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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인터뷰 - “골드미스요? 이제 국민며느리 될래요” 

‘귀여운 새댁’ 예지원, 시청자들을 홀리다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JTBC 예능프로 <대단한 시집>에서 꽃게잡이 집안의 며느리 도전…어느 역할이든 소화해낼 수 있는 ‘도화지’ 같은 배우 되고 싶어

▎‘40대 여배우’의 반열에 들어선 예지원은 요즘 결혼과 가족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생겨난다고 한다. JTBC <대단한 시집> 출연이 계기가 됐다.



엉뚱하고 재치 있는 매력으로 ‘4차원’, ‘8차원’ 캐릭터로 자리잡은 예지원(40)이 고된 시집살이에 나섰다. JTBC <대단한 시집>에서 꽃게잡이 집안으로 시집간 예지원은 새벽부터 꽃게잡이 배를 타며 맏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노처녀’, ‘올드미스’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월드’를 헤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새댁’ 예지원을 만났다.

한국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불리던 작품이 있었다. 2004년에 방영된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다. 예쁘지도 않고, 능력이 특출나지도 않은 32세 주인공 ‘최미자’는 방송국 이류 성우다. 순수해서 때로는 손해보기도 하고, 의미 없이 던진 동료의 말에 엉뚱한 상상을 하는 귀여운 면을 지닌 이 인물을 예지원은 31세의 나이로 야무지게 연기했다.

극중에서 방송국 PD(지현우 분)에게 빠져 소녀처럼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고,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여성이 ‘저건 내 이야기’라며 공감을 보냈다. 최미자라는 인물에 빙의된 예지원의 연기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략 10년이 흐른 지금도 예지원은 극중 최미자와 같은 ‘골드미스’의 삶을 살고 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김지영·오윤아는 결혼을 했지만 예지원만 ‘싱글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 시집을 갔다. JTBC <대단한 시집>에서 충남 서천의 꽃게잡이 집안의 ‘맏며느리’가 된 것이다. <대단한 시집>은 가상 시집살이 체험 예능 프로그램이다.

스타들이 시집살이를 하며 겪는 시댁 체험기를 다룬다. 예지원과 함께 가수 서인영, 개그우먼 김현숙이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시골로 가 가상의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대단한 시집>은 가상 결혼체험, 육아를 뛰어넘어 ‘가상 시댁체험’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방영 초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다.

10월 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수영장에서 밤 9시를 넘긴 늦은 시간에 예지원과 만났다. 그는 SBS <정글의 법칙> 출연에 대비해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예지원은 <대단한 시집>에서 시댁을 방문하는 날 꽃가마를 탄 새색시로 분장했다.
시댁에 아기돼지 데려간 ‘엉뚱한 며느리’

<대단한 시집>이 요새 방송가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대단한 시집> 연출을 맡은 김석윤 감독님을 믿고 ‘무조건 한다’고 했죠.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같이 하면서 쌓인 신뢰가 있거든요.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미자’ 역할을 할 때 제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어요. 지금은 그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는데 아직 결혼을 안했잖아요. 앞으로 주부, 아이 엄마 역할도 해야 하는데 결혼을 안 했으니 ‘연기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도 했어요. 그런 마당에 이번 시집살이를 통해 연기자로서, 여자로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됐으니 얼마나 좋아요.”(웃음)

시집살이를 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던가요.

“제가 꽃게잡이 집안으로 시집을 갔잖아요? 그런데 출항 시간에 맞춰 새벽 2시에 가족들이 일어났는데, 그 꼭두새벽에 일하러 나간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어요. 새벽에 꽃게잡이를 하고 낮에는 밭일과 집안일을 하는데 정말 하루가 후딱 가더라고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시어머니가 대단해 보였어요. 남자만 하는 줄 알았던 꽃게잡이 일부터 집안일까지, 여자인데 정말 대단하죠?”

방송에서 시집가는 날 시부모님께 아기돼지를 선물하는걸 봤어요. 그게 예능을 위한 설정이었는지, 정말 선물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궁금했어요.

