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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메타버스로 만나보는 경외로운 경험 

반복되는 매일의 익숙함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간혹 외부적인 요인들과 개인의 건강상태 악화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면 매일 같은 루틴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하루가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만약 이런 무기력감 때문에 직장 생활이나 일상이 재미없고 시큰둥해졌다면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을 의심해봐야 한다.

▎메타 퀘스트용으로 제작된 Liminal 명상 앱. / 사진:LIMINAL VR 홈페이지
얼굴을 가리는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우주여행이나 상상 속의 판타지 세상을 방문하는 것이 쳇바퀴 굴러가듯 살아야 하는 현실 세상과 큰 관련이 없는 것 같아 메타버스가 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재고해봐야 할지 모른다. 메타버스 관련 최근 연구 동향을 보면 가상현실 경험 후에 느끼는 경외감에 대한 결과들이 주목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의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할 때 경이로움(wonder)을 느끼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저강도(low intensity) 경외감이라고 칭하고, 이보다 훨씬 더 강렬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의 경이로움을 경외감(awe)이라고 정의한다.

강렬한 경외감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초월적(self transcendent) 경험이다. 이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규모의 광경에 압도당하거나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정도의 초월적 감정을 느낄 때 발생한다. 과거에는 주로 종교나 신앙적 감정으로 여겼던 경외감이 최근 들어 과학적 사고방식과 지적 호기심 등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터가 제시되고 있다. 평면의 2차원에서 전하는 자기 초월적 경험들은 주로 광활한 대자연에서 양육강식이 통하는 동물의 세계가 펼쳐지는 장면이나 특수촬영장비들로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들을 보여줬다. 3차원의 메타버스 환경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의 경외적인 경험들을 전달한다.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들거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아예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의 세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도 바쁜 마당에 갑자기 웬 경외감 타령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외감을 느끼면서 달라지는 심리 상태에 있다. 일상에서 겪는 판에 박힌 일들이 아닌, 나를 초월하는 규모의 현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세속적인 가치(예: 돈)에 대한 관심이 줄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면서 영감을 받게 된다.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일상에 지쳐 번아웃이 왔을 때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경외감을 통한 영감은 지친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느끼게 하고 일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경외감이 강렬할수록, 우리는 일상이라는 작고 좁은 프레임 안에 갇혀 돈, 명예 등 일상에서 연연하며 간절히 원했던 것들의 가치를 재고해보게 된다.

메타버스, 새로운 경험이 중요한 이유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또 있다. MBTI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사실 수많은 연구 결과에서 과학적으로는 훨씬 더 견고하게 정립된 성격 이론에는 5가지 성격 특성 요소(Big Five personality traits)가 있다. 그중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은 인지적 유연성, 창의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특히 인지적 유연성은 문제해결 능력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기반을 마련해준다고 알려져 있어, 단순히 경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수동적인 자세로 영상을 시청하는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보다 비디오게임이나 보드게임이 인지적 유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즉, 친구들과 만나 상호작용하면서 계속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끊임없이 돌발 상황이 생겨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인지적 유연성이 크게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근래에 자주 발표되고 있다. 따라서 혼자 하는 게임보다 로블록스나 RecRoom 같은 메타버스 환경에 로그인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일상에서 맞닥뜨리기 힘든 상황들을 계속 헤쳐나가는 경험이 인지적 유연성과 창의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이런 게임들은 역설적으로 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현존하지 않는 지식을 발견해나가는 과학자에게는 지적 호기심이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메타버스를 경험하면서 경외감을 느낄 만한 큰 규모의 감각적 자극, 낯선 환경에서 타인과 처음 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우리가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정치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방성이 낮은 사람일수록 변화를 싫어하고 익숙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과거에는 이런 성향들이 한번 타고나면 바꾸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많은 사회과학적 연구 결과, 타고난 성격이 완전히 변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이 살면서 접하게 되는 여러 상황과 환경에 의해 타고난 성격도 조금씩 바뀐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인정하게 됐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정치 성향 등으로 단절과 분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경외감을 심어줄 수 있는 메타버스 경험이나, 같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게임 환경에 노출되게 하면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전체적으로 높여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좋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실험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발상이다.

일상의 쳇바퀴에 지친 사람들에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조언을 흔히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다. 숲 안에 있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공중 부양 능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나무만 보이는 게 당연하다. 얼마 전에 대학원생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겪은 일이다. 메타 퀘스트용으로 제작된 Liminal이라는 명상 앱을 통해 마치 매트릭스의 평행 세계를 다녀온 듯한 경외로운 판타지 체험을 하고 난 후, 그날 빡빡하게 잡힌 미팅 등 스케줄에 대한 부담감이 줄면서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누구나 꿈꾸는 일상 탈출이 꼭 값비싼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내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매체라면, 그게 책이든 영화든 음악 공연이든 다 좋다. 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경험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의미 있는 인생은 무엇인지 한 번쯤 곱씹어보면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잠깐이라도 짬을 내 헤드셋을 통한 메타버스 여행에서 하늘을 날며 숲, 지구, 우주를 경험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412호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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