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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늦기 전에 금융시장 규제 강화해야” 

이필재 전문기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열렬한 신자유주의 비판자다. 동시에 박정희 대통령과 재벌체제가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한다. 그가 한국 사회에서 우파와 불화하고 좌파에게서도 배척받는 이유다. 반면 대중은 그의 비주류 경제학에 환호한다.

그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자본주의에 관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각각 50만 권이 팔려나갔다. 그가 쓴 일곱 권의 책은 모두 110만 권 팔렸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학자의 저작이 이렇게 인기를 끈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이 같은 ‘장하준 현상’에 국내 지식사회는 당혹스러워한다. 보수진영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두 경제학자는 최근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라는 반론서를 냈다. 이 책의 표지엔 ‘진짜 자본주의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인쇄돼 있다.

장 교수는 자유 시장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더 잘 규제된 자본주의로 길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출산, 비정규직 과다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는 복지국가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간중앙>이 그를 만나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들어봤다.


하준(48)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엄청난 격변과 혼돈의 시기”라며 말문을 열었다.

“누구도 어느 길로 가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신용등급 시스템은 금융 규제를 강화하려고 만들었는데 신용평가회사가 등급을 강등하면 투자자는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합니다. 안전장치라고 만들어놓은 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격이죠. (세계 경제가) 최소 몇 년간, 길게는 10년쯤 공식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는 않더라도 일본 같은 장기불황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인터뷰는 10월 11일과 12일 케임브리지대 그의 연구실과 케임브리지 시 인근의 식당 오처드에서 3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한 과수원에 자리 잡은 오처드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경제학자 케인스가 드나들던 유서 깊은 식당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정체성과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라고 봅니다.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해졌어요. 과거엔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도전을 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면 편하게 먹고살까’ 그런 궁리들만 하는 것 같습니다. 엘리트들 자신이 한국식 개발 모델에 회의를 느끼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엘리트들이 자기희생을 하면서 이끌어온 나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 부하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양주가 굉장히 좋은 술인 줄 알았어요. 영국에 와서 보니 가장 값싼 위스키 중 하나더군요. 어느 나라 독재자가 시바스 리갈 같은 싼 술을 마십니까?”

언제부터 정체성을 상실하게 됐을까요?

“결정적인 계기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세계화를 선언하면서부터입니다. 1996년인가 전경련이 한국의 미래 보고서를 낸 일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전경련은 사기업이 할 수 없는 것은 외교와 국방밖에 없다며 앞으로 외교부와 국방부를 제외한 정부 부처를 없애고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시장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 후 논란이 일자 내부 자료인데 잘못돼 보고서로 나갔다고 진화를 하기는 했지만…. 이때 이미 재벌들은 옛날 모델은 필요 없고 우리 뜻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실자본주의니 종이호랑이니 하면서 과거를 부정합니다. 재벌도 정부도 잘못됐다는 것이었죠. 이때 확실히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일부 시장주의자는 외환위기를 ‘위장된 축복’이라며 반겼습니다.”

한국 사회 최대의 문제는 정체성 상실

뭐가 잘못된 겁니까?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처럼 채무 이행을 정지하고 재협상이라도 했어야 하나요?

“그렇게 했으면 더 잘됐을 거라고 봅니다. 기업이 흑자도산을 하듯이 우리나라는 그때 흑자도산을 한 겁니다. 국가파산법이 없는 게 문제죠. 단적으로 재벌체제는 기형적인 게 아니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미에만 없을 뿐 유럽 대륙의 기업이 기본적으로 그런 체제로 돼 있습니다. 한국식 개발 모델이 정부 개입주의, 재벌체제, 군부 독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보니 사람들이 군부 독재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사회로 나가려면 정부가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 거죠. 물론 이런 체제가 우리 사회에 그늘을 남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검토도 안 해보고 없앴으면서도 그에 따르는 파급 효과를 감당할 능력은 없었어요. 일례로 우리나라 서비스업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유통 부문의 효율성을 높이려 한 결과 엄청난 저항에 부닥쳤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소농과 소상인을 보호한 건 단순히 무슨 규제를 했다기보다 우리 식으로 사회의 평등을 유지하는 반(半)복지국가 제도였습니다. 제가 한국이 사회계약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그래서입니다.

