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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장 줄리앙(Jean Jullien) 

사람 냄새 나는 일러스트레이터 

장 줄리앙은 최근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자 아티스트로 꼽힌다. 따뜻함과 유머러스함이 뒤섞인 그의 작품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본원적 가치인 예술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DDP에서 열린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전시는 지난해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대중 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작품 퀄리티와 규모 모두 한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할 만큼 멋진 전시였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보았는데,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던 전시이기도 하다. 장 줄리앙의 그림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매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데 멋짐, 강렬함, 부드러움, 섹시함 등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장 줄리앙 작품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사람 냄새와 유머러스함. 전시 관람 이후 계속 떠나지 않던 이 여운을 작가 인터뷰를 통해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현재 파리에 있는 그와 시간을 맞춰(필자는 시애틀에 살고 있어 파리와는 9시간 시차가 난다)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상인: 반갑다. 시간 내줘 진심으로 고맙다.

장 줄리앙: 나도 반갑다. 인터뷰에 초대해줘 고맙다.

이: 지난해 DDP 전시를 직접 봤는데, 전시 규모와 퀄리티가 최근 본 어떤 전시보다 훌륭했다.

장: 고맙다. 특히 한국 팬들이 내 작품을 많이 좋아해줘서 이에 보답하고 싶었다.

이: 당신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팬들의 사랑이 눈에 띈다. 한국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장: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항상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것을 작품 소재로 활용한다. 가족, 육아, 친구처럼 말이다. 이런 점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어, 나도!’ 같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또 한국에서 나와 함께해주는 팀의 역량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확실히 당신의 작품을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어 놀라곤 한다. 당신 작품에서 또 다른 특이점은 유머러스함이라 생각한다. 유머를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추구하는 의미나 방향이 있나?

장: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자라온 환경 영향이 큰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곳은 난테스(Nantes)라는 도시다. 어머니는 건축가 겸 큐레이터셨고,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내 유년 시절 가족에 대한 기억은 행복과 웃음으로 채워져 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형제들과 즐기는 놀이까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어릴 적부터 정말 다양한 삽화 책이나 영화 등을 보여주셨다. 내가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가족의 분위기가 성인이 되고 아티스트가 되며,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내 동생 니콜라스도 조각가인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는 함께 재미있게 작업한다. 지난 DDP 전시에도 우리가 함께한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또 우양미술관에서 이어질 전시에 선보일 추가 작품도 함께할 예정이다.

이: 당신 말을 듣고 나니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과 결과물 모두 장 줄리앙이라는 사람 자체가 우러나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라온 환경 외에 또 어떤 점들이 당신의 작업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나?

장: 다양한 팝 컬처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자라오며 접했던 1980~1990년대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롤플레잉게임 등이 모두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확실히 우리 같은 1980년대생들에게 영향을 끼친 부분이 큰 장르들인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전시장 모습.
장: [드래곤볼Z], [시티 헌터] 등 다양한 작품을 좋아했고 여전히 즐긴다.

이: 이런 작품들이 당신을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오게 만들었나? 어떤 계기가 있었나?

장: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난 언제나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단순하게 컴퓨터로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고 이를 재가공하는 것에 많은 흥미를 느꼈다. 사진을 찍고 이를 오려내 외곽선을 검은색으로 두껍게 칠하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내며 실험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현재 내 그림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계속하다 보니 결국에는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다.

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를 대단히 즐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돼 있지만 사실 반대되는 질문을 하나 하겠다. 요즘 인공지능을 활용한 아트가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공지능 아트야말로 작가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과 반대되는 방식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장: 무서워 죽을 지경이다. 아티스트를 떠나 한 개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공지능의 출현은 의료나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면 사회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연관이 있지만, 문화는 비효율성과도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하던 디자인에서 현재 하고 있는 아트 영역으로 들어온 이유 중 하나도 효율성만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란 정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인데, 인공지능은 효율성 측면에서 인간보다 뛰어나고, 이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등에 활용했을 때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키워드를 조합해 인공지능에게 이미지를 만들도록 시키면 이에 상응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예술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보는 이에게 적지 않은 지적 노동을 요구한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이것이 나타내는 바를 보는 이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예술은 작품에 들어가 있는 미묘한 감정의 다중 레이어를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효율을 추구한다.

이: 개인적으로 인공지능과 관련해 나누었던 대화 중 가장 흥미로운 관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디자이너고 빅테크 기업에서 항상 효율성을 향상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무언가를 비효율적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장: 비효율성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 맞다. 모든 것이 효율적일 필요는 없다.

장: 효율성만 추구하면 지루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가 잘하는 것은 기계에 맡기고, 우리는 생각하고, 서로 대화하며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페인팅(회화) 작품 전시 공간.
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아티스트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나?

장: 아티스트가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기계처럼 효율성 혹은 발전에만 초점을 맞춘 부분들은, 어쩌면 기계에 자리를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아트 본연의 질문에 집중하는 작업들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도 인공지능이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디자이너가 가진 가장 큰 힘인, 무언가를 잇고 또 섞는 능력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잘하는,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부분에선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그것의 결과물을 적절히 믹스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장: 정확하다.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이를 잘 다스리는 방법으로 디자인한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업들이 나올 것이다.

이: 이처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세상에서 현재 아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혹은 앞으로 아티스트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장: 진전(Progress)과 개선(Improvement)은 비슷한 듯하지만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많은 경제적·산업적 발전을 이룩한 것도 맞지만, 기후변화 및 여러 국제적 갈등에 계속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한 방향으로만 높고 빠르게 치닫는 것이 어쩌면 파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잠시 멈춰서, 한 방향으로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방향을 향해 다양한 속도로 가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특히 요즘 소셜미디어를 보면 한쪽으로 확증편향되는 일이 너무 많다. 알고리즘이 떠먹여주는 것에 우리는 종종 익숙해져가기도 하고, 여러 증오 발언 등에 과한 힘이 실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렇게 편중이 심한 하나의 거대한 문화만 좇는 것이 아닌, 작게 나누어진 다중 문화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친절하고,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인류애(Humanity)적인 관점에서 예술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리고 이는 비단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장: 그렇다.

개인적으로 장 줄리앙의 작품을 볼 때면 언제나 미소 지을 수 있어 좋다. 인터뷰 후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장 줄리앙이 따듯한 시선과 마음을 지닌 사람 냄새나는 작가였기에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많은 이에게 인공지능과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제시해주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성황리에 막을 내린 그의 DDP 전시는 3월부터 [여전히, 거기]라는 이름으로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이어졌다.


▎트롤 작품 옆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 이상인은… 이상인 디렉터는 Web 3.0,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및 디자인 전문가로 현재 구글 본사에서 유튜브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플랫폼 그룹의 디자인 시스템 스튜디오 총괄로 일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의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으며, 디지털 에이전시 R/GA에서 리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베스트셀러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2019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2020년), 『디자이너의 접근법; 새로고침』(2021년)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202304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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