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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형 오아시스 대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노유선 기자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계에서 국내 유일 흑자기업으로 불리던 오아시스가 지난 2월 기업공개(IPO)를 철회했다. 2018년 8월 온라인 시장에 후발 주자로 나서 단 한 번의 적자 없이 성장해오던 오아시스마저 IPO를 접자, 업계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실망했을 안준형 오아시스 대표는 꿋꿋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그의 말에서 멈추지 않는 도전의식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국내 이커머스 1호 상장기업’으로 기대를 모았던 오아시스가 돌연 상장을 철회한 것은 지난 2월 13일. 수요 예측이 마무리됐을 무렵이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계에서 유일하게 흑자 행진을 이어오던 오아시스의 기업공개(IPO)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다. 2021년 경쟁사인 쿠팡과 컬리는 각각 1조1209억원, 2177억원 영업 적자를 냈지만, 오아시스는 57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서울 종로구 오아시스 본사에서 안준형(44)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이 초상집 분위기라는 안 대표의 귀띔처럼 그는 핼쑥한 얼굴에 올 블랙 정장 차림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자 안 대표는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를 정주행하며 위로의 시간을 보냈다”고 답했다. 허탈할 법도 했다. IPO를 향한 오아시스의 발걸음은 속전속결이었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12월 29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로부터 상장예비심사를 승인받은 지 약 2주 만에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2월 중 상장 완료라는 타이트한 공모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 인정받은 기업가치가 1조1000억원에 달했기에 상장이 순탄하게 진행되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안 대표는 상장 철회의 가장 큰 이유로 “(공모가가)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꼽았다. 그는 “거시경제적으로 봤을 때 금리가 상당히 높아지면서 수요 자체가 높지 않았다”며 “목표했던 예상 가치가 나오지 못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오아시스의 희망 공모가 밴드는 3만500~3만9500원, 공모 주식 수는 523만6000주였다. [슬램덩크]를 보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대사를 되새겼다는 그에게 IPO 재도전 의사를 물었다.

“물론입니다. 템포는 좀 늦더라도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회사 내부를 정비한 뒤 재도전할 생각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예요. 하지만 제게 IPO는 오아시스 성장의 한 과정이자 도구에 불과합니다.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말처럼, IPO는 오아시스 성장 과정에서 거들 뿐입니다. 회사의 기본인 기초체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회사의 기본과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2018년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시장에 진출한 오아시스는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성장해왔다. 지난해 기록한 누적 매출액 4272억원은 전년 대비 약 20% 증가한 수치다. 온라인 시장 진출 5년 만에 284% 가량 성장한 셈이다. 오아시스 성장 과정과 미래 전략에 대해 안 대표의 솔직한 얘기를 들었다.

순진하고 투박한 회사


▎오아시스는 냉동, 냉장, 상온 제품을 합포장해 포장비를 3분의 1 이상 줄였다.
오아시스는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계에서 국내 유일 흑자기업으로 통하지만 인지도나 매출 규모는 경쟁업체에 비해 낮은 편이다. ‘유기농의 대중화’를 목표로 2011년 설립된 오아시스는 오프라인 매장 기반으로 성장해오다 2018년 8월 온라인 플랫폼 ‘오아시스 마켓’을 선보였다. 현재 오아시스 회원은 약 130만 명, 오프라인 직영 매장은 약 60곳에 달한다. 생산자 직소싱 네트워크와 스마트 물류 시스템으로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이다.

2021년 온오프라인 전체 매출은 경쟁업체 컬리(1조5580억원)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매출 성장세는 2019년 1423억원, 2020년 2386억원, 2021년 3569억원으로 가파른 편이다. 안 대표는 “온라인 시장에 다소 늦은 시점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결코 느린 성장이라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내실을 탄탄하게 다져가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국내 스타트업 대부분은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 이를 바탕으로 성장해나갑니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흑자를 가정하고 투자를 유치하기보다 일단 현재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성을 실험해본 다음, 성장성에 확신이 생기면 투자 유치에 나섰어요. 금융의 관점에선 순진하고 투박해 보일 수 있지만 투자 유치 과정에서 떳떳하고 싶었습니다.”

