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42) 

좋은 세계 

19세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는 그리스신화나 고전문학 속 이야기를 차용해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표현했다. 생존, 사랑, 재미, 자유, 힘 등 다섯 가지 욕구가 그의 캔버스에 어떻게 그려졌는지 음미해보자.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 1888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심리치료 이론인 현실치료(Reality Therapy)에는 좋은 세계(Quality world)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 개인의 욕구와 소망이 충족되는 내면세계를 의미하는 ‘좋은 세계’는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는지에 따라 각자 다르게 형성된다. ‘결혼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사는 삶’에 대해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아무 관심도 없다. ‘반려동물을 자신의 자녀처럼 키우는 삶’, 혹은 ‘봉사활동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삶’,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삶’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다. 자신이 설정한 ‘좋은 세계’에 부합하는 모습인지, 그렇지 않은 모습인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현실치료에 따르면, 인간은 다섯 가지 욕구-생존, 사랑, 재미, 자유, 힘-에 따라 좋은 세계를 구성하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사회에서 기능하는 특징들이 달라진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

영국 화가 워터하우스는 영국 왕립아카데미의 마지막 세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신화 속 이야기, 문학 속 이야기를 자주 주제로 삼았는데, 그림 [샬롯의 여인]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계관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 ‘샬롯의 여인’ 속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림 속 여주인공은 샬롯 성 영주의 딸 일레인이다. 그녀는 직접 바깥을 보면 죽음에 빠지는 저주를 받아 평생 성에 갇힌 채 거울로만 세상 밖을 보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거울에서 랜슬롯 경을 보게 된 일레인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마음에 품은 남자를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던 일레인은 성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성을 나가자 바깥세상을 보여주던 거울은 깨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각배에 몸을 싣고 그를 보러 가고 있다. 그녀의 죽음을 예견한 듯 배 위의 초는 두 개가 이미 꺼져 있고, 한 개만 불꽃을 피우고 있다. 평생 성 안에 갇힌 채 직물을 짜기만 했던 그녀는 자신이 만든 태피스트리를 배에 싣고 가고 있다. 만약 자신이 죽더라도 누구인지를 알리기 위해 뱃머리에는 ‘샬롯의 여인’이라는 글귀를 새겼고, 랜슬롯 경과 그녀가 만났을 때 그는 ‘샬롯의 여인이 누구인가’라고 물어야 했던, 존재조차 알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다섯 가지 욕구 중 생존 욕구가 더 높았더라면 그녀는 성 안에서 직물을 짜며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생존이 아닌 사랑을 선택했고, 비록 그 사랑이 쌍방이진 못했지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머물지는 않았다. 생존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보수적이다.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 하고,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고, 단단한 울타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준법정신이 강하고 자극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금전적으로도 아끼고 모으려는 욕구가 크다.

일레인이 좇았던 사랑은 사랑과 소속의 욕구라고도 한다. 사랑 욕구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친밀한 관계가 중요하며, 소속 욕구가 큰 사람들은 깊은 관계보다는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느낌을 더 중시한다. 그러나 둘 다 주변과 관계 맺는 것에 관심이 있고,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 욕구가 큰 사람은 일레인처럼 자신의 안전보다 관계를 위해 정신적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다. 관계 때문에 자신을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를 위한 노력에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없을 수 있다.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한 샬롯의 여인처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1891
다섯 가지 욕구 중 하나인 ‘힘’은 육체적인 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권력과 같은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넓게 보면 힘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까지도 포함한다.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대중과 전문가로부터 인정받기를 희망하고, 사업가는 자신의 사업이 소비자와 업계에서 좋은 평판을 듣기를 원한다. 또 이성으로서 매력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구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카페 스타벅스의 로고 가운데에는 초록색 인어가 그려져 있다. 스타벅스 창업자들은 멜빌의 작품 『모비딕』에 등장하는 커피를 사랑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이용해 스타벅스라는 상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신화 속에서 항해사들의 마음을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바다의 여신 세이렌을 그 로고의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선원들이 세이렌의 매력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바다에 뛰어들었듯이 소비자들이 스타벅스의 매력에 빠지게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이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여 선원들을 유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로부터 이 사실을 듣게 된다. 키르케는 세이렌섬을 지날 때 밀랍을 뱃사람의 귀에 틀어막아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으며, 만약 매혹적인 노래가 정말 궁금하면 돛대에 몸을 단단히 묶도록 했다. 결국 그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도 죽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되었으며, 이에 자존심이 상한 세이렌은 스스로 목숨을 잃게 된다.

세이렌은 자신의 목소리가 모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얻은 만족감은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한 선원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도 죽지 않은 사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만큼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가장 최상위 욕구로 둔 세이렌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정 욕구에 지나치게 많은 가치를 부여한 사람들은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평가와 판단 때문에 자존감이 크게 휘둘릴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호기심이 내는 목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궁금한 것은 꼭 알아야 하고, 배워보고 싶고, 알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며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 때문에 넘지 말야아 할 선을 넘는 경우도 있다. 워터하우스가 그린 작품 [판도라]에는 비싸 보이는 상자를 열어보고 있는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이다. 그리스신화 속 올림푸스의 왕 제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달아난 프로메테우스를 심판했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는 판도라를 아내로 선물한다. 형은 동생에게 그 선물을 받지 말라고 했지만,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반한 동생 에피메티우스는 제우스의 선물을 받는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를 주며 절대로 열지 말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던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버리고 만다. 판도라가 생존 욕구가 더 높은 인물이었다면 제우스의 지시를 따르고 안전함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판도라는 재미 욕구가 더 높았다. 그 상자 안에는 인간세계를 이간질하고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악의 근원이 가득했고, 이때 흘러나온 고난들이 인간세계에 퍼져 인간들은 고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판도라가 놀라서 상자를 닫았을 때 그 안에는 희망만 남아 있었다. 많은 고난이 인간에게 주어졌지만,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원했던 것이 부모로부터 수용된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했거나, 엄격한 부모 아래에서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강요받았다면 성인이 되어 재미 욕구를 다른 사람보다 더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판도라처럼 규칙을 어기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재미 욕구는 삶의 질을 위해 분명히 보장받아야 하고, 마땅히 추구해야 할 욕구 중 하나이다.

나만의 왕국에서 느끼는 자유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 1896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키르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들켜 섬으로 추방당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여성은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르케는 자신만의 왕국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이곳을 유토피아처럼 삼는다. 같은 환경일지라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상황은 속박이 될 수도, 자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치료 이론의 창시자 윌리엄 글라서는 “자유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내게 강요하는 욕구와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욕구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한 진화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자유 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지시받는 것을 싫어하고 동시에 다른사람에게 지시하는 것도 싫어한다. 규칙이나 강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에 생존 욕구가 높은 사람과 반대 성향을 지닌다.

자유의 범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자신의 환경과 입장에 따라 자유로움을 정의 내리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서운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엄격한 통금 시간을 지켜야 했던 딸은 결혼하면서 자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여행과 도전을 좋아하던 여성은 결혼하면서 자유를 잃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생존, 사랑, 힘, 재미, 자유. 이 다섯 가지 욕구는 모두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 우선순위가 조금씩 다르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확인하고, 내게 필요한 것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알고, 나와 타인의 우선순위가 다르기에 가치관과 태도에 차이가 있음을 안다면 살아가는 데 큰 지혜가 될 것이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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