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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새로운 경험이 중요한 이유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또 있다. MBTI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사실 수많은 연구 결과에서 과학적으로는 훨씬 더 견고하게 정립된 성격 이론에는 5가지 성격 특성 요소(Big Five personality traits)가 있다. 그중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은 인지적 유연성, 창의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특히 인지적 유연성은 문제해결 능력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기반을 마련해준다고 알려져 있어, 단순히 경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흥미로운 것은, 수동적인 자세로 영상을 시청하는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보다 비디오게임이나 보드게임이 인지적 유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즉, 친구들과 만나 상호작용하면서 계속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끊임없이 돌발 상황이 생겨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인지적 유연성이 크게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근래에 자주 발표되고 있다. 따라서 혼자 하는 게임보다 로블록스나 RecRoom 같은 메타버스 환경에 로그인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일상에서 맞닥뜨리기 힘든 상황들을 계속 헤쳐나가는 경험이 인지적 유연성과 창의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이런 게임들은 역설적으로 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현존하지 않는 지식을 발견해나가는 과학자에게는 지적 호기심이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메타버스를 경험하면서 경외감을 느낄 만한 큰 규모의 감각적 자극, 낯선 환경에서 타인과 처음 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우리가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정치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방성이 낮은 사람일수록 변화를 싫어하고 익숙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과거에는 이런 성향들이 한번 타고나면 바꾸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많은 사회과학적 연구 결과, 타고난 성격이 완전히 변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이 살면서 접하게 되는 여러 상황과 환경에 의해 타고난 성격도 조금씩 바뀐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인정하게 됐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정치 성향 등으로 단절과 분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경외감을 심어줄 수 있는 메타버스 경험이나, 같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게임 환경에 노출되게 하면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전체적으로 높여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좋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실험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발상이다.일상의 쳇바퀴에 지친 사람들에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조언을 흔히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다. 숲 안에 있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공중 부양 능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나무만 보이는 게 당연하다. 얼마 전에 대학원생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겪은 일이다. 메타 퀘스트용으로 제작된 Liminal이라는 명상 앱을 통해 마치 매트릭스의 평행 세계를 다녀온 듯한 경외로운 판타지 체험을 하고 난 후, 그날 빡빡하게 잡힌 미팅 등 스케줄에 대한 부담감이 줄면서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누구나 꿈꾸는 일상 탈출이 꼭 값비싼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내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매체라면, 그게 책이든 영화든 음악 공연이든 다 좋다. 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경험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의미 있는 인생은 무엇인지 한 번쯤 곱씹어보면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잠깐이라도 짬을 내 헤드셋을 통한 메타버스 여행에서 하늘을 날며 숲, 지구, 우주를 경험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