세금을 많이 걷고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유럽식 복지국가로 갈 건지 말 건지 공론화하자는 겁니다. 유럽식과 미국식의 중간 형태로 갈 수도 있겠죠. 중간 모델에 대한 논의가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요.”

선진국과의 FTA는 불리하다

우리 국민이 유독 평등주의 성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엔 반상의 구별이 뚜렷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미 군정, 한국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사회가 완전히 평평해졌죠. 다 갈아엎는 바람에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평등했던 나라이니 평등의식이 남다를 수밖에요. 제가 서울대 82학번인데 그 시절엔 3분의 2가 지방 출신이었어요. 지금은 역전돼 3분의 2가 서울 출신이죠.”

미국 국경을 넘어 번지고 있는 ‘반(反)월가 시위’는 어떻게 보나요?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월가의 시위가 촉매가 되어 미국 정치권에서 무슨 방안이 나올 수도 있겠죠. 지난해 7월 미국에서 광범위한 금융감독 개혁안을 담은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이 발효됐을 때만 해도 잘한다 싶었는데 그새 금융권이 엄청나게 로비를 해 물을 많이 탔습니다. 한국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비정규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정규직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는 세계 2위로 영국 다음으로 높습니다. 가계 빚이 이렇게 늘어난 건 재테크 명목으로 빚을 내 집을 샀기 때문이죠. 부동산시장이 크게 출렁거리면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장 교수는 선진국과의 자유무역은 한국에 불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국에서는 아직 비준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EU)과의 FTA는 발효됐습니다. 한·EU FTA도 한국에 불리하다고 보나요? 한·칠레, 한·페루 FTA의 경우 장기적으로 한국이 더 유리하다고 봅니까?

“그렇죠. 기본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간 FTA는 단기적으로는 서로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선진국에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후진국으로서는 추격하는 산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역사적으로 증명된 기본적인 명제입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1970년대에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면 오늘날의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FTA는 수준이 비슷한 나라와 해야 합니다. 한미 FTA, 한·EU FTA도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이 미국·유럽의 80% 정도 됐을 때 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 정도 격차라면 자극이 돼 시장도 커질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50% 수준밖에 안 되기 때문에 힘에 부칩니다. 유럽 통합이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리스·슬로베니아 등 격차가 큰 나라까지 합류하면서 문제가 생겼죠. 이들 나라의 경우 EU에 들어가 부분적으로 선진화됐지만 독자적인 기업을 키우는 건 이제 끝났어요. 이런 나라들이야 역내 이민이라도 자유롭죠.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상을 받습니까?”

요즘 들어 많이 위축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의 역동성도 변수 아닙니까? 우리 국민은 한번 하기로 마음먹으면 하는 사람들이라는 어떤 믿음이랄까, 낙관론도 있는데요?

“과거 같으면 그럴 수도 있죠. 9회 말에 8점을 내 역전하는 야구 게임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요즘 그렇게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기업이 있나요? 다들 편하게 먹고살려 들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맺은 FTA가 기적적으로 성공할지도 모르죠. 제 말은 우리가 그 나라의 80% 수준일 때 잘될 확률이 85%라면 지금은 그 확률이 10%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경제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면 한미 FTA에 이를테면 정치적인 변수가 작용했다고 보나요?

