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오 패션그룹형지 /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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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 23일, 최종부도일.30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집 안 가구에 압류 딱지가 붙어 있던 그때. 당시 의류 도매상이었던 나는 사업이 번창하였으나 어음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순간 나락에 빠지게 됐다.그리고 어느덧 만 30년이 지났다. 그사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금고 속에 있는 30년 전 부도 수표를 꺼내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다. 벼랑 끝에서 구사일생했던 그때 굳은 ‘초심’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지 말이다.부도 후에는 하루 4시간만 자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일만 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기에, 남보다 반의 반 걸음만 앞서서 시작하고 또 열심히 일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현장에서 터득한 철학으로 부단히 노력했다.그런 끈기와 집념으로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다. 비록 상인에서 출발했으나 패션 브랜드에 대한 동경을 갖고 브랜드 의류를 해야 한다는 신념만은 계속됐다. 그래서 가성비에 방점을 두고 만든 여성 어덜트 캐주얼 크로커다일레이디가 대박을 냈고, 현재까지도 국민 옷 브랜드로 자리하게 됐다.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재기였지만, 이후 사세가 확장하면서도 의류업이 천직이라는 생각에 다른 업종으로 확장은 시도하지 않고 오로지 섬유패션업에만 종사했다. 브랜드에 대한 동경과 초심은 에스콰이아, 엘리트, 예작 등 어려움에 있던 우리 한국 토종 브랜드들을 다시 살리는 일도 하게 만든 것 같다. 이런 과정에서 방만한 투자도 있었고,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오면서 다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30년 전 그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2023년에는 이런 인생에 뜻깊은 보상을 받았다. 섬유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한국 섬유업계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라는 운명인지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에 취임하게 됐다. 한평생 패션 분야에서 외길을 걸어온 만큼 앞으로 더 잘하라는, 또 어른으로서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라 생각한다.우리 대리점 사장님들께도 가끔 말씀드리곤 한다. 처음 가게를 열었던 때, 첫 고객을 받았을 때의 초심을 떠올려보자고. 처음 상품을 팔았을 때 기쁜 순간 말이다.초심, 열정과 설렘 사이에 있는 그 기억과 마음을 되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