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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샌드위치의 제왕 

 

17살 때 12만5000달러를 빌려 동네 샌드위치 가게를 인수한 피터 캔크로는 그 가게를 미국에서 손꼽히는 속도로 성장하는 매출 40억 달러의 음식점 체인으로 만들었다. 이제 억만장자가 된 캔크로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회사를 팔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도전할 것인가?

▎ 사진:PHOTOGRAPH BY JAMEL TOPPIN FOR FORBES
피터 캔크로(67)는 파란색 브룩스 브라더스 옥스퍼드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샌드위치 조립라인의 첫 번째 위치에 섰다. 샌드위치 체인 저지 마이크스의 오너이자 CEO인 캔크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갓 구운 38cm 길이 빵을 갈랐다. 오른쪽에서는 남색 앞치마를 입은 직원이 분홍색 고깃덩어리를 기계로 저미고 있었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구운 소고기와 페퍼로니를 가득 쌓고 그 위에 프로볼로네 치즈와 양상추, 토마토를 올린 다음 이 체인의 시그니처 오일·식초·오레가노 혼합 소스를 뿌린 캔크로 스페셜이었다. 저지 마이크스의 모든 샌드위치는 이런 식으로 품질 좋은 고기를 주문에 따라 자르거나 구운 다음 고객 앞에서 신선하게 만들어낸다. 캔크로는 자신의 점심 식사를 종이로 포장하며 “미국 어디를 가봐도 이렇게 장사를 하는 곳은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캔크로는 14살이었던 1971년부터 저지쇼어의 이 포인트 플레전트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왔다. 소박한 갈색 벽돌 외벽 뒤 작은 골목에 들어앉은 이 매장이 저지 마이크스의 출발점이다. 1956년에 문을 연 이 매장은 이제 캔크로와 그의 팀이 새로 들어온 프랜차이즈 점주들에게 매장을 훌륭한 동네 노포처럼 운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장소가 됐다. 교육생들은 심지어 뉴저지 역사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캔크로는 “사람들은 우리 브랜드를 체인이 아니라 동네 샌드위치 가게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접근법이 저지 마이크스를 미국에서 손꼽히는 속도로 성장한 패스트푸드 브랜드로 만든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저지 마이크스는 미 전역에 있는 3000개 매장(99%는 프랜차이즈다)에서 올해 약 40억 달러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 덕분에 캔크로도 막대한 부를 쌓았다. 사업 전체의 가치와 그동안 캔크로가 받은 배당을 포함하면 저지 마이크스의 유일한 오너인 캔크로의 자산가치는 56억 달러로 추정된다. 미국 프로농구팀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인 마크 큐번이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산보다 많은 액수이며, 경쟁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인 지미 존스의 설립자 지미 존 리어터드가 보유한 자산의 두 배에 달한다. 리어터드는 “피터 캔크로의 저지 마이크스 브랜드는 대단히 훌륭하다”며 “이미 오래전에 나보다 한참 앞서갔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에 지미 존스를 사모펀드 업체 로어크 캐피털의 계열사 인스파이어 브랜즈에 매각했지만 여전히 지미 존스의 회장으로 남아 있는 억만장자다.

음식 서비스 컨설팅 업체 테크노믹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저지 마이크스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20.2%였다. 매출은 2019년 13억 달러에서 2023년 33억 달러로 증가했다. 저지 마이크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 미국 음식점 체인은 단 4개뿐이다. 지중해식 간편 음식점 카바, 치킨 음식점 레이징 케인스, 드라이브스루 커피 판매점인 스쿠터스와 더치 브로스다. 투자은행인 스티븐스의 요식업 애널리스트 짐 샐러라는 저지 마이크스를 비롯한 요식업체들이 모두 같은 유행의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의 “저렴한 럭셔리” 유행이다. 샐러라는 “고객이 원하는 것은 품질과 가격의 적절한 교차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지 마이크스의 고객은 일반적으로 맥도날드나 버거킹 고객보다 소득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저지 마이크스 매장은 가장 큰 샌드위치에 19달러나 되는 가격을 매기고도 연평균 약 16만 달러(포브스 추산)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한철 장사 초기 마이크스 섭스의 샌드위치는 저지쇼어에서 더운 여름 동안 하루에 최대 1300개씩 팔렸다. 겨울에는 500개만 팔려도 다행이었다. 캔크로는 “누나인 캐시에게 전화해서 ‘가게를 팔고 대학에 가야겠다’고 말하곤 했다”며 “하지만 잠시 동안이었다”고 말했다.
캔크로는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향후 5년간 매장 5000개, 10년 동안 캐나다에 300개 매장을 열 계획이다. 목표는 매장을 1만 개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서브웨이의 미국 내 매장은 그 2배는 된다. 캔크로는 지난 3년 동안 저지 마이크스의 첫 유명인 홍보대사로 저지쇼어 출신 영화배우 대니 드비토를 선정하고 TV 광고에 내보내는 등 마케팅에 거의 6억 달러 가까이 쏟아부었다.

