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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5) 심선민 퍼커셔니스트 

가슴을 울리는 타악기의 매력 

정소나 기자
타악기는 두드림과 울림으로 공간을 채우고 심금을 울리는 파워풀한 악기이다. 연주 내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가 곡의 클라이맥스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도 타악기의 몫이다. 정승우 이사장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타악기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는 퍼커셔니스트 심선민 교수를 만났다.

▎타악이라는 분야를 다양한 레퍼토리와 협주를 통해 꾸준히 소개하는 퍼커셔니스트 심선민 교수.
퍼커션(Percussion)은 서양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퍼커셔니스트는 타악기의 기본인 스네어드럼, 마림바, 팀파니부터 수십 개에 이르는 퍼커션을 다루는 연주자를 말한다.

“타악기는 악기의 소재, 두드리는 방식 등에 따라 수천 가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금속, 나무, 가죽 등 악기의 재질과 타점, 강약 등 두드리는 정도에 따라 무한대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타악기의 매력이에요.”

이런 타악기의 매력에 푹 빠져 퍼커셔니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심선민은 선화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대학원(Kunstlerische Ausbildung)과 동 대학원 최고연주자 과정(Solistenexamen)을 졸업했다.

한국인 최초로 제5회 폴란드 국제 현대음악 콩쿠르 솔로 부문 1위 및 전체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제5회 슈투트가르트 국제 마림바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3위, 일본 Experimental Sound Art & Performance Festival 2010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챔버오케스트라, 독일 코트부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을 비롯한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퍼 뮤직페스티벌, 스위스 베른 국제음악페스티벌, 스페인 발렌시아 국제타악페스티벌, 영국 맨체스터 타악페스티벌 등 다양한 국제 페스티벌에서 초청 독주회를 여는 등 솔리스트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 독일 등 국내외 음악대학과 국제 페스티벌 초청 마스터클래스 및 국내외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2012년부터는 서울모던앙상블의 대표 및 음악감독으로서 현대음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국립 강원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타악기 회사인 콜베르그 퍼커션(Kolberg Percussion)의 유일한 한국인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퍼커셔니스트이다.

타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지 직접 체험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활달한 편이었고,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참 좋아했다. 그런 내게 어머니께서 성악을 전공하는 것을 제안하셨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두달을 채 배우지 못한 시점에서 선생님께 좋은 성악가로 성장하기에는 성대가 약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나와 잘 맞는 악기가 무엇일지 고민하던 중, 초등학교 합주 시간에 타악기를 맡아 즐겁게 연주했던 기억이 떠올라 곧바로 타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타악기는 30여 년째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타악기는 다른 악기와 달리 단음과 박자, 강약으로만 표현하는 제한적인 악기라는 편견이 있는데.

보통 타악기라고 하면 드럼 세트나 난타, 장구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타악기는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음정이 없는 스네어드럼, 베이스드럼, 봉고, 콩가 등은 박자와 강약, 리듬의 다양성으로 표현하지만 그것들이 합쳐진 멀티 퍼커션 곡을 연주하면, 다양한 사운드가 창조되어서 신기하고 다채로운 음악이 탄생된다. 또 마림바, 비브라폰, 실로폰, 글로켄슈필 등 음정이 있는 타악기도 많다. 그중에서 특히 5옥타브의 음정을 가지고 있는 마림바는 타악기 중에서 가장 많은 음정을 가지고 있는 악기이다. 멜로디를 연주하고 음악적인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타악기다.

퍼커션 독주회를 열어 독주 악기로서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약 10년 전부터 퍼커션이 독주 악기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독주회를 구성할 때는 현대음악과 퍼커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학구적인 곡들을 프로그램에 포함하고, 생상의 ‘단세 마카브르’ 같은 대중이 즐거워하고 친숙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을 함께 넣어 연주를 구성한다.

끝날 때까지 한 가지 악기로만 연주하는 다른 독주회와 달리 퍼커션 독주회에서는 다양한 타악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대에 다양한 악기를 세팅해 최대한 여러 가지 악기를 돌아가며 다채롭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타악기만의 매력은.

무한으로 창조할 수 있는 사운드와 컬러, 이것이 다른 악기가 흉내 낼 수 없는, 타악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타악기는 악기의 소재, 두드리는 방식 등에 따라 수천 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 금속, 나무, 가죽 등 악기의 재질과 타점, 강약 등 두드리는 정도에 따라 내는 소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 속에서도 새로운 소리를 계속해서 창조해낼 수 있어 처음 들어보는 소리, 생각하지 못했던 소리들을 청중에게 들려줄 수 있다. 가끔 내가 원하는 사운드를 찾기 위해서 생활용품 전문점이나 철물점, 목공소 같은 곳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보통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타악기가 무대에서 가장 뒤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고 타악기가 다른 악기를 뒤에서 받쳐주기만 한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곡의 클라이맥스,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 타악기의 몫이다. 연주 내내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셈이다. 무율 타악기 중에서 대표적인 악기인 스네어드럼, 베이스드럼, 톰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악기들은 솔로곡에서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사운드로 청중을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타악기이다.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에서는 리듬을 이끌어주어 곡의 절정에 이르게 하며, 마지막 정점에서 폭발적인 효과를 내줄 수 있는 유일한 악기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찾아낸 소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뭔가.

