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음악을 (좋아)했던 철학자들 

우리를 성찰하도록 채근하는 가을이다. 성찰 전문가인 철학자 중에서는 음악을 많이 좋아했거나, 음악에 관해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했던 이들이 있었다. 음악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이런 철학자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7세기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저서 『세계의 조화』(Harmonices Mundi)의 한쪽. 행성들이 내는 음들이 5선 악보 위에 적혀 있다. 왼쪽부터 토성, 목성, 화성, 지구, 금성, 수성, 그리고 달. 피타고라스가 들었던 음들을 케플러가 정리한 걸까. 피타고라스에게서 유래했던 생각이 근대 과학혁명 시기의 과학자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 사진:위키피디아
피타고라스(Phythagoras, BC. 582?~497?)는 수학자로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철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피타고라스학파에 따르면 수는 만물의 원리다. 수에 의해 설명되는 만물에는 음악도 포함된다. 음악에는 음이 많다. 여러 음 사이의 관계가 수학적으로 정의/계산될 수 있고, 특별한 수학적 비율을 갖춘다면 그런 관계들을 맺은 음들은 음악적일 수 있다. 이 학파 사람들의 이런 주장 혹은 접근방법은 오늘날 많은 음악학자에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사실상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근대 서양음악 이론의 기초를 제공했고, 더 나아가 근대적 음향학과 예술심리학 등에도 기초를 제공했다.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음악만 수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등한시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비판이 피타고라스학파의 접근방법을 무용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인간의 정신이나 심리 등도 수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주장에 기초해 피타고라스학파의 학문적 야망을 이어나가려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우주적 현상도 수로 설명했다. 특정한 수적 비율을 통해 그의 천체(天體, sphere)는 조화(하르모니아: harmonia)되며 질서, 즉 코스모스를 이룬다. 행성들의 크기와 속도에도 이런 수적 질서와 조화가 있고, 이것은 조화로운 소리, 즉 ‘천체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 혹은 ‘천체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 놀라운 음악을 현자이자 위대한 인간인 피타고라스 자신만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가 ‘듣는다’라는 단어를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게 생각했을 수 있다. 바이올린의 현과 같은 물체의 물리적 진동과 그에 따른 공기의 진동을 감각기관인 귀를 통해 소리로 느낀다는 일반적 의미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정신적으로 어떤 소리를 상상하는 것으로, 어떤 음악에 대한 심상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생각했을까? 그런 의미였다면 그는 ‘천체의 음악’을 들었을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함으로써 근대적 음악학자의 원형적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필자는 그가 무언가를 자신만이 들었다는 주장을 통해 청취자의 심리적/적극적/구성적/주관적 역할의 가능성에 대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제안했다고 평가한다.

조화로운 우주의 음악을 자신만이 들을 수 있었던 이유 혹은 배경에 대해 그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오르페우스교의 교주이기도 했던 그의 삶을 고려하면 뭔가 특이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교주로서 그는 자신이 후천적으로 종교적 수양을 열심히 해 신성(神性)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피력했을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는 근거는 오르페우스교가 교리를 통해 개인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교리를 잘 공부하고 수양하는 등 노력하면 우주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논리일까? 피타고라스는 그 자신만 그랬는지 모두가 다 그럴 수 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20세기의 존 케이지 같은 이가 제안한, ‘듣는 사람이 곧 음악가’라는 식의 주장을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개진함으로써, 탈근대적인 음악학자의 원형적 모습도 보여주었다.

피타고라스의 이러한 탈근대적 음악 세계는 근대 유럽 세계에서 잠시 잊혔다. 그리하여 ‘음악을 한다’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어떤 악기를 연주하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악보를 작곡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 시대에 저작을 통해 철학하는 근대적 철학자들도 등장했다.

근대적 철학자 중에는 음악에 관한 심오한 철학적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음악철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있다.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가다머 등은 음악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들을 했다. 이 이야기들은 철학은 물론 음악의 맥락에서도 매우 전문적이다. 오늘날에도 이들의 후배들은 계속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후설, 아도르노, 벤야민, 들뢰즈, 레비스트로스 등이 그들이다. 음악철학 하기는 철학자들이 음악을 하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이들과 달리 구체적인 음악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구체적인 음악을 했던 철학자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피아노곡 전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 니체는 평생 50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했다. / 사진:유튜브
대표적인 사람이 루소다. 인민주권론과 직접민주주의 이론을 펼쳤던 18세기 프랑스 계몽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생계를 위해 다른 작곡가들의 초고를 깔끔하게 정리해 출판사에 넘기는 일을 했고, 이런 작업을 하며 가다듬었던 실력으로 [마을의 점쟁이] 같은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 오페라를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다.