문제는 저지 마이크스가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현재 얼마나 오랫동안 동네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인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다. 저지 마이크스의 3대 경쟁사인 서브웨이, 지미 존스, 파이어하우스 섭스는 모두 지난 5년 새 대규모 금융회사에 매각됐다. 캔크로도 은퇴 준비에 착수한 듯하다. 납세에 유리한 마이애미에 주택을 마련하고 매년 프랜차이즈 업주를 만나지 않는 6개월을 그곳에서 보낸다.

올해 초 블랙스톤이 캔크로에 80억 달러로 매각을 제의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캔크로는 매각이 가까워졌다는 말은 부인하면서도 지난 수년간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저지 마이크스는 여전히 여러 측면에서 가족 사업이다. 결혼 11년 차인 아내 타티아나와 네 자녀 중 3명, 70세인 형 존이 모두 저지 마이크스에서 일한다. 직원 중에는 친구와 이웃들도 있다. 뉴저지주 매너스콴에 있는 본사에서 일하는 185명 거의 전부가 인근 주민이다. 포인트 플레전트 비치 시장을 지냈던 저지 마이크스의 홍보 대표 스티븐 리드는 “마치 지역 갱단에 들어온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그는 본점에서 일하다가 떠난 뒤 2019년 다시 돌아와 캔크로 밑에서 전일제로 일한다.

매각이 이뤄질까? 아마 그렇겠지만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존 캔크로는 “피터는 재미를 다 보고 나면 그만 두겠지만, 그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캔크로는 “나는 이 자리에 오기 위해 평생을 일했는데, 믿기지 않게도 이제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40년 뒤에도 내가 여기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세금 때문에 남부로 이사하려고는 하지만, 캔크로는 뼛속까지 철저히 저지 사람이다. 포인트 플레전트에 있는 본점에서 약 10㎞ 떨어진 스프링 레이크에 집이 있다. 저지 마이크스 본사까지는 약 8㎞ 거리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캔크로는 포인트 플레전트의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자동차 수리공이었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봤다. 캔크로는 인기가 많고 운동을 즐겼으며 똑똑했다. 포인트 플레전트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으로 선출됐고, 학교 미식축구 팀에서는 수비수를 맡았다. 1975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캔크로는 뉴저지에서 멀리 떠나는 밝은 미래를 계획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에서 미식축구를 하다가 변호사가 되는 미래였다.

그러나 14살부터 시간제로 일하던 샌드위치 가게 마이크스 섭스가 매물로 나왔다. 캔크로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 가게를 매수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크스 섭스에서 함께 일했던 존의 기억은 다르다. 존의 말에 따르면 한 친구가 매장이 매물로 나왔다며 매수하라고 권했다. “제가 웃으면서 그랬죠. ‘절대 안 살거다. 평생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살 생각은 없다’고요.” 그날 밤 캔크로는 존에게 매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햄을 자를 수조차 없는 나이였던(미국 노동법에 따르면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피터는 다음 주 학교를 결석하고 미친 듯이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가족의 친구들을 수소문한 끝에 옛 미식축구 코치였던 로드 스미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지역 오션 카운티 국립은행의 부사장이었던 스미스는 10% 이자를 받기로 하고 12만5000달러를 빌려줬다.

캔크로는 고등학교 마지막 4개월을 다니는 시늉만 하면서 온 정신을 일에 집중하며 친구와 가족을 채용해 도움을 받았다. 캔크로는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일하러 매장으로 갔다”고 돌이켰다. 캔크로는 머지않아 빚을 다 갚았고, 마이크스 섭스는 1년에 약 100만 달러어치의 샌드위치를 팔았다.

포인트 플레전트 태생으로 1984년 캔크로 밑에서 일을 시작해 지금은 저지 마이크스의 프랜차이즈 점주 교육을 감독하는 존 휴는 “캔크로는 그때부터 장사에 재능을 보였다”고 말했다.


캔크로는 1980년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지만 18개월 이내에 매각했다. 1987년에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심지어 런던에서도 찾아와 자신의 샌드위치를 포장해 가는 것을 보면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메모장을 꺼내 저지라는 뿌리를 나타낼 새 이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캔크로는 뉴저지 마이크스, 뉴저지 섭스, 저지 마이크스 중 마지막 이름을 택했다.

