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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범 오데마 피게 코리아 지사장 

전통을 뛰어넘는 도전 

정소나 기자
전 세계 럭셔리 워치 컬렉터들의 ‘영순위’ 위시리스트를 장식하는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또 다른 시작을 알렸다. 148년이라는 시간 동안 켜켜이 쌓아온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나인범 지사장을 만났다.

오데마 피게는 1875년 스위스 발레드주에서 시작된 워치 메이커로, 지금까지 창립자 가문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럭셔리 워치 브랜드이다. 1970년대 배터리로 구동되는 쿼츠 시계가 큰 인기를 끌면서 기계식 시계 위주였던 스위스 시계 산업이 거의 괴멸했던 쿼츠 파동 당시 선보인 로열 오크는 스테인리스스틸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럭셔리 스포츠 시계로 알려지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주년을 기념해 1993년 선보인 로열 오크 오프쇼어와 함께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모델이 됐다.

2019년에는 한계에 도전(CHALLENGE)하고, 스스로(OWN)의 유산을 지키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세를 대담(DARE)하게 역행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진화(EVOLVE)하는 오데마 피게의 철학을 반영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을 출시해 또 한 번 시계 업계를 뒤흔들었다.

그동안 극소수의 딜러숍을 통해서만 한국에 유통되던 오데마 피게는 지난 2021년 8월,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직접 진출을 선포했다. 오데마 피게 코리아의 수장으로 선임된 나인범 지사장은 미국에서 관광산업 경영학을 전공하고 2년 동안 호텔 비즈니스를 경험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코스메틱, 주류, 패션 등 다양한 브랜드의 유통·론칭 업무를 담당했다. 2013년부터는 리치몬트 코리아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로저드뷔의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며 브랜드를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8월 14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오데마 피게 부티크에서 나인범 지사장을 만나 한국 럭셔리 시계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오데마 피게 코리아의 수장이 됐다. 바쁜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데.

2021년 8월에 오데마 피게에 입사했으니 이제 막 2년을 넘겼다. 지금까지 팀을 세팅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지사가 만들어진 후 제일 먼저 합류했는데 약 9개월간은 혼자 법인 설립에 필요한 제반 업무부터 사무실 세팅과 팀원을 선발하는 작업까지 도맡아 했다. 이제는 각 부서에 적합한 인재들이 충원되었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등 오데마 피게 코리아 팀이 거의 완성 단계다.

또 지난 5월 이곳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오데마 피게의 국내 첫 번째 브랜드 부티크를 오픈했다. 스위스 발레드주에 자리한 브랜드 매뉴팩처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공간이다. 오데마 피게 시계들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오픈 당일부터 국내 시계 애호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데마 피게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중에서 몇 안 되는 독립 회사다. 제품을 소량 생산하면서도 인지도가 높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매력이 뭘까.

오데마 피게는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임에도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하는 젊은 이미지의 브랜드라는 점이다. 사실 100년 넘은 전통을 가진 브랜드들은 굉장히 보수적이기 마련이다. 시계 소재만 해도 골드, 스틸, 화이트 골드 등 전통적인 소재를 고수하는데, 오데마 피게는 세라믹이나 카본 같은 신소재도 거침없이 활용한다. 로열 오크 오프쇼어 라인으로 형형색색의 보석을 활용해 이퀄라이저의 볼륨미터와 같은 형상을 다이얼에 담은 뮤직 에디션을 출시하는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1970년대 초반 쿼츠 파동에도 굴하지 않고 실험적인 시도로 버텨냈다. 당시 남자 시계 사이즈가 대부분 35~36㎜였는데, 시계 브랜드 최초로 39㎜로 키웠고, 원형 일색이었던 케이스를 독특한 8각으로 디자인했다.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깨고 세상에 없던 스타일로 출시된 로열 오크 시리즈는 최정상의 시계 브랜드로서 오데마 피게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기 1분 전인 11시 59분을 뜻하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 라운드와 팔각형 케이스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대담한 구조에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깊이감과 세련미를 더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하고, 소통하고, 변화하려는 노력 덕분에 여느 경쟁 브랜드보다 젊은 이미지로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할 만큼 브랜드에서 한국을 비중 있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은 오데마 피게가 유통되는 전 세계 나라 중 마지막으로 지사가 설립된 나라다. 국내에 브랜드가 소개된 이후 매년 성장세를 보여왔고, 시장 자체도 어느 정도 성숙했다는 판단으로 중간 유통업자를 배제하고 한국에 직접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오데마 피게의 비전을 더 명확하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사를 꾸린 만큼 한국 시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데마 피게가 독립 브랜드이다 보니, 여러 브랜드를 보유하고 효율적인 지원을 받는 대기업과 달리 지사를 설립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인사부터 물류, 파이낸스까지, 스타트업이라고 할 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세팅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본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에 직진출해 직영점을 오픈한 이후 안정적인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론칭 당시 생소하게 느껴졌던 시계 브랜드 로저드뷔를 한국에 알리고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주역이다. 오데마 피게를 위한 지사장님만의 전략이 있다면.