루소는 오페라 두 개와 모노드라마를 포함해 여러 작품을 썼고 음악 선생으로도 일했다. 첫 번째 오페라 [정중한 뮤즈](Les muses galante)는 흥행에 실패했고, 두 번째 작품인 단막극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관객이었던 루이 15세가 아주 좋아해 루소를 불렀는데, 루소는 왕을 알현하지 않았다. 다행히 처벌받지는 않았다. 루이 15세는 궁전으로 돌아가서도 [마을의 점쟁이]의 노랫말 한 구절을 계속해서 흥얼거렸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작곡을 공부해서 16살에 가곡 12곡을 작곡했던 프리드리히 니체(1848~1900)는 20대 초반에 고전 문헌학 분야의 교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친했던 작곡가 바그너와 토론 및 이러저러한 경험 등을 통해 음악과 예술, 철학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진작할 수 있었다. 그의 철학적 저작 대부분은 바그너에 대한 그의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에 숭배 대상이었던 바그너가 어떤 계기로 니체의 증오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적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오페라 [파르지팔>을 접했던 니체는 심한 심적 갈등 속에서 바그너를 비난하며 자신의 길을 갔다. 바그너에 의해 그려진(?) 죽음과 도덕, 기독교의 세계는 니체에 의해 역동하는 삶의 세계로 대체되어야 했다. ‘생의 철학’을 주장하는 니체는 [생의 찬가](1887)라는 합창곡을 비롯해 가곡, 피아노곡 등을 다수 작곡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섣달 그믐밤](Eine Sylvesternacht, 1863)과 같은 감미롭고 낭만적인 곡도 있다. 이 곡은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전문적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니체의 작품들도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다.

독일의 비판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1903~1969)는 알반 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웠고, 젊은 시절 철학자의 길을 갈지, 작곡가의 길을 갈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베르크는 20세기 현대음악의 개척자였던 아널드 쇤베르크의 제자로서 [바이올린 협주곡]과 오페라 [룰루], 현악기들을 위한[서정 조곡]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에게 배웠던 아도르노의 작품들은 심지어 꽤 현대적이다. 쇤베르크와 베르크의 스타일은 그 시대에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이었는데, 아도르노는 그들의 어렵고 전문적인 스타일을 이해했고 그에 따른 현대적 작풍을 보여줄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 그의 [현악 4중주] 같은 실험적 현대음악도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피아노를 좀 쳤다. 그의 쇼팽 연주를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다. 딱히 괜찮은 연주는 아니지만 - 사실 좀 엉망이다 - 굳이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의 연주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이 있어서다. 그는 “악보를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 음표 하나하나 공들여 치지도 않는다. 음표들을 은근슬쩍 건너뛰기도 하고, 뻣뻣한 자세로 수줍은 듯 연주한다. 아니,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연주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런 연주 스타일은 그가 말했던 실존주의적 삶의 방식 자체”(프랑수아 누델만, 건반 위의 철학자, 2021, 시간의흐름, 10쪽)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왜 이리 삐딱하게 피아노를 쳤을까. 그에게 음악 활동은 “구토를 유발하는 역겨운 것, 즉 휴머니즘과 부르주아지의 전형이었다. 일요일 예배와 오르간 소리, 루터교의 찬송가, 토카타는 사르트르와 음악 사이를 틀어지게 했다.”(같은 책, 46쪽) 그랬던 음악을 늙은 나이에 자신의 철학과 조화를 이루며 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어쩌다 영상으로 남게 되었다.

사르트르의 이런 목적의식적 반음악주의는 필요하고 이해할 만하지만, 음악가의 관점에서는 다소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필자에게는 바그너의 어려운 오페라인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곡조를 전부 외웠다고 알려질 정도로 음악 애호가였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했던 다음의 말이 위안을 준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교수로서 활동했던 이 철학자는 1930년 4월 어느 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도달했으면 하는 최고의 경지가 있다. 작곡을 해보는 것이다. 이 소원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쪽으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본질적인 무언가가 내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의 창작은 내 앞에서 아른거리는 높은 이상이다.”

본질적인 무언가가 없다는 판단이나 자기 방식대로 뻣뻣하게 피아노를 치는 행위는 모두 이 가을에 할 수 있는, 음악적이면서 철학적인 성찰일 수 있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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