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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7) 김주원 발레리나 

발레는 존재의 이유 

정소나 기자
아름다운 라인, 호소력 있는 연기로 사뿐사뿐 내딛는 발걸음마저 하나의 안무로 느껴지는 몸짓을 가진 발레리나 김주원.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발레리나 김주원을 만났다.

▎동시대 발레리나 중 가장 연기력과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김주원 발레리나.
발레는 인간의 신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긴 라인을 찾아가는 예술이다. 인체의 아름다운 선과 절제된 표현으로, 또는 여러 명의 통일된 동작으로 희로애락을 전달한다.

보통 발레라고 하면 과거로부터 부유한 계층이 즐기는 고상한 취미 혹은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몸동작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주인공은 발레에 대한 이런 편견을 깨고자 오랜 기간 여러 공연과 기획을 통해 발레의 보편화에 힘쓰고 있는 김주원 발레리나다.

동시대 발레리나 중 가장 연기력과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김주원 발레리나는 볼쇼이발레학교를 졸업했으며 1998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2012년까지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다. 발레 공연 [해적]으로 데뷔한 후 [지젤]로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2012년 이후 [팬텀],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다수 공연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세계 최고 무용수에게만 허락된다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했으며,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최근 어린이, 청소년의 문화예술 교육에도 참여하며 발레 교육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저한테 만족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발레리나임에도 언제나 겸손히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발레리나 김주원을 만나 발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발레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예체능에 조예가 깊으신 부모님께서 4남매 모두에게 여러 가지를 두루 가르치셨다. 미술도 배우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레슨도 받았다. 태권도, 체조, 테니스와 발레도 함께 배웠다. 그 많은 것 중 유일하게 재미있고 지겹지 않은 것이 발레였다.

처음에 발레를 배우면 자세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으신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다행히 잘 맞았던 것 같다. 다양한 기회를 주셨지만 결코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으시고 늘 뒤에서 지지해주시고 믿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지금까지 발레를 할 수 있었고 늘 감사한 마음이다.

발레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소수의 특권 계층만 향유하는 제한된 장르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는데.

발레의 역사가 왕족이나 귀족으로부터 시작되다 보니 그런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최초의 발레 스타가 [밤의 발레]라는 작품에서 ‘태양’ 역을 맡으며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루이 14세였을 만큼 왕족과 귀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발레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게 됐다.

역사를 거듭하며 이제는 한국에서도 특별한 홍보 없이도 발레 공연을 찾는 열성적인 발레 팬이 많아져 대중예술이 되었다.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티켓 오픈 첫날 매진될 정도고, 유아 발레나 취미 발레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됐다.

동시대 최고의 연기력과 표현력을 지닌, 소위 ‘발레 여신’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가 있나.

한마디로 콤플렉스 덩어리다.(웃음) 발레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몇 시간씩 커다란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체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나의 가장 못나고 부족한 면을 마주하게 된다.

나와 동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나 후배들만 봐도 세계적인 기준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완벽한 체격과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발레리나가 너무 많다. 사실 나는 아주 강하지도 않고, 아주 유연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완벽한 라인을 가진 것도 아니고 최고의 테크니션도 아니다. 모든 부분을 ‘적당한 정도’만 가졌기에 훌륭한 발레리나들과 발 맞춰가기 위해 심한 콤플렉스를 이겨내고자 엄청난 노력을 했다.

목이 가늘고 긴 편이지만, 남들보다 튀어나온 뼈 하나가 더 있다. 언젠가 목이 너무 아파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사진을 보며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냐?’라고 얘기할 정도로 기형적인 모양이다. 그 때문에 가끔 통증도 심하고,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기에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젤] 공연을 앞두고는 콤플렉스인 지저분한 라인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승화하려고 한 가지 포즈를 새벽 2시까지 반복 연습해 나만의 라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가장 아름다운 지젤’이라는 찬사와 함께 아직까지도 내가 출연하는 발레 [지젤]을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이라고 얘기해주시는 분이 많다.

또 발 모양은 토슈즈 신기에 적합하지 못해 적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고, 디스크가 터져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지낸 적도 있다. 척추도 너무 일자여서 구부러지는 동작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어깨관절도 약간 빠져 있어 근력을 강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심장도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숨이 턱까지 차는 상황이나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기 힘드니, 발레하기 힘든 조건들이 이렇게나 많다.

하지만 발레를 너무 사랑하기에 다 이겨낼 수 있었다. 누구나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늘 완벽한 조건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일을 열렬히 사랑하면 어려운 환경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노력하며 고생한 시간은 결국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예술가에게 콤플렉스는 성장에 꼭 필요한 좋은 영양분이다.


25년 동안 무대에 서고 있다.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

이 나이가 되도록 계속 무대에 서는 이유는 그저 관객과의 소통이 좋아서다. 발레라는 예술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 자체가 너무 멋지지 않나? 무대 위에서 춤출 때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또 이런 나의 춤을 보면서 삶이 힘들 때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해주는 관객들을 만나는 순간은 나를 계속 춤추게 하는 이유다.

