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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핀란드 헬싱키(HELSINKI) 

헬싱키의 심장, 상원 광장 

핀란드는 스웨덴에 이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헬싱키에서는 스웨덴과 러시아 지배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장소가 상원 광장이다. 이 광장은 핀란드의 정치와 종교, 학문의 중심지로, 지난날 핀란드와 제정 러시아의 관계를 증언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핀란드의 정치와 종교, 학문의 중심지인 상원 광장. / 사진:정태남
북유럽의 하늘은 맑다가도 갑자기 광풍이 일고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검은 구름 사이를 뚫고 한 줄기 햇빛이 상원 광장에 떨어지자, 하얀색의 대성당은 검은 하늘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 광경은 폭풍이 몰아치듯 격정적으로 시작하여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로 끝맺는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연상하게 한다. 또 어떻게 보면, 고통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로 발전시킨 핀란드 사람들의 혼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여러모로 모범이 되는 선진국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핀란드(Finland)’라는 지명이 국명이 된 것은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이니 핀란드는 이제 건국 100년을 조금 넘긴 신생국인 셈이다.

한편 ‘핀란드(Finland)’는 스웨덴어 지명이고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를 수오미(Suomi)라고 한다. 사실 핀란드는 오랜 세월 동안 스웨덴의 한 지방으로 존속했으며, 공용어는 핀란드어가 아닌 스웨덴어였고 수도는 스웨덴과 가까운 남서해안의 항구도시 투르쿠(Turku)였다. 그러다가 1809년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수도가 투르쿠에서 헬싱키(Helsinki)로 옮겨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헬싱키에는 스웨덴과 러시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새로운 수도 헬싱키 건설


▎헬싱키 시가지의 동서 중심축이자 번화가인 알렉산테린카투. / 사진:정태남
만네르헤이민티에(Mannerheimintie), 즉 ‘만네르헤임대로’는 헬싱키 시가지의 중심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길게 뻗은 도로이다. 이 도로는 알렉산테린카투(Aleksanterinkatu), 즉 ‘알렉산드르의 거리’와 접하는데, 이곳은 고급 매장이 몰려 있는 헬싱키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심축이다. 이 거리 이름에서 ‘알렉산드르’는 다름 아닌 스웨덴을 누른 러시아의 짜르(Tsar, 황제) 알렉산드르 1세(Aleksandr I, 재위 1801~1825)이다. 그는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1812년에 물리친 인물이기도 하다. 알렉산테린카투를 따라 동쪽으로 약 400m 걸어가면 좌우대칭의 널따란 장방형 광장이 펼쳐지고, 높은 계단 위 언덕에 솟아오른 듯한 하얀 대성당은 마치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처럼 엄숙하고 정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핀란드를 대공국으로 만들면서 러시아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당시 인구 4000명밖에 되지 않던 헬싱키를 대공국의 수도로 격상하고는 대대적으로 도시계획을 단행했다. 이후 보잘것없던 작은 도시가 핀란드 대공국의 수도로서 기념비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요한 에렌스트룀(1762~1847)과 카를 루트비히 엥엘(1778~1840)의 노력과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


▎헬싱키 시가지의 구심점을 이루는 대성당. / 사진:정태남
헬싱키 도시계획을 전담한 정치가 에렌스트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연상하는 기념비적인 도시를 구상했다. 독일 건축가 엥엘은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건축을 공부한 다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다가 핀란드로 건너와서 투르쿠에서 활동하던 중 헬싱키가 핀란드 공국의 수도로 승격되자 에렌스트룀과 접촉하게 되었다. 에렌스트룀은 그의 능력을 곧 알아보았다. 이리하여 엥엘이 구상한 헬싱키 도시계획안이 알렉산드르 1세에게 보여졌다. 엥엘은 원래 헬싱키에서 잠깐 일하고 나서 베를린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헬싱키 건설위원회 건축가로 임명되는 바람에 헬싱키는 그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곳이 되었고, 그는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가 헬싱키에 남긴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헬싱키 대성당이다. 그는 대성당을 1818년에 설계하고 1830년에 착공했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1840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성당이 완공되어 봉헌된 것은 그가 죽은 지 12년이 지난 1852년이었다.

‘선한 짜르’ 알렉산드르 2세


▎대성당에서 내려다본 상원 광장. 노란색 건물은 1918년까지 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 사진:정태남
대성당 앞 계단 아래에 펼쳐진 널찍한 장방형 광장의 이름은 핀란드어로 세나틴토리(Senaatintori), 즉 ‘상원 광장’이라는 뜻이다. 이 광장과 이곳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서양을 풍미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이고, 광장 자체도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광장의 서쪽 건물은 1832년에 건립된 헬싱키대학 본관이고, 동쪽 건물은 1822년에 건립되어 1918년까지 상원 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에는 수상과 각료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광장은 핀란드의 정치와 종교, 학문의 중심지이며 헬싱키의 심장인 셈이다.

그런데 헬싱키의 심장 한가운데에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은 핀란드 사람이 아니라 러시아 황제이다. 정확히 말하면 알렉산드르 1세가 아니라 그의 손자 알렉산드르 2세(Aleksandr II, 재위 1855~1881)이다. 알렉산드르 2세는 당시 러시아가 지배하던 폴란드에는 무자비한 강압정책을 폈지만 핀란드에는 의회를 인정하고 핀란드어를 스웨덴어와 함께 공용어로 격상해줄 정도로 유화정책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핀란드가 스웨덴과 가까워져 러시아제국에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핀란드에 대해 부드러웠던 그는 농노를 해방하는 등 러시아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다가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 후 3년이 지난 1884년, 핀란드 대공국 의회는 그를 기념하는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고, 1894년에는 공모전에서 선정된 스웨덴계 핀란드 조각가 발터 뤼네베리가 제작한 기념상이 서거한 짜르의 생일에 맞추어 4월 29일에 제막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 동상은 핀란드 의회에서 연설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동상 아래에는 법률, 문화, 농부들을 묘사한 형상으로 둘러져 있다.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2세 기념상. / 사진:정태남
그런데 그를 승계하고 단명한 알렉산드르 3세에 이어 1884년에 니콜라이 2세가 제위에 오른 다음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즉, 니콜라이 2세는 1899년부터 핀란드를 본격적으로 러시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자 핀란드 사람들은 이 동상 앞에 헌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할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가 ‘선한 짜르’였음을 상기하는 무언의 항거였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핀란드 음악가 시벨리우스(J. Sibelius, 1865~1957)는 관현악곡 <핀란디아(Finlandia)>를 작곡했다. 러시아는 이 곡이 핀란드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그 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는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고, 러시아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서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전격적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핀란드가 독립한 다음 핀란드의 민족주의자들은 이 동상을 철거하자고 했다. 사실 알렉산드르 2세가 핀란드에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외세의 지배자였던 것이다. 나중에는 그 자리에 핀란드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만네르헤임(C. G. Mannerheim, 1867~1952)의 기념상을 세우자는 의견도 강했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을 철거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한 핀란드 사람들의 결정은 슬기로운 판단일까? 어쨌든 이 광장은 지난날 핀란드와 제정 러시아의 관계를 증언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임에는 틀림없다.

※ 정태남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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