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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멸망 조짐 보일 때 고려는 ‘거란 밀월 정책’ 썼다 

프리즘 | 남북조시대의 통일정책
투항하는 발해 지배층·백성 모두 받아들이자 발해는 스스로 무너져 

신명호 부경대 교수 [smh@pknu.ac.kr]
최근 북한은 3대 세습 과정을 겪으며 혼란을 겪고 있다. 반면 남한 최고위층에서는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까지 터져나왔다. 향후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펴겠다는 복심으로도 읽혔다. 최근의 상황을 굳이 비교한다면 남북조시대를 형성했던 발해의 멸망 무렵을 떠올릴 수 있겠다. 발해의 멸망에 고려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본다.
서기 907년 여름 4월, 당(唐)나라의 선무절도사 주전충(朱全忠)은 애제(哀帝)를 폐위하고 스스로 후량(後粱)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이로써 300년 가까이 당나라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당을 대신해 거란족이 세운 요(堯)나라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했다.



당나라는 755년에 일어난 ‘안록산의 난’ 때부터 서서히 약화했다. 당의 국력이 약화하는 만큼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통제력 역시 약화했다. 북방 유목민족은 만리장성 북쪽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특별히 두각을 나타낸 유목민족은 몽골족·거란족·말갈족 등이었다. 몽골족은 고비사막 북쪽의 몽골사막에, 거란족은 서요하(西遼河) 유역 즉 요서(遼西)지역에, 그리고 말갈족은 흑룡강 유역에 흩어져 유목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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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호 (20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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