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50) 실용과 유연함, 부에 대한 열망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인들 

 

불과 몇 년 사이에 한국 사회에 반중 정서가 너무 심해졌다. 서로에게 필요하고 정말 잘 알아야 할 이웃 나라인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휩쓸고 있다. 중국은 우리에게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다. 우리는 중국을 너무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가 중국 기업인들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챗GPT로 그린 중국 제조 공장 전경.
얼마 전 시가총액이 수조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의 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 대량생산으로 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회장의 말처럼 대량생산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과 가격경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령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가 최근 반도체 장비를 제조해 팔았는데, 판매가격이 정상가격의 절반 수준이라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정부 보조금 요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가격이었다. 그 기업에 왜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지 물었더니, 현재 반도체 장비 회사가 200개 정도 있는데 앞으로 몇 년 이내에 몇 개 회사만 남고 대부분 망할 것이라 한다. 살아남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장점유율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금속가공 공장을 다녀온 한국 사업가는 두 가지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공장 규모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서, 두 번째는 자동화로 인해 공장에 사람이 없어서 놀랐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금속가공품은 품질도 우수한데 가격은 한국에서 만드는 가격의 절반이었다.

원래 온라인쇼핑은 즐겨 하지 않지만 테무와 알리에서 일부러 저렴한 상품 수십 개를 사봤다. 매스컴에서 우려한 것처럼 한국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30~90% 저렴해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싼 가격의 비밀은 대량생산, 제조업체와 직거래하며 중간 유통상 배제, 강력한 경쟁 시스템, 저렴한 물류비,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에 있었다. 품질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상품을 고객 수억 명에게 싸게 만들어 배송하는 중국업체의 시스템을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중국 반도체 팹에서 성능이 떨어져도 중국 장비를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서비스 능력 때문이다. 외산 장비업체들은 서비스 대응이 느린 반면, 중국 장비회사들의 서비스가 훨씬 더 잘된다는 것이다. 왜 중국 장비사들의 서비스가 좋은지 물어봤더니 경쟁이 치열하니 서비스가 나쁠 수가 없다고 한다.

몇 년 전 중국 도시 우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구두 밑창이 떨어져서 접착제가 필요했다. 이를 본 중국인 동료가 인터넷으로 접착제를 주문했는데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호텔방에서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달 전엔 미국에서 열린 큰 학회에 참석했는데, TSMC 고위 간부가 수많은 미국 기업인 앞에서 강연하면서 “미래를 보려면 중국에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강연자의 이야기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한 수 아래로 봤던 중국 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한국 기업들을 추월하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은 부분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요즘 한국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이 떨어지는 이유를 뜯어보면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제 매일 미국에서 날아오는 뉴스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열심히 들어야 한다. 앞으로 30년간 우리와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고 협력할 회사들은 중국 기업들일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만난 중국 사업가들은 활력이 넘쳤다. 우리 고객 중에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무섭게 성장한 회사도 많았다. 중국 비즈니스맨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어떻게 다른지 지켜봤다. 서양인, 한국인과 중국인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차이점은 피부로 느낄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중국 기업들을 보면 그들의 실용적 사고와 유연한 태도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중국 기업인들의 강점은 돈에 대한 집중력, 유연한 사고와 협상에 강하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잘해온 것은 ‘샤오미’처럼 가성비 높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내는 기술이었다. 이런 가성비 상품들이 품질에 문제도 많아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조롱하는 단어로 쓰이긴 하지만, 이런 가성비 상품들이 중국 경제를 일으켰고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물가를 안정시켰다.

20여 년 전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런데 이 인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너무 물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한국인들이 편하게 사용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화교권에서는 ‘부자 되세요’와 비슷한 인사말로 ‘恭喜发财(gōngxǐ fācái)’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비슷한 의미로 ‘부자가 되세요’ 또는 ‘돈 많이 벌어요’라는 뜻이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인사가 금방 사라졌고, 화교권에서는 오랜 기간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을까?