“북한과의 관계도 걸려 있는 만큼 미국이 정치적인 압력을 가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우리 쪽 협상 대표들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게 옳은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후진국 일반이 안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유치산업을 보호할 때도 그랬습니다만 나라 안에는 미래산업의 대변자가 없다는 거죠. 미래산업은 아직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부가 주도하지 않으면 후진국에서는 신산업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으로 가는 데 필요한 정밀기계·정밀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없습니다. 이 상태에서 스위스·독일 등 이 분야가 강한 나라들이 포진한 EU와 자유무역을 하면 우리가 그런 제품을 개발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한·EU FTA에 반대하는 사람은 못 봤어요. 삼성·현대차 등 지금 잘나가는 기업들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들 회사는 미래산업의 대변자가 아니거든요. 부품·소재산업의 강자가 되지 않으면 일본·독일·스위스·미국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유럽의 하위권 정도에 머물겠죠.”

현존하지 않는 미래산업의 대변자는 결국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학자가 될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재계가 미래산업의 대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신산업에 진출해 덩치를 키운 과거의 재벌 구조라면 재계가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재벌을 특화한다는 명목으로 저마다 특정 산업에 배치했지 않습니까? 내부의 지원을 통해 신산업을 키울 수 있는 장치는 공정거래법·금융자유화 등을 통해 다 없애버리고. 재벌들은, 가령 현대차그룹 같으면 ‘이제 우리는 자동차 기업이니 자동차 잘해서 먹고살자’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신산업 진출은 의욕도 별로 없거니와 하려야 할 수도 없고요.”

금융 불안하면 펀더멘털 좋아도 소용없어

수직계열화를 통해 부품·소재산업을 발전시키는 방안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길도 있죠. 이런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 건 만들기 어려운 데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부품을 사들여 배 만들고 자동차 조립하는 건 그에 비하면 쉬운 일이죠. 대기업 자체가 이런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의식도 부족하고 환경도 안 갖춰져 있어요. 그나마 현대모비스 같은 회사가 그런 시도를 했는데 상속의 보조장치가 돼버리니 진심에서 키우려 해도 사시로 보게 되죠.”

기업가정신이 쇠퇴했다는 지적도 많이 합니다. 1세대 기업가들의 퇴장으로 기업가정신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요?

“자본주의는 이미 영웅적인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굴러가는 시스템이 됐습니다. 혁신도 영웅적인 개인이 아니라 체제가 하는 시대가 됐어요. 일본이 좋은 예죠. 이렇다 할 천재가 없는 나라지만 혁신 면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생태계의 문제는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미국 정도 빼고는 사실 신산업이 생겨나기가 쉽지 않죠. 미국은 새로운 산업을 배태할 기술력을 갖췄고 그래서 그만큼 공간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미국처럼 기술의 프런티어를 장악하고 있지 않은 나라가 신산업을 창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벤처기업장려법을 만들었지만 다수의 ‘무늬만 벤처’가 보조금을 타냈고 먹튀도 했죠.”

이제 금융 얘기로 넘어가 보죠.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 정도를 어떻게 보나요? 너무 개방돼 외부의 충격에 약하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너무 많이 개방됐습니다. 파생상품 부문 빼고서 우리나라만큼 개방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국 자본의 은행 소유율, 인수합병의 용이성 정도, 환율 변동성 수준 등 무엇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만큼 개방된 나라는 흔치 않습니다.”

이런 흐름을 역진시킬 수도 있나요?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건데 당연히 역진시켜야죠. 어떤 제도든 도입하고 나서 그 결과가 잘못되면 바꾸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사실 과거에 다른 나라가 요구하는 것들 다 안 듣고도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졌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IMF마저 투기성 자금이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며 후진국은 자본을 통제해야 한다고 공언하는 세상입니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우리나라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는 자본시장을 개방하면 돈의 흐름에 휩쓸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기축통화국은 다릅니다. 얼마 전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 않습니까? 그러자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수요가 도리어 늘어났습니다. 부도 위험이 높아져 신용등급을 강등했는데 사람들이 왜 미국 채권을 더 샀을까요?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는데 뛰어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배 깊숙이 들어가는 격이죠. 금융시장 종사자들은 세계 경제가 불안해질수록 미국 채권에 의존하게 됩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상어한테 물려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래서 기축통화국인 미국·일본·유럽으로 돈이 흘러들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양적 완화로 눈먼 돈이 많이 돌면서 한국·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선진국이 아니면서 경제가 좀 나은 나라들의 환율 변동이 극심합니다. 이 흐름을 차단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게 예측 가능성입니다. 극심한 규제도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면 별문제 없습니다. 특히 대기업들은 규제에 맞춰 사업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가령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면 그에 맞춰 원가 절감 등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환율이 어떻게 될지 모르면 대응하기가 힘들어요. 예측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거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건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입니다. 미국 주식시장에 풀린 돈의 1%면 우리나라 상장기업을 모두 사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금융시장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거죠.”

