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석금호 산돌 의장 

콘텐트 플랫폼 기업이 된 국내 최초 폰트사 

신윤애 기자
폰트 회사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하자 ‘돈 버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자체 제작 능력과 디지털 플랫폼으로 무장한 한국 최초 폰트 기업인 산돌의 발걸음은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 산돌 본사에는 인쇄출판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역사적인 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모두 석금호 의장이 직접 수집했다.
1983년, 미국의 월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던 석금호 의장은 한글을 인쇄·출판하려면 식자기와 식자판 모두를 일본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자존심이 상해 매일 밤 잠을 설치다가 결국 ‘자력으로 한글 서체를 개발해 보급하겠다’고 큰소리치며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당시 석금호(67) 의장의 나이는 27세였다.

*1980년대 신문 조판과 도서 인쇄를 위해서는 사진식자기와 식자판이 필요했다. ‘굴림체’는 당시 일본의 사진식자 기업 모리사와가 한국에 식자기를 판매하기 위해 한국인 디자이너를 고용해 한글 서체의 원도를 제작한 글꼴이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그는 국내 최초의 폰트 회사인 산돌의 창업자이자 의장으로서 한국의 폰트 산업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1984년, 포부 하나로 대학로에 방 한 칸을 얻어 ‘산돌타이포그라픽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작은 사업이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에 폰트를 납품하는 국내 대표 폰트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MS 오피스에 기본 탑재된 ‘맑은 고딕’을 비롯해 애플 ‘Apple SD 산돌고딕 NEO’, 구글 ‘본고딕’, 아이비엠 ‘IBM Plex Sans KR, IBM Plex Sans JP’가 산돌의 작품이다. 또 우아한형제들(배민체), 삼성, 현대기아차, 현대카드, 카카오, 네이버 등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으로 잘 알려진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용 서체도 산돌이 기획하고 개발했다. 지금까지 산돌이 직접 개발한 서체는 720여 종에 이른다. 석 의장은 “산돌이 여러 가지 성과를 냈지만 일본에서 가장 큰 폰트 회사인 모리사와가 산돌에 한글 폰트를 독점으로 납품해달라고 의뢰했던 일은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역수출을 이뤄내며 그토록 원하던 통쾌함을 맛보기까지, 그 여정은 꽤 길고 고된 시간이었다고 석 의장이 회상했다.

큰 꿈을 안고 회사를 나왔지만 자본도 경험도 없는 20대 청년이 20년 넘게 굳어진 업계의 관행을 혼자 힘으로 깨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실을 직시한 그는 레터링 작업 아르바이트와 강의를 병행하며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 “5년 정도 버티자 컴퓨터가 보급되며 인쇄·출판 프로세스가 서서히 컴퓨터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며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곧 기회가 열릴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고 석 의장이 회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포그라피, 폰트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초기 컴퓨터로는 글자를 직접 그려 메모리에 입력하고 도트프린터로 출력해 펜으로 선을 정리하는 수작업을 거쳐야 했는데, 컴퓨터로만 글자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여기에 애플이 폰트를 개발할 수 있는 전용 소프트웨어까지 출시하자 폰트 산업의 문이 활짝 열렸다. 석 의장은 “이때 DTP(데스크톱 퍼블리싱, 개인 컴퓨터로 출판물을 디자인하는 작업) 시대가 개막했고, 폰트 또한 하나의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었다. 레터링 작업으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석 의장에게 국내 대기업이 ‘빅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금성소프트웨어주식회사(현 LG디스플레이)에서 ‘하나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는데, 여기에서 사용할 도트프린터용 폰트 8~9종을 제작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석 의장은 “작업비로 4000만원가량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상당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산돌의 첫 상업용 폰트가 탄생했다.

