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사단법인 한중패션산학협회 이사장 / 커뮨더웨어 대표 |
|
‘젖 먹던 힘까지 다하겠습니다’라는 표현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열 달 내내, 어머니의 배 속에서 평안히 지내던 아기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본능적으로 생존의 힘을 드러내는 첫 순간이다. 이제부터는 나를 방어하기 위한 웅크림과는 완벽히 다른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설렘, 처음 뜨거운 것에 데었을 때의 쓰라림, 처음 직장에 출근했을 때의 기대감과 두려움 모두 처음 맞이하는 낯선 경험들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하루 일상을 맞이하는 것도 늘 처음이나, 삶에 익숙해질수록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은 슬며시 안정감이란 명목 아래 묻히고 만다.나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면 학업을 마치고 귀국 전까지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20대에 대학 전임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도 패션 현장에서 실무를 놓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 루이까또즈 등의 기업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고 크록스, 바카라 등 글로벌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자본과 재능이 만난 덕에 예산의 구애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시도했다. 결과물의 책임은 당연히 나의 몫이었기에 늘 젖 먹던 힘을 다했다.하지만 안정적인 시스템에 익숙해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힘과 지혜와 용기 중에서 ‘용기’가 없었다.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본인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은 남의 시선과 세상의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용기에 달려있다.2023년 9월 9일에 ‘커뮨더웨어’라는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다. ‘계급장’을 떼어내는 용기가 필요했다. 경쟁자가 패션계의 선배건, 후배건, 제자이건 간에 실적으로 평가받는 혹독한 검증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용기가 여기에 있다.초심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하나의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 4C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캐럿(Carat)이다. 중량을 뜻하며, 다이아몬드의 크기가 얼마만 한가를 말한다. 하지만 중량, 즉 다이아몬드의 크기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술가로서, 디자이너로서의 천재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남의 천재성을 존중하되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는 컷(Cut)이다. 깎아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학교에서는 배움의 과정, 사회인들에게는 직장생활과 여러 가지 인간관계에서 부딪치며 스스로 체험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과정들을 통해 다시 내 자신을 연마하려 한다. 세 번째는 컬러(Color), 즉 색이다. 사람마다 지닌 색이 다르고 어떤 색이 더 좋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본인만의 것을 해야 즐겁고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자본과 트렌드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많겠지만, 나만의 색을 잃지 않으려 한다.마지막으로 클레어리티(Clarity), 즉 투명도다. 아무리 큰 캐럿에 정교하게 커팅된 멋진 컬러의 다이아몬드라 해도 그 안에 불순물이 끼어 있다면 가치를 잃고 만다. 타고난 재능과 좋은 학력, 경력, 자신만의 캐릭터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투명한 마음으로 겸손을 배우려 한다.성경 베드로전서 5장 6절 말씀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 하신 것처럼 겸손 아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젖 먹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첫 힘을 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