기축통화국이 아닐뿐더러 소규모 경제라 사정이 나아지고 선진국이 되더라도 금융시장 개방에 따르는 문제는 여전하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봅니다. 다른 부문은 더 개방하더라도 금융 부문은 규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가 3000억 달러 조금 넘는데 금융위기 직전 하루 외환 거래량이 4조 달러였습니다. 이런 돈이 들어와 휘저으면 펀더멘털이 아무리 좋아도 견딜 재간이 없어요.”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런 펀더멘털론을 폈죠?

“금융시장이 이렇게 비대해진 상태에서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개방을 하면 펀더멘털이 좋아도 소용없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딱 한 가지 부채 비율만 높았습니다. GDP 대비 해외 부채와 수출액 대비 이자 상환액이 많았죠. 그렇지만 세계은행이 정해놓은 위험 수위에는 한참 못 미쳤어요. OECD 국가 중 둘째로 건전한 재정이었죠. 종금사 24곳에 허가를 내주고 금융시장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들여오는 돈은 단기로, 꿔주는 돈은 장기로 운용하다 고꾸라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펀더멘털은 별 의미가 없어요.”

장 교수는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지만 부동산·주식·채권·외환 등에 투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주량은 적포도주로 한두 잔, 술이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담배는 자기 전에 한 개비 피운다. 평소 잠은 7시간 자고, 취미는 요리. 자신의 이름을 딴 요리 ‘치킨 하준’은 이 음식을 좋아하는 두 아이가 붙인 별명이다. 못하는 것은 운동.

재테크는 왜 안 하나요?

“실력이 없으니까 안 하는 거죠. 경제학자끼리 주고받는 농담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주식시장에 경제학자가 나타나면 팔고 나갈 때다.’ 주식을 해서 돈 번 유이한 예외가 케인스와 리카르도입니다.”

금융 불안 문제를 완화할 장치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1990년대 우리나라에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칠레와 콜롬비아가 단기자금의 유입을 막으려고 기탁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돈이 들어오면 정부가 강제로 30%인가를 떼었다가 1년 후 돌려주는 겁니다. 1년이 안 돼 빠져나가면 그 돈을 날리는 거죠. 이렇게 하면 1년 안에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못 들어오죠. 단기자금의 흐름을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초단타매매(HFT:High Frequency Trading)를 줄이려면 자본거래세를 도입하면 됩니다. 198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가 제안했기에 토빈세라고도 불리는데 외환·주식 거래에 0.1% 정도의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하루에 20~30번씩 사고파는 사람들에겐 상당한 부담이죠. G20을 통해 채택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 인수합병을 좀 어렵게 만들면 먹튀하려는 돈이 덜 들어올 거예요.”

동북아 금융 허브론은 망국론

기탁금·토빈세가 다 유효한 장치라는 거죠? 부작용은 없을까요? 도입을 한다면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이 크겠죠?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든 빌린 돈을 갚으려고 했지만 말레이시아는 1년 동안 자본 유출을 금지했습니다. 처음엔 난리가 났죠. 그런데 1년 후 7조 달러쯤 흘러나갈 거라고들 했는데 실제로는 1조 달러도 안 나갔어요. 왜냐하면 자본 유출을 차단하고 경기 부양을 해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좋아졌는데 돈이 빠져나갈 이유가 없죠. 비상시엔 이런 방법도 쓸 수 있는 거예요. 안 된다고 하니까 못 쓰는 거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토빈세는 아직 대규모로 채택한 나라가 없습니다. 얼마나 효과적일지 모르죠. 기탁금은 효능이 입증된 제도입니다.”