중국 사회는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성공을 중시하며 ‘恭喜发财’는 이러한 실용주의를 반영한다. 중국에서는 물질적 성공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요소로 여겨지며, ‘恭喜发财’는 이러한 가치를 반영한다. 이는 물질적 성공이 한국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주자학과 사농공상, 경제성장


▎중국과 화교권 기업인들의 교류를 챗GPT로 표현했다. 이들은 꽌시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간다.
조선은 송나라 주희(朱熹)가 정립한 주자학(성리학)을 국시로 삼았다. 주자학은 신분 질서와 충(忠), 효(孝)를 중시하는 가치체계를 기반으로 하며, 이는 상업보다는 농업 중심 사회를 이상적 모델로 삼게 했다. 주자학적 질서 속에서 과거제도가 강화됐고, 관료 중심의 사회가 정착됐다. 상인은 사회적 지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주자학이 만들어놓은 조선의 사회 시스템은 현대의 한국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듯 보인다. 주자학적 전통이 뿌리 깊은 조선은 쌀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경제 사회였다. 명(明)·청(淸)과의 제한된 조공무역을 중심으로 대외 교류를 진행했고, 상업과 무역을 억제했다. 중국에도 사농공상이 있었지만 한국처럼 심하지 않았다. 소중화 사상으로 대표되는 주자학적 세계관은 한국이 근대화에 늦은 중대한 원인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에 주자학적인 세계관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한국인만큼 회사에 로열티를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민족을 별로 보지 못했다. 지난 70여 년간 한국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요즘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독하게 일한다는 평을 미국, 일본, 중국 등 외국인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관찰한 경험에 비추어봐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한국인이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일해왔던 것 같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 2002년 월드컵 응원 열기, 2022년 코로나 극복 과정 등을 보면 사회적 협력을 토대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사회적 협력과 단결을 강조하는 주자학의 영향이 커 보인다.

중국의 양명학과 상업 정신

양명학은 중국에서 주자학의 형식화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명나라 때 등장한 양명학(陽明學)이 중국의 중요한 사상적 흐름을 형성했다.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한 양명학은 이론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며, 인간의 내면적 깨달음과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에서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주자학이 ‘독서와 관료 진출’을 강조하며 상업을 천시한 것과 달리, 양명학은 상업과 실물경제 활동을 긍정적으로 본다.

명나라 후기, 특히 16세기 이후 양명학이 널리 퍼지면서 신분에 따른 경제적 제약이 완화되었다. 기존의 주자학적 사회질서에서는 상인과 공인이 낮은 신분으로 취급받았지만, 양명학이 강조하는 개인의 내면적 깨달음과 실천철학은 신분을 넘어선 경제활동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이는 민간 상업과 금융업의 활성화, 도시경제의 성장을 촉진한다. 조선의 주자학은 농업과 관료 체제를 강조하며 상업을 경시했지만,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장사와 무역을 통한 신분 상승이 가능해졌고, 이는 상업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됐다.

1780년 박지원은 청나라 북경을 다녀오고 다양한 견문과 경험을 쌓으면서 여행기 『열하일기』를 썼다. 박지원은 청나라의 번성한 상업과 공업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조선에서도 이러한 산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과 중국은 같은 유교 전통을 공유했지만,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는 경제·무역 정책에서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조선은 주자학적 질서를 강화하며 폐쇄적인 경제 시스템을 유지했고 이는 결국 근대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제국주의에 밀려 쇠락했지만 양명학을 바탕으로 더욱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아편전쟁 이전까지 세계경제 30% 이상을 이끌었다. 오늘날 중국 기업인들도 가격 협상, 시장 변화 대응, 고객 심리 파악 등에 능하며, 이 또한 실용적 사고를 강조하는 양명학적 철학과 연결된다.