오아시스는 마케팅·홍보 비용도 철저하게 아꼈다. 경쟁업체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지만 오아시스는 다른 길을 택했다. ‘흑자가 자랑이 아니다’라는 주주의 비난도 있었지만 안 대표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연예인을 활용한 홍보 방안은 너무나 대중적이고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카드이기에 서두르지 않았을 뿐”이라며 “현재 다른 카드로도 충분히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안 대표는 오아시스가 갖고 있는 비장의 무기로 오랜 시간 쌓아온 유통 노하우와 효율적인 물류테크 기술력을 꼽았다. 그는 “오아시스는 2010년대 초반 생활협동조합에 유기농 식품을 납품하는 비즈니스였다”며 “유기농 식품군을 발굴하고 소싱하는 노하우를 확보한 상태에서 온라인에 진출했기 때문에, 경쟁업체와 달리 중간 도매상과 가공업체 없이 직거래 베이스로 퀄리티 좋은 상품을 소싱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아시스 전체 매입액 중 직소싱 비중은 62%에 달한다.

이러한 유통 노하우를 토대로 오아시스는 우유, 콩나물, 두부, 계란 등 생활 필수형 먹거리 위주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기획했다. 무항생제, 무발색제, 무농약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양질의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일반 마트에서 6000원대에 살 수 있는 계란을 3000원대 중후반에, 3000원대 우유도 1900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안 대표는 “프리미엄 상품인데 저렴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급상승했다”며 “상품 퀄리티를 고집해온 진정성이 고객에게 전달된 셈”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물류테크 기술력은 IT 서비스 업체인 모회사 지어소프트 덕을 톡톡히 봤다. 지어소프트는 KT, LG유플러스 등에 SI(System integration·시스템 통합) 용역을 제공하는 등 소프트웨어 개발·유지보수 분야에서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다. 안 대표는 “유통 노하우와 IT 전문성을 결합한 결과물이 ‘오아시스 루트(OASIS ROUTE)’라는 스마트 물류 솔루션”이라며 “픽킹(집품), 팩킹(포장), 집하, 배송지 분류, 배송에 이르는 전 과정에 IT를 접목해 적은 비용으로 물류 생산성을 극대화했다”고 강조했다.

“시작은 A4 용지와 펜 한 자루였어요. 현장직, 사무직, 개발자 가리지 않고 물류센터에 가서 냉동창고, 냉장창고, 포장대 등 각각의 위치를 일일이 확인해가며 최적의 동선을 짰어요. 그야말로 스타트업 정신이었습니다. 직군 사이에 경계가 없었어요. 그 결과, 오아시스 루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인공지능(AI) 분류 로봇을 활용해 상품을 빠르게 포장·분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아시스 루트의 ‘자동 발주 프로그램’은 신선식품 재고 폐기율 0.18%를 달성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각 품목의 과거 판매 패턴과 현재 재고량을 비교한 후 수요를 예측해 자동으로 주문이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옴니 채널 전략도 주효했다. 오아시스는 온라인 ‘오아시스 마켓’에서 1차 소진된 나머지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에 보낸다.

여기에 오아시스는 원가를 더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인건비, 포장비, 소모품비, 건당 배송비 등을 면밀히 검토해 냉동, 냉장, 상온 제품을 한 박스에 담는 합포장 시스템(특허)을 개발, 포장비를 3분의 1 이상 줄였다. 제품 3개를 주문하면 대다수 업체가 개별 제품이 담긴 상자 3개를 배송하는 것과 달리, 오아시스는 과대포장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포장 작업에 들어가는 인건비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플랫폼과 무인 자동화 시스템


▎오아시스는 물류센터와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해 퀵커머스 서비스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 사진:오아시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안 대표는 2005년부터 8년간 EY한영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했다. 2012년 스타트업 파이텍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합류해 진로를 틀었다. 2018년부터 오아시스에 몸담아 지난해 1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는 2012년을 회상하며 “당시만 해도 회계 업무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며 “‘측정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고 관리되지 않는 것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에 매몰돼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거래처 지인에게서 ‘숫자만 바꾸지 말고 같이 세상을 바꾸자’는 제안을 받았다. 원래 도전을 좋아하는 안 대표는 그동안 본성을 억누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회계사직을 내려놨다. 협업보다는 개인적 역량에 의존하는 회계 업무에 물들어 있던 그에게 기업 활동은 낯설기만 했다. 모든 것을 수치로 판단하는 습관도 기업경영에는 ‘독’이었다.

