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줄 맥주 한 잔이 절실한 한여름. 매일 마시던 맥주 대신 색다른 맥주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여름날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비어 소믈리에 김미연이 추천하는, 취향껏 즐기는 독특한 풍미의 맥주 12.
김미연 비어 소믈리에비어 소믈리에 월드 챔피언십(World Championship of Beer Sommelier)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국가대표 비어 소믈리에이자 유럽 공인 되멘스(Doemens) 디플롬 비어 소믈리에이다. 맥주 페어링 컨설팅 및 맥주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을 하며 맥주 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성수동에서 맥주 테이스팅 바 퍼멘티드 고스트(Fermented Ghost)를 운영하며 다채로운 맥주의 매력을 큐레이팅으로 알리고, 맥주를 마시는 맥락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1. 드라센느 세종 반 디 브루어내추럴 와인의 유행과 함께 알려진 마법의 단어 ‘펑키(Funky)’. 맥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정형화된 범주에서 벗어난 ‘펑키’라는 독특한 풍미를 사랑해왔다. 브뤼셀 센강에서 채취한 야생효모로 발효한 이 펑키한 세종은 파인애플과 베리류의 아로마와 동시에 젖은 가죽과 헛간의 복잡하고 유니크한 맛을 가지고 있다. ‘브렛(brett)’이라고 줄여 부르는 효모가 만들어낸 상쾌한 세종을한강 변에서 마셔보길 추천한다.
2. 칸티용 크릭라거와 에일로 나뉘는 맥주에는 사실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바로 ‘람빅’이라는 장르이다. 야생효모를 사용하여 오크통에서 자연적으로 발효하는 람빅은 배양효모로 만드는 맥주와 달리 2~3년 이상 지나야 만들어진다. 브뤼셀 칸티용 양조장에서 만드는 사워 체리가 블렌딩된 크릭은 미묘한 산미의 체리와 은은한 아몬드의 풍미가 느껴진다. 셀러에서 에이징될수록 우아하고 우디한 여운이 깊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 느림의 미학이 깃든 맥주를 마시며 이겨내보자.
3. 케이시 고스트노트 케이시는 99% 콜로라도 지역의 로컬 재료만 사용하고, 오크 배럴에서 맥주를 발효, 숙성하는 실험적인 아메리칸 와일드 에일로 유명하다. 고대 밀이라고 불리는 스펠트 밀을 사용해 풍부한 보디감과 독특한 발효의 풍미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크레스트헤이븐 품종의 신선한 복숭아를 통째로 넣어 여름철 복숭아의 진한 아로마와 다양한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배럴 숙성 와일드 에일의 조합이 섬세하다.
4. 그레이트 노션 라이프미국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그레이트 노션 양조장의 헤이지(Hazy) IPA. 해골 캐릭터가한아름 안고 먹고 있는 과일은 아마도 이 맥주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망고, 파파야, 구아바 등 트로피컬 과일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시트라 홉한 종류만 사용해 만든 헤이지 IPA는 쓴맛이 최대한 절제되어 달콤하면서 상큼한 과일주스를 마시는 듯하다. 매력적인 뿌연 외관부터 스무스한 질감까지, 어른을 위한 열대 과일 주스라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5. 알파인 넬슨뉴질랜드의 홉 품종인 넬슨 소빈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IPA. 지금은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홉을 미국 크래프트 씬에서 최초로 사용한 맥주이다. “It’s Nelson or Nothing”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소비뇽 블랑 와인 특유의 풍미를 구현하는 IPA는 시트러스 아로마와 쌉쌀한 비터, 호밀이 들어가 부드러운 마우스필까지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를 자랑한다. 개인적으로 올여름을 나기 위해 알파인 넬슨으로 냉장고를 채워두었다.
6. 세인트 버나두스 위트전설적인 브루마스터이자 호가든 창시자인 피에르 셀리스와 공동 개발한 벨지언 밀맥주. 가볍고 풍성한 탄산감과 함께 산뜻한 오렌지, 레몬 향에 이어 코리앤더, 허브의 화사한 아로마가 펼쳐진다. 편의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벨기에식 밀맥주의 오리지널리티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시음해보자.잔을 들고 있는 수도사처럼 행복한 미소를 띠게 될 것이다.
