능 없는’ 자아상이 여전히 마리의 곁에 남아 붓을 들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리처럼 상대와 거리를 둘 수 있는 곳에서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왜곡되었을 수 있으므로 주변 사람에게 상황을 말하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불안을 다룰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고, 자신의 자존감이 안녕한지 자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301호 (2022.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