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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홍진석 메디힐 마케팅총괄 이사 

K-뷰티의 새 전성기를 위해 

한때 중국 시장을 평정했던 한국 화장품, ‘K-뷰티’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둔감했던 안일한 대응이 가져온 결과다. 이제는 미국과 동남아 등 다른 시장에서 새 전성기를 쓸 차례다.

개인적으로 16년째 미국에서 생활하며 가장 크게 와닿는 변화는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서양인에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동양에 있는 작은 나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와 콘텐트 시장을 필두로 시작된 한류는 글로벌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한식, 뷰티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대단한 영향력을 뿜어내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뷰티’는 중국에서 엄청나게 성장한 이후, 어느새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없어서 못 파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마존과 올리브영에서 네모패드 제품으로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한 메디힐은 K-뷰티 열풍을 이끌고 있는 한국의 대표 화장품 기업 중 한 곳이다. 중국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중국 본토에서 이를 직접 경험하고, 현재는 메디힐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글로벌 진출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홍진석 마케팅총괄이사를 만났다.

이상인: 반갑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홍진석: 반갑다. 현재 메디힐에서 마케팅총괄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 어떤 계기로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게 됐나?

홍: LG에서 제품 개발과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며 화장품 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원래는 내수시장 중심이었던 한국 화장품이 예상치 못하게 2015년쯤부터 중국에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모두가 비자발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눈뜨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곳인 중국에서 직접 이 변화를 경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간 상하이에서 중국의 로컬 화장품 회사에 다녔고, 한국으로 돌아와 2022년부터 메디힐 마케팅총괄로 일하게 됐다.

이: 중국에서의 경험과 한국에 돌아왔을 때 상황은 어땠나?

홍: 중국인들이 한국 화장품을 대량으로 사기 시작하면서 한국 화장품 업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메디힐도 마스크팩 카테고리를 장악하는 카테고리 킬러로 자리매김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한중 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드 문제 같은 정치적 이슈가 터지고 나자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고, 화장품 판매량도 급감했다. 특히 시진핑 집권 3기 들어서는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애국주의 성격이 워낙 강해지다 보니, K-뷰티보다는 애국 열풍을 타고 자국산 ‘C-뷰티’가 급부상했다. 마치 중국에서 삼성전자가 점유율을 완전히 빼앗긴 것처럼, 메디힐도 절반이 넘던 중국 의존도에 당시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한국 화장품


이: 한중 간 정치적 이슈 외에 한국 화장품 점유율에 영향을 끼친 다른 요인도 있나?

홍: 화장품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브랜드와 주문자위탁생산(OEM)이 두 개의 기본축이다. 코스맥스, 콜마 등 글로벌 OEM 기업의 기술이 고도화되고, 이들이 중국에서도 영업을 하니까 한국 브랜드 제품과 중국 제품이 퀄리티 면에서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 또 중국은 온라인 전환율이 한국이나 미국보다 앞서 있다. 모든 결제를 스마트폰에 있는 알리페이로 해결할 수 있어 중국에 사는 동안 지갑을 가지고 다닐 일이 전혀 없었다. 기존의 전통적 화장품 유통사들이 오프라인에서 처리하던 일들이 이제는 온라인 베이스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라이브방송으로 쇼핑을 즐기는 비중이 엄청나게 높고, 광군제(11월 11일,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사례처럼 소비자 수요가 온통 온라인으로 몰린다. 이런 트렌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 가속화됐다. 화장품 판매 브랜드인 ‘세포라’의 판매사원 출신인 쇼호스트 ‘리자치’처럼 방송 한 번으로 조 단위 매출이 나오는 메가 호스트도 등장했다. 중국 시장이 이렇게 급변하는 사이, 한국 화장품 업체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판매 구조가 기존에 의존하던 중국 현지 유통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유통업체들마저 결국 돈이 되는 물건을 팔게 되니 이들도 점점 한국 화장품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한국 업체들의 디지털전환 대응도 부족했다. 적극적으로 온라인과 라이브 커머스 판로를 개척하고 자사 브랜드를 계속 구축하며 어필해야만 했다.

온라인 마케팅 대세로 떠오른 쇼트폼 콘텐트

이: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한국에서 받은 인상은 어땠나?

홍: 디지털전환율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다 보니, 관련한 부분에서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신사가 이마트나 롯데마트처럼 최저가 보장을 하는 플랫폼은 아니다. 사람들이 반드시 ‘제일 싸다’는 평가를 받는 플랫폼에서만 물건을 사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온라인이라면 무조건 최저가로 깎고 또 깎는 것이 주요 포인트였다. 하지만 라이브 커머스는 싸서 사는 게 아니라 내게 맞는 상품을 추천하며 설명해주고 즐길 수 있는, 마치 콘텐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TV 홈쇼핑이 제일 싼 걸 팔지 않음에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팔 때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것과 같다. 이런 형태를 모바일에서 구현한 게 요즘의 라이브 커머스라 생각한다. 또 예전에는 화장품도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제품을 직접 보고 발라봤다. 그게 당시의 엔터테인먼트였다. 이제는 이를 뛰어넘는 온라인 경험이 너무나 많다. 얼마 전 상하이에서 유명한 화장품 거리를 갔는데, 거기 있던 오프라인 매장들이 모두 사라졌더라. 온라인으로 디지털전환이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라,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 화장품 업계가 라이브커머스를 계속 시도하는 배경에는 중국의 디지털전환 성공이 배경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현재 메디힐에서 추진 중인 디지털전환이 궁금하다.