7. 슈렝케를라 라우흐비어 크라우젠 여름 하면 라거, 라거 하면 독일! 독일에서 가장 특별한 맥주가 있다면 밤베르크 지역의 특산품인 ‘라우흐비어’가 아닐까. 훈연 맥아로 만든 스모크 맥주인 라우흐비어에 밝은 라거를 섞어 재발효하는 독일의 전통 양조 기법으로 만들어지는 이 크라우젠이다. 투명한 황금빛 라거의 상식을 깨버리는 탁한 구릿빛 외관을 가지고 있고, 은은한 훈연의 풍미를 자랑한다. 무의식적으로 라거를 찾게 되는 여름, 서늘한 지하 암석 동굴에서 숙성한 필터링하지 않은 라거를 새롭게 시도해보자.
8. 아울치 슈퍼볼 논알코올 IPA 일반적으로 접하던 논알코올 맥주와 달리, 특별한 효모와 양조 방식으로 만들어 신선한 홉의 생생함이 살아있는 IPA. 기존의 논알코올 맥주에 실망했다면 열린 마음으로 다시이 논알코올 맥주를 시도해보자.모자익, 시트라, 아마릴로, 넬슨 소빈 등 홉을 듬뿍 사용하고 자몽, 라임, 패션푸르트 등 과일의 프레시함을 더해 쌉쌀한 IPA 본연의 맛에 생동감을 더했다.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완벽한 논알코올 맥주다.
9. 뽀햘라 바이슨 인 더 배럴룸 에스토니아에 위치한 뽀햘라 브루어리에서는 다양한 배럴을 사용해 맥주를 숙성하는 재미있는 셀러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맥주는 독특하게도 애플 브랜디 배럴에 맥주를 숙성해 13%가 넘는 다크한 발릭 포터로 만들어졌다. 폴란드 양조장과 협업해 폴란드 전통 보드카에 주로 사용하는 바이슨 그래스(Bison Grass)라는 허브를 사용한 게 특징이다. 입안에서는 설탕 두 스푼 넣은 달콤한 에스프레소가, 코끝에서는 애플 브랜디 배럴에서 오는 잘 익은 사과, 바닐라, 시나몬의 아로마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허브의 스파이시함이 마지막 완성도를 높여준다.
10. 프레몬트 Brew 6000 이열치열! 와인처럼 높은 도수를 자랑하는 맥주 스타일인 ‘발리와인(Barley wine)’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끈적끈적한 단맛과 버번위스키의 오크 풍미가 매력적인 이 맥주를 추천한다. 16개월 동안 버번위스키 배럴에서 숙성된 발리와인은 마치 흑설탕처럼 달콤하면서 건자두, 바닐라 아로마가 벨벳처럼 포근하게 퍼진다. 입안에 계속 남아 있는 풀보디의 달콤함에 취해 어느새 더위가 잊힐지도 모른다.
11. 로덴바흐 알렉산더 플랜더스 레드 에일을 베이스로 해 고혹적인 버건디 색을 가지고 있다. 600리터 이상의 오크통에서 2년 동안 숙성한 맥주, 사워 체리를 침연한 짧은 숙성 맥주를 블렌딩해 완성된다. 체리의 산미와 함께 많은 양의 레드 베리가 가득 느껴지고, 그 사이사이 오크 배럴의 존재감도 있어 복합적이면서도 훌륭한 밸런스를 보여준다.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맥주라는 별칭에 수긍할수밖에 없다.
12. 노스코스트 올드라스푸틴 배럴에이지드 많은 이에게 흑맥주의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줬던 올드라스푸틴의 배럴 숙성 버전. ‘임페리얼 스타우트’라는 스타일로 맥주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올드라스푸틴이 빠지지 않는다. 편의점 크래프트 맥주 코너에서도 캔맥주로 판매된 올드라스푸틴을 구해 배럴에이지드 버전과 비교하면서 마셔보자. 다크초콜릿, 커피, 감초 같은꽉 찬 단맛은 살짝 가벼워졌지만 버번위스키의 바닐라 뉘앙스와 우디함이 더해져 한층 더 깊은 풍미를 자아낸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여름밤에 추천하고 싶다.-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