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경영은 광활한 바다에서 맹렬한 파도를 뚫고 가는 여정이다. 배가 부서지면 새로운 배로 갈아타며 목적지로 향한다. 11년 차 스타트업 꾸까는 오늘날 플라워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배를 몇 번이나 갈아탔을까. 수를 세어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모든 파도를 뚫고 가는 ‘완벽한 배’는 없을까?
많은 창업가가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거칠고 넓은 바다에서 온갖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완벽한 배를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창업가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간 경험으로는 작더라도 유연하고 새로운 파도에 적응해 새로운 엔진을 쉽게 붙일 수 있는 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꾸까가 탔던 첫 배는 꽃 정기구독 서비스였다. 그 배에는 온라인 커머스라는 엔진을 달았다. ‘일상에서 즐기는 꽃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정한 꾸까에 2주마다 꽃을 받아보는 구독자를 모으는 것은 화훼 시장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꽃집에 가서 꽃을 사던 문화에서 홈페이지에서 주문해 택배로 꽃을 받아보는 온라인 배송은 화훼업계의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성공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도는 높지만, 깊지는 않은 첫 바다에 진입하기에 좋은 배였다. 속도를 내기 위해 당시 유일했던 페이스북의 브랜드 페이지라는 엔진을 달아, 좀 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팔로워가 25만 명에 달하는 팬덤이 생겼고 그대로 끝까지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2~3년이 지나자 바다의 조류가 바뀌었다. 페이스북 유저는 다른 플랫폼으로 떠나고 있었고, 꽃 정기구독은 더는 신선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급격히 올라 꽃다발을 만드는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 처음 만든 그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고 있었다.‘새로운 배를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은 쉽지 않았다. 타고 있는 배에 대한 미련, 가끔 불어오는 순풍에 앞으로 나가는 배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 그렇게 1년이 지나서야 그 배를 포기했다. 꽃다발이 아니라 채소처럼 가볍게 사는 꽃, ‘파머스 마켓’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튤립, 프리지아 같은 단품을 판매했다. 또한 생산 시설을 분업화·기계화해서 화훼업을 제조업의 시각으로 혁신해나갔다. 그제야 다시 배는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배도 2~3년 후 동력을 잃고 느려졌다.
창업 이래 꾸까가 항해했던 배를 하나의 모습으로 그려내기 어렵다. 실패한 수많은 엔진이 고철처럼 붙어 있기도 하고, 파도에 떨어지는 장비를 수선한 밧줄과 쇠사슬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하지만 꾸까가 11년째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배의 결함을 살피고 유연하게 새로운 엔진과 장치를 쉽게 붙여볼 수 있는 문화에 있다.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은 망망대해를 나아가는 배와 같다. 조류가 어떻게 변할지, 파도가 얼마나 거셀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창업가가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은 파도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배를 매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박춘화 꾸까(kukk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