대부분의 주요 패스트푸드 체인은 프랜차이즈 모델로 운영되며, 덕분에 빠르고 저렴하게 확장할 수 있다. 현지 점주는 초기 비용과 비싼 라이선스 로열티(저지 마이크스의 경우 초기 비용 1만8500달러, 로열티 6.5%)를 지불한다. 그 대가로 검증된 돈벌이 수단과 성공에 필요한 지원과 교육을 받는다. 캔크로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지 마이크스는 그 후 4년 동안 매장을 30개 더 늘렸고, 저지를 넘어 오하이오와 자신의 매형이 매장을 연 테네시까지 확장했다. 1991년 짧은 불황과 뒤이은 대출 파동이 확장하느라 부채가 많았던 저지 마이크스를 덮쳤다. 캔크로는 자신의 형을 포함해 본사 직원 6명을 모두 해고해야 했고, 형은 잠시 자동차업계에서 일했다. 마음을 다잡은 캔크로는 더 열심히 노력해 1994년 저지 마이크스를 정상화하고 모두를 다시 채용했다. 1990년대 말 매장 수는 100개가 넘었다. 2018년 체인의 전체 매출(모든 프랜차이즈와 직영 매장의 매출 총합)은 10억 달러가 됐다. 2년 뒤 팬데믹이 닥쳤다. 캔크로는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돈을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행동하며 “나는 남들과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20년 3월, 전국이 대부분 봉쇄됐을 때 캔크로는 회사의 첫 TV 광고를 직접 쓰고 출연했다.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광고와 달랐다. 캔크로는 자사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구급대원과 병원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 저지 마이크스의 모회사는 모든 매장이 병원, 음식 배급소, 기타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곳에 샌드위치를 1000개까지 기부하도록 비용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캔크로는 더 큰 도박을 걸었다. 기업 증권화로 5억 달러를 유치하고 1억5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팬데믹 도중 저지 마이크스의 매장 17개를 리모델링했다. 보통 매장 개선 비용은 점주가 부담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또 캔크로는 회사 앱과 웹사이트 업그레이드에 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거의 모든 이동이 막혔을 때 전국의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 개인 제트기까지 구매했다. 이처럼 코로나19 도중 전력을 다한 성과는 놀라웠다. 캔크로는 “매출이 65% 증가했다”고 말했다. 2019년 13억 달러였던 매출이 2021년 22억 달러로 늘었다. 매장별 평균 매출은 85만 달러에서 최근 130만 달러로 증가했다. 패스트푸드 전문지 QSR에 따르면 이는 일반적인 지미 존스 매장보다 30%, 서브웨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캔크로가 점주를 고를 때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만 않았다면 저지 마이크스는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회사는 저지 마이크스 점주를 지망하는 사람들 가운데 1%만 승인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지 마이크스 매장을 얻기가 하버드대(2024년 합격률 3.6%)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셈이다.

저지 마이크스에서 교육을 총괄하는 휴는 “점주들은 엄격한 선별 절차를 거친다”고 말했다. 캔크로는 기꺼이 현장에서 일하고 회사 문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점주를 찾는다. 지역사회 교류와 자선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그 문화의 일부다. 캔크로는 모든 점주가 회사의 연례 기부의 날에 자발적으로 하루 치 매출을 기부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댈튼 스튜어트는 저지 마이크스의 첫 텍사스 매장을 손에 넣으려고 4년 동안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저지 마이크스 측은 내게 ‘첫째로 당신은 돈이 부족하고, 둘째로 아직 우리가 텍사스에서 영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마침내 2001년 스튜어트는 캔크로를 만나 기회를 얻는 데 성공했다. 현재 댈튼은 텍사스주에서 매장 9개를 운영한다. 텍사스는 캘리포니아주, 플로리다주 다음으로 저지 마이크스 매장이 많은 주다. 131개 매장이 있는 뉴저지주는 5위다.

