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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심(心)과 신(身), 그 공생의 관계 

사람의 혼을 좀 더 젊고 건강한 몸에 옮겨 담아 영생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담은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관객에게 사랑받는 스토리라인이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가장 최근에는 제임스 케머론 감독의 [아바타2], tvN 드라마 [환혼]에서 등장한 주제다. 이런 미디어 콘텐트에서 엿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과거 사회과학자들이 수십 년간 생각해왔던 논리와 비슷하다. 즉, 마음(뇌)은 몸의 컨트롤타워 혹은 CPU 역할을 하고, 몸은 마음의 지시를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서 마음을 꺼내어 새로운 몸에 심으면 영생도 가능하다는 논리인 셈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학자가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마음이야말로 사람의 자아와 정체성을 성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학문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몸과 마음이 기존 이론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맞지만, 몸으로 익힌 경험들 역시 뇌에 저장되어 비슷한 상황을 상상하기만 해도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 예로,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연사가 하는 손동작들은 그 연설을 듣는 청중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움직이는 동작에 따라 연사 스스로 이야기하는 정보들이 뇌에서 정리되는 것이다. 그래서 손이나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연설을 하려 하면 의외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힘들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기 쉽다.

그렇다면 [아바타]나 [환혼]에서처럼 사람의 마음만 빼내어 새로운 몸에 담으면 정말 바로 ‘나’로 인식되면서 젊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한 사람의 심신(心身)에서 마음을 쏙 빼가더라도 과거의 몸으로 경험했던 세상과 기억들은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뇌에 저장된 신체영역지도는 굉장히 세밀하며, 이는 신체 일부가 급작스럽게 절단되었을 때 있지도 않은 신체 부위에 환상통(phantom pain)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새로운 몸에 마음을 완전히 이전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인간의 뇌는 놀라운 유연성을 자랑한다. 사람이 ‘나’의 것, ‘나’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범주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가상과 현실의 세계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

메타버스 안에서 유저는 아바타로 존재하게 되는데, 컴퓨터 화면 속 만화 같은 디지털 캐릭터가 과연 ‘나’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메타버스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몰입형 가상현실(immersive virtual reality)은 유저들이 아바타로서 겪는 경험들을 마치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인 것 같은 ‘현존감(presence)’을 느끼게 해준다. 유저의 몸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데, 아바타의 몸을 통해 경험하는 가상 세계의 감각들이 마치 현실의 몸을 통해 인지되는 듯한 느낌을 ‘신체 전이(body transfer)’라고 한다. 신체 전이는 뇌에서 시각적 신호와 촉각적 신호가 교란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눈으로 보이는 것이 마치 몸으로 느끼는 감각인 것처럼 뇌가 착각하면서 일어난다. 신체 전이 현상의 유명한 예로는 고무손 착각(rubber hand illusion)이 있다. 고무손과 실제 손을 나란히 두고, 고무손을 바라보고 있을 때 고무손과 실제 손을 동시에 같은 속도로 붓으로 쓸어내린다. 이 동작을 반복하면 시각적·촉각적 신호 교란이 일어나면서 바라보고 있는 고무손이 마치 신체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발생하게 된다. 신체 전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고무손을 망치로 힘껏 내리치면 사람들은 마치 실제 손을 맞은 듯한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며 움찔한다.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아바타


▎tvN 드라마 [환혼] 포스터.
몰입형 가상현실에서 유저의 신체가 아바타와 동시에 움직이는 모션 트래킹 기술이 시연될 때 신체 전이가 일어나는 것은 많은 실험 연구에서 증명됐으며, 이 신체 전이는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를 긴밀하게 연결해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가상 경험의 생동감은 화질이나 사실적 표현보다 모션 트래킹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따라서 아바타가 현실의 나와 전혀 다르게 생겼거나 투박한 픽셀로 만들어져 있더라도 아바타의 모션 트래킹이 내 신체의 움직임과 거의 흡사하다면 아바타와 나는 혼연일체인 듯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니지만 나인 듯한’ 신체 전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로, 한 실험에서는 몰입형 가상현실에서 피험자들에게 꼬리가 달린 아바타를 부여했다. 피험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마치 평생 꼬리를 신체의 일부로 써왔던 것처럼 곧 가상의 꼬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험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이 꼬리에 불을 붙인다. 실제의 나는 꼬리가 없는데 내가 자유자재로 사용하던 가상의 꼬리가 불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모션 트래킹을 사용해서 신체 전이가 일어났던 유저들은 아바타 꼬리가 타고 있는 것에 대해 심적인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모션 트래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처치군에 배치된 피험자들은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메타버스, 가상과 현실의 접점

그렇다면 신체 전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경험한 가상현실은 가상 공간에서 일어난 허구일까 아니면 나에게 정말 일어난 일들일까? 가상의 일이라 현실에서 그 실체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내가 보고, 듣고, 만지기까지 한 생생한 감각이 저장되어 있는 기억은 실재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모호함이야말로 메타버스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인 동시에 우리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엄청난 위험 요소일 수 있다. 메타버스를 통해 현실의 내가 이룰 수 없던 것들과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가상으로 가능하게 하고, 아바타를 통해 전이된 기억들을 바탕으로 현실의 나를 확장해나가는 형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은 현존하는 시스템과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개념들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 안선주 센터장은… 조지아대 컴퓨터-인간 생태계 발전 센터 (Center for the Advancement of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303호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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