오데마 피게는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 없을 만큼 이미 잘 알려진 시계 브랜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브랜드를 알기는 알지만 정확히는 모르더라. 메인 컬렉션인 로열 오크만 해도 워낙 유명하다 보니 디자인이 뛰어나고, 가격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오데마 피게의 오랜 역사라든지 장인정신, 정교한 메커니즘이 결합된 워치메이킹 기술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친구가 아니라 그 이면에 더 대단한 기술력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려 고객들에게 더 큰 만족을 선사하는 것이 오데마 피게 코리아팀의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는 앰버서더를 내세운 홍보에 집중하는 추세다. 특히 한국의 유명 연예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는데.

오데마 피게는 브랜드가 먼저 특정 셀럽에게 접촉하지 않는다. 앰배서더의 인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진짜 오데마 피게를 좋아해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과 협업한다. 홍보대사로 알려진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힙합 스타 제이지, 프로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나 샤킬 오닐은 이미 오데마 피게의 제품을 좋아하고, 소장하고 있던 팬이었다. 모두 셀럽들이 먼저 브랜드 측에 협업을 제안해 한정판 모델이 출시됐고, 자연스럽게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약하게 됐다. 앞으로도 기류에 편승하지 않고 브랜드와 브랜드 앰배서더 간 커뮤니케이션을 존중해 협업과 홍보를 진행해나갈 생각이다.

오데마 피게 시계는 몇 개 정도 갖고 있나. 그 시계에 담긴 사연도 궁금하다.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15년 전 결혼할 때 예물 시계로 구입한 로열 오크 듀얼 타임이다. 당시는 사람들이 오데마 피게를 거의 모르던 때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모델이었기에 주저 없이 구매했다.

오데마 피게 시계는 몇 개 정도 갖고 있나. 그 시계에 담긴 사연도 궁금하다.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15년 전 결혼할 때 예물 시계로 구입한 로열 오크 듀얼 타임이다. 당시는 사람들이 오데마 피게를 거의 모르던 때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모델이었기에 주저 없이 구매했다.

또 하나는 지금 차고 있는 시계인데, 입사할 때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선물로 받은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라인이다. 원형이지만 팔각형이 케이스 안에 들어가 있는 디자인이고, 옆에서 보면 굴곡이 다 보이는 특이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가 더해진 희소성 있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로열 오크는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한 케이스 시계이고,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회사 설립부터 함께하게 된 시계라 남다른 의미가 있다.

처음 오데마 피게 시계를 소장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너무 좋아하던 시계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으니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이자 지난해 탄생 50주년을 맞은 로열 오크의 대를 이를 역작이 있다면.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를 꼽고 싶다. 여러 가지 혁신적인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지난 2019년 처음 선보인 이후 조금씩 진화하며 자리를 잡은 컬렉션이다. 올 시즌 새롭게 출시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다이얼 안에 파동 형태의 새로운 기요세 패턴을 압인했다. 타피스리 패턴을 보면 로열 오크를 떠올리듯 이제 기요세 패턴을 보면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시그니처 패턴이 되리라 기대한다. 작년까지는 핑크 골드와 화이트 골드 2가지 소재로 출시됐지만 올해부터는 스틸 버전을 더해 범위를 넓혔고, 생산량도 조금 늘릴 예정이다.

생산량 얘기가 나온 김에 묻고 싶다. 못 만드는 건가, 안 만드는 건가.

두 가지 다 맞는 말 같다. 요즘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만들어내는 만큼 다 판매될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장인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내는 공정이다 보니 생산량을 조금 늘리는 것도 무척 버겁다. 설사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해도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보통 연간 4만~4만5000개 생산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오데마 피게의 진정한 애호가들을 위해 힘을 모아 생산량을 5만 개까지 늘렸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고객에게 시계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애쓰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

백화점 부티크에 이어 AP 하우스를 내년 상반기 오픈 예정으로 준비 중이다. AP 하우스는 백화점 매장이나 부티크와 달리 100% 예약제로 운영하며 브랜드가 고객들을 초대해 함께 얘기하고 즐기고 마시는 사교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전 세계의 오데마 피게 부티크가 스위스에 있는 브랜드 매뉴팩처에서 영감을 받아 동일한 콘셉트로 인테리어를 하는 반면 AP 하우스는 각 나라 고유의 개성이 담긴 다양성이 특징이다. 청담동에 새롭게 지어질 한국의 AP 하우스는 한국의 멋이 은근히 풍기는, 모던하면서도 근사한 공간이 탄생될 것이다. 이에 앞서 AP 하우스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스페셜 라운지를 시범적으로 오픈해 운영 중이니, 한번 경험해봐도 좋겠다.

남자에게 시계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남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물건이다. 손목에 찬 근사한 시계 하나가 그 사람의 태도부터 걸음걸이까지 당당하게 바꿔준다. 어쩌면 시간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액세서리다.

오데마 피게를 선망하는 한국의 고객들과 포브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 지사가 생기고 직영점이 늘어나 더 다양한 오데마 피게 상품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좋은 소식일 것 같다. 오데마 피게가 타 브랜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계를 구매하는 고객을 더 잘 알고 싶어 한다는 거다. 중간 유통업체인 딜러숍을 줄여나가 향후 점차 직영점으로 전환하려는 계획도 시계를 구입하는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개개인의 성향까지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오데마 피게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부티크에 자주 방문해 시계에 대한 얘기도 함께 나누고 시계를 직접 착용해보며 특별한 브랜드 경험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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