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산업, 그중에서도 IT를 비롯한 테크놀로지의 심장이다. 이곳에서 구글과 애플 같은 세계를 선도하는 초일류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범수 대표는 투자 시장을 이끌 기술 화두로 단연 생성형 Ai를 꼽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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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모이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실질적으로 후원하는 인프라와 자본이 모두 갖춰진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다. 그렇기에 매일같이 수많은 기업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 글로벌 창업 메카인 이곳에서 투자사를 운영하는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의 김범수 파트너를 만나 최근의 다이내믹한 기술·경제 변화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상인: 이렇게 시간 내줘 진심으로 감사하다.
김범수: 상인님과의 대화는 언제든 환영이다.
이: 영광이다.(웃음)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는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운용되는 펀드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부분에 집중하나?
김: 그렇다. 본사는 한국에 있고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두고 있다. 대표 파트너 세 명이 2000억원 규모 펀드를 함께 운영한다. 우리는 주로 얼리 스테이지 투자에 집중한다. 우리와 가치가 통하는 회사라면 시리즈 A뿐 아니라 그 이전인 시드나 프리시드 단계에도 투자한다.
이: 실리콘밸리에 직접 진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 스타트업 생태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가장 진화한 형태의 모습은 어쩌면 실리콘밸리에 있지 않을까 한다. 진화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를 현지에서 직접 연구하고 여기서 찾은 장점들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적용해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투자회사를 만들었다.
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버는지도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에서 투자하며 얻은 노하우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김: 좋은 질문인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의 최종 목표가 IPO라고 가정하고, 이것을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와 비교해보자.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는 사실 어느 정도 쌓아온 성적들, 즉 트랙레코드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어떤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할지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시험에서 한두 번 100점을 받았다고 해서 이를 바탕으로 명문대 진학 확률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얼리 스테이지에 투자하는 우리는 지금 당장의 성적보다 이 회사나 팀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가를 본다.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창업가의 행동력이 얼마나 좋은가’다. 창업가와 만나서 몇 마디 아이디어만 나누어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창업가는 며칠 후에 적극적 팔로업을 하거나 추가 작업물을 들고 오지만, 어떤 창업가는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경우 투자사는 전자를 훨씬 선호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지적 정직성’이다. 대부분의 창업가는 에고(ego)가 강한 편이다. 하지만 자기가 틀렸음을 인지했을 때 망설임 없이 잘못을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 지적 정직성이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필수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단적 리더십’은 지양하는 편이다. 산업화 시대의 사업가들처럼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접근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창업가는 자기보다 더 훌륭하고 똑똑한 A급 인재들을 모시고 일해야 한다. 창업가가 너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면 그 조직에는 창업가보다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만 모이게 될 것이다.
이: 좋은 포인트다. 요즘 스타트업 신에 겨울이 왔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미 현실로 다가온 경제위기 시그널에 대해 투자자의 관점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
김: 개인적으로는 현재 경제위기가 이 길에 들어선 후 겪는 세 번째 위기다. 사실 이런 경제 사이클의 영향은 회사가 크게 성장한 후 결실을 수확할 때 더 큰 연관성이 있다. 얼리 스테이지의 경우 경제위기 상황과 아닌 상황에 엄청난 차이가 있지는 않다. 많은 이가 겨울이 얼마나 갈지를 논하고 연구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거다. 『The Black Swan』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쓴 『Antifragile』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경제 호황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엄청난 수익을 올리지만, 경제가 악화되는 시점에서 크게 추락하는 투자자가 많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반대로 여러 하이프(Hype, 사람들의 기대가 과하게 몰리는 현상)에 올라타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바탕으로 가치투자를 한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공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우리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하이프나 기술,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하는 투자는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다.
이: 하이프에 휩쓸려 투자하는 방식은 어쩌면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최근 하이프가 가장 두드러진 생성형 인공지능, 블록체인, 혼합현실 등은 어떻게 생각하나?
▎스타트업 데모데이에 연사로 나선 김범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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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개인적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적용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이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느 정도 스케일로 바꿀 수 있을지 잘 가늠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그리기 어려운 기술에 선뜻 투자하기 어려워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투자 기회를 찾지 못했다. 혼합현실에 관해서도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최신 디바이스를 여러 차례 시도해봐도, 여전히 기기 착용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을 큰 스케일로 바꿀 거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이: 어떤 면에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하이프는 다르다 생각하나?
김: 우선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한 하이프가 한국보다 미국에서 강력하다 생각한다. LLM(초거대 언어 모델)을 활용해 인터페이스 차원에서 밸류를 더해주는 형태의 서비스들이 매일같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서비스들이 깊이가 얕기는 하지만, 지난 20년간 쌓아온 실리콘밸리 경험에 비추어보면 마치 고생대처럼 수많은 생명이 나타나고 또 사라져가며 옥석이 가려질 거라 생각한다. 사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촉발한 변화는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생각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만들어온 제스퍼(Jasper) 같은 비즈니스도 몇 년 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 오픈AI의 챗(Chat)GPT가 세상에 보여준 생성형 인공지능의 적용은 이 기술이 대중에게 확산하게 된 티핑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마치 넷스케이프(Netscape)의 상장이 인터넷 시대의 대중화를 열었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 웹브라우저를 장악하는 회사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브라우저는 일종의 코모디티(comodity, 상품)가 되었다. 넷스케이프가 1995년 상장하고 9년 뒤인 2004년에 훨씬 발전한 형태의 인터넷기업인 구글이 상장했다. 이런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과연 오픈AI의 챗GPT가 인공지능 세상을 온통 장악할 것인가? 아니면 인터넷 대중화 이후 태어난 수많은 위대한 기업처럼,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알린 신호탄일 것인가? 바로 이런 여러 측면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이 최근 20년간의 수많은 하이프 중 개인적으로 가장 투자가치가 높은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많은 부분 공감하고, 또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깊이 고찰할 만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투자자 입장에서 창업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김: 개인적으로 창업을 권하는 편은 아니다. 창업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10년 넘게 실행에 옮기지 않은 지인도 여럿이다. 반대로 창업할 사람은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어떻게든 한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전통적 기업에서만 오래 일하다 보면 분명 관료적 업무 처리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 변화하는 기술이나 트렌드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스타트업은 지난달에 내가 생각했던 것이 이번 달에 아무 쓸모없어지는 환경에 나를 얼마나 노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창업에 나서거나 초기 스타트업에 조인하기 좋은 사람들일 거다. 그러면 내가 조인한 스타트업이 3년 후 망했어도, 그 안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일들을 겪으며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또 이를 바탕으로 다음에 어떤 도전이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이상인 -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Google 본사에서 YouTube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Staff designer)하고 있다. Microsoft 본사, 클라우드 인공지능 그룹의 플루언트 디자인 스튜디오를 총괄했고, Deloitte Digital 뉴욕 오피스의 창립 멤버로 근무했다. 디지털 에이전시인 R/GA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외 세 권의 베스트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