“애완돼지를 데려갔는데, 제가 시집가는 곳이 바닷가 마을인 줄 몰랐어요. 돼지가 쓰임새가 많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돼지가 자라서 새끼를 쑥쑥 낳으면 집안에 엄청난 재산이잖아요. 그래서 두 마리를 데려가려했는데 제작진이 한 마리만 데려가라고 말리더라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한 마리를 들고 가길 잘한 것 같아요. 돼지 집을 지어주기 전까지 돼지 울음 소리 때문에 시부모님께서 잠을 못 주무셨거든요. ‘아이고 이걸 어쩌지’ 싶었죠.”(웃음)

꽃게잡이 집안의 큰며느리가 된 예지원은 꼭두새벽에 꽃게잡이 배를 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며느리를 위해 꽃게라면을 끓여주시는 시아버님을 향해 “아버님~ 꽃게 둘에 라면 셋이요”라고 애교를 부리는가 하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꽃게, 꽃게는 좋지만은 꽃게발은 너무 무서워”라며 찬송가를 개사한 ‘꽃게송’을 부르기도 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배우 며느리’를 기대 반 근심 반으로 지켜보던 시부모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게 한 며느리였다.

예지원은 모범을 보여야 할 동서 앞에서도 ‘초보 며느리’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저녁식사를 같이 준비하는 동서에게 “물 이 정도 넣으면 돼요?”, “된장은 한 숟갈만 넣으면 되는 거죠?”라며 하나하나 묻고 또 물었다. 저녁상 준비에만 2시간을 넘기는 며느리를 보며 시아버지는 “아이고, 밥 못 얻어먹고 자겄다”라며 입맛을 다셨다. 저녁 설거지를 다 마치고 시댁 식구들이 모두 잠들기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예지원의 귀여운 시집살이 모습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자아내기도 했다.

극중 결혼생활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그는 최근 복귀한 드라마 KBS드라마스페셜 <그렇고 그런 사이>에서 미망인으로 출연했다. 그동안 ‘싱글’ 역할만 맡아왔던 예지원의 연기 인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예지원은 “참한 아내 역할이라 해서 ‘무조건 한다’고 했다”며 “제게도 참한 면이 있고 그런 역할도 많이 했었는데 시청자들은 잘 기억 못하는 거 같다”라며 웃었다.


▎(왼쪽부터)김현숙·서인영과 함께 가상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예지원. 3명의 출연자가 벌이는 좌충우돌 시집살이 체험이 시청자들의 웃음과 공감대를 자아낸다.



“일에 빠져 지내다 보니 결혼 잊고 살아”

실제 올드미스로 살면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듯 한데요?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요. 올드미스로 살면서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은 사람이에요. 이 일 저 일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개인적인 시간을 누릴 여유가 없었어요. 하루 종일 온통 일 생각만 하고 지내니까요.

그래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재미있고 알차게 사는 것 같은데 요즘 들어서는 ‘무엇이 알찬 삶인가’에 대해 조금 의문이 들긴 해요. 그런데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게 가능할까요? 저는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저처럼 단순한 사람들은 눈 앞에 닥친 하나에만 집중하거든요. 어쩌면 저와 인연이 있었는데 제가 못 봤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상형은 있으세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지팡이처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요. ‘좋은 동료’ 같은 사람? 어머 나 참 큰 일이야, 남편한테까지 동료래.(웃음) 그냥 편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가 결혼을 잠시 잊고 산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지원은 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배우다. 9월 중순부터 ‘2013―터키 한국영화주간’, ‘애틀랜타 대한민국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한 달 내내 각종 영화제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 힘겨운 일정을 쪼개 새 드라마를 촬영하고, 서천으로 내려가 시집살이를 하고 있으니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

틈틈이 스쿠버다이빙 연습을 하는가 하면 지난 4월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해외의 결손아동을 데리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한번에 이 많은 스케줄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지만 그는 “피곤한 줄 모르겠다”며 웃어 보였다. ‘4차원’, ‘8차원’으로 불리며 대중들에게 엉뚱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방송 속 예지원의 모습과는 달리 ‘치열한’ 삶을 사는 현실 속의 예지원의 생활이다.

영화계와 방송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해내는지 궁금해요.

“우선 체력이 되니까요. 하나님께 감사해요. 저도 이 나이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낼 줄 몰랐어요.(웃음) 저는 잘 쉴 줄 모르는 인간인가 봐요. 사람들은 제가 배우 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걱정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전 정해진 계획이 없으면 더 힘들거든요. 촬영 일정이 잡혀있거나 할 일이 계획되어 있어야 쉴 때도 마음이 놓여요. 해외를 갈 때도 영화나 방송을 촬영한다거나 화보를 찍는다든지 어찌됐든 일을 끼고 가야 안심이 돼요.”

봉사활동에도 꽤나 열심이시군요?