외환은행 매각 문제는 어떻게 보나요? 최근 이 은행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 조작과 관련해 서울고법이 유죄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습니다만.

“너무 복잡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은행에 부실 판정을 내리고 예외 규정을 적용해 론스타에 넘긴 건 제대로 된 결정이 아니죠. 당시 정부가 무리하게 론스타에 팔려고 한 거 아닙니까?”

그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지금 론스타에 불리한 결정을 내리면 신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한국의 ‘반외자(反外資) 정서’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는데요?

“과거에 누군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무효화하는데 왜 신뢰 문제가 생깁니까? 법을 제대로 지키려는 건데 신뢰도가 더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소 신뢰의 문제가 있더라도 금융시장을 잘 운용하면 돈은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1990년대 초 미국과 일방적인 통화 통합을 한 아르헨티나는 금융위기를 겪은 후 2002년 채무 이행을 정지했습니다. 자살행위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듬해부터 올해까지 이 나라가 남미에서 가장 성장이 빠릅니다. 지금 아르헨티나에 돈을 주려고 줄 서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경제가 잘되는 게 중요합니다. 잘되면 옛날 일은 잊어버리게 마련이죠.”

한국이 동북아의 금융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요? 지금은 잠복했습니다만, 일부에서는 물류 허브론도 폅니다.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는 건 나라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북아 금융 허브는 현재는 도쿄, 앞으로는 상하이입니다. 어떻게 서울이 금융 허브가 되죠? 런던과 뉴욕이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이 된 건 경제, 특히 제조업이 발달해 돈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몰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브가 된 거예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규제를 완화해 금융 허브를 만들려다 망한 나라가 아일랜드·아이슬란드·라트비아입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금융 허브 한다고 했다가 망한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과 재정적자가 GDP의 33%입니다. 완전히 거덜난 거죠. 금융위기 전 매년 3%가량 재정흑자를 내던 나라입니다.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금융 허브를 만든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물류 허브론은 북한이 제대로 개방을 하고 발전이 된다면 말이 되죠. 지금으로선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을 거칠 이유가 없어요.”

부품·소재산업 키워야 한국 경제 성장

한국 정부가 어떤 산업정책을 써야 한다고 봅니까? 여전히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보나요?

“한국뿐 아니라 작은 나라가 서비스업으로 경제를 지탱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1960년이라면 그런 논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우리가 그동안 쌓은 제조업 능력이 얼만데 그걸 왜 버리고 갑니까? 제조업은 중국이 쫓아오니까 금융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금융업 한다고 하면 미국과 영국이 전방 한 칸 내주고 잘해보라고 할까요? 어떻게든 죽이려 들겠지요.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한 달 전 우리를 봉으로 알고 팔아먹으려 했던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러면 어떤 산업정책을 써야 합니까? 한국 정부에 어떤 정책을 제안하고 싶나요?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무역적자를 거의 부품·소재에서 내고 있는데 이 분야에 기술력이 집약돼 있습니다. 또 중소기업과 맞는 업종이 많아 요즘 화두인 상생 문제도 많이 풀 수 있어요. 부품·소재 중 가령 정밀기계를 할지, 정밀화학을 할지는 산업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해봐야겠죠. 몰라서 그렇지 미국은 보호무역의 원조일뿐더러 산업정책도 씁니다. 미국 정부의 국방연구 등 연구개발(R&D) 지출은 전체 R&D 투자의 40~50% 선입니다. 우리 정부의 R&D 지출은 20% 이하에 불과하죠. 작은 정부로 가더라도 R&D를 포기해선 안 됩니다.”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 기조를 이어갈 경우 어떤 국면을 맞을까요? 자본주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요?