시드머니가 생긴 산돌은 차츰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비즈니스 모델은 출력기용 폰트를 개발해 납품하는 것이었다. 석 의장은 “당시엔 컴퓨터로 조판하고 출력기로 필름과 인화지를 인쇄해 출판을 했다”라며 “출력기 한 대가 1000만~3000만원, 출력기용 폰트가 한 세트당 1000만원가량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단가가 높은 상품을 판매하는 덕분에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차츰 다양화했다. 회사들이 주문하면 제작해 납품하는 OEM/ODM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 폰트를 만드는 시도를 해나갔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한 디자이너 출신 석 의장이 직접 손으로 그려가며 폰트를 디자인했다. 석 의장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폰트는 ‘제비체’다. 1990년대에 출시했는데 아직도 출판물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의 한글 서체들은 대부분 붓글씨처럼 보였어요. 명조체가 대표적이죠. 붓글씨의 출처가 중국인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입니다. 한국적인 곡선을 적용해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돼 보이는 서체를 만들자는 목표로 디자인한 게 제비체입니다.”

OEM/ODM 업체에서 자체 브랜드를 가진 회사로 껑충 성장한 산돌은 2000년대 초반, 다시 한번 큰 기회를 맞이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프로세서에 탑재될 한국어 폰트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석 의장이 당시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MS코리아에서 우리를 파트너로 선정했는데, 본사에서 예산 승인을 미루고 있었어요. 직접 본사를 설득해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미국에 있었던 터라 직원들에게 자료를 받아 MS 본사에 PT를 하러 갔죠. 3일 동안 기술팀, 디스플레이팀, 타이포그라피팀을 모두 만나 설명했어요. 한글 폰트를 따로 개발해야 하는 이유, 꼭 우리 여야 하는 이유 등을 강조했죠. 그러자 곧바로 예산 승인이 났고 오히려 본사와 직접 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서체가 ‘맑은 고딕’입니다.”

맑은 고딕체가 세상에 나오자 산돌은 업계에서 몸값이 높아졌다. MS 파트너사라는 레퍼런스 하나만으로 제안이 몰려들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외 유명 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냈는데, 그중엔 애플도 있었다.


▎일본 모리사와의 사진식자기 앞에서. 석 의장이 산돌을 창업하는 데 강력한 동기를 줬던 바로 그 장비다.
“애플에서 ios용 한글 폰트 개발을 맡길 한국 회사를 찾고 있었어요. 누군가의 추천을 받지 않고, 1년에 걸쳐 한국의 폰트 산업과 폰트 기업들을 면밀히 분석했다고 해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산돌을 파트너로 낙점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기쁜 마음으로 2011년 애플 ios용 시스템폰트와 ‘고딕네오’ 시리즈를 론칭했습니다.”

매일같이 폰트를 사용하더라도 일반인 눈으로는 폰트의 품질 차이를 식별하기 어렵다. 품질보다는 디자인이나 가독성을 기준으로 폰트를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의 선택 기준은 다를 터. 그 기준은 무엇이며 산돌이 만드는 폰트는 어떤 강점이 있는지 물었다. 석 의장은 “완성도”라는 단순한 답을 내놨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을 조화롭게 조합해야 하는데 조형들 사이의 균형감과 통일감을 유지해야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폰트를 확대해보면 글자의 곡선, 선을 마무리하는 매듭 부분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 있는데, 이 디테일에 따라 완성도가 좌우돼요.”

산돌이 승승장구할 무렵 국내 폰트 업계는 안 좋은 소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소송으로 돈을 버는 악랄한 기업들이라는 이미지가 팽배했다. 안타깝게도 100%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석 의장은 “폰트를 불법 복제해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고 저작권이 유일한 수익모델인 폰트사들은 기업뿐 아니라 개인 사용자까지 단속해 저작권 소송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석 의장은 업계의 관행과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었다. 전체 산업을 다 바꿀 수는 없지만 산돌이 앞장서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결정했다. 결국 “산돌은 소송을 하지 않겠다”라는 파격 선언을 했다.

“악의적인 불법 사용자도 있지만, 사용기한이 만료된 것을 몰랐거나 사용범위에 제한이 있다는 점을 잘 모르는 개인 사용자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린 2020년 4월, 200여 가지가 넘는 사용범위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게끔 인쇄, 출판, 영상용 폰트의 사용범위 구분을 최초로 없앴습니다. 또 폰트 구독형 플랫폼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론칭했습니다. 사용자는 클라우드에 저장된 폰트를 내려받아 사용하면 되는 간단한 프로세스예요. 유료 폰트는 만료일이 되면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비활성화돼요. 글로벌 주요 폰트 기업들이 모인 콘퍼런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2014년 산돌구름 클라우드 서비스를 론칭했고, 2018년에 전면 개편하고 플랫폼 서비스로 전환했습니다.”