언젠가 미국의 작곡가 David Friedman의 곡을 연주하게 됐다. 작곡가가 작곡한 곡의 악보를 토대로 해석해 연주하는 보통의 클래식 연주와 달리 이번 곡은 반은 악기를 정해주고, 나머지 반은 악기를 정해주지 않고 온전히 연주자의 몫으로 남겨뒀다.

독일에서의 연주를 앞두고 곡에 어울리는 금속 악기와 북 종류를 찾느라 인사동 구석구석을 누비고 철물점 등을 돌아다녔다. 결국에는 양은 냄비와 전통 악기인 장구를 사용해 나머지 반을 한국적인 음색으로 해석해 연주를 했다. 악기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과정도 재미있었고, 아메리칸 스타일과 한국적 정서가 어우러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큰 호응을 받았던 연주라서 그런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도 꼭 한 번 재연을 해보고 싶다.

그동안 연주를 해오면서 힘들거나 보람을 느낀 때가 있다면.

일단 악기 규모가 크기 때문에, 공연을 할 때 악기 운반 비용이 추가된다. 또 두드리는 악기이기에, 너무 작은 공간이면 귀에 부담이 갈 수도 있는 등 장소 제한이 더러 있어서 다른 악기에 비해서 공연 섭외가 순탄하지 않을 때가 있다. 타악기가 아직은 일반 관객들에게 생소하지만, 한번 공연을 경험하면 그 매력에 빠져서 타악기 공연을 보러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분이 많다. 그런 관객들을 보면 더욱더 사명감이 느껴진다.

또 오케스트라에서도 조금씩 더 새로운 음악, 획기적인 기획에 도전하는 분위기다. 오는 6월 22일 원주 시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Arvan Dorman의 Frozen in Time이라는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 곡은 마림바, 비브라폰, 글로켄슈필, 크로탈레스, 카우벨, 스네어드럼, 하이헷, 베이스드럼, 톰툼, 심벌즈 등 정말 다양한 타악기를 한꺼번에 무대 앞에 세팅해 연주하는 곡이다. 아마 국내에서는 퍼커션 솔리스트가 가장 많은 타악기를 가지고 협연하는 날이 될 것 같다.

타악은 요즘 트렌드인 융합과 협업에 최적화된 장르 아닌가.

그렇다. 타악기의 장점은 어떠한 아이디어를 내서 융합과 협업을 하면 ‘최초 실험’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솔로보다는 협업 공연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타악기의 음색과 다른 악기의 음색이 만나서 탄생하는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기대감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또 미술이나 무용 등 다른 장르의 스토리와 음악의 스토리에 맞추어서 그 느낌에 맞는 공연을 하는 것도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이동할 때 악기 운반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다.

타악기는 악기의 무게와 크기, 개수 등의 문제로 혼자 운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주자끼리 서로 도와주기도 한다.

독일에서 연주 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연주 때마다 항상 직접 차를 렌트해서 악기를 운반하곤 했다. 보통 연주 전에 운반하게 되면 이미 팔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오전에 운반을 마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오후부터 리허설을 진행했다.

한국 귀국 후부터는 운반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악기 나르는 것을 도와주신다. 공연을 하기에는 훨씬 더 수월하고 공연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외국에서의 연주 경험이 풍부하다. 해외 관객과 한국 관객 간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친다거나 연주자가 연주할 때 소음을 내는 등 공연장 에티켓이 조금 아쉬웠다. 요즘에는 한국 관객의 공연 관람 수준이 정말 많이 올라가 연주할 때 마다 기분이 좋다. 예전에는 나도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연주자의 입장에서 너무 좋으니 박수를 쳐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 초대권을 가지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많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관심이 있는 공연의 티켓을 직접 구입해 연주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은 듯하다.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수준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단지 지금까지도 관객들의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은 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현대음악 앙상블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지켜보면 현대음악을 보기 위해서 공연장을 찾는 한국 관객의 숫자는 해외 관객의 수와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현대음악의 매력을 한국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 또한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원예술프로젝트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하다.

다원 예술은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더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 실험과 도전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관념을 깨며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있는 정말 멋진 도전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연주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 느낀 것들을 토대로 후배들이 좋은 음악가로, 행복한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다. 또 퍼커션은 대중들이 아직 잘 모르는 희소성 있는 악기이기에 이 멋진 악기들을 계속 알려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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