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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실체가 사라지는 미래의 자산 형태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흐릿한 요즘, 소비와 소유의 경계선도 불분명해지고 있다. 메타버스 세계에서 소비와 소유의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메타버스에서 현재 NFT로 판매되는 신발 등 패션 아이템. / 사진:로블록스 나이키랜드 캡처
언제부터인가 내가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들의 실체가 점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전에는 일을 하면 봉투에 들어 있는 빳빳한 신권 형태의 현금으로 받았고, 매장에 들어가 그 돈을 소비하면 뭔가 물건을 받았고, 그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요즘은 돈을 벌면 온라인 뱅킹으로 확인하고, 그 돈을 소비하려면 온라인쇼핑을 하고, 온라인쇼핑으로 구매한 물건 자체가 오디오파일, 디지털 상품권, e-book 등 디지털 데이터로 이루어진 물건인 경우가 많아 현실에서 수납공간이 없어도 된다(물론 클라우드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되면서 어딘가에서는 내 디지털 소유물을 저장하는 데 필요한 서버를 늘리고 있을지 모른다). 조지아대학 내에 있는 내 사무실에는 책장이 여러 개 있는데 요즘은 종이책보다 e-book과 PDF를 선호하기 때문에 책장을 채우기 어려워진 것도 간혹 생경하게 다가온다.

물질만능주의를 표방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고 소유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실제로 환경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기후변화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저출산과 인구감소라고 한다. 이는 한 사람이 아무리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소비만 하고 살더라도 기본값의 의식주 소비를 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소비하며, 소비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소비자심리학 연구를 들여다보면, 소비에는 나름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관이 녹아 있어, 사람들이 하는 소비는 곧 확장된 자아(extended self)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따라서 소비할 물건을 선택할 때도 내가 인지하는 스스로의 이미지와 최대한 비슷한 브랜드를 고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브랜드의 물건을 보며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의 이미지를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소비자심리학자들은 브랜드에도 분명 공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성격이 있다고 보고 ‘브랜드 성격’(brand personality)’ 유형을 지정하고 분석하는 연구들을 한다. 소비자들이 대체로 애플은 창의적, 마이크로소프트는 고리타분, 나이키는 역동적인 성격을 지닌 브랜드라고 인식한다는 거다. SNS 등에서 자주 보는 ‘물건을 데려왔다’는 표현, 물건을 마치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유행은 어쩌면 물건을 사물 이상의 확장된 자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소비활동으로 얻은 물건은 확장된 자아, 즉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소유’는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본능 중 하나라 ‘내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타인의 소유물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값어치 있게 느껴진다. 이를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이라 하는데, 이 소유감 때문에 소비의 기쁨은 어떤 물건이 불특정 다수에게 진열되어 있다가 ‘내 것’이 되는 순간에 가장 커진다. 기존 문헌에 따르면, 심리적인 소유감은 단지 경제활동으로 인한 소비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나와 관련된 그 어떤 하찮은 것이라도 일단 ‘내 것’이기 때문에 소유하고, 좋아하고, 아끼게 된다. 크게는 내가 다니는 학교와 회사부터 작게는 내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까지, 내 것은 남의 것과 똑같은 브랜드의 똑같은 물건이더라도, 마이홈, 마이카처럼 내가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좋고, 멋지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메타버스 안 물건에도 심리적 소유감이 생길까?

기존 연구들은 가방, 자동차, 신발 등 실체가 있는 물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어왔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만질 수 있는 현물이 없는 메타버스 안에서의 사물도 확장된 자아의 일환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메타버스 안의 사물은 빠른 시간 안에 무한대로 복사할 수 있어서 희귀성이 없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메타버스 안의 물건에도 심리적인 소유감이 생겨서 그 물건이 파손되거나 소멸될 때 심리적인 타격을 입는지 궁금했다.

기존 문헌에 따르면 가상이나 디지털 물건에도 심리적 소유감이 생기기는 한다. 그런데 재생산이 용이하기 때문에 분실하기 어렵고(그 자리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실체나 현물이 없기 때문에 딱히 파손이라 보기 힘들다. 우리 센터의 최근 실험 결과에 따르면, 어쨌든 내가 한 번이라도 소유했던 경험이 있는 ‘내 것’에 손해를 입으면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심리적 소유감의 강도에 따라 타격감도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내 것이기는 하나 내가 고르지 않고 그저 주어진 메타버스 안의 물건들에는 심리적 소유감이 있기는 하나, 내가 직접 고르고 사용해본 물건들에 대한 소유감보다는 낮기 마련이다. 이때 갑자기 메타버스 안에 어떤 사고가 발생하여 물건들이 망가지거나 분실되면 사람들은 소유감이 높았던 물건들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타격감을 받아 기분이 크게 나빠지지만, 소유감이 낮은 물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소비활동을 하며 얻게 된 가상의 물건들을 사용하면 할수록, 픽셀들로만 이루어진 물건에도 심리적인 소유감을 느끼게 되어 쉽게 똑같은 형상으로 금세 재생산해낼 수 있다 하더라도 ‘내 것’이었던 원래의 물건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도 같은 모양의 옷, 신발, 보석이 많아도 그중 하나를 고르고 착용해 ‘내 것’으로 심리적 소유감을 형성하게 되면 대량으로 생산되어 타인들이 소유한 똑같은 옷, 신발, 보석이 많다 하더라도 내 것은 유독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아바타용 신발과 옷들이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사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이미 똑같이 생긴 사물들에도 무형의 가치를 달리 책정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며 소유하고 싶어 한다.

클릭 한 번에 다른 가상 세계로 이동하고 광물과 보석 등의 이미지를 본뜬 3D 장신구로 아바타를 장식해도 잘 눈에 띄지 않는 메타버스 안에서 큰 집, 큰 차, 명품 가방, 보석 등 현물 가치로 과시할 수 있는 현실 세계의 자산들이 가상공간에서도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가상공간에서 정복욕과 과시욕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은 현재로서는 아바타가 입고 쓰는 것들에 국한되어 있지만 미래에는 메타버스를 좀 더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예: 화소, 오디오 품질, 헤드셋 스펙)이나 아바타가 움직이는 속도 혹은 다양한 얼굴 표정과 현실감 등으로 과시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물을 빠르게 복사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물건의 희소성(예: 몇 개만 제작한 디자인)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질 것이고, 물질적인 ‘내 것’들이 사라질수록 아이러니하게 메타버스 안에서 명예나 지위 등 무형자산의 가치가 더 상승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본능, ‘내 것’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심리적 소유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 메타버스 공간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이동하게 되면서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의 형태와 성질이 달라질 것이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410호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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