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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에이즈 치료 약, 성공할까 

 

의료 데이터베이스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테리 라곤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주요 국가 정부들도 모두 실패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최고의 의사와 과학자, 공학자로 팀을 구성해 세상에서 가장 교활한 바이러스 중 하나인 HIV를 물리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 사진:PHOTOGRAPH BY MICHAEL PRINCE FOR FORBES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메인 스트리트의 30000㎡ 부지에 유리와 강철로 지은 건물, 라곤 연구소의 개관식 날이다. 건물 안에는 마우라 힐리 주지사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 로버트 크래프트, MIT대학과 하버드대학, 매사추세츠 브리검 종합병원의 전현직 총장과 원장들이 모여 있었다. 전채 요리를 먹으며 레몬 스프리처를 홀짝이는 이들의 옆에서 과학자와 직원 12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오버 더 레인보우’ 노래를 불렀다. 소프트웨어 기업 인터시스템즈(InterSystems)의 창업주 필립 ‘테리’ 라곤(Phillip Terry Ragon)과 인터시스템즈 경영진 중 한 명인 그의 아내 수잔을 위한 자리였다. 라곤 부부가 면역체계를 활용한 질병 퇴치 연구를 위해 4억 달러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끝나면 여기 모인 과학자들은 차갑게 빛나는 흰색과 은색의 실험실에서 세상에서 가장 퇴치하기 어려운 바이러스로 알려진 HIV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HIV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이야기했지요.” 인터뷰에 좀처럼 응하지 않던 라곤(74)이 포브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최초의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에서 진행한 대규모 연구개발 프로그램이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도했다면 양자 기계학을 잘 모르던 때라 실패했을 것이고, 3차 세계대전까지 기다렸다면 너무 늦어버렸겠죠.”

인터시스템즈의 유일한 소유주인 라곤의 재산가치는 31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는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보균자 3900만 명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서도 맨해튼 프로젝트와 비슷한 과학적 돌파구가 마련되기 직전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생각과 반대되는 증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들릴 수도 있다. 라곤 연구소보다 훨씬 예산과 자원이 많은 대형 기관들이 HIV 백신 개발에 매진한 지도 벌써 수십 년이 되어간다. 존슨앤드존슨은 수년간 5억 달러를 쏟아부었으나 마지막으로 진행한 대규모 연구를 2023년에 중단하고 발을 뺐다. 라곤 연구소의 기술도 일부 들어간 프로젝트였다. 각국 정부와 비영리기관, 기업들이 지난 20년간 HIV 백신 개발에 퍼부은 돈만 해도 170억 달러에 달한다고 HIV 비영리기관 AVAC가 밝혔다. 그럼에도 임상 3상을 넘긴 연구는 단 한 개도 없다. 그러나 라곤은 여기에 좌절하지 않는다. 정부가 예산을 대는 경우 연구 제안서를 평가할 때 연구의 중요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험의 성공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런 관행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의 실험은 원래 실패를 예상하고 진행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리스크가 더 높은 초기 단계 연구에 집중한 자신의 지원이 정부나 대기업 지원 실험보다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절실하다. 선진국에서 HIV와 에이즈는 값비싼 약물을 통해 대체적으로 통제되고 있지만, 2022년만 해도 에이즈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지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6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엔은 연구를 통해 에이즈를 종식할 경우 2030년까지 하위 저소득 국가에서 연간 33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추산치를 발표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재 미국에만 HIV 양성보균자가 120만 명 있다는 통계 결과를 발표했고,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보균자 1인당 평생 감당해야 하는 치료비는 42만 달러에 달했다.

라곤은 의사, 공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바이러스 학자 등 보통 한 팀에서 잘 만나지 않는 다양한 전문가를 한데 모아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을 설계했다. 연구 목표는 사람의 면역체계를 새롭게 엔지니어링해서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이다. 이는 결핵, 말라리아, 암 등 다른 질병 치료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라곤은 “저는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했다. “과학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라곤이 수십 년에 걸쳐 성공시킨 인터시스템즈도 전혀 다른 영역에서 실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가 실패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1972년 MIT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졸업한 라곤은 기타 하나 둘러메고 런던으로 건너갔다. 브리티시 록을 좋아했던 그는 레드 제플린과 제프 벡, 크림을 우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절실함을 안고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구인 광고 중에서 컴퓨터프로그래머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걸 깨달았다. 여러 번 면접에서 떨어진 그는 메디테크(Meditech)라는 초기 전자의무기록 업체에도 지원했다. “사실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라곤이 당시 면접관에게 했던 말이다. 고개를 든 그는 면접관 뒤에 믹 재거 포스터가 있는 걸 봤다. “그런데 기타는 좀 칩니다.” 그는 면접을 통과했고, 일을 하면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유틸리티 멀티 프로그래밍 시스템(MUMPS)의 초기 프로그래밍언어를 속성으로 배웠다.