저지 마이크스 프랜차이즈 매장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저지 마이크스에서 일하는 것이다. 캔크로는 전 직원과 매니저 75명에게 프랜차이즈 점주를 맡겼다. 심지어 일부 매장의 임대에 공동 서명하고 초기 비용을 대주기 위해 점주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캔크로는 “나중에는 수백 명, 수천 명이 자기 매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지 마이크스 점주들과 그 밑의 직원 중 최소 한 명은 8주 동안 총 36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휴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몸에서 샌드위치 냄새가 날 정도”로 샌드위치 라인에서 일한다. 포인트 플레전트 교육 센터에서 5일간 교육을 받는데, 교육생이 너무 많으면 인근 호텔을 빌려서 ‘저지의 자부심’에 대해 배운다. 휴는 “특히 TV 드라마 [저지 쇼어]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흔히 저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을 바로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 사진:ILLUSTRATIONS BY SCOTT ANDERSON FOR FORBES
각 매장 내부는 주의 깊게 설계된다. 고기 자르는 기계와 그릴(뜨거운 샌드위치 또는 치즈스테이크용)이 있다. 인테리어는 해변 벽화, 서핑보드나 나무 패널 등으로 해변 느낌이 나게 꾸민다. 계획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조차 모두 계획의 일부다. 예를 들어 즉석에서 고기를 자르느라 고기의 양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도 옛날식 전통 음식점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다. 공개된 프랜차이즈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매장 중 3.5%, 약 100개 정도만 문을 닫았거나 새 점주에게 팔렸다. 지미 존스은 그 수치가 10.2%다. 캔크로와 같이 고등학교 미식축구를 했던 친구의 동생인 마이크 맨조 CEO는 “캔크로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조치를 빠짐없이 모두 하기 전까지는 매장을 닫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조치에는 매장을 인수하거나 새 주인을 찾아 주는 것까지 포함된다.

저지 마이크스의 노무 비용은 높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업계 평균보다 낮다. 직영점 매니저는 12만5000~17만5000달러 사이의 급여를 받으며, 프랜차이즈에도 비슷한 금액이 권장된다. 하지만 매장마다 12~15명만 고용해야 한다. 일반적인 맥도날드 매장은 20~50명을 고용한다. 캔크로는 조립라인을 차별화 요소로 꼽는다. 그 결과 저지 마이크스는 전체 매출의 약25%만 노무비로 지출하는데, 이는 경쟁사들에 비해 5%p 정도 낮다.

만약 캔크로가 내일 은퇴한다면 딸인 캐롤라인 존스(36)가 CEO 자리를 승계할 것이다. 존스는 도미노피자 임원을 지내고 현재 저지 마이크스의 사장인 호이트 존스와 결혼했다. 캔크로는 “딸은 10대 때부터 나와 함께 전국으로 출장을 다녔다”고 말했다. 캔크로는 서브웨이가 공동 설립자 프레드 델루카의 사망 이후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승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015년 67세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델루카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거의 세워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델루카의 사망 이후 서브웨이는 리더십 위기를 겪으며 품질 문제로 인해 글로벌 매장 4만5000개 중 7700개를 폐점했고, 회사 대변인 재러드 포글은 아동 포르노 혐의로 체포됐다.

캔크로는 시기를 정해놓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매각하기에 좋은 시점을 잘 안다. 저지 마이크스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최근 음식점 체인들은 군침을 돌게 할 정도로 높은 가격에 속속 매각되고 있다. 저지 마이크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인 서브웨이는 올해 초 로어크에 90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렸다. 캔크로는 “파파이스가 18억 달러에 팔리는 걸 봤다. 파네라 브래드는 투자회사인 JAB에 (75억 달러에) 매각됐고, 던킨도 약 12억 달러에 매각됐다”며 “매각 시기도, 액수도 아주 흥미롭다”고 말했다.

저지 마이크스가 매각된다면 블랙스톤 같은 맨해튼의 금융회사들이 저지에 뿌리를 둔 저지 마이크스의 문화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다. 캔크로는 도미노피자를 예로 들며 걱정이 없다고 한다. 도미노피자의 설립자 톰 모너건은 캔크로의 멘토다. 모너건은 도미노 지분 90%를 1998년 약 10억 달러를 받고 베인캐피털에 매각했으며, 이후 브랜드는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캔크로는 “모두가 항상 매각을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잘된다”고 말했다.

캔크로가 샌드위치 이후의 삶을 준비 중인 것은 분명하다. 2021년 캔크로와 그의 두 번째 아내 타티아나는 약 4000만 달러를 들여 마이애미의 인디안 크릭 아일랜드 변두리에 방이 19개인 1만4000㎡ 크기의 저택을 샀다. 이 마이애미의 고급 주택지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 재러드 쿠슈너와 이방카 트럼프 부부 등이 살고 있다. 캔크로 부부는 이미 마이애미, 뉴욕시, 뉴저지주에 최소 4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또 포브스의 계산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세전 배당금으로 약 6억 달러를 받아 현금도 많다. 캔크로는 스포츠 팀을 인수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그는 “우리는 하키 리그 NHL의 주요 스폰서인데, 경기를 볼 때면 나는 하키를 보지 않고 빙판 위에 있는 우리 로고를 찾는다”고 말했다.

- Jemima Mcevoy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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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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