홍: 메디힐에 입사한 직후 위탁 운영하던 온라인숍들과 자사 브랜드몰인 ‘메디힐샵(medihealshop)’을 재정비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들을 모두 인하우스에서 관리하기로 하고 채널을 다시 세팅했다. 이후 메디힐샵의 매출은 기존 3억원 수준에서 2023년 100억원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또 퍼포먼스 마케팅 고도화에도 나섰다. 이를 위해 외주로 뺐던 마케팅도 내부 인력으로 충원해 판을 새롭게 짰다. 2022년에는 전체 매출 대비 이커머스 매출 비중이 2%였는데, 2024년 현재 11%(2023년 말 기준 419% 성장)로 크게 늘었다. 판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기회가 계속 나오는데, 지금은 쇼트폼에서 새 기회가 보이는 것 같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메타(Meta)의 지난 실적 보고에서 릴스(인스타그램 쇼트폼)가 광고 매체로 큰 역할을 해 수익성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메디힐도 쇼트폼 마케팅에 공을 들여 제품에 대한 바이럴마케팅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 쇼트폼 마케팅은 참 알다가도 모를 영역이라 쉽지 않다. 어떻게 공략하고 있나?

홍: 새로운 콘텐트 포맷이 언제 어떻게 알고리즘의 은총을 받아 뜨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우리도 아직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의 ‘쪼(자신만의 고집)’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아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대중예술적인 면이 굉장히 크다. 또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다 같이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영상을 만들어서 시장에서 반응을 얻을 거다’가 아니라 ‘양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뭐가 터질지 모르니 계속 만들어내다가 하나가 터지면 그걸 다양한 형태로 자가 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유명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인이 자연스럽게 만든 영상이 갑자기 대박 나는 경우도 많다. 팔로워가 그리 많지 않은 리뷰어가 만든 영상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우리 패드 제품이 아마존에서 품절된 경우도 있었다. 쇼트폼에 대한 접근은 요새 ‘이런 게 뜬다’, ‘핫하다’ 같은 접근은 있어야겠지만, 화살을 매사 신중하게 한 발씩 발사하는 게 아니라 화살이 과녁에 맞을 때까지 쏜다는 생각으로 간결하게 접근해야 된다.

이: 완전히 공감한다. 그래도 쇼트폼 마케팅에서 성공 비법 같은 게 있나?

홍: 반드시 성공하는 비법은 물론 없지만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있다. 쇼트폼은 무조건, 반드시 2초 안에 사람을 사로잡아야 한다. 2초 안에 유저를 잡지 못하면 알고리즘에게 선택받아 바이럴되는 행운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의 눈을 빠르게 사로잡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 한다. 최근에 잘된 마케팅 영상 같은 경우는 다짜고짜 카드 결제부터 시작한다. 이게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동시에 ‘사서 써보니까 진짜 좋더라’는 메시지까지 한꺼번에 담았다. 어차피 영상 전체 길이가 15초 정도에 불과하다. 유저의 눈을 사로잡은 이후 8~10초 안에 이 제품이 왜 좋은지를 영상에 다 넣어야 한다. 나머지 2초 동안엔 지금 사면 할인해준다, 혹은 지금 방문하면 혜택을 준다 같은 콜투액션(Call To Action, 소비자 행동을 유발하는 메시지)을 주며 마무리하는 거다. 또 재구매 콘텐트는 언제나 좋은 소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빈 화장품 통 여러 개를 보여주면서 이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미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 보는 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진정성을 어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앞으로 한국 화장품 업계는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 것 같나?

홍: 현재 중국 시장 의존도가 많이 낮아진 상황이다. 하지만 반대로 미국이나 동남아 같은 다른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문은 더 활짝 열려 있다. 그런 만큼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세계 속에서 계속 커지는 게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는 엄청난 호재라 생각한다. 이를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특히 화장품처럼 디지털을 잘 활용하지 않았던 산업군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거라 기대한다.

※ 이상인 -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Google 본사에서 YouTube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Staff designer)하고 있다. Microsoft 본사, 클라우드 인공지능 그룹의 플루언트 디자인 스튜디오를 총괄했고, Deloitte

Digital 뉴욕 오피스의 창립 멤버로 근무했다. 디지털 에이전시인 R/GA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외 세 권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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