한국의 스타 발레리나로 손꼽히며 예술감독, 대학 교수로도 활동하고 뮤지컬 [팬텀]의 ‘벨라도바’ 역을 비롯해 연극배우로도 활동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별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새로운 제의를 받을 때마다 궁금하고, 재미있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시작했던 일들이다. 20년이 넘도록 무대에 서면서 많게는 1년에 150회 정도 공연을 올리는 김주원의 춤이 관객들은 지겹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춤 동작에 많은 언어와 깊이를 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색다른 시도를 하며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했기에 용기를 내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더 유니크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후배들에게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다.

얼마 전 광명극장에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과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국립발레단 시절 이원국 선배님, 김용걸 선배님, 김지영씨와 나, 이렇게 4명이 함께 열심히 춤을 췄던 시절이 있었다. 최태지 단장님이 국립발레단에 계실 때 발레를 대중화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다. 우리가 그때 함께했는데 그래서인지 뜨거운 전우애 같은 게 있다. 이제는 모두 발레단에서 나와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무용계 선배가 됐다. 최 단장님도 벌써 예순을 넘기셨지만 예술계 리더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단장님과 함께하는 일종의 ‘발레 토크쇼’로 우리 4명을 모두 불러주셨는데, 일정을 한 번에 맞출 수 없을 만큼 모두 바빠 4분기로 나눠서 두 번째 주자로 공연을 했다.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얘기도 하고, 단장님과 국립발레단 시절 얘기도 하고, 인연에 대한 얘기도 하고, 작품 창작 활동에 대한 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를 그리워하는 관객이 많았는지 많은 호응을 받으며 함께 교감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취미나 운동으로 하는 발레에 대한 의견은.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다 발레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발레는 과학적이고 규칙적인 운동이자 몸의 균형을 맞추는 운동이다. 오른쪽을 움직였으면 왼쪽도 꼭 움직여 공평하게 밸런스를 잡아주고 몸의 순환을 돕기에 몸이 정말 건강해진다.

또 발레는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한 운동이다. 토슈즈를 신고 발꿈치를 들어 계속해서 땅으로 내려가려는 뼈와 근육들을 한껏 위로 끌어올려 ‘풀업’ 시킨다. 중력을 이겨내려는 운동이기에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어떤 운동보다 균형과 순환, 노화 방지에 좋은 발레의 매력을 많은 사람이 경험해보길 바란다.

예술계에도 인공지능(AI)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발레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해 안무를 창작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AI가 발레계에도 영향을 줄까.

사람이 하는 것을 AI가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세상이 점점 기계화되고 챗GPT처럼 많은 것이 자동화되는 시대가 되니 사람들은 오히려 감성적인 것에 더 끌리는 듯하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계산되지 않은 새로운 동작은 사람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 똑같은 동작을 백 번 하더라도 매번 사람들이 표현하고 반응하는 움직임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이 점점 기계화될수록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울림을 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예술 활동은 더욱 가치를 인정 받으리라 기대한다.

해외 관객과 한국 관객 간의 차이가 있다면.

나라마다 관객들의 관람 에티켓이 조금씩 차이가 있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 일상이 된 요즘에는 관객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됐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전 세계에서 열리는 최고의 공연을 모두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어느 나라를 가도 퀄리티 높은 영상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섭렵한, 어쩌면 예술가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높은 안목을 갖춘 관객이 많아진 것 같다.

오히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기 쉬운 나 같은 클래식 예술가들이 더 부지런히 공부하고 유행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의 댄스팀’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꿈의 댄스팀’이 만들어졌다.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풍부한 영감을 받으며 잘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시작된 활동으로 ‘꿈의 오케스트라’는 이미 10년 넘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 발레를 배워본 적 없는 어린 친구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서로 눈을 맞추는 것도 부끄러워하고, 자기 의사 표현에도 서툴렀던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춤추고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주저 없이 의사 표현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오히려 내가 많은 감동과 에너지를 받았다.

소외계층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을 장려하는 꿈의 댄스팀을 계기로 내가 받은 사랑과 가진 재능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눠야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건가.

그렇다.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교육은 내가 누군지를 먼저 알게 하는 거다. 독일에서는 어릴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성교육이라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행해지는 교육은 대부분 상대평가다. 누가 어떤 걸 더 많이 배우는지, 등수는 어떤지 비교하기 급급하다 보니 당연히 내가 누군지를 알 시간이 없다.

나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교육은 바로 문화예술을 통한 교육이다. 영유아 시기부터 문화예술 교육을 받아 내가 누군가를 먼저 알고 자라는 아이들은 정말 다르다. 스스로 무언가를 표현하며 내가 누군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문화예술 교육은 척박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남녀노소 할 거 없이 꼭 필요한 교육이다.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늘봄학교라는 방과 후 학교에 ‘김주원의 발레 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전국 초등학교 1, 2학년들을 위해 영상으로 제작해 더 많은 아이가 함께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사교육으로 많은 돈을 들여 발레를 배우는 것보다 쉽고,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연구원들이 함께 모여 열심히 노력 중이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매번 진심으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해내는 하루살이 같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는 없지만, 지금처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이 살고 싶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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