“신자유주의체제란 기본적으로 금융 중심 체제입니다.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돈 벌 궁리들만 하고 있습니다. 투자를 통해 능력을 키우기보다 경쟁을 부추기고 공포를 조장해 생산성을 올리는 데 골몰하고 있죠. 그 결과 장기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월가에서 시작된 분노가 응집되기에 따라서는 큰 변혁이 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대공황 때만큼 큰 위기거든요. 복지국가가 되면서 길에 나앉는 사람이 별로 없어 체감을 못할 뿐이에요.”

한국 경제를 낙관합니까? 내년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방향만 잘 잡으면 굉장히 잘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방향을 잘못 잡았죠. 미국 내지는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흑백논리와 단선적 사고도 극복해야 하고요. 단적으로 북한이 폐쇄경제를 해서 망한 건 맞지만 그 대안이 ‘완전 개방’은 아닙니다. 내년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최소 1~2년간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데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죠.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갈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내년 세계 경제의 리스크가 뭔가요?

“일단 유로존이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소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가 탈퇴할 수도 있어요. 미국도 성장 정체, 가계 부채, 부동산 문제가 심각합니다. 중국도 부동산 거품이 극심합니다.”

중국은 어떻게 보나요? 한국의 제조업이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가격 경쟁력 사이에 끼어 있다는 샌드위치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1등 국가와 꼴찌하는 나라 빼고는 다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하는 고비를 맞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중국은 다른 사람들만큼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명목상 사회주의 국가인데 경제적 불평등으로 내부 갈등이 심하고 금융시장도 극히 혼란스럽습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경기 부양한다고 돈을 풀어 공항 등을 지었는데 잘 안 된 것이 많아 부동산 거품도 심하고요. 무역 의존도도 너무 높습니다. 언젠가는 민주화 요구도 분출하겠죠. 어떻든 세계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건 맞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올인하는 것 같은데 중국이 20년 정도 고도 성장했을 때를 내다봐야 합니다.”

장 교수는 200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공모에 응했다가 떨어졌다. 박사 학위도 받기 전 스물일곱에 임용돼 13년째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있었지만 불혹을 앞둔 젊은 나이였다. 당시 기자는 낙방한 그를 인터뷰했다. 그는 최종 면접에서 “그 나이에 조직을 장악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황당해했다. 그때 원장이 된 사람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다. 만일 KDI 원장이 됐다면 그의 인생 항로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김대중 정부 말기라 얼마나 했을지 모르죠. 다음 정부에서까지 했다면 학교로 돌아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영국으로 돌아가기는 더욱 어려웠을 테고, 연구나 저술도 지금만큼 못 했겠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은 없나요?

“제 아버지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뜻을 전해와 반의무감에 응모한 겁니다. KDI 원장은 경영자인데 경영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지만 책 보고 연구할 시간이 부족해 좀 괴로웠을 거예요.”

공직에 관심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복지냐, 성장이냐는 공허한 이분법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복지를 확대하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요?

“복지를 제대로 하려면 명백히 세금을 더 걷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조세 저항이 심하지만 세금을 더 걷는다면야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지 않죠. 세금이 무겁다는 것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세금이 낮은 게 무조건 좋다면 기업들이 소득세가 5%인 자메이카로 몰려가야죠. 그러지 않는 건 다른 조건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담세율이 우리나라의 두 배 반, 세 배 가까운 스웨덴·핀란드 같은 나라는 경제가 잘됩니다. GDP 대비 복지 지출이 미국의 두 배인데 경제 성장률이 더 높습니다. 복지 지출도 잘하면 경제에 나쁜 게 아닙니다. 복지냐, 성장이냐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잘못된 발상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우리나라가 그런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일례로 고급산업에 진출하면 경제활동의 리스크가 커집니다. 과거 모두가 반숙련 노동자이던 시절엔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전자조립공장으로 옮기더라도 4~6주 지나면 적응했습니다. 요즘 생명공학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로 이직하면 최소 6개월, 1~2년은 훈련을 받아야 해요. 이 기간에는 생계 유지가 막막한 실정이죠. 그래서 다들 의대를 가려는 겁니다.