“올해로 한국컴패션에서 봉사한 지가 5년째예요. 차인표·신애라 씨 외에도 좋은 선배님·후배님들을 보고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봉사했나. 마음만 있었지, 지금까지 미루고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아이티·아프리카·네팔 등으로 다섯 번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왔죠. 해외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에요.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일들도 생기고요. 하지만 한 번 다녀올 때마다 후원과 모금이 늘어나고, 그 모금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는 걸 알게 된 뒤로 안 갈 수가 없게 돼요.”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가정방문으로 만난 ‘플로렌스’라는 소년이 얼마 전 수술을 받으러 한국에 왔어요. 플로렌스는 왼쪽 눈이 성인 주먹 크기만큼 부풀어 오른 채 살아가던 아이였어요. 눈의 종양이 원체 커서 얼굴 부위로 전이가 됐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전이도 안 되고 암도 아니어서 종양만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정말 다행이죠.

수술을 끝낸 아이와 시내 구경을 하러 나가 해양 수족관을 다녀왔는데 아이가 밝게 웃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말은 안 통하지만 ‘우린 똑같구나’라고 느꼈죠. 다만 한국에 와서 여기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보고 우간다에 돌아가서 박탈감을 느끼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들기도 해요. 건강한 아이니까 잘 극복하겠죠?”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의 ‘여배우’

‘4차원’, ‘8차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데 그것은 본래의 성향인가요?

“제가 원래 내성적·외향적인 성향을 왔다갔다해요. 그걸 보고 남들이 ‘4차원’이라고 부를 때는 그냥 웃었어요. 한때 ‘4차원’이라는 표현이 붐이었잖아요. 비슷한 시기에 4차원으로 불리던 분들을 보면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같이 거론되어서 영광이었죠. 팬들에게 사랑받는 거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4차원, 8차원으로 불리는 걸 보면 제가 오히려 궁금해요. ‘이 수식어가 왜 이렇게 길게 가지?’, ‘내가 여전히 관심대상인가?’ 하고 웃고 말지만요.”(웃음)

원래 성격은 ‘4차원’이 아니란 말인가요?

“말이 없을 땐 아예 말 한마디도 없고 어떨 때는 눈치 안 보고 신나게 마구 떠들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즐기는 편이고요. 원래 제 성격인지 배우를 하면서 그렇게 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배우로 일했거든요.

배우를 하기 전에는 무용을 했는데, 무용과 연기가 닮은 점이 많아요. 무용은 여러 사람과 군무를 해야 하고, 연기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이잖아요. 무리에 섞여 일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혼자 쉴 시간, 공간을 찾게 되는 거 같아요. 그만큼 빨리 회복하는 스타일인 거 같고요.”

그녀는 춤과 인연이 많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는 무용가로 출연해 한국무용·현대무용·살사를 추며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는 자이브·룸바·차차차 등의 춤을 추며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영화 <더 킥>에서는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 등장인물의 역할을 맡는 등 유독 춤추고 몸을 쓰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춤과 관련된 역을 자주 맡은 이유가 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무용을 배웠어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요. 제가 학력고사 세대인데, 무용으로 전기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졌어요. 재수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후기대를 포기했죠. 엄마가 ‘무용보다는 연기가 어떠니’라고 권하셨는데, 전문대에 덜컥 붙은 거죠. 신기하죠? 무용보다 경쟁률이 높은 연기는 붙고, 정작 주 전공인 무용은 떨어졌으니 말이에요. 연기를 하면서 무용을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신인 오디션을 보는데 여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어떻게 나를 각인시킬 것인지가 고민이었죠. 신인들의 연기 수준은 다 고만고만하니, 무용으로 심사위원들한테 강한 인상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지금은 이렇게 인터뷰도 곧잘 할 정도로 뻔뻔스러워졌지만, 초기에는 오디션장에서 숨쉬는 것만도 힘들어 했어요. 질문에 버벅대며 엉뚱한 답변을 하기 일쑤였죠. 저는 무용으로 오디션에 다 붙었어요.”

무용이 예지원 씨의 연기 스펙트럼을 더 넓힌 거네요?

“연기하면서 무용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감독님들이 계속 그런 역할로 저를 찾아주시니까요. 무용을 하지 않더라도 제가 몸을 쓰는 역할이 많아요. 영화 <더 킥>에서는 태권도를 했고, 앞으로 출연할 <정글의 법칙>을 통해 이제 야생에서 살게 될 거고요. JTBC <대단한 시집>에서도 다른 두 명의 출연자와 비교했을 때 가장 힘든 데를 갔잖아요(서인영은 경북 영양군 고추밭으로, 김현숙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소금밭으로 시집을 갔다). 제작진이 제 체력을 아니까 보낸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중견 연기자인 예지원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역할을 맡으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역이 다 탐이 난다”며 연기열정을 드러냈다.