▎R&D 허브 하버드와 MIT, 새로 문을 연 라곤 연구소. 모두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다. 케임브리지는 연구자 인구밀도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라고 테리 라곤이 말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실리콘밸리를 외쳐도 케임브리지만 못합니다.” / 사진:JEREMIAH JORDAN-DGA PRODUCTIONS,
1년 반 뒤에 라곤은 메디테크에서 나와 MUMPS에 기반한 의료비 청구 기업을 공동 창업했고, 1978년에 인터프리티브 데이터 서비스(Interpretive Data Services)를 창업해서 이후 사명을 인터시스템즈(InterSystems)로 바꿨다. 오라클이나 SAP와 같은 여타 데이터베이스 관리업체들이 거래 내역을 깔끔한 표로 만들어 구조화하는 서비스를 고객사에 제공했다면, 라곤은 이들과 달리 MUMPS로 코딩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중앙에 있는 나무 몸통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가지로 데이터를 조직화하는 모험적 접근법이었다. 빠르고 안정적이었던 시스템은 재향군인회(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의 선택을 받아 참전용사들의 의료기록 관리용으로 이용됐다. 인터시스템의 성장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최대 고객사인 재향군인회와 전자의무기록 업체 에픽시스템즈(Epic Systems)를 통해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하는 데만 24년이 걸렸고, 매출 10억 달러는 이후 꼬박 21년이 지난 2023년에야 달성했다.

그래도 라곤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HIV 완치 약이 나올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가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면서 검증한 체계적·장기적인 방식을 치료 약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이런 믿음을 뒷받침한다. 철학자 토마스 쿤이 한 말도 그에게 믿음을 주었다. 쿤은 과학이 느리고 긴 진화 과정 속에 간간이 발생하는 급진적 혁명으로 진보한다고 주장했다. 급진적 혁명의 순간은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 불린다. 라곤은 “간혹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 무언가가 나타나기 마련이죠”라고 말했다.

라곤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겪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감염병 연구자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인 브루스 워커의 초청으로 2007년에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인터시스템즈가 전자의무기록 회사 트랙헬스(TrakHealth)를 막 인수했을 때라 이 소프트웨어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진료실로 들어와 검사를 받았다. 워커가 그녀의 목에서 맥동하는 경정맥을 손으로 가리켰다. 심부전의 징후였다. 라곤은 “그냥 거기 앉아서 그녀가 죽어가는 걸 지켜봤습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예수님을 믿냐고 물었다. “창조주를 만날 계획을 세워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건넨 의사는 그녀를 퇴원시켰다. 유엔 추산 통계에 따르면, 15~24세 여성 4000명이 매주 HIV에 감염된다. 이 중 3100명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 산다. 그 장면을 지켜본 라곤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인체로 들어온 HIV는 세포 생성체계에 들어가 바이러스 복제본을 마구 생산해낸다. DNA 코드에 직접 명령을 보낸다는 점에서 HIV는 코로나바이러스, 홍역과 다르다. 다시 말해, 일단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숙주가 된 인체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게 된다. 게다가 바이러스의 형태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고 보스턴 브리검 여성 병원의 전염병 의학 총괄 다니엘 쿠리즈케스가 말했다. “사람마다 몸 안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가 조금씩 다릅니다.” 이런 두 가지 특성으로 인해 HIV에 작용하는 효과적 백신을 개발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바이러스 중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HIV를 퇴치하기 위해서 라곤 연구소의 연구진은 아주 드물지만 놀라운 자연적 현상에 주목했다. HIV 보균자이면서도 좀처럼 증상을 보이지 않고 바이러스 부하를 그대로 유지해 에이즈로 이행되지 않는 ‘엘리트 컨트롤러(elite controller)’이다. 이들의 T-세포는 바이러스를 공격해서 죽이는 효율이 아주 좋다. 라곤 연구소 창립 이사인 워커는 1990년대 엘리트 컨트롤러 중 한 명을 처음 만났고, 이후 이들의 면역체계가 가진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 중이다. 워커는 “감염자가 엘리트 컨트롤러가 되도록 유도할 수만 있다면, 질병의 진행을 멈추어서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2025년에는 T-세포에 기반한 백신 임상 1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워커는 말했다. 바이러스 구조에 반드시 필요한 아미노산을 공격하는 엘리트 컨트롤러의 면역 기제를 그대로 모방한 백신이다. 실험을 후원하는 파트너사로는 게이츠 재단과 국제에이즈백신이니셔티브(International AIDS Vaccine Initiative), 이탈리아 제약개발사 레이테라(ReiThera)가 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워커는 “그동안 수없이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실패 가능성은 당연히 있죠”라고 말했다.

“15년 전만 해도 과학자 중 절반이 백신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라곤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죽기 전에 HIV 치료 약이 나올 수 있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답했다. “그럼요.”

※ How To Play It - 3월 31일 기준 독일 기업 바이오 엔테크(BioNTech)가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169억 달러다. 화이자와 함께 생산한 코로나 백신으로 잠시나마 폭발적 수익을 거두면서 축적한 현금이다. 바이오엔테크는 이 돈을 활용해 연간 22억 달러에 이르는 연구비를 지출한다. 방대한 범위의 암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 백신 개발을 위해서다. 환자별로 맞춤이 가능한 백신이다. 환자 맞춤형 면역치료는 이미 수많은 기업이 뛰어든 연구 분야이며, 실험적인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하나같이 낮다. 그러나 바이오엔테크는 이미 충분한 역량을 검증한 회사다. 회사의 주당현금흐름(CPS)보다 그리 높지 않은 가격에 바이오엔테크 주식예탁증서(ADR)를 매수할 수 있다. 윌리엄 볼드윈은 포브스 투자전략 칼럼니스트다.

- Katie Jennings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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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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