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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은 것도 하나의 삶이다, ‘자연’처럼 육체를 개방한 인간 

이주헌의 ‘아트스토리’ | 네이처리즘
1905년 獨드레스덴 <다리파> 화가들이 화폭에 담아
최근 멕시코시티 조칼레광장에선 1만8000명 군중누드 

미술은 오랫동안 누드를 중요한 주제로 표현해왔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다루는 예술인 미술이 벌거벗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해온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미술 전통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드 미술을 발달시키지 않았다. 모든 문명화 된 미술 가운데 오로지 서양미술만이 누드를 중요한 주제로 다뤄왔다. 누드가 적극적으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양 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누드 미술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발달시켜왔다.



누드 미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벌거벗음 자체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벌거벗음에 대한 서양 문명 한편의 긍정적 인식이 잘 표출된 것이 네이처리즘(Naturism)이다. 누디즘(Nudism)이라고도 불리는 이 나체주의 흐름은 20세기 들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누드 비치 등 나체촌을 만들어 놓았다. 가뜩이나 누드를 중요한 주제로 다뤄오던 서양미술은 이 흐름과 만나 더 적극적으로 누드를 찬미할 기회를 얻었다. 네이처리즘 운동 초기에 그 영향을 가장 잘 보여준 화가로는 키르히너, 슈미트 로틀루프, 헤켈,뮐러 등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야수파 화가들도 네이처리즘의 영향을 받아 자연 속 누드를 자주 그렸지만 독일 표현주의 화가만큼은 아니었다. 이는 현대 네이처리즘의 사상적 토대가 주로 독일 선구자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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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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