색깔 없는 배우로 오래가고 싶어”

‘자연미인’이라 부러움을 많이 사는데 그 비결이 궁금해요.

“저는 이 얼굴이어야 계속 캐스팅이 되어서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가 없어요.(웃음) 저를 캐스팅한 감독님들이 다 그랬어요.

‘이 얼굴에서 벗어나면 안 쓰겠다’, ‘고치면 넌 끝이다’라고 말한 감독님이 한두 분이 아니에요. 어릴 때는 저도 얼굴을 고치고 싶었죠.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가 미인인 시대였으니까요.

집에서 수술비를 안 대주니까 돈 벌어서 하려고 연기를 했는데, 이제는 손대면 안 되는 마스크가 되어버렸네요. 저는 성형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얼굴 화장처럼 성형으로 얼굴을 보정하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제 얼굴은 고치면 더 미워진대요. 참 힘든 얼굴이에요.(웃음) 지금은 얼굴을 고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배우는 자기 고유성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예지원은 튀는 역할로 다작을 한 배우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유흥가 여성부터(<대한민국 헌법 제1조>), “키스할래요?”라며 남자를 유혹하는 무용가(<생활의 발견>), “모든 남자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귀여운 뻥튀기 장수(<귀여워>) 등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했다.

무대에서도 <버자이너 모놀로그> <록키 호러 픽쳐쇼> 등 굵직한 작품에서 열연했다.

그럼에도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에서의 ‘최미자’가 강하다. ‘미자’는 곧 예지원이라고 할 만큼 대중은 아직까지 그에게서 ‘최미자’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작품에 출연해 천의 얼굴을 선보였는데도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의 ‘미자’ 역할로 많이 기억되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저야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한 가지 역할로 대중들에게 꾸준히 기억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제가 맡은 캐릭터가 오래오래 기억된다는 것은 배우로서 굉장히 큰 행운이라고 봐요. 특히 미자는 30대 여성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더 애착이 갑니다. 어떤 분들은 미자를 ‘푼수’, ‘노처녀’ 등으로 보시는데 제가 보는 미자는 꿈도 많고 고민도 많은 평범한 보통의 여성이에요. 매 컷 매 순간이 소중해요.”

자신을 표현한다면 어떤 색깔의 배우라고 보세요?

“애틀랜타 영화제 때 근처 대학을 방문해서 대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어떤 학생이 ‘예지원 씨는 자신을 어떤 색깔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묻는 거예요. 순간 멍해졌죠. 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 물어본다면 도화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할래요. 주어지는 역할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저는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도 없어요. 향수도 잘 안 뿌리고요. 나이에 맞게, 그때그때 변화해 나가고 싶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도 사연 있는 캐릭터에 애착을 보이는 것 같은데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택하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학생 때부터 특이한 예술작품을 좋아했어요. 어렵고 난해한 작품들을 많이 찾아다녔죠.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취향의 작품을 봐야만 배우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그렇게 해야만 ‘있어 보인다’고 느낀 거죠. 한마디로 지적인 사치에 빠졌다고 할까.(웃음)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죠. 그 당시 예술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어마어마하게 샀어요. 뜻도 모르면서 반복해서 봤는데, 그 시절에 받은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 같아요.”

“남자 역할도 해보고 싶은 걸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많죠, 정말 많아요.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좋은 작품의 좋은 캐릭터가 다 탐이 나요. 남자 역할도 해보고 싶은 걸요. 작품과 배역은 하늘이 맺어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죠. 바람이 있다면 정말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섬기고 싶고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 작품을 만드는 사람, 연기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 소리를 더 잘 내고 싶어요. 나를 뽐내지 않되 사람들 사이에 잘 스며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받쳐주면서 균형을 맞추려 해요.”

요즘은 무엇에 가장 관심이 많나요?

“JTBC <대단한 시집>이요.(웃음) <대단한 시집> 촬영을 하면서 주변의 결혼생활을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됐어요. 전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결혼한 선후배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나 그들의 생활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죠. 아무래도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는 지혜로워야 되는 거 같아요.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똑똑해야 해요. 어른들(시부모님)은 관록이 있으시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계시잖아요.

지금까지 한 가정을 이끌고 지켜오신 분들인데 그분들께 눈치로, 머리로 대하면 안 되죠. 예쁜 며느리 노릇을 한다고 하지만 TV 속 시부모님이 아직은 많이 낯설어요. 하지만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뵐 때 더 편하고, 세 번째에는 친근감을 느꼈으니 앞으로 더 정이 들겠죠. 내 가족처럼 느끼고, 가족 안에 스며들고 싶어요.”

201311호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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