폰트와 클라우드의 만남은 기업은 물론, 사용자에게도 좋은 대안이 됐다. 사용자는 별도의 폰트 OTF1, TIF2 파일을 설치할 필요 없이 ‘구름다리’라는 앱만 설치하면 쉽고 편리하게 폰트를 사용할 수 있다. 또 구름다리에는 산돌뿐 아니라 다양한 폰트사가 입점해 자사 폰트를 판매함으로써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돼주었다.

“클라우드 플랫폼에는 산돌 폰트도 있지만 글로벌 1~2위 업체부터 경쟁사의 폰트까지 입점해 있습니다. 다른 회사의 폰트의 경우 플랫폼 이용료를 수수료로 받고 있죠. 현재 플랫폼 구독 계정은 개인과 기업을 합쳐 100만 개가 넘어요. 하나의 계정을 여럿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이용자는 더 많겠죠. 클라우드 서비스로만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으로 산돌은 IT 기술을 적극 도입하며 급변하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2018년에는 바른손카드 바른컴퍼니 사장, 한글과컴퓨터 그룹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한 전문경영인 윤영호 대표를 영입해 산돌구름 플랫폼 확장과 디지털 콘텐트를 제공하는 IP 기반의 종합 콘텐트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코스닥 상장을 완료했고, OST 제작사인 모스트콘텐츠에 지분 투자를 마쳤다. 석 의장은 “영상을 제작하려면 자막(폰트)과 배경음악(bgm) 저작권을 따로 구매해 사용해야 한다”며 “산돌구름에서 자막뿐 아니라 bgm까지 구매하고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림”이라고 지분 투자의 이유를 밝혔다. 지난 3월엔 인공지능 전문기업 콕스웨이브로부터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 일체를 인수했다. 사용자가 입력한 문자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검색하거나 직접 생성해주는 기능이다. 이에 따라 산돌은 디지털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는 종합 크리에이터 콘텐트 플랫폼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돕는 폰트 지원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산돌구름에 개인 창작자가 입점할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열었다. 기존의 입점 기본 규격을 모두 갖추지 않아도 한글, 라틴, 숫자, 딩뱃 폰트 등 단 1종만 있으면 입점할 수 있도록 문턱도 낮췄다. 석 의장은 “소속 없이 일하는 개인 폰트 디자이너는 판매처가 마땅치 않아 창작물 수익화에 애를 먹고 있었다”며 “산돌구름에서 활동하는 독립 폰트 디자이너 ‘한글씨’의 경우 한 달 매출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는 전국 초중고교에 산돌구름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고 지난해 8월엔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폰트를 무료로 지원하는 ‘캔(can)퍼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울러 9월에는 디캠프 및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스타트업 성장과 자유로운 폰트 저작권 이용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시작으로 각 사가 추천한 초기 스타트업에 산돌구름에서 제공하는 산돌 폰트를 최대 2년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패스트파이브, 스파크플러스 등 공유 오피스 기업과 연계해 초기 스타트업에 폰트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나눔을 통해 공생을 꿈꾸는 산돌의 행보는 석 의장의 오랜 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창 마음고생을 할 무렵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읽으며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전문성을 가지고 정도를 걸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 깨달음을 열심히 실천 중”이라고 밝혔다.

이제 산돌의 눈은 글로벌로 향하고 있다.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자리 잡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 외에는 플랫폼 서비스를 하는 국가가 거의 없다”며 “우리의 성공 방정식을 가지고 동남아 국가부터 빠르게 세팅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폰트만큼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아우르는 산업이 있을까요. 아무리 IT 기술이 발전하고 챗 GPT가 나와도 문자(폰트)는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더 활성화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점점 활성화될 폰트 시장을 재편하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인 한글의 가치를 지키고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볼 생각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사진 최기웅 기자

202304호 (2023.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