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퀘스트 3이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합리적인 가격대로 출시될 퀘스트 3 라이트 헤드셋에 대한 기대가 크다.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메타버스 헤드셋이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 구입 가능한 옵션이 많아지면서 사용 목적에 따라 어떤 헤드셋이 좋을지, 헤드셋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에 관해 종종 문의를 받을 때가 있다. AI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듯한 메타버스 세상을 열어줄 디바이스들의 미래, 어떤 변화들에 주목해야 할까?
▎호주의 행위예술가 스텔락과 그의 팔에 이식된 제3의 귀 / 사진:HTTPS://WWW.WIRED.COM/2012/05/STELARC-PERFORMANCE-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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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발견하고 바퀴를 만드는 등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그 도구가 가지고 있는 능력 확장의 잠재력만큼 진화해왔다. 기차와 자동차가 우리를 더 빨리 더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줬다면 인터넷과 핸드폰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손안에 쥐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을 열어줬고, 메타버스와 AI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것이다. 혹자는 현실 세계만으로도 복잡해서 살기 힘든데 가상 세계를 왜 굳이 얹으려 하냐고 반문하겠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혼합현실(mixed reality) 기술을 일상에 적용하게 됐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자유의지와 선택권의 폭이 넓어지고, 교통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으로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사람들의 피로도는 아이러니하게 더 높아지고 있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아서,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미국 선거에 신경을 써야 하고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 연예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인지과학에 따르면 사람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 정보가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양질의 정보를 이해하기 좋게 정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이동 범위가 넓어진 상태에서는 실시간으로 현재 있는 장소와 상황의 맥락에 맞는 정보가 정리되어 시기적절하게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까지 메타버스의 응용은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에 국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런 기술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들을 유저의 니즈에 맞춰 돕고, 그 덕분에 피로감이 줄어 더 가치 있는 일에 사람의 시간과 능력을 할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AI가 결합된 메타버스 플랫폼이 의사결정을 돕는 부분은 유저의 인지능력이 평상시보다 훨씬 떨어져 있는 응급이나 사고 상황(예: 화재, 태풍, 지진)일 때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패닉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 뇌는 생존 본능에 따라 맞설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fight or flight)를 결정하는 데 인지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닥친 순간에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해가며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이런 때에 착용하고 있는 메타버스 헤드셋을 통해 위험 상황을 미리 감지해서 안전한 대피 경로를 확보하거나 대응 수칙에 대한 정보를 받으면 비상 상황에 훨씬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웨어러블의 딜레마: 더 가볍게 vs. 더 몰입되게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뉴럴링크는 컴퓨터 칩을 뇌에 이식해서 컴퓨터를 뇌파로 조작하는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 / 사진:HTTPS://WWW.THEVERGE.COM/2023/9/19/23880861/NEURALINK-HUMAN-CLINICAL-TRIAL-N1-IMPL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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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시나리오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한 지는 제법 오래됐다. 기술적으로 가장 최근에 구현된 디바이스는 구글X가 2012년에 공개한 구글글라스. 당시에는 ‘실패했다’는 혹평이 많았지만 사실 기술의 발전은 이런 수많은 시도를 발판으로 삼을 때 일어난다. 실제로 구글은 2024년 버전으로 기존의 구글글라스를 업그레이드한 프로젝트 아스트라(Project Astra) 안경을 출시할 계획이다. 메타도 레이밴(Ray-Ban)과 합작으로 스마트글라스를 출시한 후 곧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증강현실(AR) 글라스를 기획 중이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메타버스 헤드셋을 더 가볍고 슬림하게 제작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듯하다.그런데 기존 연구를 보면, 더 가벼워지고 시야각이 좁은 안경 형태의 헤드셋을 통해 유저의 시야가 현실 세계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가상의 콘텐트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진다. 가벼운 형태와 몰입감 사이의 경쟁 구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대안은 2018년에 제작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나왔던 스마트렌즈(안구에 넣어 각막에 가상의 정보를 직접 투사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부터 프로토타입이 개발되어(예: Mojo Vision) 실험이 진행 중으로, 렌즈를 각막에 띄운 후 깜박임, 눈동자의 움직임 등으로 콘텐트를 통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저의 눈동자 안에 있는 눈물로 충전이 가능한 렌즈까지 개발되어 실험 중이다. 렌즈 삽입 형태의 메타버스는 현재 핸드폰, 컴퓨터, 태블릿 등 여러 개의 물리적인 스크린에서 매개된 현실을 경험하는 형태보다 인체에 삽입된 웨어러블 렌즈로 필요한 가상 체험과 정보를 상시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망이다.이보다 좀 더 사람의 몸에 침습하는 웨어러블로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가 있다.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뉴럴링크(Neuralink)사의 경우, 최종적으로는 컴퓨터 칩을 인간의 뇌에 심어 다른 외부 디바이스 없이 바로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며, 2026년까지 피험자 1000여 명에게 뉴럴링크 칩을 뇌에 심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미 2024년 초에 사고로 전신마비 상태가 된 첫 번째 피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고(칩 이식 수술 후 뇌파를 이용해 컴퓨터를 조작하는 등 임상실험이 성공한 듯 보였으나 몇 주 뒤에 뇌에 심어둔 부품들이 빠지면서 실패했다. 수술 후 피험자의 건강 상태는 양호), 곧 두 번째 피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확장된 인간 'Augmented Human'눈에 렌즈를 넣고 뇌에 컴퓨터 칩을 넣는다는 설명만으로 이질감이 들어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거나 그런 미래는 올 리 없다고 부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의술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점점 사이보그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 놀랄 만한 예측은 아니다. 시력 교정을 위한 렌즈삽입술부터 심장의 박동을 돕는 인공심박동기, 움직임을 돕는 티타늄으로 만든 인공관절, 순수 미용 목적으로 행해지는 성형수술까지 이미 인체의 여러 기능을 확장해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좀 더 극단적인 예로 호주의 행위예술가 스텔락(Stelarc)은 ‘인간의 신체는 고루하다(The human body is obsolete)’며 2006년에 제3의 귀를 왼팔에 이식해 기계와의 결합으로 인체의 한계를 극복해보겠다는 도전에 나섰다. 흔히 메타버스를 하드웨어의 발전으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확장된 인간’이라는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메타버스를 본다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을 가상 세계로 넓히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