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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이탈리아 로마(ROMA) 

로마 역사와 공존하는 현대건축 ‘음악의 공원’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역사, 문화, 예술, 건축의 도시이다. 하지만 로마의 매력은 역사와 전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외무성 청사, 로마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외에도 자하 하디드, 렌초 피아노 등 현대건축계 거장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몰려 있는, 이른바 ‘컨템퍼러리 디스트릭트(Comtemporary District)’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로마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하려면 한 번쯤 찾아가볼 만한 흥미로운 지역이다.

▎로마 최대의 음악당 아우디토리움. 입구 광장의 올리브나무가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 사진:정태남
이탈리아의 도시를 얘기할 때 첸트로 스토리코(Centro storico)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는데 직역하면 ‘역사 중심지’이다. 첸트로 스토리코 지역 안에서는 옛 분위기를 해치는 새로운 건축물은 원칙적으로 세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조그만 간판을 하나 달려고 해도 매우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야 한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약 28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가 흐르는 곳으로, 지구상에서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래서 지금도 로마에서는 땅을 조금만 파도 고대 유적이 발굴된다.

‘역사 중심지’ 바깥 북쪽지역


현재 로마의 첸트로 스토리코는 19㎞가 되는 로마제국시대 성곽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서울로 치면 4대문 안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곽은 3세기 후반 로마제국의 운명이 기울어질 때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로마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한편 ‘고대 로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이다. 로마로 통하던 모든 길 중에서 기원전 3세기 초반에 세워진 비아 플라미니아(Via Flaminia)는 로마 심장부에서 이탈리아 북동부 리미니 항구로 향하던 도로인데 아스팔트를 깔아 지금도 국도로 사용된다.

첸트로 스토리코의 북쪽 경계인 포폴로 광장에서 벗어나 비아 플라미니아를 따라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올라가면 컨템퍼러리 디스트릭트(Comtemporary District)가 펼쳐지고, 약 2km 지점에서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과 교차한다. 교차점 서쪽에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국립21세기현대미술관(MAXXI), 동쪽에는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아우디토리움 파르코 델라 무지카(Auditorium Parco della Musica)가 세워져 있다. 아우디토리움은 ‘강당’, ‘음악당’이란 뜻이고 파르코 델라 무지카는 ‘음악의 공원’이란 뜻인데, 이 음악의 전당을 간단히 ‘아우디토리움’이라고 부른다.



아우디토리움 건립 계획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로마에서 열리던 주요 연주회는 모두 베드로 대성당 근처 아우디토리움 산타 체칠리아에서 열렸는데, 1950년대에 세워진 이 음악당은 음악의 나라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대표하기에는 규모도 작고 시설도 부족했다. 사실 첸트로 스토리코 지역 안에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로마에 변변한 현대식 공연장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아우디토리움에 보존된 고대 로마 별장 유적지. / 사진:정태남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 시정부는 첸트로 스토리코 지역 바깥 북쪽에 있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와 그 주변 녹지대인 파리올리 언덕 사이에 방치된 널따란 지역을 개발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이곳에 새천년을 맞는 로마를 상징할 만한 새로운 현대식 음악의 전당을 세우기로 했다. 이리하여 로마 시정부는 1996년에 대형 콘서트홀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9명을 선정하여 계획안을 맡겼다. 당시 나는 쾰른 필하모니홀을 설계했던 독일 건축가 부스만&하버러 팀에 소속되어 이 국제현상설계에 참가했다. 최종 당선작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계획안.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지닌 강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형태와 공간을 다루는 숙련된 능력, 재료에 대한 뛰어난 감각,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에 대한 깊은 이해 등인데, 아우디토리움은 이러한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로마의 새로운 명소


▎아우디토리움 안에 있는 역사박물관. 그 너머로 고대 로마 별장 유적지가 보인다. / 사진:정태남
아우디토리움은 기본적으로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커다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목을 숨긴 거북이 가족처럼, 또는 악기통 세 개를 모아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세 개의 커다란 ‘덩어리’는 다름 아닌 세 개의 주요 공연장이다. 즉, 음악의 수호 성녀 산타 체칠리아의 이름을 딴 2800석 규모의 산타 체칠리아 홀,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주세페 시노폴리(1946~2001)를 기념하는 1200석의 시노폴리 홀, 이탈리아의 유명한 현대음악 작곡가 고프레도 페트라시(1904~2003)를 기념하는 750석 규모의 페트라시 홀로 불리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콘서트홀이다. 산타 체칠리아 홀은 합창단과 대형 오케스트라의 심포니 콘서트뿐만 아니라 록음악 콘서트도 열린다. 시노폴리 홀은 무대와 좌석이 공연의 종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으며, 페트라시 홀은 발레, 연극이나 현대음악 또는 스크린 영사 공연을 위해 무대 앞에 막을 내려 앞무대를 만들 수 있는 장치도 갖추었다. 이 세 개의 콘서트홀은 각각의 기능에 맞추어 서로 다르게 디자인되었지만 모두 납으로 만든 지붕과 체리 나무로 마감한 인테리어 장식을 통해 뛰어난 음향 시설을 갖춘 완벽한 공연 공간이다. 이 세 개의 홀 외에도 전시 공간, 음악 및 공연 관련 도서관 등을 비롯하여 서점, 카페, 레스토랑 시설이 있다. 세 개의 홀은 마치 입구의 둥근 광장을 감싸듯 세워져 있고 광장에 심어진 올리브나무는 남국의 정취를 자아낸다. 이 광장과 세 개의 홀 사이는 고대 그리스의 반원형 극장처럼 계단으로 처리되어 있다. 로마는 여름에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밤이 되면 유적지에서 야외 공연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건축가 렌초 피아노는 아우디토리움 입구 광장을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관객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야외극장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겨울이 되면 이 광장은 야외 스케이트링크로 사용된다.

그런데 아우디토리움은 로마 시정부가 고대했던 것과 달리 제때 완공되지 못했다. 왜냐면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일대는 로마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첸트로 스토리코에 비해 고대 로마의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4~6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 귀족의 별장 유적이 발굴되었다. 그러자 공사는 즉각 중단되었고 로마 시정부는 새천년을 맞아 완공하려는 야심 찬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건축가 렌초 피아노는 기존 설계를 대폭 변경하여 이 유적지를 보존하고 껴안을 수 있도록 했다.


▎안내판. 아우디토리움은 3개의 커다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 사진:정태남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2년 12월 21일 이탈리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VIP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명훈이 지휘하는 음악회로 산타 체칠리아 홀을 오픈함으로써 장구한 역사의 도시 로마에 새로운 미래를 여는 현대건축의 아우디토리움이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아우디토리움은 다양한 종류의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매년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아우디토리움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다른 아주 특이한 것이 있다. 즉, 아우디토리움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먼저 역사박물관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고대 로마의 별장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별장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그러니까 아우디토리움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역사와 공존하는 미래지향적인 현대건축의 묘미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 정태남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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