“일반 기업에서 조직 생활을 경험하면서 협업의 중요성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기업을 인체에 비유한다면 수치, 자금, 회계 분야는 혈류이고 전 직원의 조직력은 기본 뼈대예요. 마음에 담고 있는 문구 중에 ‘경영은 사람을 다루는 예술이자 숫자를 다루는 과학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과 숫자 등 모든 분야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가 날 때 비로소 기업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계기를 묻자 안 대표는 ‘맘카페 사건’을 떠올렸다. 학부모들의 온라인 소통 문화는 포털 카페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상당히 뿌리가 깊다. 살림, 육아, 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게 주목적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맘카페’는 회원 320만여 명을 거느리고 있다. 안 대표는 “2~3년 전 한 맘카페에 ‘새벽배송 업체를 추천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누군가가 오아시스에 대해 좋은 평을 남겼다”며 “댓글, 대댓글이 이어지면서 오아시스는 그날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매출액이 하루아침에 2배로 껑충 뛰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전 직원이 기뻐하며 맘카페뿐 아니라 모두가 아는 회사로 만들자고 다짐했다”며 “모두가 다 함께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오아시스의 주 고객층은 자녀가 있는 3040 여성층이다. 특히 전체 매출의 20%는 한 달에 6회 이상 구매하는 충성고객으로부터 나온다. 비결에 대해 안 대표는 “오아시스는 생활 필수형 먹거리를 판매하면서도 코카콜라나 사이다 같은 상품은 팔지 않는다”며 “이미 여러 대형 마트에서 가격경쟁이 붙은 상품을 판매해서는 차별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유기농의 대중화’라는 오아시스 마켓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충성도 높은 고객을 지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코카콜라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그는 “오아시스가 오아시스 마켓 외 다른 플랫폼을 만든다면 코카콜라와 같은 상품도 판매할 수 있다”며 “이베이코리아가 지마켓과 옥션, 두 군데를 운영하듯이 오아시스도 다른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가능한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오아시스는 매출 규모나 인지도 측면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평이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고객층 확대 전략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1인가구를 위한 밀키트 등 상품 카테고리 다양화와 대기업과 협업을 통한 신규 회원 유치 전략이다. 후자의 경우 대기업 회원에게 오아시스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노출해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오아시스는 이랜드리테일과 손잡고 킴스오아시스 온라인몰을 구축해 새벽배송을 전담하고 있다. 홈쇼핑을 운영하는 KT알파와는 라이브 커머스 사업을 추진 중이다. 상품 홍보·판매 방송 중 배송이 시작되는 방식이다. 또 KT와 손잡고 AI 스피커 기가지니를 통해 음성인식 장보기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안 대표는 “‘좋은 먹거리, 건강한 먹거리’라는 콘셉트에 뜻을 같이한다면 대기업과의 협업에 오픈 마인드다”라며 “상대 기업은 오아시스 덕분에 이커머스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등 서로 윈윈하는 연합군 개념이다”라고 설명했다.

오아시스의 다음 과제는 무인 매장 서비스 고도화와 퀵커머스(즉시배송) 시장 진출이다. 오아시스는 IPO 준비 과정에서 퀵커머스를 신규 비즈니스 모델로 공언해왔다. 오아시스의 물류센터와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해 퀵커머스 서비스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오프라인 매장에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하는 일이 선행될 전망이다.

현재 무인 매장은 고객이 직접 상품 바코드를 기계에 찍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안 대표는 “상품을 계산대에 놓으면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AI가 자동으로 상품을 인식하고 결제판에 최종 결제액이 산출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며 “올해 상반기 중 오아시스 오프라인 매장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초체력’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는 “그동안 빠르게 성장해왔다면 이제는 내부적인 프로세스를 다시 살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몇몇 직원의 개인기가 아닌 회사 시스템에 기반한 성장에 주목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이어 “비록 IPO는 철회했지만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오아시스가 시스템적으로 커갈 수 있도록 계속 기초체력을 다져나갈 계획”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김상선 객원기자

202304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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