의료기술은 한번 배우면 죽을 때까지 써먹을 수 있거든요.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도 이분법입니다. 세상엔 선별적 복지만 하는 나라도, 보편적 복지만 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선별적 복지를 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도 초등교육은 의무입니다. 보편적 복지를 한다고 성형수술까지 복지로 해결하는 나라는 없고요.”

엔지니어보다 의사를 선호하는 풍조에 부정적이군요. 공감합니다만, 의료 분야로 우수한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잘 관리하면 한국이 의료 분야에서 선진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의료계에는 의료 서비스, 나아가 의료와 IT, 공학을 융합한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 수출에는 한계가 있어요. 백내장처럼 수술을 받으면 치료가 끝나는 병도 있지만 보통은 치료받는 동안 의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일부 돈 많은 사람 말고 어떻게 외국에 가서 몇 달씩 살면서 치료를 받습니까? 의료 기술을 공학과 접목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자면 공학도도 그만한 실력을 갖춰야죠. 제대로 산업으로 키우려면 대기업이 참여해야 하고요. 의사를 많이 양성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출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기반을 흔들 만큼 심각합니다. 저출산 대책으로 복지국가의 길을 걷든지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저 자신이 이민자로서 저는 이민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도 이민을 받아들이는 게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농촌 학교는 이미 다문화 가정 출신이 다수예요. 누가 시켰거나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 장려한 게 아닌데도 말이죠. 저임 노동, 농촌 배우자 등 구조적인 이민 수요가 생기면 이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민자들이 사회 각층에 퍼지다 보면 ‘이 사람들이 일도 잘하고 괜찮은데’ 하는 인식이 생겨날 거고요. 결국 시간이 많이 흐르면 한국인이 유전자적으로 주류가 아닌 사회가 되겠죠. 그에 따라 한국인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고요. 국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거기서 세금을 더 걷어 육아·교육 등 복지를 확대할 건지, 육아도 시장에 맡길 건지 결정해야 합니다. 시장에 맡기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민을 더 받아들여야죠. 자동화를 가속화해 아예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고요. 기업이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만큼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복지냐, 이민이냐 사회적 합의 필요

일본처럼 통·번역은 우수한 인재에게 맡기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니 영어 발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저를 보고 위안을 삼는다고 하더군요. 장하준도 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는데 나도 희망이 있다고 쓴 사람도 있고요. 제가 영어 발음을 고치려고 마음먹었다면 코치에게 돈을 주고 엄청난 시간을 들여 고쳤겠죠. 하지만 영어권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건 읽고 쓰는 능력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원엔 한계가 있어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면 저는 자기 전공 실력을 쌓는 데 힘쓰라고 권하고 싶어요.”

경제학자라기보다 사회사상가나 철학자에 가깝다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칭찬인가요? 경제학은 수식을 적용해 명쾌하게 답을 내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얘기죠. 애덤 스미스는 법학 교수였고 <국부론>과 더불어 철학책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감성론>을 남겼습니다. 본래 경제학의 뿌리가 그래요. 테크니컬한 영역도 있지만 철학적인 주제도 다루는 게 경제학입니다.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경제학자가 아니라고 하면 안 하면 되죠. 경제학자가 무슨 벼슬인가요?”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습니까?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우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땐 사실 좀 괜찮은 대학에 다녔고 학사경고만 맞지 않으면 졸업 후 일자리가 줄을 섰습니다. 우리가 잘해서 편하게 산 것도, 여러분이 뭘 잘못해 고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이렇지만 도전정신을 갖고 열심히 하십시오. 교수나 권위 있는 사람이 한 말도 의심해보세요. 권위자가 한 말은 잘못됐어도 믿기가 쉽죠.”



201111호 (201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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