중국 상인들은 일찍이 해외로 진출하여 동남아, 유럽, 미국 등지에서 무역망을 구축했다. 이는 양명학적 사고가 강조하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기회를 활용하는 자세’ 덕분에 가능했다고 본다. 지금도 전 세계 구석구석에 깔린 화교 네트워크는 중국과 화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20세기 한국전쟁 이후 중국이 ‘죽의 장막’에 갇혀 있을 때 남한이 자본주의 진영의 최선봉에서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역사 최고의 행운이라고 한다. 1978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선부론(先富论,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어야 한다)을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물질적 성공을 중시하는 문화가 더 강화되었다. 물질만능주의가 중국 사회를 피폐하게 했을 수도 있지만, 중국 경제성장의 강력한 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중국과 화교권 기업인들과 어울리면서 ‘펑요(朋友)’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조금 더 친해지면 ‘라오펑요우(老朋友)’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 형성된 깊은 관계를 라오펑요우라고 부르며 개인적 관계를 넘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를 뜻한다. 한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친구와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어떤 때는 자기 고향 친구들을 불러 같이 술을 마시며 인간관계와 사업을 동시에 확장해간다. 중국 사업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 시’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시(关系, guanxi, 관계, 연줄, 인맥)는 중국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비즈니스 성공에 필수 요소로 여겨진다. 이는 단순한 인맥을 넘어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의미하며 중국 비즈니스에서 신뢰와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과 화교권 기업인들은 협력과 합작에 능하다. 어떤 도시를 가도 중식집에는 둥그런 테이블이 있고, 큰 회사, 작은 회사 서열이 없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활발하게 토론을 한다. 반도체 업계에서 보면 요즘 제일 잘나가는 엔비디아, TSMC, AMD 등이 모두 대만계 기업인들이 이끈다. 이들 간의 끈끈한 협력이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면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런 시 네트워크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중국과 화교권 기업인들이 특정 지역, 학교, 회사 출신들끼리 모이는 모임에 여러 번 초대를 받아 가봤다. 시로 이어진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수많은 사업이 만들어진다. 대만과 한국은 1970년대부터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비교되는 대상이었다. 대만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이 철강, 화학, 자동차, 조선 등 모든 기간산업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재벌 중심의 사업 구조로 세계적인 제조업체로 성장하는 것을 부러워했다. 요즘은 TSMC가 파운드리 산업에서 삼성을 제치고 나아가면서 대만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한국의 두 배가 됐다. 대만에도 재벌 기업이 있지만, 업종에 특화된 기업이 더 많다. TSMC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전자 제조회사 Foxconn, 세계 최대의 후공정 회사 ASE, 세계 굴지의 Fabless Mediatek 등 여러 회사가 마치 TSMC라는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함대처럼 협업을 이뤄낸다. 내 눈에는 그들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시의 확장판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대만의 생태계에 부러운 눈길을 보내지만, 대기업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생태계가 대만을 쫓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국 대기업들을 보면 외국 기업들과는 합작해도 같은 국내 기업들과 합작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삼성, SK, LG, 현대의 수직 계열화된 공급망을 분리해놓아 국가적인 손실이 크다.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특정 대기업군에 공급하면 다른 쪽에는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이 갑자기 전 세계에서 반중 정서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치열하게 여러 산업에서 경쟁도 하지만 중국은 가장 많은 원자재를 수입하는 국가이고 우리의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다. 미국과 서방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협력하는 분야도 많다.

10년, 20년 후에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된다는 전망이 많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이 80%가량 줄었다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 김정웅 -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자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임교수. 30여 년간 5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이다.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의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00년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다가 폐업 위기를 겪었지만 반도체 산업에 집중해 전화위복을 이뤄냈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의 레거시 장비를 전 세계에 5만 대 넘게 판매하며 서플러스글로벌을 세계적인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5년 무역의 날 대통령상과 2021년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Autism Expo를 개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2504호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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